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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성 충전

캘리포니아, 와인의 새로운 세상이 열리다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1.11.27 14:18

<일다> 여라의 와이너리(winery) 2. 길을 떠나다 
 
삶이 녹아있는 특별한 와인(wine) 이야기, "여라의 와이너리(winery)" 연재가 시작됩니다. 와인전문가가 직접 편견 없이 와인을 즐기고 이해하는 법에 대해 말합니다. 
 
▶ 필자 소개- 여라. 마흔이 되면서 '즐거운 백수건달'을 장래 희망으로 삼았다. 그 길로 가기 위해 지금은 와인 교육, 한옥 홈스테이 운영, 번역 일을 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산과 들로 놀러다니다 와이너리(winery: 와인 양조장) 방문이 이어졌고, 이내 와인의 매력에 빠졌다. 미국 와인교육가협회 공인 와인전문가이며, 현재 영국 Wine & Spirit Education Trust의 디플로마 과정 중이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
 
오래전 하던 일 때문에 HTML(에이치티엠엘: 하이퍼링크를 사용하는 컴퓨터 언어)을 배우게 되었다. 기술 배우는 김에 내 홈페이지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후 꽤 여러 날 고민한 끝에 메뉴를 정했다. ‘여기-떠남-만남-즐김-다시 여기에’라는 다섯 카테고리. 내 자신이 이런 패턴을 반복하며 살아간다는 자아해석 같은 것의 결과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홈페이지 제작에 게으름을 피우는 동안 웹2.0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나 같은 단순 소비자는 굳이 웹 언어를 익힐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부지런해지지는 않았다. 내 다섯 카테고리가 세상의 빛을 본 것은 잠깐 하다 만 나의 블로그에서 뿐이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여행을 주제로, 이 다섯 카테고리를 나선형으로 진행하며 살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글들도 그 순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엮일 것이다. 그래서 지난 번 제목이 ‘고향’, 이번엔 ‘길을 떠나다’이다.
 
여행은 항상 돌아옴을 전제로 한다. 집에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물론 여행이 삶의 방식인 이들도 있지만 말이다. 길을 떠날 땐 목적지 혹은 그 곳에 이르는 과정에 설레기도 하고, 적당량의 기분 좋은 두려움이 있다. 그리고 돌아올 땐 집에 가서 편히 쉴 기대감에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게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이 흔히 갖는 여행 흥분 구도다.
 
여행을 싫어하는 이들도 있다. 대개 이유는 네 가지다. 돈, 귀찮음, 피곤 그리고 불확실성으로 인한 혼란과 공포. 한 마디로 집 떠나면 일상의 당연함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김치 없이 버티기가 필요하다. 난 김치는 삶에 꼭 필요한 존재라고 여기지만, 한두 달은 없어도 아무렇지 않다. 그 정도 못 먹는다고 조바심이 나지 않을 뿐더러 나중에 먹게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갖는 여유랄까. 집에 돌아올 것을 알기 때문에 재밌게 떠날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여행하기를 좋아하는 이들이라고 이런 조건들이 그들을 피해가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떠나는 건, 그런 불확실성을 다 걸고도 길에서 만나는 것들이 충분한 보상을 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내 주변을 돌아 보면, 일상이 어차피 불확실한 인간들은 이러나저러나 불확실하니 유연하게 잘 떠나는 것 같다. 합리적으로 불확실성을 최소화한 다음에 길에 나서거나 혹은 불확실성을 그대로 안고 무모하게 길을 떠나거나.

▲ 미국-캐나다 종주여행 중에 들른 요세미티 국립공원 동쪽에 있는 모노 레이크(Mono Lake).  물이 유입만 되고 나가는 길은 없이 막혀있는, 76만년 된 염수호.  그래서 이곳 생태계가 특이하고 경치도 독특하다.  땅속에서 솟아나는 샘물에 섞인 염기성 물질이 요상한 결정들을 만들어 이런 탑을 이룬다.      © 여라
 
떠나기 위해 버리기

여행에 있어서 나는 ‘땡기면’ 떠나는 축이다. 단지, 소심한 A형인지라 무리는 하지 않으려고 길 떠날 때 누울 자리 보고 발 뻗는 스타일일 뿐이다. 집 떠나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그래서 포기해야 하는 일들이 생긴다. 많이 원하면 마음만 배고파서 괴로워진다.
 
여행과 관련하여 새로운 버릇을 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게 있는데, 바로 ‘가볍게 떠나기’이다. 중학생 때부터 난 늘 가방이 무거운 아이였다. 공부 못하는 애들이 원래 가방이 무겁다는데, 솔직히 말한다. 난 공부를 못하는 축은 아니었다. 다만 필요할 때 필요한 것이 없을 때를 대비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핑계였다. 내 가방 속에는 일주일을 들고 다녀도 단 한 번도 필요치 않은 것들이 허다했다.
 
석사논문을 쓰기 전에 여행 한 번 크게 한다고, 차로 캐나다와 미국 종주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트렁크 한 편에 논문 관련 책을 한두 권도 아니고 자그마치 열 몇 권을 넣고 길을 떠났다. 이런 미련곰탱이! 결국 3주 후 집에 돌아올 때까지 들춰보았던 유일한 책은 불어로 된 <어린왕자> 한 권뿐이었다. 그것도 두 학기 동안 배운 불어를 까먹을까 봐 본 것이다. 그 책들만 가져가지 않았어도 훨씬 재미있게 놀았을 거다.
 
가방을 가볍게 싸가지고 길 떠나야 할 백만 가지 이유를 뼛속깊이 충분히 겪은 뒤, 어느 해 새해 아침 결심했다. 가방을 가볍고 간단하게 싸기로. 그 뒤 많이 나아지긴 했는데 아직 실력을 더 갈고 닦아야 한다.
 
떠나는 일에 관한 이야기라면 공항을 빼놓을 수 없겠다. 난 어려서부터 공항을 좋아했다. 앞글에서 언급했듯이 태어난 곳이 고향이 되어주기 전에 낯선 곳으로 옮겨진 경험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나마 익숙한 과거 분위기를 내줄 수 있는 공항이 어떤 아련한 향수 같은 것을 달래주었던 것 같다.
 
공항에 갈 일이 생기면 부모님은 나에게 같이 가겠냐고 묻곤 하셨다. 공항에 따라가면 어떤 의식처럼 그 당시 시중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주전부리를 사주셨다. 그리고 나는 공항에 앉아 구경했다. 떠나는 사람, 돌아오는 사람, 그들의 표정, 이런 만남, 저런 헤어짐, 그들의 가방, 행동, 낯선 체취와 향수냄새, 그리고 비행기.

혼자서 공항에 갈 수 있게 되었을 때에도 가끔씩 가곤 했다. 일상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극대화 된 드라마가 늘 거기에 있었다. 여행을 가도, 아무래도 사람 생김새와 풍물도 다르고 언어도, 음식도 다른 곳이 더 쉽게 진한 인상을 남긴다.
 
지금은 일부러 가지는 않는다. 그 대신, 가야 할 일이 생기기도 하고, 비행기 타고 여행도 곧잘 다닌다. 평소의 나는 꽤 의식 높은 생태주의자인 척할 수 있지만, 이 비행기 여행과 때 되면 근질거려 차 몰고 멀리 떠나는 습성 때문에 결국 어마어마한 탄소발자국을 만들어내는 죄질이 나쁜 지구파괴 범죄자를 면할 길 없다.
 
슈퍼를 가득 채운 와인에 놀라다 
 

▲ 훌쩍 길 떠난 결과물에는 사진이 꼭 포함된다.  가방에 사진기를 늘 넣고 다니기도 하고, 사진을 찍어 기록에 남기는 일이 즐겁다. (아, 그 반대인가?)  소노마에 있는 어떤 와이너리다.  딱 요맘 때였는데, 이미 우기가 시작되어 풀이 푸릇푸릇한 땅과 대조되는 포도밭 단풍이 아름다웠다.     © 여라

대학원 졸업하고 한 달 반쯤 뒤에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잘 모르는 곳이라는 두려움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갈 지가 더 두려웠다. 오빠가 있었던 동부 보스턴에서 몇 달 지내면서 여행도 다니고 알바도 했다. 개강을 앞두고 8월말 버클리로 갔다.
 
처음으로 버클리의 대형 슈퍼마켓에 가서 두 가지에 크게 놀랐다. 동부에 비해 청과물이 싱싱하고 싸고 다양하다는 점과, 슈퍼마켓에서 주류를 판다는 점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서부보다 보수적인 동부에선 주류 소비를 장려하지 않는다. 지정된 주류소 매점이 따로 있어서 주류 구매가 덜 쉽게, 말하자면 까다롭게 되어있다. 그런데 캘리포니아로 오니 영 딴 분위기였다. 그것도 오마이 갓, 와인이 복도 한 면을 채우고 있었다! 그때 난 깨달았다. 내가 어떤 세상을 만났는지 말이다.
 
미국은 현재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다음으로 세계 4위 와인 생산국이다.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와인 10병 중 9병을 만든다. 그러니 와인만으로 슈퍼마켓 한쪽 면을 채울 수 있는 거다. 유럽에서는 로마 제국의 세력이 커지면서 와인을 위한 포도재배지가 넓혀져 나갔던 데에 반해서, 그 밖의 ‘신세계’라 불리는 지역에는 대부분 가톨릭 선교사의 움직임에 따라 퍼졌다. 미사를 위한 와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도 그렇다. 18세기 말, 당시 스페인 식민지였던 샌디에고(현 캘리포니아의 최남단)에 스페인이 가톨릭 포교를 위해 미션(교회)을 세웠다. 거기서부터 북쪽으로 약 1천km에 걸쳐 길쭉한 캘리포니아에 약 50km(짐을 진 당나귀가 하루 이동할 수 있는 거리)마다 미션이 총 21개 세워졌다. 이 길을 왕의 길(El Camino Real)이라고 부른다. 가장 북쪽에 있는 미션이 지금은 캘리포니아 고급와인으로 유명한 소노마(Sonoma)에 있다. 버클리에서 와이너리 소풍갈 때에 내가 가장 많이 간 지역이 소노마였다.

여라 / 미디어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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