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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 말하다

바다, 저 너머에 두고 온 것이 너무 많아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1. 11. 13. 10:00

<일다> 윤하의 딸을 만나러 가는 길 (27) 
 
[연재 칼럼 소개] 이혼을 하면서 두고 온 딸은 그녀에게는 늘 어떤 이유였다. 떠나야 할 이유, 돌아와야 할 이유, 살아야 할 이유……. 그녀는 늘 말한다. 딸에게 하지 못한 말이 너무 많다고. 열흘에 한 번씩 연재되는 <딸을 만나러 가는 길>은 딸에게 뿐만 아니라 이 땅의 여성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윤하의 고백이 될 것이다.

다시 찾은 지중해
 

릴(Lille)의 ‘리베흐떼 거리’에서 본 부녀는 이혼할 당시 딸을 키우지 않기로 한 내 결정에 대해 어떤 변명도 할 수 없다는 걸 일깨워 주었다.
 
나는 아이를 위해, 아니 우리 둘을 위해 이런 결심을 했다고 늘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을 보면서 그것은 우리 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걸 알았다. 더욱이 난 결코 아이를 포기한 적이 없다고 늘 생각했지만, 딸의 손을 놓은 바로 그 순간 그녀를 포기한 것이었다.
 
결국, 내가 아이를 버렸다. 그날 그 아침에 본 부녀는 이런 사실을 가슴 깊이 깨닫게 해 주었다. 그래서 리베흐떼 거리의 플라타너스들과 기숙사 앞에 놓여 있던 돌은 마음 한편에 남아 오랫동안 발목을 잡아끌었다.

외면하고 싶은 기억들이 머리채를 당겨,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뒤돌아볼 때마다 예리한 손톱에 얼굴이 쓸리듯 가슴이 아프다. 그런데도 자꾸 뒤돌아보게 되는지 모르겠다. 더욱이 아픈 기억의 장소들을 왜 가보고 싶은지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런 장소 중 하나가 릴의 ‘리베흐떼 거리’라면, 또 하나는 프랑스 남부 해안에서 본 ‘지중해’다. 나는 그 바다도 늘 다시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길에 지중해도 가고 싶었다.
 
10여 년 전, 유학을 결심한 건 뭔가 다른 삶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게다가 학문을 탐구하기 위해 떠난 건 더더욱 아니다. 딸을 보낸 뒤 몇 년간, 아이가 너무 보고 싶어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는 상태에 자주 빠지곤 했다.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는 이 나라에서 아이를 안 보고는 결코 살 수 없었다. 더욱이 이런 식으로는 긴 세월을 빠져나갈 자신이 없었다. 내겐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 상황이 자꾸 나의 등을 떠밀었다.
 
그렇게 유학을 핑계 삼아 이 나라를 떠났다. 기대 이상으로 떠남은 여러 문제들을 단번에 해결해 주었다. 머릿속에서 정신이 빠져나가는 듯한 현상은 바로 중단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전남편과의 관계도 좀 더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유학기간을 관통해, 나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심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좋았다. 내가 ‘이혼한 아시아 여성’이라는 걸 진정으로 가슴 깊이 새길 수 있었던 건 떠나왔기에 가능했다.
 
유학을 처음 시작한 곳은 프랑스 남부, 버스로 한 20분이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중해가 펼쳐지는 몽쁠리에(Montpellier)라는 도시에서였다. 도착해서는 새로운 문화와 생활에 들떠 바로 바다에 가 볼 생각을 못했고, 딸에 대한 생각은 더 하지 못했다. 바다를 찾은 건 프랑스에 도착한지 한 달이 훨씬 지나서였다.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여름의 평범한 해안이었건만, 바다를 대하고 섰을 때서야 다리에 힘이 풀리며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너무, 너무 멀리 와 있었다.
 
바다 앞에서야 내가 얼마나 멀리 와 있는지 실감이 났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가는 눈으로 수평선을 바라보며 두고 온 것들을 생각했다. 기꺼이 손을 놓은 것들, 그렇게 돌아서 다시 뒤돌아보지 않았던 것들! 잊기 위해 떠나왔지만,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 딸은 떠나온 이유였지만, 돌아가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는 걸! 이 모든 걸 다시 기억하게 해준 건 바로 바다였다.
 

그 후, 유학생활 동안 나는 자주 고향을 잊었다. 고향을 자주 잊었기 때문에 유쾌하게 살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 고향을 떠올린다는 건 '그리움'이 아니라 '슬픔'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지중해에서의 그때 기억 때문에 어느 바닷가에서든 바다를 대할 때마다 고향이 떠올랐다. 슬픔은 그래서 물처럼 흐르지 않고 파도처럼 성큼성큼 달려온다는 걸 알게 해준 것도 바다다.

9년 만에 다시 찾은 프랑스에서 유명한 관광지를 구경하러 다니는 대신, 나는 여러 기억들이 서려있는 장소들을 더듬는 데 온통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상처를 헤집어 가며 기억을 더듬는 이 길에서 아이를 만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를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던 그 장소에서, 그때의 기억을 잊지 않는 것, 그 속에서 분명 아이를 만나러 가는 길을 생각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도 남불에 사는 한 한국친구가 마침 휴가를 맞았다며 초대를 했다. 그래서 그렇게 보고 싶었던 지중해를 다시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난 옛날처럼 바다를 바라보며 한참 앉아 있었다. 여전히 바다는 마음을 서늘하게 한다.
 
더 멀리 가서는, 더 늦어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바다는 나의 등을 밀고 있었다. (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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