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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 말하다

귀촌, 되살아나는 '호모 파브르'의 기억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1. 11. 20. 07:30

<일다> www.ildaro.com  자야, 귀촌을 이야기하다
 
작가 박완서 선생이 말년에 고백하길, 호미를 들고 정원 일 하는 게 그렇게 재미있고 기쁠 수가 없다 했다. 선생이 그 말을 할 때 카메라는 작은 호미를 단단히 쥐고 있는 그이의 손을 비추었다. 호미와 하나가 되어 있는 손이 왠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손보다 정직하고 믿음직스러워 보였던 건 단지 나의 편견 때문일까.
 
아마 그럴 것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육체노동에 가까울수록, 그리고 그 노동이 단순할수록 삶에 붙은 군더더기들, 이를테면 거짓과 허세와 망상으로 가득한 자의식 같은 것들이 떨어져 나갈 거라는 치우친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었으므로.
 
도배, 내 허접한 육체노동의 시작

▲ 산에서 구한 땔감을 나를 때 쓰는 손수레. 이것에 의지해 겨울을 난 지 벌써 3년째다.     © 자야 
 
도시에 있을 때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시골에 오면서 관념뿐이던 생각에 경험의 살이 조금씩 붙어가고 있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랄까. 그래봤자 네가 하는 노동이라는 게 집안의 허드렛일과, 텃밭을 돌보는 것과, 동네 야산을 오르내리며 땔감을 구해 나르는 K 옆에서 불쏘시개 용 나뭇가지와 마른 솔잎 따위를 줍는 정도 아니냐고 통박하는 사람들에겐 변명할 거리가 없다. 그 말이 전적으로 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그 정도의 노동만으로도 내가 그동안 얼마나 자연과 괴리되어 살아왔는지, 이른바 배운 여자라는 정체성에 갇혀 실제 삶에서는 얼마나 무능했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바로 그 점이다. 하여 나는, 별 볼 일 없는 나의 허접스런 육체노동을 부끄러워하기보다 오히려 뿌듯하게 여기며 '자랑질' 하기로 결심한 지 오래다.
 
그 자랑의 첫째 항목에는 다름 아닌 도배가 올라 있다. 이 집에 짐을 푼 첫날, K와 나는 본채에 있는 방 두 개 중 큰 방 하나와 대문 옆에 딸린 작은 사랑방을 도배하기로 했다. 둘 다 경험은 없지만 그렇다고 몇 평 되지도 않는데 사람을 쓰기도 뭣하고, 그냥 살자니 그것도 찜찜해서 선택한 일이었다.
 
그런데 읍에 나가 벽지를 고르고 도배에 필요한 풀과 붓과 빗자루 등을 사면서 시시덕거린 것은 잠깐, 막상 일이 시작되자 성질 급한 나는 느긋한 K의 태도를, 꼼꼼한 K는 덜렁대는 나의 방식을 못마땅해 했다. 게다가 서툰 솜씨로 일을 하자니 몸은 금세 지치는 반면 진행은 더뎠다. 결국 우리는 꼬박 한 나절을 수없이 시비를 걸고 말다툼을 하면서 요란하게 작업한 후에야, 겨우 방 하나의 도배를 끝낼 수 있었다.
 
그 날 저녁, 흠 없이 깨끗한 벽지를 두른 채 아직 마르지 않아 시큼한 풀 냄새를 풍기는 그 방을 들여다보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을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자랑스러움과 기쁨에 도취되었던가. 아니면 할 일 많은 낡은 시골집에서, 나와 마찬가지로 몸 쓰는 일을 거의 해본 적이 없는 남자와 함께 살아갈 날들에 대해 염려했던가. 아마 그랬을 것이다. 기뻐하는 한편 걱정도 했으리라.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는 그날의 경험을 통해 앞으로 어떻게 일을 하면 되는지 감을 잡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거창하게 표현하면 노동의 원칙에 대한 나 나름의 관점을 세웠다고 할까. 그 첫째는 당면한 일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이에게 '물어보기'다. 그다음은 되든 안 되든 일단은 '직접 해보기', 가능하면 둘이 '함께하기',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은 무조건 '상대를 믿고 따라가기'. 그리고 마지막은 우리가 초보임을 인정하고 '결과에 만족하기'다.
 
도배를 하면서 나와 K가 갈등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넷째와 다섯째 원칙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당시에 나는 도배 방법에 대해 알아보고 온 K의 지식을 불신했다. 더군다나 둘 다 초보라는 사실을 잊고 우리는 서로에게 전문가 수준의 민첩하고도 정확한 손놀림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함께 일군 결과에 흡족해하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화해의 손을 내밀 수 있었던 건, 그나마 나머지 원칙들을 잘 지킨 덕분이 아닐까.          
   
몸을 쓰면 보이는 색다른 세계
               
그 후로도 우리의 크고 작은 노동은 계속되었다. 집과 관련해 떠오르는 것만 해도 페인트칠에, 구들 보수에, 오래돼 틈이 벌어진 지붕과 처마 이음새를 손본 일까지, 참으로 많고도 많다. 올 여름, 집 안 부엌 어딘가로 생쥐가 드나들고 있음을 눈치 채고부터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까지, 약 3주에 걸쳐 우리가 벌인 작업은 또 어떠했던가. 마음고생은 쏙 빼고 육체적인 면만 따져도 노동의 강도가 엄청 세지 않았던가.

쥐 한 마리가 발견될 때마다 부엌과 다용도실과 화장실을 죄 뒤집어엎고 쓸고 닦길 몇 차례 반복한 것으로도 모자라, 나중에는 장판까지 다 들어내고 벽과 바닥에 난 작은 틈새 하나까지 자로 재가며(0.7cm만 돼도 쥐가 드나들 수 있다는 정보 때문) 쥐구멍을 찾기 위해 애를 썼으니 말이다.
 
도배가 그랬듯, 이 모든 게 우리 둘에게는 처음 해보는 생소한 일이었다. 처음이기로 치면 텃밭 농사나 땔감을 구해 아궁이에 불 지피는 일 역시 다르지 않았다. 두 사람 다 어릴 때부터 소도시에서 자라난 탓에 그런 일과는 통 인연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작물 하나 심을 때마다 동네 아주머니를 찾아가 물어보는 것은 기본이고, 다른 집은 어디서 어떻게 나무를 구해다 때는지 자세히 관찰해서 알아낼밖에.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 처음 해보는 일이 생길 때마다 그에 필요한 도구도 하나둘씩 점점 늘더라는 것이다. 페인트칠을 하면 페인트와 붓과 시너가 생기고, 집 외벽이나 마당 어딘가 갈라지고 깨진 부분을 보수하면 시멘트 포대와 흙손이 생기고, 쥐구멍을 막겠다며 집안의 작은 틈마저 다 메우는 일대소동을 피우고 나니 실리콘과 그것을 담아 쓰는 주사기가 생기는 식이랄까. 하다못해 고추를 좀 많이 심은 해엔 창고 선반 위에 지주대가 쌓이고, 들깨를 심은 해엔 잘 익은 들깨를 골라내는 체가 한 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 우리 집 노동에 꼭 필요한 도구들. 몸을 움직일 때 이들은 나와 함께 호흡하는, 나의 일부가 된다.     ©자야

이렇듯 다양하게 쓰이는 도구가 많아질수록 왠지 모르게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은 우리 두 사람의 공통점이지만, 유독 그에 쾌감을 느끼는 쪽은 K인 것 같다. 땔감을 책임지는 그는 이사한 첫해 가을에 작은 손수레를 들였고, 톱도 길이가 긴 것과 짧은 것, 날이 성근 것과 촘촘한 것 등 종류별로 구입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수레바퀴에 구멍이 나서 바람이 빠지자, 얼씨구나 하고 철물점에 달려가 바퀴에 바람 넣는 기구도 골라왔다. 뿐만 아니라 낫을 쓰면 낫 가는 기구를, 어린 잡초를 제거할 땐 톱니가 박힌 삼각호미를 탐내는 그는, 언젠가는 그것들 전부를 손에 넣고야 만다.

 
그에 비하면 나는 있는 도구들을 잘 다루는 것에 만족하는 편이다. 처음 이 집을 보러 왔을 때 나는 창고가 많은 것에 한 번 놀랐고, 그 창고마다 다양한 물건들이 뒹굴고 있는 것에 또 한 번 놀랐었다. 그때만 해도 '이게 다 뭣에 쓰는 물건인고?' 했었는데, 살면서 직접 일을 해보니 아무리 낡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물건도 다 용도가 있고 쓰임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창고 한 구석에 세워진 가느다랗고 끝이 까만 쇠막대기가 부지깽이로 쓰인다는 것을 알고 모르고의 차이는, 아궁이에 불을 피워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아니겠는가. 대문 밖 감나무 아래에 떨어지는 잎은 싸리 가지로 엮은 비로 쓰는 것이 효과적이지만, 불을 때고 난 후 지저분해진 아궁이 주변은 결이 보드라운 종류의 비로 쓰는 게 낫다는 것 역시 그걸 해본 사람만이 알 테고 말이다.
 
그렇다면 창고 가장 후미진 데 놓인, 아궁이에서 생기는 재를 쌓아 놓는 통 위에 엎어져 있는 바가지는 무엇에 쓰는 도구일까? 긴 막대자루가 달린 바가지 모양의 그것은 흡사 옛날에 똥오줌 푸는 데 썼던 것과 비슷해 보여 처음엔 만지기가 찝찝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겨우내 얼었던 땅이 말랑하게 풀리기 시작하는 초봄, 밭에 거름용으로 재를 흩뿌려 주면서 나는 알았다. 그 일을 하는 데는 그 바가지만큼 좋은 게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한때 도구적 인간이었다
 
내가 하는 이런 종류의 육체노동은 조금도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다.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체력과 약간의 인내심, 경우에 따라서는 도구를 사용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요령만 있으면 된다. 그러고 보면 들이는 수고에 비해 얻는 것은 얼마나 많은지. 내 집이 안락하게 유지되고, 건강한 밥상이 보장되고, 한겨울 추위로부터 내 몸을 보호할 방책이 마련되는 것은 기본이고, 그 일들을 돈으로 해결하는 대신 내 몸을 놀려 직접 해냈다는 충만함과 기쁨이 덤으로 주어지니까 말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지치고 피곤할 때 호미를 들면 오히려 기운이 나는 것은. 짜증이 나고 신경이 팽팽해질 때 톱을 들고 장작거리를 다듬다 보면 마음이 오히려 평온해지는 것은. 그 순간 나는 오롯이 내 몸과 하나가 되고, 내 몸의 작용이 미치는 대상과 깊게 접촉한다. 또한 내 몸과 대상 사이를 이어주는 도구와 전적으로 관계하며 함께 호흡하는 것을 느낀다.
 
내가 본 글 중에서 이와 같은 느낌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은 『여기에 사는 즐거움』의 저자 야마오 산세이 님이 쓴 <나바 산에서>라는 시이다. 이 시를 읽다 보면 우리 모두는 한때 순수하게 노동하는 도구적 인간(Homo-fabre)이었음을, 지금도 하루에 한두 시간쯤은 그렇게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먼 옛날 언젠가 나 자신이 낫질에 몰두하는 농부였던 듯, 혹은 그이의 손에 들린 잘 드는 낫이었던 듯, 나는 내 귀를 울리는 어떤 소리를 듣는다. 사박사박, 사박사박. 당장 내 삶에 끌어들이고 싶은, 참 기분 좋은 소리를.
                   
나바 산에서
 
나바 산 어린 복숭아나무 밭에서
당신은 오후 동안 계속 풀을 베고 있었다
당신 키보다 큰 억새, 양치류, 띠 등의 수풀을
사박사박 베고 있었다
낫은 잘 들어 매우 기분이 좋았다
당신은 사흘 전에 아킬레스건을 접질려서 다리를 절고 있었고
띠 덤불에서는 가시에 무수하게 찔려
손등 여러 곳에 피가 났지만
그런 일은 조금도 당신의 행복에 흠을 내지 않았다
그곳에는 조용한 겨울산이 있고
어린 복숭아나무가 있었다
당신 손에는 손만큼 민첩한 낫이 들려 있고
당신은 도구를 가진 인간이었다
당신은 도구를 가진 인간인 것이 좋아서
그때 비로소 당신은 당신 자신의 호흡을 했다
나바 산 비탈 밭에서
오후 내내 당신은 홀로 풀을 베고 있었다
그곳에는 인적이 전혀 없고
다만 산들이 숨을 쉬고 있었다
산들은 소리 하나 없이 조용하고
때로 바람이 불고 새가 노래하고 갈 뿐이었다 

미디어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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