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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레인보우 도, 국경을 넘다(6) 이 시대 ‘진짜 주술사’들의 임무는 무엇인가
[구한말 멕시코로 이주한 한인 4세이자, 미국 이주자인 레인보우 도(Rainbow Doe)가 말하는 ‘이주와 여성 그리고 국경’에 관한 이야기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분단된 한국사회에서 ‘국경’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시야를 넓혀줄 계기가 될 것입니다.]
멕시코 고유의 전통을 좀먹는 ‘가짜 주술사’
최근에 남부 멕시코와 과테말라로 여행을 다녀왔다. 그곳에서 나는 내가 한 말을 지키는 것, 그리고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되새기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몇몇 혼혈인 주술사들의 행동을 지켜본 데서 비롯되었다.
멕시코에서는 원주민과 유럽인의 피가 섞였다는 뜻으로 여러 혈통이 섞인 사람을 ‘메스티조’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멕시코 인구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들 중엔 원주민들에게서 전통적 방식의 치유법을 전수받은 주술사(medicine men and women)들이 많다. 주술사란 한국의 무당과 비슷한 존재다.
그런데 전통의식에 참가하거나 심지어는 의식을 주관하는 이들조차도, 자신들에게 전통 치유법을 사사한 원주민들에 대한 믿음이나 헌신이 거의 없거나 전무한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사실은 자신들의 스승과 그들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이러한 주술사들 때문에, 식민지 시대부터 시작된 문화적 약탈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바로 이들을 허울뿐인 전통의 수호자, 혹은 명성이나 이익에 관심이 더 많은 ‘가짜 주술사’(plastic medicine men and women)라고 부르는 이유다.
‘페요테 선인장’ 지키려는 윅사리카인들의 요청
내가 참석했던 한 의식에서도 이들의 정체성은 명확하게 드러났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온 원주민들과 멕시코 윅사리카인들(후이촐 족)의 단합을 다지면서, 외국 채굴업체에 의해 파괴될 위험에 놓여있는 페요테 선인장의 서식지이자 윅사리카의 성지인 ‘위리쿠타’를 지키기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하는 자리였다.
진정성 있는 주술사들을 찾아보기 힘들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공간은 멕시코, 미국, 캐나다 각지에서 온 원주민들이 남미와 북미의 차이를 넘어 다양한 노래와 기도를 교환하는 장이 되었다.
▲ 주요 의식을 마친 다음날 모습. 텐트 중앙에 두 부족의 제단이 있다. 왼편은 토난친 여신(Tonantzin) 혹은 과달루페의 성모(the Virgin of Guadalupe, 스페인에 의한 멕시코 정복 후, 멕시코시 북서 테페쟈크의 언덕에 출현했다는 성모로, 아스텍인들은 과달루페의 성모를 토난친 여신이라고 부름)를 섬기는 부족이 양초와 꽃들로 어머니 대자연을 나타낸 것이고, 오른편에는 북미에서 온 부족이 성스러운 불을 지핀 흔적이 보인다. ©레인보우 도
의식이 진행된 텐트 중앙에 각 부족의 제단이 만들어졌다. 단 윅사리카인들의 제단은 세워지지 않았다. 식민지 시대부터 멕시코의 전통적인 지식을 말살하려던 침략 국가에 저항해 온 역사가 있는지라, 윅사리카인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의식을 진행하는지, 이를 어떤 방식으로 전수하는지에 관해 가장 보안을 철저히 하는 원주민들 중 하나다. 외부인이 페요테 선인장에 대한 정보를 원할 경우, 최소 5년 동안은 윅사리카인을 스승으로 모셔야 한다는 규율이 있을 정도다. 이들은 이번 의식에 방문객 자격으로 참석했다.
의식을 마친 다음날, 위리쿠타 채굴 위협에 대한 해결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회의가 열렸다. 매년 윅사리카인들은 할리스코나 나야리트 같은 곳에서 위리쿠타까지 머나먼 길을 성지순례하며, 땅이 균형을 잃지 않고 비가 오기를 기원하며 봉헌을 드린다. 이번 회의에서도 윅사리카인들은 캐나다 원주민들에게 광산업체에 대한 소송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위리쿠타 성지에 살면서 페요테 선인장을 지켜내고 있는 메스티조 목장주들에게 보낼 옥수수와 콩도 요청했다.
두 번째 요청은 ‘위리쿠타 방어전선’이 내놓은 전략이었다. 이 단체는 위리쿠타 문제에 헌신적인 젊은 전문가들과 마르가리타스 주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마르가리타스는 캐나다 채굴업체 웨스트 티민스(West Timmins)의 계열사인 멕시코 채굴업체 미네라 골론드리나스(Minera Golondrinas)가 채굴권을 사들인 여러 마을 중 하나다.
‘옥수수 기증’은 위리쿠타 성지에 사는 잊혀져 가는 가난한 목장주들, 즉 그곳에서 자라는 페요테 선인장을 보호하는데 모든 것을 바친 사람들에게, 그 땅과 지역공동체를 영원히 파괴할 외국 채굴업체에 자신들의 삶을 팔아먹는 것 말고도 다른 대안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너무나 슬프게도 이 요청에 대해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술사들이나 이백 명에 가까운 의식 참가자들을 막론하고 그 누구도 단 한푼 기부하지 않았다. 모두의 관심사는 페요테 선인장에 접근하는 데 쏠려 있을 뿐, 윅사리카인들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온 어떤 이들은 윅사리카의 문제는 해당 지역의 문제이므로, 자신들과는 상관이 없다고까지 했다.
마르가리타스 주민에게 ‘옥수수 보내기’ 운동
▲ 멕시코 산 루이스 포토시 라스 마르가리카스에서 찍은 페요테(지쿠리) 선인장. 페요테 선인장은 미국, 캐나다, 멕시코 원주민들이 마을사람들을 치유하기 위해 영적 의식에 사용해온 식물로, 영적 깨달음을 주는 성스러운 매개체로 여겨진다. 한 그루 채취할 때마다 봉헌을 올려야 한다. 이는 이 약재에 대한 일생의 걸친 헌신의 시작일 뿐이다. ©레인보우 도
며칠 뒤 내 친구와 사업상 파트너, 미국 뉴멕시코에서 온 주술사와 나는 위리쿠타로 가서 직접 마르가리타스 주민들에게 옥수수 1톤을 전달하기로 했다. 마르가리타스 주민들은 채굴동의서에 서명하라는 업체 미네라 골론드리나스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마르가리타스에 전달된 옥수수는 목장주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보상책이었다. 올해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아 옥수수를 수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가 내리지 않은 데에는 그 근방에서 마구잡이로 진행된 채굴 작업의 탓이 컸다. 비를 유도하는 천연 광물들을 다 파냈던 것이다. 토마토 생산업체가 공기 중에 비구름이 생성되는 것을 막는 화학물질을 뿌린 데에도 원인이 있다.
윅사리카인들의 요청은 수백만 달러가 드는 일이 아니었다. 옥수수 1톤(총 20 가마니)을 사는데 고작 490달러(약 56만원)밖에 들지 않았다. 그 정도면 친구나 가족 다섯이서 하루에 모을 수 있는 돈이었다. 시간만 좀더 있었더라면 우리는 적어도 4톤은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50 킬로그램짜리 옥수수 가마니 하나면 한 가족이 열흘 가량을 살 수 있다고 한다.
마을에 도착한 우리는 집집마다 들려 옥수수를 전달했다. 그리고 옥수수 기증에는 어떠한 정치적인 의무나 강요도 없으며, 미국에서 온 우리 일행이 마르가리타스의 소식을 알게 되고 나서 현재 주민들 뿐 아니라 후대의 아이들의 건강까지 팔아먹지 않아도 되게끔, 대안적인 해결책으로써 미래에 직업이 창출되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 마을의 자급자족 프로젝트를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우리는 미국에 사는 부족들의 삶과 생계가 어떻게 파괴되었는지를 근거로 들어가며, 채굴업체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자연 훼손에 대해 전략적으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고 주민들에게 설명했다. 우라늄 채굴에서 비롯된 방사능 유출 때문에 나바호족(미국 뉴멕시코, 아리조나, 유타 주에 사는 원주민으로 북미 인디언 부족 중 인구가 가장 많음)이 입은 피해와, 광산 지역에 사는 내 친구가 겪고 있는 호흡기 질환도 예로 들었다.
그 다음날 채굴업체가 마르가리타스 주민들을 만나러 마을로 왔다. 우리는 그때까지 옥수수 전달을 마치지 못한 상태였지만, 다행히도 그 회의가 있기 전에 지역공동체의 몇몇 주요 인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때 우리는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든 주민이 채굴업체가 들어서는 것에 동의하는 서명을 거절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 덕분에 마르가리타스 주민들이 다른 해결방안도 있음을 믿게 되었다는 점에서 우리 일행 모두는 모두 기뻐했다. 주변 마을들은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고 채굴업체들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마르가리타스 마을은 안전한 상태다.
‘우리 안의 채굴업자’와 맞서기
‘위리쿠타 방어전선’의 구성원은 어릴 적부터 페요테 선인장과 함께 자라난 이들이다. 정치적, 법적 측면에서 채굴업체들이나 토마토 생산자들을 막는 방안을 고안해온 환경운동가, 생물학자, 변호사들로 꾸려진 단체다. 이들은 광산 대신 위리쿠타 사막과 생태학적으로 조화를 이룰만한 잠재적인 프로젝트에도 노력을 기울여왔다.
지금까지 나온 방안으로는 가축 목장을 사슴 농장으로 교체하는 것, 무리한 토마토 생산으로 땅을 고갈시키는 대신 사막 식물원을 조성하는 것 등이 있다. 이러한 방안들이 현실화된다면, 식물원에서는 여러 종류의 천연 약재가 생산될 것이다. 타지인들이 페요테 선인장을 약탈해 돈을 받고 파는 행위를 근절하고, 그 지역의 페요테 선인장을 소비하는 교육적인 방안도 마련될 것이다.
마르가리타스에 옥수수를 조달하는 것은 선동적인 일이 아니다. 멕시코의 배꼽인 위리쿠타에서 고대서부터 이어져온 페요테 선인장을 아끼는 윅사리카인들, 그리고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내 놓은 비전에 손만 얹는 작은 일일 뿐이다. 우리 일행이 신념을 가지고 진행한 이번 일도 결국은 윅사리카인들을 위한 것도, 마르가리타스 마을을 위한 것도 아닌, 우리 안의 치유법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우리 자신들을 위한 것이었다.
▲ 윅사리카 주술사가 지난 11월 11일 메스티조들과 나의 가족을 위해 의식을 진행한 뒤, 산 페드로, 산 루이스 포토시에서 채굴이 진행 중인 금 광산을 바라보고 있다. 다국적기업들이 들어와 2년 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채굴을 한 결과, 산의 대부분이 헐벗게 되었다. ©레인보우 도
우리는 인간으로서 우리의 내면과 잠재력을 우리 주변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다. 물질적인 생활방식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인간으로서의 본질을 기억하는 것도 우리의 책임이다. 우리의 삶은 어머니 대자연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그 어떠한 사치품도 우리를 대자연과 떨어뜨려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헌신이란 다른 사람들, 땅, 동물과 우리가 어떤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 맺어가는지를 돌아보면서, 우리 내면의 파괴적인 힘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윅사리카인들은 모든 인류가 하나의 유기적인 생명체이므로 채굴업자들도, 즉 우리의 적도 결국은 우리의 일부라고 믿는다.
우리가 갖고 있는 특권들을 직면하여 우리 안의 채굴업자와 맞서고, 사랑이 넘치고 창조적이며 책임 있는 방식으로 우리 주변과 상호작용 할 때에야 비로소 치유가 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진짜 주술사들의 임무란, 사람들이 내면의 치유적인 목소리를 기억해낼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리고 자신들의 지식을 이용해 인류에 헌신하는 것이다.
*윅사리카 관련 링크:
http://wixarika.mediapark.net/en/index.html
http://theesperanzaproject.org/tag/wixarika
[작성: 레인보우 도] [번역: 권이은정] 미디어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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