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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 말하다

머물거나 떠나거나, 나는 여행 중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1. 11. 2. 07:30

<일다> 자야, 귀촌을 이야기하다: 여덟째 이야기 
 
마을 진입로에 한들거리던 코스모스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흰 날개를 펄럭이며 논 위를 날던, 다리가 길고 가는 새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붉고 희게, 또 더러는 분홍으로 빛나던 꽃들의 자리는 추수하고 널어놓은 누런 나락들 차지가 된 지 오래고, 한동안 텅 비어 있던 논은 이제 시꺼먼 거름을 뒤집어쓰고는 양파 밭으로 변신하려 하는 중이다. 이 모든 것이, 겨울이 이미 우리 동네 입구까지 와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이 내 등을 떠미는가
 
내가 초조해지기 시작하는 건 꼭 이 무렵이다. 슬슬 월동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인 건 둘째고, 그보다는 추위에 약하다는 핑계를 내세워 따뜻한 어디론가 달아날 궁리를 하는 마음을 지켜봐야 하는 탓이다. 이럴 땐 서점에 가도 꼭 여행 서적이 즐비한 코너에 발길이 머물고, 컴퓨터를 켜기만 하면 오래된 여행 사진들을 저장해 놓은 폴더로 손이 간다.
 
어린 시절에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 때문에 괴로웠는데. 도대체 언제부터 이 나라 바깥 세상에 대한 동경이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일까. 발목을 잡는 직장과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니 그냥 훌쩍 떠나면 되지 않느냐고? 그런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은 것이, 내 영혼은 그다지 자유롭고 가볍지 못하며 몸은 그보다 몇 배는 더 중력에 매여 있다. 현실적으로는 돈이 없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제 떠남이 내게 그리 절박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충동적으로 티케팅을 하고 공항으로 달려가는 대신 고질적으로 찾아오는 이 증세를 찬찬이 들여다보며 음미하는 쪽을 선택하려 한다.
 
태생적으로 유목민의 유전자를 지닌 사람이라면, 여행을 꼭 절박함에서 해야 하나,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에게는 머묾보다 떠남이 더 자연스러울 테니까. 그러나 뼛속까지 정주형 인간에 속하는 나는 거주 공간이 바뀌는 데 원초적인 불안을 느끼며, 심지어 일정 기간 노마드로 지낼 것을 자처한 여행 기간에조차 이런 불안감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아무리 유명한 관광지여도 마음을 끄는 거처가 없으면 며칠 머물기도 힘든 반면, 허름한 시골 마을이어도 정갈한 방과 친절한 주인과 매일 오갈 수 있는 사원이나 공원, 혹은 매력적인 카페 하나만 있으면 몇 달이고 눌러앉을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그 때문이리라.

 
결국 나에게 여행은 떠남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또 다른 머묾을 위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런 점에서, 서른여섯에 시작해 서른여덟에 막을 내린 인도 여행은 내 생애(현재까지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때는 일단 떠나야만 어디에라도 머물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만큼, 어떤 절절함이 내 안에서 끓고 있었으니까. 알 수는 없지만 뭔가 중요한 의미로 가득한 부호들이 가슴을 비집고 꾸역꾸역 새어나오는 것 같았다고 할까.

그러니까 내게 인도 여행은 무정형의 반죽 덩어리와도 같은 그 의미들을 직접 손발로 더듬어 가면서, 나 스스로 앉고 서고 눕고 걸을 수 있는 길을 닦아나가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인도에서 돌아온 후로도 몇 번인가 열흘 안팎의 짧은 일정으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하지만 내 본능과 직감이 떠남을 부추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내 등을 떠미는 건 '정체되지 않으려면 바깥바람 좀 쐬고 와야 하는 거 아냐?' 하는, 젠 체하고 싶어 하는 허황된 마음이거나, '이곳이 아니라면 어디든!' 하고 보들레르처럼 외쳐대는 광기어린 마음뿐이었다. 작년 겨울에 미얀마를 다녀오면서 이 점을 보다 분명하게 꿰뚫어볼 수 있었던 것에, 나는 나 자신을 조금은 대견하게 생각한다.
 
떠난 지 하루 만에 향수병이라니
 
그때도 역시 이맘때였다. 10월이 끝나갈 즈음. 어디엔가 한 번 다녀와야 한다는 바람에 휩싸여 한 달을 고민한 나는, 결국 그해 말에 후다닥 여장을 갖추어 공항으로 달려갔다. 하필이면 왜 미얀마인가, 라는 질문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않았다. 반드시 미얀마여야 할 이유란 애당초 없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당시의 나는 미얀마가 아닌 그저 '어딘가'를 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미얀마에 도착한 첫날부터 나는 떠나온 곳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향수병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눈을 감으면 텃밭에 깔아놓은 볏짚 아래 숨죽이고 있을 마늘과 양파 모종이 어른거리고, 눈을 뜨면 작은 내 방 창문 밑 아궁이에서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장작이 보이고.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일명 황금불탑이 있는 사원에 들어가 그 앞에 납작 엎드린 그 나라 가난한 이들의 등짝을 보노라면, 괜히 우리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굽은 뒷모습이 떠오르고.
 
이건 대체 뭐지 하고 당황한 것도 잠깐,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오히려 그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 일주일 정도는 수련을 해볼까 했던 계획도 접고, 그저 남들 다 가는 데나 대충 기웃거리는 재미없는 여행을 하면서 밤이면 두고 온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안주 삼아 술을 홀짝이며 수첩 속 달력의 날짜들을 하나씩 지워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성수기의 미얀마는, 특히 내가 돌아다닌 북동쪽의 지방들은 너무나 추웠기에, 한낮을 빼고는 주로 침대 위에서 이불을 겹겹이 두른 채 긴긴 시간을 죽이고만 있는 나 자신을 합리화시키기에도 좋았다.
 
그러다 여행이 거의 끝나갈 즈음. 나는 불현듯 예정에 없던 바간(Bagan)으로 갔다. 전날 밤, 침대에 누워 미얀마 여행서를 뒤적이다가 나도 모르게 그 지명에 마음이 가 닿은 것이다. 뜨거운 나라 미얀마에서도 유독 더운 곳이라면, 일단은 추위에 지친 내 몸과 영혼을 달래기에 부족함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수천 개의 불탑으로 이루어진 동네라니, 위빠사나의 본고장에 와서 수련은 안 하고 맥주와 와인만 마셔대느라 무거워진 내 업을 그곳에서라면 조금 덜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파고다 숲의 노을 속에서 

▲ 파고다 숲에 번지는 노을을 보면서 알았다. 떠남에 대한 나의 갈망은 실체가 없으며, 머물든 떠나든 삶의 여행은 일상과 더불어 계속된다는 것을.     © 자야


출국하기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 부랴부랴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 바간은, 확실히 내 체온을 한 단계 올려줄 만큼 더운 곳이었다. 또한 자전거를 타고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불탑(파고다) 사이를 헤매는 일은, 설마 그것만으로 업의 무게가 가벼워지기야 하겠냐마는, 적어도 내가 피할 수 없는 생로병사의 운명으로부터 잠시잠깐 비켜서서 시공간을 초월한 무한고요 속으로 침잠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내가 바간과 진정 '접속'했다고 판단할 만한 일은 그곳에 도착한 날 저녁, 어느 불탑에 올라 발아래 펼쳐진 파고다 숲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일어났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자전거를 빌려 타고 간 그 불탑은 여행 책자에 석양을 감상하기에 좋은 곳으로 소개되어 있어서 그런지, 해질녘이 되려면 아직 멀었는데도 나처럼 탑을 기어오르는 여행자들이 적지 않았다.
 
지평선에 닿기 전에 마지막 한 점 남은 열기마저 다 토해내려는 태양 아래서,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침을 삼키며 헐떡거린 것일까. 삼십분이 지나고 오십분이 지나고, 그에 더해 또 삼십여 분이 흘렀을 때. 마침내 나는 수백 수천 개의 불탑들이 저무는 해의 품 안으로 뛰어들어 녹아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부처님이 '깨어난' 순간을 목격한 세상이 이와 같지 않았을까 싶게 찬란한 그 풍광이라니! 나도 모르게 손이 가슴 앞에 모아지고 두 눈은 감겼다. 다시 눈을 떴을 때 해는 이미 눈에 띄게 기울고, 밝게 빛나던 주홍빛 노을은 암적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불탑들이 솟아 있는 들판에 어둠이 차오르면서 사람들은 하나둘 탑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남아 있던 빛의 잔상마저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희미해지는 속에서, 나는 방금 나타났다 사라진 노을이 사실은 실체가 없으며 다만 눈에 보이는 어떤 현상에 붙은 이름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생각했다. 바깥 세상에 대한 나의 갈망도, 그걸 충족시키지 않으면 나 자신이 화상을 입을 것처럼 뜨겁지만 따지고 보면 실체가 없는 게 아니겠냐고. 일시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현상에 불과한 것은 아니겠냐고.
 
그제야 내가 왜 미얀마에 와서 얼토당토않게 향수병을 앓는지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 집에 그냥 머물고 싶은 거였다. 그곳을 떠나 어디론가 가야만 하는 절실한 물음 없이, 다만 실체 없는 갈망에 충동적으로 휘말린 거였다. 그리고 하나의 갈망이 채워지자 곧 심드렁해진 마음이 또 다른 갈망으로 그리움을 끌어들인 거였다.
 
마음이 어떻게 장난을 치는지 보고 나니 자연스럽게 향수병은 날아가고, 나는 비로소 환자가 아닌 여행자가 되어 남은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또한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이 그보다 더욱 설레었음은 물론이다. 몇 년 전 내 등을 떠밀어 인도로 가게 했던 본능과 직감이, 이번엔 습관적으로 바깥세상에 나와 기웃거리는 나를 토닥여 일상으로 돌려보내 주는 것 같았다고 할까.

지금은 일상을 여행할 시간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일상에 머무는 것, 아니 일상을 여행하는 것이 내게 더 절실한 때임을 확실히 알겠다. 그럼에도, 앞서 고백했듯이 나는 종종 여기 아닌 어딘가를 향한 실체 없는 갈망에 휘둘리곤 한다. 더욱이 요즘처럼 그 정도가 심할 때면 예전처럼 그냥 확 질러버릴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지를 땐 지르더라도(이 또한 경험해 볼만 하므로) 일단은 내 속 가장 깊은 데 놓인 '밑마음'을 먼저 살펴보고 주변도 한번 돌아보자고, 나는 나 자신에게 속삭인다. 그러면 대개는 밑마음 위에서 부유하는 얕은 마음들이 진정되고, 당장 내 손길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 눈에 뜨이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더 추워지기 전에 수확을 해야 하는 무와 당근과 양배추 같은 것들. 속을 알차게 하기 위해 벌어진 잎을 오므려 동여매 줘야 하는 김장배추와 계속해서 벌레를 잡아 줘야 하는 브로콜리 같은 것들. 아, 그러고 보니 뒷집 아주머니네 밭을 빌려 심은 서리태도 거두어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며칠 전에 터져서 급하게 보수한 수도관도 좀 더 신경을 써서 살펴야 하고.
 
이 모든 게 의무와 구속으로 느껴진다면, 그때는 다시 한 번 절실한 물음을 품고 떠나는 여행을 하게 되려나? 하지만 그 또한 내게는 머물기 위한 여행이 되지 않을까? 떠나든 머물든, 어쨌거나 그 자리에서 또 다른 일상이 시작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모든 여행은 결국 일상으로 귀결되고, 일상을 잘 살아내는 것이 어쩌면 인생이란 큰 여행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자야)

댓글
  • 프로필사진 세미예 여행이 주는 상념과 객수가 한꺼번에 밀려왔군요.
    잘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2011.11.02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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