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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당한 여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꽃을 던지고 싶다] 10. 견뎌내는 일
 

<여성주의 저널 일다>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기록, “꽃을 던지고 싶다”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 www.ildaro.com
 
“트라우마 생존자의 목표는 무엇일까? 궁극적으로는 그것은 트라우마를 초월하는 것도 아니고, 트라우마 희생자가 겪는 생존자의 딜레마를 푸는 것도 아닌 단지 견뎌내는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어버리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 때는 그저 견뎌내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일 수 있다.
 
트라우마에서 살아남았던 사람들은 "나는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 같아, 나는 살아야만 해"라는 매일 매일 반복되는 바케트적 딜레마를 푸는 것이 얼마나 자신들을 지치게 하는 일인지 잘 이해한다.” -수잔 브라이슨 <이야기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 중
 
내일이 오지 않기를 기도하다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아내구타와 4월의 악몽이 나를 집에 있을 수 없게 했다. 무엇보다도 할머니가 살던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기에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집에 혼자 있게 되면 그날의 악몽이 세세히 기억이 나고 공포가 찾아왔다. 그 목소리가, 술 냄새가, 집에 가득 차 있는 듯했다. 피해 장소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야 하는 일상이 나에게는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아침 이른 시간, 일어나자 마자 학교로 향하였다. 학교 교문이 열리기도 전에 학교에 도착했다.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밤늦게까지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적어도 도서관과 학교는 나에게 안전한 도피처라 여겨졌다.
 
나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고, 더 이상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았다. 어울릴 수가 없었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대화하는 것이 두려웠다. 나에게는 그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이 생긴 것이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면 나의 더럽혀진 몸이 들켜버리기라도 할 것 같았다.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그 당시에 성폭력을 경험하면 몸이 더렵혀 진다는 사회적 편견을 나도 모르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매일처럼 나의 몸을 닦아내어도 그날의 역한 술 냄새가 나의 몸에 배어 있을 것만 같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의 몸에서 냄새가 나는지 확인해야 했다.
 
내 자신이 싫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리석게도 날마다 죽고 싶다는 생각만을 하게 되었다. 문득문득 귓가에 삼촌이 했던 ‘괜찮다’는 말이 맴도는 순간들이면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다. 나는 괜찮지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까, 나에게 내일이 오지 않기를 날마다 기도했다. 나에게 있어 유일한 목표는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미쳐버리거나 창녀가 되거나
 
나처럼 강간당한 여자는 어찌 살아야 하는지 알고 싶었다. 왜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야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질문할 수 없는 일이기에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위인전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나처럼 강간당한 여자도 훌륭한 삶을 살아낼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어릴 적에 난 판검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폭력을 휘두르는 나쁜 사람을 다 잡아가두고 싶었다. 그러나 위인전에는 강간당한 여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강간당한 여자가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소설책을 읽기 시작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책 속에 등장하는 강간당한 여자들은 다 미쳐버리거나 창녀가 되었다. <헬로우 미미>가 그러했고, <은마는 돌아오지 않는다>도 그러했다. 지금은 제목도 기억이 나지 않는 수많은 책들 속에서 강간당한 여자는 너무나 불행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의 꿈은 사라졌다. 나는 책에 등장하는 여자들처럼 미치지 않으면 창녀가 되어야 한다고 믿기 시작했다. 미치지 못했기에 창녀가 될 운명이라 생각했다.
 
도서관의 책을 다 읽어도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지금처럼 아동성폭력에 관한 책도, 페미니즘 서적도 존재하지 않았다.
 
공부를 하는 것도 시시했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은 쓸모 없는 일처럼 여겨졌다. 공부를 한다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꿈꾸는 삶은 없을 것이라 여겨졌다. 누군가 나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대부분 아동성폭력 피해자들이 그러했듯이 나는 처절하게 혼자 감당해야 했다.
 
나에게 왜 이런 불행이 반복되는지 알고 싶었다. 삶이란 것이 이런 것인지. 철학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내가 살아가야 할 희망을 찾지 못했다. 철학책도 이런 불합리한 일이 가능한 세상에 대한 이치를 설명하지 못하였다. 소크라테스의 보편적 가치,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성, 데카르트의 자기 확실성에서도 나의 경험을 설명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 나는 살고 싶다…’
 
죽고 싶다는 생각.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 속에서 죽을 수 있는 방법과 이유들을 찾고 있었다. 삶은 나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죽음만은 명확하게 나의 선택이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죽음도 내 뜻대로 하기에는 너무도 어린 나이였다. 그렇게 일 년을 나는 견뎌내었다.
 
그 당시에만 해도 나만 이런 피해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나와 같은 피해를 경험하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보다 더 침묵되었고, 드러나지 않고 숨겨졌다.
 
성폭력 사건이 몇몇 여성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면 난 창녀가 되어야 할 운명이라는 말을 믿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다행히도 난 못생겼기에 창녀가 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난 자살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으며, 빈번하게 자살을 시도했으나 단 한 번도 성공하지는 못했다.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 살아야 한다는 혼란함 속에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것은 살아있다고 느끼는 일은 아니었다. 단지 견뎌내는 것. 그것이 삶의 전부였다.
 
그때 도서관에서 읽은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라는 그 글귀가 잊혀지지 않았다. 삶이라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님을, 바람이 부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이유가 된다는 사실에 난 살아야겠다,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경험하지 말아야 할 고통을 견뎌내는 일
 
어린 나이였지만 나에게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알아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 어디에서도 나에게 설명해주지 않았다. 왜 사람이 그런 고통을 경험해야 하는지를. 사람이라면 그런 고통을 경험하지 않아야 했다. 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나는 인간인가?’ ‘인간에게 강간의 경험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라는 생각 속에서 날마다 ‘나는 사람이 아니다’ 라는 결론으로 향하게 됐다. 그렇다. 주체성을 가진 존중 받아야 할 사람이라면 강간의 피해는 경험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불운하다라고 하기에 내가 감당해야 하는 고통은 너무나 큰 것이었다. 폭력은 사회적 자원이 약한 사람에게 발생활 확률이 더 높다는 점에서 개인의 문제라고 치부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도 피해로 인한 고통은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것이었다.  (너울)
 
[덧붙여: ‘창녀’라는 단어에 기분이 상하셨을 분이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은 그런 단어를 사용하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다른 단어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성노동자, 성거래자, 성판매여성, 성매매 피해여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더라도 사회적 편견이 공고히 존재하는 한 저에게는 같은 의미로 다가왔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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