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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 말하다

나는 이미 딸의 손을 잡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2. 7. 10. 20:30

7월, 복숭아 향기와 함께 내게 온 아이
딸을 만나러 가는 길 (48) 절망과 희망의 교차로 

이혼을 하면서 두고 온 딸은 그녀에게는 늘 어떤 이유였다. 떠나야 할 이유, 돌아와야 할 이유, 살아야 할 이유……. 그녀는 늘 말한다. 딸에게 하지 못한 말이 너무 많다고. "딸을 만나러 가는 길"은 딸에게 뿐만 아니라 이 땅의 여성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윤하의 고백이 될 것이다.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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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스물 한번째 생일이 며칠 전이었다. 오랫동안 아이의 생일 날은 나에게 더 견디기 힘들었다. 생일은 다른 날 같지 않았다. 그 즈음에는 아이가 더 보고 싶고, 더 상처를 느껴야 했다.
 
딸의 생일이 다가오면 선물을 보낼 거라고 부산을 떨고, 선물과 함께 아이의 근황을 알려달라는 편지를 동봉해 전남편에게 보내곤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묵묵부답이었다. 그럴 때마다 상처가 더 깊어졌다. 그러면서 세월이 지났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선물도, 편지도 더는 보내지 않게 되면서 훨씬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아나갔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맞다. 그걸 인정하기 힘들어도, 세월은 그렇게 아이의 생일을 좀더 평안하게 맞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러고 보면 요즘은 정말 많이 담담해졌다. 아니, 담담하다기보다 아이의 생일이라서 즐거울 때가 많다.
 
이번 생일에도 아침에 일어나 창을 열며 “어, 우리 딸 생일이네!”라고 혼자 소리 내어 말했는데, 기분이 정말 좋았다. 아이의 생일날, 맑은 아침공기 속에서 아이를 낳았던 날을 회상하는 건 즐겁고 행복하다.
 
아이를 낳기 직전, 까무러칠 듯 고통스러운 진통 중에 코끝으로 스쳤던 ‘복숭아 향기’를 생각하는 것도 참으로 즐겁다. 아주 잘 익은 달콤한 복숭아 향기를 코 끝에서 느끼고 몇 분 뒤 아이를 낳았다. 그래서 나는 아이 생일이면, 창을 열면서 “흐~흠!”하고 코를 실룩거려본다. 물론, 한번도 당시의 황홀한 복숭아 향기를 다시 맡은 적은 없다. 그래도 그때 그 향기는 입가에 미소를 부른다. 딸은 복숭아 향기와 함께 자박자박 내게 걸어온 아이였다.
 
아이를 낳기 바로 전날 밤 ‘너무 힘들어! 더는 못 살 것 같다…’ 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이슬이 비쳤다. 그리고 진통으로 괴로워할 때도 ‘딱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 아이가 나왔다. 그러고 보면 아이의 출산은, 희망의 싹은 끝이라고 느끼는 순간 비로소 다가온다는 걸 가르쳐준 최초의 사건이었다. 늘 새로운 세상으로 향한 문은 가장 절망스럽다고 느끼는 바로 그 지점에 있었다. ‘낭떠러지 끝에서 막 발을 떼었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 바로 그 순간, 구원의 손은 늘 내 손을 잡았다.
 
게다가 딸은 내겐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원천이었다. 내가 선택한 아이라고, 무엇보다 내가 지켜 낳은 아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아이를 볼 때마다 들었다. 그래서 이혼을 하고 아이를 전남편에게 보낸 뒤, 그리움으로 고통스러워도 아이의 존재는 늘 삶의 희망이고 살아있어야 할 이유였다.
 
하지만 17년 만에 만난 딸이 ‘새엄마를 더 사랑한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선언했을 때는 아이 낳은 걸 후회하기도 했다. ‘‘겨우 저런 소리를 들으려고 내가 저 아이를 낳았구나!’ 하면서, 처음으로 내 판단과 행동이 어리석었다고 발을 찧으며 후회했다.
 
그러고는 혼자 주역의 괘를 뽑았다. 속상한 마음을 어디에도 풀어놓을 데가 없었다. 아이의 존재가 내게 무엇인지 주역에라도 묻고 싶었다. 뽑은 괘가 지시하는 것에 맞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와 인연이 없다는 괘가 나온다면 그것도 받아들이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동전을 던지는 손이 부르르 떨렸다. 내가 원하는 대답은 그게 아니었으니까. 정말 그런 괘가 나왔다면, 그것을 받아들이기도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용기를 내야 했다. 아니, 마음을 끊어야 했다.
 
그때 뽑은 괘가 마흔여섯 번째, 승, 지풍승-뻗어나는 새싹이었다. “승이란 솟아오른다는 것이다. 땅 밑에 싹이 돋아 어린 나무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가는 모습을 나타내는 괘다…” 괘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딸의 존재가 내게 무엇이었는지 다시 생각난 건 바로 그때였다. 그 괘를 보고서야, 딸은 늘 내게 희망이고 미래고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존재였다는 걸 기억해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비극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대면하는 것이 아니다. 그 고통 속에서 소중한 걸 잊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내 인생의 비극은 딸과 헤어져 안타까움으로 오랜 세월을 감내해야 했던 것도, 딸로부터 외면당한 것도 아니다. 진정한 비극은 아이로부터 상처를 받았다고 느낀 그 순간, 그녀의 존재를, 내 판단과 선택을 후회한 것이다. 그것이 내 인생의 비극의 절정이었다.
 
요즘은 아이의 태도와 관계없이, 딸이 내 인생에 무엇인지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그러고 나니 아이에 대해서도 마음을 좀더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고, 즐겁게 그녀를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는 여전히 눈부시고 경이로운, 하늘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고, 내 기쁨이고 자부심이다. 어쩜, 나는 이미 딸의 손을 잡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니, 한번도 놓은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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