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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성 충전

인형극 10년, 극단 뛰다가 말하는 인형연기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2.06.01 18:38

배우 여덟, 연출 셋의 ‘인형연기’ 좌담
뛰다의 시골마을 예술텃밭 17. 인형연기③ 
 
※ 뛰다는 2001년 ‘열린 연극’, ‘자연친화연극’, ‘움직이는 연극’을 표방하며 창단한 극단입니다. 작년 강원도 화천으로 이주해 20여명 단원이 폐교를 재활공사해 “시골마을 예술텃밭”이라 이름짓고, 예술가의 창작공간이자 지역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황혜란님은 배우이자 대표입니다. <일다> www.ildaro.com
 
신작 <2학년 공탱이> 인형극을 마치고 모인 뛰다
 
뛰다의 작품에는 다양한 인형들이 등장한다. 사람 모양을 한 것에서부터 상상의 형체를 지닌 인형, 물건 그 자체로 인형이 되는 것들까지. 창단 이후 십여 년이 흐르는 동안 인형은 뛰다가 만들어내는 세계의 한 축을 이루게 되었다.
 
하지만 인형을 다루는 것은 많은 배우들, 연출가들에게 생소한 일이기도 하다. <2학년 공탱이>라는 신작 인형극 공연을 마치고 난 뒤, 뛰다의 배우 여덟, 연출 셋이 모여 앉아 인형연기에 대해, 그 어려움에 대해, 그 비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2005년 <커다란 책 속, 이야기가 고슬고슬>
 
혜란: 일단, 10년 이상 인형과 함께 작업해 온 요섭과 재영이 먼저 간략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해보면 어떨까 한다.
 
요섭: 긴 시간 동안의 복잡한 과정을 여기서 다 말할 수는 없지만 가장 중요한 것만 말하자면, 내가 생각하기엔 ‘내 손의 존재감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나면 나와 인형과의 관계가 아주 달라진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래서 손에 대한 독자적인 훈련이 필요한데, 그런 훈련이나 인식의 과정이 없으면 인형을 물건 다루듯이 하게 되는 것 같다.
 
또 하나, 인형연기를 하게 된다는 것은 인형과 내가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인데, 처음엔 그것이 굉장히 멀고 다르다고 느꼈지만, 그 다음엔 내 몸에 대해 갖는 거리와 비슷하다고 느끼게 되고, 지금은 내 몸으로 연기하는 것과 완전히 똑같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것을 알게 되면, 인형연기가 자신이 해온 몸으로 하는 연기와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본질적인 것을 알게 되면 그런 것들이 저절로 획득이 되는 것 같다.
 
재영: 나도 요섭과 같은 맥락의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인형연기가 특출나게 다르지 않다, 연기 잘하면 인형연기도 잘 한다는 이런 관점을 갖게 되었달까. 연기가 어떤 생명력을 가지고 전달되려면 굉장히 명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주 작은 몸짓 하나라도 어떤 목표와 이데아를 가지고 연기할 것인가 명확해야 하는데, 인형연기는 그것이 극적으로 드러나는 장르이다. 몸으로 하는 연기는 좀 뭉갤 수 있는 여지가 있는데, 인형연기는 그렇지가 않다.
 
수아: 그런데 다들, 인형연기가 재미있나요?
 
가윤: (고개를 절레절레) 나는 이번 대담에서는 주로 들으려고 했는데, 그건 내가 인형연기 경험도 별로 없고 말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2학년 공탱이> 마지막 공연 때, 산양을 연기하는 장면에서 ‘아! 내가 산양을 움직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그 때부터 뭔가, 며칠 쉬는 동안에도 계속 산양 장면이 떠오르며 가슴 속에 뭔가가 뛰고, 이상하고, 궁금하고, 그 동안은 인형에게 마음을 주려고 노력해도, 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는데, 이제 뭔가가 생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너로 연기하지 말고 연형이 연기하게 하라’는 말이 제일 억울했었는데, 왜냐하면 나는 열심히 인형을 연기하게 하고 있는데 자꾸 아니라고 하니까…. 어쨌든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역시 막공 때 내가 나로만 연기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인형을 연기하는 것이 편안한 사람들은 그런 분리감이 처음부터 생긴 것인가? (재영에게) 그런 게 쉬웠어요?
 
재영: 나는 학교에 다닐 때 ‘그냥 나로 연기를 하는 법’을 배웠다. 그것도 그 방면에 있어서 대한민국의 최고의 대가라고 불리는 분에게. 그래서 그런 분리가 쉽지 않았다. 뛰다를 시작하고, 인형연기를 계속한 지 5년쯤 지난 이후에야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와 나를 분리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 때부터 조금씩 조금씩 편해졌다.

▲ 2010년, 독일 인형극 학교 "에른스트 부쉬"의 야고친스키 교수와의 워크숍 © 뛰다

승준: 아직 인형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인형연기는 어떤 장인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 같다. 분명 인형을 잘 조종하기 위한 기술이 존재하지만, 그 조종이라는 것이 또 기술로만은 이루어지지 않고, 모든 순간 모든 몸짓 하나하나 마음이 담겨있어야 하는 것 같다.
 
병준: <2학년 공탱이> 연습 때, 인형을 통해서 내 몸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움직임을 해 본다든지 중력의 지배에서 벗어나 보기도 하면서, 상상하는 것 혹은 생각의 폭이 더 넓어졌다고 할까 그런 경험을 하게 된 것 같다.
 
재영: 인형은 굉장히 미묘한 고개짓 하나에도 분위기가 확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조종자가 아무런 준비 없이 인형을 움직이면 아무 것도 생기지 않는다. 인형은 그것이 명확하고 극적으로 드러난다. 아주 작은 움직임 하나로 시간과 공간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조종자가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들이 더 명확하고 꽉 차 있어야 한다. 그래서 쓸데없는 움직임들이 없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예뻐 보이니까 하는 식의 움직임은 무대 위에서 있어서는 안 된다.
 
수아: 돌이켜 보면, 예전에 연기할 때 어떤 루틴의 늪에 빠져있었던 것이랄까, 그런 것이 지금도 가장 아쉽다. 인형이 걷는 걸음걸이 하나하나를 정확한 느낌으로 충만하게 했을 때와, 그런 의미 없이 그저 세 걸음 걸은 뒤 무릎을 꿇었을 때의 허탈감은 내 몸으로 그렇게 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크다. 내 몸의 모든 것을 인형을 통해 집중시켰다가 다시 더 넓혀서 관객에게 보내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 2009년 <하륵이야기>    © 뛰다
 
요섭: 자기 몸보다 큰 인형들을 뒤집어 쓰고 조종해야 했던 <쏭노인 퐁당뎐> 때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모은: 처음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인형이 너무 무겁기 때문에 그것을 움직이는 것 자체로 힘들고, 그저 이 인형을 움직이게 해야지 하는 것뿐이어서 굉장히 냉정하게 어느 정도까지 팔을 뻗는다, 눈을 움직인다, 지느러미를 움직인다 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움직임들을 채우는 느낌과 내적인 충동 같은 것들이 좀 생겼다.
 
요섭: 혜성은 길이가 5미터나 큰 인형들도 조종했는데 어땠는지 궁금하다. 그런 인형들은 그저 물리적으로 움직이는 것 이상의 것을 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사실 그런 거대인형과의 거리감을 좁히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인데, 혜성은 짧게 연습하면서도 자신과 인형을 연결시키는 그런 매핑(mapping)의 능력이 보였다. (혜성은 뛰다의 연출 중 한 명으로, 2011년 하반기에 <쏭노인 퐁당뎐>에 배우로도 참여했다.)
 
혜성: 탈춤을 춰서 그런 게 아닐까? 처음에 딱 인형에 들어가서 이렇게 해 봐라 저렇게 해 봐라 하는 주문을 받으면서 움직일 때는, 그 인형이 어떻게 보일까를 상상하면서 굉장히 집중했다. 기본적인 움직임을 세팅하는 과정이 지나면서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라는 감을 얻게 되고, 그것이 생긴 이후에는 그렇다면 이렇게도 해볼까 하고 시도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재미도 없어지고, 충만감도 떨어지고, 내가 제대로 하고 있나? 싶으면서 집중도 떨어졌다. 시선이 내 안으로 들어오면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지연: 인형 조종을 얘기할 때, 거리를 좁힌다는 것보다는 ‘어떻게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쏭노인 퐁당뎐>을 하면서 내가 아닌 것을 다룰 때는, 어떤 기술 습득의 과정이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하반기로 가면서 나와 인형의 관계가 편해지게 되었고, 그러면서 발견하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오늘 얘기를 들으면서 문득 예전에 장구 선반을 배우던 때 생각이 났다. 처음엔 어떻게 매도 불편하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매는가와 상관없이 편해지게 되지 않는가.
 
요섭: 그런 훈련이 단순 기능적인 단계를 어떻게 넘어서느냐가 문제다. 그 형체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것을 파악하고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영: 동의한다. 그것은 그저 바라보고 있어서만은 생기지 않는다. 자꾸 만져보고 움직여보고, 함께 무언가를 해봐야 한다.

▲ 2009년 <앨리스 프로젝트>    © 뛰다

지연: 그런 의미에서 잘 관찰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나 아닌 다른 어떤 것들을 어떻게 나와 함께 호흡하도록 하고, 움직이게 하는가가 중요하다. 이것은 어떤 교본이 있어서 누가 가르쳐 주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또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어떤 세심한 관찰 같은 것이 필요한 것 같다.
 
혜성: 그러나, 그것을 가능케 하는 그 무엇은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데, 마치 다른 곳에 있는 것처럼 접근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다.
 
가윤: 하지만 맨 처음 다가갈 때는 아주 감각이 좋지 않고는 힘들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있는 게 아니라고 하고 스스로 찾아가고 싶지만, 그런 길을 모르고 갈피를 못 잡으니까, 아주 막막하고 황량한 시간을 보내고 난 이후에야 다시 어떤 출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재영: 연습해서 성취해야 하는 기술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그냥 ‘연습 좀 했다’는 정도로는 되지 않는다. 연습을 정!말! 많이 해야 한다.
 
모두: (끄덕끄덕, 빙긋, 한숨 푸욱, 절레절레…… 등등 각양각색의 반응)
 
※ 뛰다의 “시골마을 예술텃밭” 카페 cafe.naver.com/tu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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