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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대학로 갤러리에서 열리는 <정상가족관람불가展> 
 
‘정상 가족’에 대한 입장을 드로잉 작업으로 표현했던 나에게, <일다>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정상가족관람불가展>은 너무나도 반가운 전시 소식이었다. 급한 마음에 메모를 잘 못해서 오프닝 날 발표회가 있는 줄 알고 오프닝 시간에 딱 맞춰 5월 26일 저녁 7시 30분에 전시장에 도착했다. 발표회는 없었지만 다행히 전시장은 열려있었다.

▲  언니네트워크와 가족구성권연구모임이 주최한  <정상가족관람불가展> 

전시장에 들어서자 “바람 불어도 괜찮아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노랫소리가 정겹게 들려온다. 동요를 정성껏 부르는 어른의 해맑은 목소리처럼, 낯설고도 귀여운 가족사진(우리는 비정상가족_20*30inch_비범한 기획단)을 처음으로, 여러 가족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벽에 걸려있다.
 
결혼정보회사 광고판 앞을 지나가는 ‘비혼여성과 반려견 가족’의 사진부터, 사회의 기대와 달리 구김 없이 밝은 ‘비혼모와 그 딸’의 웃는 모습, ‘동성애자 파트너십’을 보여주는 편하거나 에로틱하거나 용감하고 멋진 사진들과, ‘장애여성의 삶’의 면면이 담긴 가족사진, ‘트렌스젠더 파트너십’을 보여주는 사진까지.
 
한국 사회에서 ‘정상 가족’으로 인정하는 편협한 테두리 밖에서 자유롭고 다양한 가족을 꾸려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말 반가웠다. 연출된 사진 안에 담겨 있지만, 그것이 일상을 보여주는 것이든 의견을 표명하는 것이든 그들이 카메라 앞에 어떤 마음으로 임했을지 상상하게 되었다. 설레고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비장한 마음일지 모른다. 아직 우리 사회의 시선은 굳고 굳어 긁어내기 어려운 선입견과 획일화의 각질로 덮여있으니까. 

▲  동성애자 파트너십_토요일, 오후     © <정상가족관람불가展> 
 
이 많은 다양한 이야기를 사진이라는 매체로만 보여주는 것은 뭔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 즈음, 재미있고 친절한 설치를 만날 수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들려 온 “괜찮아요”의 출처를 알게 하는 영상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옆에는 노래를 부른 <공동체가족 엉만진창 시스터즈>의 가상 앨범이 있어, 재미있는 노랫말을 읽을 수 있다. 이들이 공동생활에 필요했던 ‘평화조약지킴표’와, 친밀감을 유지하게 해주는 ‘칭찬 편지’, ‘반성문’ 등은 형식적인 ‘가족’의 관계에서 하지 않았던, 진정한 관계 맺기를 위해 노력한 흔적들을 보여준다.
 
<전주 비혼여성공동체 비비>가 10년의 세월 동안 함께 고민하고 공부하고 나눴던 꿈은 ‘따로 또 같이’가 가능하다는 것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함께 이루고 싶은 로망을 정리해 목록을 만들고, 실제로 그 로망들을 실현하며 살아가는 <주거공동체 꾸러기 395>는 집이라는 공간의 기능까지 확장하는 재미있는 시도이다.
 
선택의 여지없이 결정되는 ‘가족’이 아니라, 서로를 ‘선택’하고 ‘함께’ 꿈꾸고 더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 가족의 모습은, 제도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정상 가족’ 또는 ‘혈연 가족’에 대한 시원하고 유쾌한 대안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과 자료 설치들도 좋지만 욕심 많은 나는 이 가족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고 아쉬웠는데, 역시나! 스토리 북이 있다. 전시장에서 구입 가능한 이 스토리 북에는 더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있어 정말 기뻤다. 

▲   <정상가족관람불가展>  증에서  
 
1996년~2012년 가족 및 가족구성권리 관련 자료를 담아갈 수 있는 아카이브까지 한참을 즐겁게 놀다 보니, 대부분의 전시장에서 관람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저녁 9시까지 열려있는 친절한 갤러리에서 이렇게 흥미로운 작업들과 함께 놀 수 있다니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상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더 구체적일 수밖에 없는 <찬란한 유언장>에는 현실에서 어떤 점들이 불편한지, 사후에까지 어떤 점을 우려하게 되는지 알게 해준다. 하지만 심각하거나 침울하지 않다. 이 역시 유쾌하고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것이 전시의 주인공인 ‘비정상 가족’(‘미정상 가족’이 아닌!)들의 힘인 것 같다.
 
이 즐거운 전시는 언니네트워크와 가족구성권연구모임의 <비정상 가족들의 비범한 미래기획> 프로젝트 일환으로 열렸고, 가족구성권 발표회도 개최한다고 한다. (바로 이 발표회에 참석하려고 했던 것이다!)
 
전시를 보고 내려오는 엘리베이터에 이성애 커플이 탔다. 이들이 만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다는 것은 누구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대안적이고 재미있는 ‘가족’의 모습을 보고나니, 비슷한 차림으로 한껏 멋을 낸 이성애 커플들로 가득한 대학로의 풍경이 낯설다.
 
○ 전시명 : <정상가족관람불가展>
○ 기간: 2012년 5월 26일 (토) ~ 6월 1일 (금) 오후 1~9시 (주말/공휴일은 오전11시~오후9시)
○ 장소: 혜화역 2번 출구 대학로 갤러리 (갤러리 미오 www.gallerymio.com)
○ 주최: 언니네트워크 / 가족구성권연구모임
○ 지원: 아름다운재단
 
추가) 정상 가족이 아닌 대안적인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은 알겠는데, 왜 굳이 정상 가족 ‘관람불가’라는 말까지 썼을까? 아마도 재미없게 사는 정상 가족이 보면 이들이 사는 재미있는 모습에 배 아플까 봐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나치듯 본다면 결코 이 숨겨진 재미를 찾으며 감탄할 기회를 갖지 못할 수 있으니, 반드시 시간여유를 가지고 섬세하게 보아주기를 바란다.   (이충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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