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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성 충전

와인은 기억을 부른다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1. 11. 17. 11:30

<일다> 여라의 와이너리(winery) 1. 고향 

삶이 녹아있는 특별한 와인 이야기, "여라의 와이너리(winery)" 연재가 시작됩니다. 와인전문가가 직접 편견없이 와인을 즐기고 이해하는 법에 대해 말합니다.
 
여라 - 마흔이 되면서 '즐거운 백수건달'을 장래희망으로 삼았다. 그 길로 가기 위해 지금은 와인 교육, 한옥 홈스테이 운영, 번역 일을 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산과 들로 놀러 다니다 와이너리(winery: 와인 양조장) 방문이 이어졌고, 이내 와인의 매력에 빠졌다. 미국 와인교육가협회 공인 와인전문가이며, 현재 영국 Wine & Spirit Education Trust의 디플로마 과정 중이다.

와인은 기억을 부른다

고향. 좀 색바랜 단어가 되어버리긴 했어도 누구에게든 어떤 식으로든 고향은 있는 것 같다. 내겐 고향이 둘이다. 수유리와 버클리. (물론, 버클리의 리는 ‘마을 리’는 아니다!) 수유리는 나의 어린시절을 따뜻하게 품어준 동네다. 하얀 사람들만 사는 미국 어느 깡촌에서 태어나 만 다섯 살에 한국으로, 수유리로 이사갔다. 이사를 앞두고 내가 부모님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거기 가면 나도 보통사람이야?”
 
거 참, 미취학 아동이 ‘보통’이라는 심오한 개념은 대체 어떻게 알고 있었대? 여튼, 난 ‘보통사람’이 되어 중2때까지 그 동네에 살았다.
 
그런데 뒤돌아 보면 수유리에서 살던 시절, 그 보통사람이 된다는 게 뭔지 머리 속 한 구석이 늘 가려웠다. 나는 규격에 맞을까, 맞지 않을까? 규격에 맞지 않아 눈길을 끈다는 것은 뭘까? 규격 안에 나를 얌전하게 끼워넣는 일은 편한 삶일까, 불편한 삶일까? 등등. 수유리는 나에게 그런 테두리 실험을 끊임없이 하기 시작한 곳으로 의미가 있다.
 
처음엔 미국과 한국의 차이로 그어진 경계가 있었지만, 워낙 어렸기 때문에 쉽게 곧 지워졌다. 그 때엔 몰랐지만 세상엔 너무도 많은 경계가 얽히고 설켜있었고, 어렸지만 그때에도 나는 그 테두리들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싶었다. 그리고 막연하지만 나의 바람대로 어느새 나는 경계 넘나들기를 체화하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니 말이다.


겨울날 늦은 오후, 무성한 유칼립투스 나무 덕에 바람 냄새가 좋은 버클리 언덕에서 샌프란시스코와 금문교 쪽을 내다 본다. 버클리대학 상징인 새더타워는 매 시간 정시와 30분에 종이 울리고, 아침 점심 저녁으로 편종 연주도 있다. 대학 주변 꽤 멀리까지 새더타워 종소리는 버클리 사람들의 일상이다. 혹시 버클리에 놀러간다면 편종연주 시간에 맞추어 이 시계탑에 한 번 올라가볼 것을 강추! (단돈 2불)   

수유리와 버클리, 두 고향의 냄새
 
고향 이야기를 꺼낸 건 냄새 이야기를 하려고 해서다. 고향에는 냄새가 있다. 고향에서만 나는 냄새가 아니라 고향을 기억하게 하는 냄새 말이다. 나에게 수유리는 조금 스산한 초저녁 모닥불 냄새다.
 
그때만 해도 집에서 아궁이에 연탄을 땠는데, 연탄불이 꺼지거나 혹은 연탄에 불 붙이기엔 아직 좀 이를 때, 혹은 한여름 장마에 계속된 비로 습할 때 엄마는 나무 가지를 모아다 아궁이에 밀어넣어 태우곤 했다. 난 수유리 숲 속 우리집에서 가끔 맡을 수 있었던 그 나무태우는 냄새를 아주 좋았했다. 지금도 어스름한 초저녁 모닥불 냄새를 맡으면 나도 모르게 시공이동을 해 열 살 아이가 되어 북한산 기슭에 혼자 있다. 냄새는 지리적 시간적 거리가 그은 경계를 순식간에 허문다.
 
나의 두 번째 고향 버클리는 20대 중반부터 마흔이 넘도록 십 수 년 사는 동안 나를 어른으로 빚어준 곳이다. (그렇다고 어른으로서 완성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처음에 한국에서 샌프란시스코 행 비행기표를 끊을 때, 그곳에 가면 금문교가 있다는 사실 조차 알지 못했다. 그만큼 그 곳과의 인연은 의도적이지도 필연적이지도 않았다. 지원했던 여러 학교 중 장학금을 준다는 유일한 학교가 거기 있었을 뿐이었다. 예전에 우리 가족이 살았던 지역과도 전혀 상관없고, 아는 사람도 한 명 없었다. 

막상 가 보니 한국에서 ‘버클리 대학교’로 널리 알려진 명성과는 달리, 버클리는 샌프란시스코 외곽에 있는 인구 10만의 소도시였다. 조용하기가 깡촌이지만, 최첨단 문화공간 샌프란시스코 시내는 지하철로 20분 거리다. 미국의 가장 왼편답게 진보적인 실험이 사회 각 방면에서 항상 진행된다. 한국의 기준으로는 희한한 사람이 많아 웬만하면 눈길도 끌지 못한다.

 
다인종의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표현을 매일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입고 자는 것보다 먹는 것을 좋아해서 척 보기엔 참으로 후줄근한데 맛있는 것은 정말 많다. 자연환경은 샌프란시스코 만에 접해있으면서도 해발 300-400m정도 되는 꽤 깊은 숲이 있다. 버클리에 단점이 있다면 끊임없는 지진의 위협 뿐이다.
 
내가 기억하는 버클리 냄새는 밤공기다. 따지고 보면 이 역시 고향의 냄새라고 하기엔 그다지 특별난 냄새는 아니다. 차가운 바다 바람에 실린 나무 냄새라고나 할까? 그 냄새가 좋아 일부러 밤길 산책을 나가기도 하고, 한밤중에 창문을 열어 머리 내밀고 바깥 냄새를 맡곤 했다. 버클리도 오래된 주택이 많은 시골동네라 좀 차가워진 날엔 벽난로에 나무 태우는 냄새가 나곤 했다. 그러면 냄새 만으론 이게 버클리인지 수유리인지 분간을 못하고 순간 유체이탈이 되면서 마음이 차분해지고 좋았다.
 
캘리포니아에서 와인을 만나다
 
만일 샌프란시스코에 가지 않았다면 와인을 이렇게 좋아하게 되었을까? 그렇지 않았을거다. 지역 탓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운전하기도 좋아하고 무작정 차 몰고나가 모르는 곳 다니기도 좋아하는 까닭에 포도주 양조장(와이너리)에 다니는 취미가 생겼다. 한 두 시간 차타고 가면 나파, 소노마 등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지역에 닿을 수 있다. 그 외에도 캘리포니아에서 와인지역은 무궁무진하다.
 
남한의 4배 정도 크기인 캘리포니아는 거의 전 지역이 와인생산지다. 와이너리는 대개 드넓은 포도밭 중간중간에 박혀 있다. 그 덕에 사계절 따라 다른 포도나무의 경치를 감상하며 훌륭한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여기저기 와이너리에 들러 테이스팅(tasting: 시음)도 하고, 이따금은 싸 가지고 간 치즈, 과일, 빵을 내어놓고 와이너리 마당에서 지인들과 와인 한 잔에 긴 오후를 보낸다. 더없이 행복한 순간이다.  


▲ 버클리 뒷산 격인 틸덴공원에 있는 인스퍼레이션 포인트. 정말 ‘영감’이 만나질까, 뇌에 누수현상이 올 때면(=자주) 찾아갔다. 캘리포니아의 별칭은 골든 스테이트인데, 그 이유는 금광 때문이기도 하지만 들과 산에 넘실거리는 황금물결 때문이기도 하다. 봄까지 이렇게 푸르던 곳도 긴 여름 건기에는 듬성듬성 나무만 남겨놓고 온통 노랗게 마른다. © 여라  

내가 걸어온 길에서 방향을 살짝 틀어 와인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하니, 주변에서 나더러 “네가 그럴 줄 알았다” 혹은 “참 어울리는 일을 찾았구나” 했다. 그런가 하면 잘 모르는 이들의 인사는 대개 “입맛이 섬세한가봐요”로 시작한다. 나도 내가 그런 줄 알았다. 나는 가리는 음식도 없고 비위도 좋다. 체한다든지 온몸이 열꽃으로 뒤집어지기는커녕 배탈도 거의 나지 않는다. 하늘이 주신 축복이다. 그러니 모르는 음식을 만나면 궁금하고 두려움도 없어 먹어봐야 이내 직성이 풀린다. 나의 미각은 그렇게 터득한 거다.
 
이런 내가 나의 미각에 크게 좌절한 것은 소믈리에 교육을 받을 때였다. 짧은 시간 안에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 맡고, 입으로 맛을 보아 와인을 평가하는 훈련을 수없이 되풀이했다. 뭐가 뭔지 당혹스러웠다. 경험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와인은 미각 보다는 후각이다. 그런데 나는 ‘개코’가 아니었던 거다. 그나마 왼쪽 콧구멍이 오른쪽 콧구멍보다 나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 운동장에서 코에 공을 맞아 코피 난 적이 있었는데, 30년 뒤 갑자기 그 날 내 쪽으로 공을 던진 그 아이가 미워지기도 했다. (뒤끝 작렬!)
 
그러던 어느 날 반짝이는 깨달음이 있었다. 계기와 이유는 모르겠는데, 기억 속에서 냄새를 끄집어 내기 시작했다. 와인의 냄새를 맡을 때마다 깊고 멀리 여행을 떠난다.
 
이게 뭐더라? 어떤 과일? 꽃? 풀? 어디서 맡았던 냄새더라? 언제였지? 누구랑 있었더라? 뭘 먹었더라?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었지? 그때 기분이 어땠더라? 이렇게 생각이 돌아다니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와인은 기억을 부르는 묘한 마력이 있다. 살아온 지역과 먹고 자란 음식에 따라, 하다못해 점심에 무얼 먹었느냐에 따라 오늘 만나는 이 와인은 나에게 또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보여주는데, 난 늘 처음 만난 양 쌩까고 일차원으로만 대했던 거다. 그제서야 정해진 틀 안에 아무런 앞뒤 이야기 없이 와인과 나를 끼워 맞추려고 우왕좌왕하던 비굴함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다.
 
그와 함께 당혹스러움도 사라졌다. 수 천 년 와인 역사 속 전세계 수많은 와인들 중 오늘 이 와인과 내가 만나는 자리를 찾아가는 놀이가 재미있어졌다. 잘 못찾고 헤매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쨌든 와인을 마시지 않는가?
 
사람들이 종종 나에게 묻는다, 왜 와인이냐고. 그러면 난 짧게 “제가 와인을 너무 많이 마셨던거죠.” 라고 말한다. 이제부터 나는 그 질문에 긴 대답을 하려고 한다. (여라)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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