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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성 충전

배우가 말하는 '인형연기'의 매력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2. 5. 20. 08:00

나의 직업은 인형조종자(puppeteer)
뛰다의 시골마을 예술텃밭 16. 인형연기② 
 
※ 뛰다는 2001년 ‘열린 연극’, ‘자연친화적인 연극’, ‘움직이는 연극’을 표방하며 창단한 극단입니다. 지난해 강원도 화천으로 이주해 20여 명 단원들이 폐교를 재활 공사하여 “시골마을 예술텃밭”이라 이름 짓고,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이자 지역의 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 <일다> www.ildaro.com
 
안녕하세요. 저는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배우 최재영입니다. <일다>에 기고하는 두 번째 글이 ‘인형연기’에 관한 글이네요. 글을 기고하는 일이 낯설어 늘 쓰려고 자리에 앉으면 달달 떨립니다. 꼭 공연 시작 전에 느끼는 감정과 비슷합니다. 두근두근. 최대한 솔직하게 (뛰다의 배우 중 하나인 제가)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로 인형을 들고 공연과 연습을 하는지 적어보겠습니다.

▲   2001, 상자 속, 한여름밤의 꿈       © 공연창작집단 뛰다  
 
1. 인형 뒤에 숨다
 
1999년. 세상은 멸망으로 향해가는 중. 그러거나 말거나 복학 후 공연하는 맛에 푹 빠진 저는 신나 있었습니다. 공연하는 게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어요. 교내 공연이라 공연이 끝나면 늘 후배들과 친구들이 크게 환호해주어서, 제가 잘생겨서 좋아들 해준다고 착각을 하기도 했죠.
 
하지만 연습은 정말 죽을 맛이었습니다. 제가 연기해야 하는 인물과 자연인으로서의 제가 늘 겹쳐져서, 제가 연기해야 하는 인물의 모든 감정을 실제로 느껴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캄캄한 동굴에 들어가는 장면을 연기하려고 실제로 눈을 가리고 연습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왕의 남자>라는 영화로 더 유명한 <이>라는 연극에서 연산군 역을 연기할 때는, 스트레스로 살이 풍덩 빠지기도 했습니다. 남 앞에서 큰소리도 잘 못 내는 소심한 제가 조선의 왕, 그것도 연산군을 연기하려니 너무나 버거워 매일 도망가는 꿈을 꾸곤 했습니다.
 
등장인물과 저를 혼돈하는 공연들의 파도를 힘겹게 헤엄치던 중, 독일의 인형극 연출가가 교환교수로 학교에 오셨습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저는 유명한 영화배우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얼굴이 드러나지도 않는 인형연기에는 손톱만큼의 관심도 없었을 텐데, 어찌 된 일인지 오디션을 보고 팀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리허설 첫 날 (그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아주 정교하게 다듬어진 나무로 조각 된 연습용 마리오네뜨(줄인형)를 처음으로 조종하던 순간. 그 인형이 한발 한발 내딛고, 숨 쉬고, 세상을 바라보던 순간. “그 이후로 인형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 인형극 배우가 되었습니다.” 라고 하지는 못해도 신비로운 매력을 느낀 그 순간이 있었기에 누군가가 나의 직업을 물을 때 연극배우, 인형조종자 라고 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2003, 상자 속, 한여름밤의 꿈    © 공연창작집단 뛰다  
 
그 당시 제가 연기한 마리오네뜨 공연은 아주 재미없었습니다. 공연의 완성도 보다는 우리 학교에 인형극의 세계를 선보인다는데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편안하게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어느 때 보다 편안했습니다. 아이디어가 쏟아졌습니다.
 
제가 연기한 인형은 줄이 열한 개나 달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슴에 달린 한 개의 줄은 도통 쓸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그 인형이 아파 쓰러진 장면에서 그 줄의 용도를 알아냈습니다. 그 줄은 인형이 고통스럽게 숨 쉬는 장면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줄이었습니다. 줄을 들었다 내렸다 하면 가슴이 들썩이는데 마치 거친 숨을 내쉬는 것 같은 움직임을 연출했습니다. 두루마리 편지를 마치 인형이 펴는 것 같이 보이게 하는 트릭을 찾아내고, 앞으로 걷기도 힘든 인형에게 뒷걸음질을 시켜 연출가 선생을 기쁘게 했습니다. 
 
왜 그렇게 편안하게 연습하고 공연할 수 있었는지 되짚어 봅니다. 다른 공연들의 리허설 기간에는 늘 쑥스러웠습니다. 자꾸만 일상의 제가 불쑥불쑥 나와 창피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상에서 제가 하지 않는 일들은 무대에서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 그 연출가 선생은 감정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연출가들은 툭하면 ‘지금 너의 감정은 무엇이니?’ 혹은 ‘지금 뭘 느끼고 있니?’라고 물어봤습니다. 저는 그 질문이 무서웠습니다. 마치 제가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저는 무대에서 배우가 어떤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영화와는 달리 무대에서는 배우들의 개인적인 감정 표출보다는 장면에 가장 적합한 몸과 소리, 빛들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가 관객을 즐겁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등장인물을 연기하는 저의 감정이 중요했습니다. 따라서 연출가가 어떤 감정을 표현하라고 하면 제가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웠던 겁니다.
 
그런데 인형을 들고 연기한다는 것은 인형 뒤에 숨을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인형 뒤에 숨어 있으니 쑥스럽지 않았습니다.
 
2. 대형인형을 조종하다 

▲  통곡하는 쏭노인, 인형음악극 <쏭노인 퐁당뎐>  ©뛰다
 
외국 공연을 가게 되면 출입국신고서 서식에서 직업란에 “puppeteer”(인형을 부리는 사람)라고 씁니다. “actor”(배우)보다 좀 있어 보일까 싶어 쓰기 시작했다가 이젠 자연스러워졌습니다. 하지만 한동안 인형을 전면에 내세운 신작이 드물어서 조금 뻔뻔한 명함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이런 저를 위해(?) 호주의 인형극단인 스너프퍼펫과 뛰다가 <쏭노인 퐁당뎐>이라는 대형 야외 인형음악극을 공동 제작하여 작년에 공연했습니다.
 
저는 이 공연에서 키가 약 2m50cm인 쏭노인 역할을 했습니다. 머리 무게만 20kg정도인 이 인형은 메는 순간 땀이 비 오듯 흐르고 한번 넘어지면 일어나기가 힘들었지만, 이 인형을 메고 뛰어다니며 관객들과 노는 일은 정말 신났습니다.
 
공연의 특성상 관객들을 직접 마주 대하며 그들과 농지거리를 나누는데, 관객들은 일단 인형의 크기에 놀랐다가 가슴팍쯤에 얼핏 보이는 제 얼굴을 보고 안도합니다. 안에 사람이 들었다는 것을 알고 안도하는 그들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들이 안도한다는 것은 이 천조가리와 페인트칠로 만들어진 인형을 보고 살아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저에게 놀라운 순간은 그들이 실제 제 얼굴을 보고 안도하다가, 쏭노인이 말을 시작하고 눈을 꿈쩍꿈쩍 움직이면 다시 인형의 눈을 바라보며 쏭노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더욱 신이 나서 연기했습니다. 이 공연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쏭노인이 통곡을 합니다. 쏭노인은 땅이 흔들리도록 대성통곡을 하는데, 인형 안의 저는 정말로 즐거웠습니다. 이런 아이러니는 아마 제가 좀 더 능숙한 배우가 되어야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 쏭노인을 잘 연기하기 위해서는 이 인형의 시선이 중요했습니다. 인형이 어디를 바라보는지를 감각적으로 인지하는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또 한가지 집중했던 연습은 걷기 연습이었습니다. 실제의 저와는 보폭과 걸음의 무게감이 달라야 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습니다. 걸음과 시선이 익숙해지자 쏭노인의 인생역정이 자연스럽게 저에게 흘러 들어왔습니다. 신나게 연기했습니다.
 
공연 편수가 많지는 않지만 참으로 다양한 인형을 조종하고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었습니다. ‘숨을 불어넣는다’라는 표현은 참 재미있습니다. 저희는 겨울에 난방을 위해 나무를 때는데 나무를 넣어야 하는 순간을 놓치면 불이 꺼지고 맙니다. 더 늦기 전에 재를 뒤집고 새 나무를 넣은 후 가만히 불어줍니다. 세게 불어도 안되고 너무 약해도 안됩니다. 가만가만 후우~ 불어주면 어느새 불길이 확 일어납니다. 인형도 이렇게 살아납니다. 배우의 숨으로 인형을 살려내는 것이지요.
 
물론 살리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시선 연습도 하고 걷기 연습도 하고 말하는 연습도 해야 하지만, 궁극적으로 숨을 불어넣는 것이 그 시작입니다. (최재영)
 
※ 뛰다의 “시골마을 예술텃밭” 카페 cafe.naver.com/tu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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