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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를 읽고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에는 담임선생님이 나눠주는 종이에 매년 장래희망을 적어내곤 했다. 다른 친구들이 대통령, 과학자 등 꿈을 크게(?) 가질 때, 농부라고 써서 낸 적이 있었다.
 
그렇게 쓴 이유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단군 할아버지 때부터 농사를 지었고, 내 할아버지, 아버지도 지었으니 그걸 잇겠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본 적도 없는 단군을 갖다 붙인 것도 우습고, 할머니와 어머니를 빼놓고 농사를 거론한 것도 부끄럽다.

어찌 됐든 농부라는 꿈은 계속 키워갈 수가 없었다. 자식이 공부하는 것을 바랐던 부모님은 요만큼의 농사일도 시키지 않았고, 선생님이든 친구들이든 우스운 일 정도로 치부하였다. 스스로도 튼튼하지 않은 체력이라 쉽게 포기하였다.
 
20여 년 전의 이 흐릿했던 기억이 다시 또렷해진 것은,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 때문이다.
 
틀에 박히지 않은 시골생활 이야기 ‘사랑스러워’

▲ 권경희  글 임동순 그림 <두 여자 두 냥이의 귀촌일기> (미디어일다, 2011) 표지     
 
이들의 귀촌은 직장을 은퇴하고 여생을 보내기 위한 노후형도 아니고, 특용작물 재배 등으로 수익을 창출하려는 영농형도 아니다. 남들에게는 목표가 없는 것처럼 보여서 ‘뭐 먹고 살 거냐’, ‘무슨 사연이 있는 여자들이냐’라는 의혹과 의심이 따라붙는 귀촌이지만, 반대로 내 가슴은 두근거린다. 책을 읽다보면 나도 당장 내려가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말이다.

이들의 귀촌에는 돈이나 농사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빈집을 찾기 위한 발품, 잡초를 일용할 양식으로 여기는 미식감, 낯선 장소와 낯선 사람들과 익숙해지기를 견디는 인내 정도이다.
 
물론 이들의 정착이 매끄럽게 진행되었던 건 아니다. 두 사람이 귀촌을 모의한 지 한 달 만에 실행에 옮긴 만큼, 오히려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다반사로 나온다. 폐천문대라는 그럴싸한 집을 구했지만, 딸린 텃밭에는 쓰레기들이 넘쳐나고 이웃들 중 일부는 이들의 귀촌을 경계한다.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아마도 집들이였을 것이다. 약속시간을 한참 넘어 도착한 남정네들이 술에 취한 채로 천문대 거주에 대한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것을 보는 순간, 귀촌에 대한 긍정적 마음가짐은 훠이훠이 날아간다. 농촌도 도시와 다를 바 없다는 실망도 든다. 오히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도 계속 볼 수밖에 없는 게 시골 아닌가! 그러나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이런 모습들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게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는 제목 그대로 시골마을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고, 그만큼 다양한 모습들이 나온다. 스쳐지나가는 여행기라면, ‘촌’의 일면만 과장되기 쉬울 것이다. ‘촌’에 관한 다양한 편견들이 있지 않는가?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까지 안다”, “시골 사람들이 돈을 더 따진다”, “외지 사람들에게 적대적이다” 따위들 말이다.
 
아마 이것들이 말 그대로 사실이었다면,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는 농촌의 현실을 고발하는 씁쓸한 비극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만화는 계속 연재중이며, 작가들은 두 고양이를 모시고 여전히 산자락 한 구석에 기거하고 있다.
 
우리 집에 양파가 있는 걸 이장님이 어떻게 알았을까? 밭에서 김매는데 멀찌감치 떨어져서 매는 걸 또 어찌 알았을까? 두 주인공은 이런 물음들을 던지게 되는데 시골생활에 답이 있다. 건물들이 시야를 가리지 않는 곳에 살며 일하니, 누구 집에 손님이 왔는지 누가 어딜 가는지 보일 수밖에 없더라는 깨달음!
 
나는 이런 해석이 사랑스럽다. 불쑥불쑥 집에 찾아오는 것에 대한 불편도 드러내지만, 그 자체가 이상한 것이라고 섣부르게 결론내지 않는다. 이러한 삶의 이야기는 농촌, 농사, 시골생활에 대한 밝거나 어두운 전형적인 이야기들에 갇히게 하지 않고 독자의 시선을 넓혀준다.
 
다양한 인물들의 좌충우돌 속 ‘성장’을 보다

▲ "서울에서 살았다면 이런 식탁을 차릴 수 있었을까?"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 중 한 장면. 
 
일상에서 부딪치는 인물들도 다양하다. 애초에 결혼하여 아이 낳기, 직장 다니며 돈을 축척하여 노후를 준비하기라는 삶에서 벗어나 '미혼' 여성 둘이, 그것도 농촌에서 와서, 돈 없이 산다는 것은 - 특히 이들이 나보다 돈이 없다는 것에 깜짝 놀랐고, 그래서 더 용기를 얻었다 - 탐탁지 않은 시선을 적잖이 겪어야 함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발생하는 주변 인물들과의 그런 부딪침 또한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고양이를 영물이라고 내다버리라 하는 할머니지만 정이 많고, 이사 떡을 의심스레 받는 아주머니지만 두 사람의 친분을 걱정한다. 농사 초보인 두 사람에게 농사를 배우게 되며 친해진 새 친구는, 그들이 가난해서 문제라고 질타한다.
 
사실 그녀들은 가난하지 않다. 생활이 어렵지는 않다는 말이다. 끼니 직전에 밭에서 뜯어온 갖가지 나물들을 무쳐 먹고, 집안을 그림들로 장식한다. 산책을 시작하면 밤하늘의 별도 눈이 부시도록 볼 수 있고, 굶어죽지도 못할 만큼 많은 먹거리들이 이웃들에게서 들어온다. 오히려 '가진 게 너무 많다'. 물론 돈이 없어서 집을 구할 때는 어려웠지만, 그 돈을 벌기 위해 직장생활을 했다면 그것이 더욱 어려운 생활이었을 것이다. 그걸 가난하다고 하는 시선과 걱정이 오히려 '가난'한 삶을 가난하게 만든다.
 
한편 소심하고 민폐 끼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경희'와 요리에 능하고 통장 잔고도 있는 '동순'이 이렇게 좌충우돌하고 있을 때,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이들을 굽어보는 두 고양이 '카라멜'과 '백작'이 있다.
 
시골 토박이 백작님께서는 초면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진지를 잡숫더니 방 한구석에 거하기 시작하셨고, 나름 ‘차도냥’ 카라멜님께서는 어느새 수고의 선물로 쥐를 몸소 잡아 하사하는 은혜도 베푸신다. 이 분들은 만화 속에서 미천한 인간들의 언어로 가르침을 내려주시는데, 그 말씀 또한 항상 적절하여 재미를 더해준다. 이분들의 천하 태평한 자태 덕분에, 애묘인들을 비롯한 많은 동물 집사들이 대거 귀촌하여 빈 집을 구하기가 힘들지 않을까라는 걱정마저 든다.
 
나는 이 만화가 훌륭한 성장만화라고 생각한다. 낯선 곳에서 집구하며 독특한 사람들 만나기, 식용 풀을 착각하여 쓴맛보기, 백작의 구애와 가출로 인한 소동에 대처하기, 낯선 사람들과 도움을 주고(?)받으며 사귀기, 산골에 인터넷 달기 등 일사천리 아무 문제없이 일이 진행되는 경우가 드물다. 그리고 이러한 좌충우돌을 '왜 사냐 건 웃지요', '분노의 불꽃이 활활', '안절부절 민망민망' 태도로 다양하게 반응하고 대처하는 네 인물들의 모습은, 곤란을 극복하거나 혹은 소화하는 성장만화의 모습과 유사하다.
 
이 만화가 나에게 더욱 의미 있는 것은 그동안 찾지 못했던 귀촌생활의 롤모델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삶을 이제라도 알아서 행복하고, 아직 이 만화가 1권이라는 사실이 더욱 행복하다.   (길수 / 일다 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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