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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기획> 탈핵과 녹색당- 미래 세대를 위한 정치는 누가 할 것인가?
 
수천 년 흘러온 생명의 강을 삽시간에 온통 파헤친 ‘4대강 사업’은 이른바 토건국가로서 대한민국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다. 올해 초 세계를 각성시킨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에도, 우리 정부는 2014년까지 핵발전소를 14기 더 지을 예정이며, 나아가 원자력 수출국으로서 위상을 높이겠다는 입장이다.
 
시민사회에서는 ‘더 이상 개발의 정치, 토건의 정치는 안 된다’는 절실함 속에 그 대안으로서 ‘녹색정치’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여기에 나아가 탈핵 시나리오를 제시하며, 에너지와 환경, 농업과 공동체 이슈를 제기해온 사람들과 풀뿌리 지역정치를 가꿔온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한국 ‘녹색당’을 창당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시민들이 보여준 기존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과, 새로운 정치에 대한 바람과도 맞물려 있다. “미래 세대를 위한 정치”, “새로운 정치문화를 실험하는 정치”를 표방한 녹색당의 행보가, 기존 정당들의 구태의연한 ‘잿빛 정치’를 대신할 대안으로 세력화될 수 있을지 주목할만하다.
 
박진희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소장에게서 듣다 (상) 
 
<일다>에서는 “탈핵과 녹색당”이라는 주제로 21세기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치, ‘녹색정치’를 내다보는 기획 기사를 연재한다.

▲ 박진희 에너지기후정치연구소 소장 © 일다

그 첫 번째로 박진희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소장(동국대 교수)을 만나, “2021 원자력 중단”을 선언한 독일의 탈핵 정책 사례와, 한국에서 녹색정치의 가능성에 대해 들어보았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화석연료와 원자력으로부터 벗어나, 재생가능에너지로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이루는데 필요한 방안을 연구하고 있으며 2009년부터 활동해왔다.
 
박진희 소장은 “녹색정치란 비단 환경 문제에만 귀속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산업과 개발 논리에 희생당한 노동자, 여성, 그리고 환경을 살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경쟁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일상이 여유롭고 행복하며, 사회안전망을 통해 혼자가 아닌 공동이 복지를 책임지는 사회로 변화를 추동하는 것이 녹색정치의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박진희 에너지기후정치연구소 소장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핵’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방사능의 공포 속에서도, 현실적으로 에너지 소비가 너무 크기 때문에 한국 사회가 원자력을 포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원자력 없는 미래가 가능할까?
  
“우리에게 에너지의 개념은 무형으로, 무엇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값 싼, 특히 전기의 경우는 마구 낭비해도 좋은 식으로 인식이 되어 버린 탓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원자력은 전기 생산밖에 안 된다. 에너지 원의 형태로 보면 열 에너지, 그리고 건물이나 수송(연료) 부문에서 보면 원전이 해주는 역할은 현재 거의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전기 값이 싸다 보니까 난방을 전기로 대체하면서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열 에너지의 경우, 에너지 정책은 거의 없었다고 봐야 한다. 원전을 계속 짓고, 관성에 의해 전력만 늘어가는 에너지 정책을 펴온 것이다. 이제는 이런 상황에 대해 개념이 잡혀야 한다. 냉난방을 전기가 아닌 다른 열 에너지 원으로 바꾸면, 원자력이 전체 에너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에너지 원에 대해 분리해서 생각하게 되면, 지금처럼 (원자력 없는 세상에 대해) 크게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에너지원 별로, 각각 재생에너지로 어떻게 대체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핵 없는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탈핵’을 선언한 독일 사회가 앞장서 제시해주고 있다. 독일이 어떻게 탈핵을 준비해왔는지 알면, 우리도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1960년대 독일도 기민당의 정책으로 원전 중심으로 35기까지 계획되었다. 독일은 1968년, 1969년 시기에 원전 문제가 ‘핵무기’, ‘반전’ 이슈들과 중첩이 되면서 평화운동 진영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그리고 1970년대 들어 원전 부지가 선정되면, 주민들이 ‘원전 부지 점거 운동’을 시작했다. 1975년부터는 反원전 이슈가 전국적으로 번졌다.
 
반대에서 시작한 운동이, 환경운동단체들이 만들어지며 대안을 내놓았다. 1977년에는 시민들이 현재 계획된 원전의 50%를 줄이고, 에너지 절약과 에너지 효율, 그리고 재생에너지로 대안을 만들어갈 것을 구체적으로 요구를 했다. 이 시기에 생태연구소가 생겨 정책적 뒷받침을 했고, 기술적으로도 엔지니어들의 실험공동체가 만들어진다. 1978년에 재생에너지의 가장 중요한 제도인 ‘발전차액지원제도’(정부가 신재생에너지원으로 생산된 전기를 시장가격보다 좀더 비싸게 사주는 것) 모델을 만든 태양광협회도 있었다.
 
한편으로, 반핵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지역 기초의회에 진출하면서, 1979년 지금 녹색당의 원형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를 토대로 원전 반대, 재생에너지 정책들이 이슈화되고 1983년 연방의회에 첫 진출하게 된다. 그리고 1998년 사민당과 녹색당의 ‘적-녹 연정’이 생기면서 독일 사회는 정책 목표로 탈핵이 가시화되었다. 독일은 30년~35년 역사 속에서 ‘2021년 원자력 중단’이라는 사회적 합의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독일은 30년 넘게 반핵운동을 펼치고 에너지 대안을 고민하면서 ‘탈핵’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냈는데, 한국의 경우는 이제 시작인 것 같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외국에서 시행착오를 거친 사례를 거울 삼아, 더 빨리 목표를 향해 갈 수 있지 않을까? 

▲ 2005년 1월 환경단체의 신고리 핵발전소 건설 저지 해상시위 ©녹색연합

“물론이다. 지난 30년 동안 독일은, 국제적으로 보자면 거의 재생에너지 쪽에 대한 흐름 없이 독자적으로 준비해온 측면이 크다. 우리의 경우는 국제적 환경 부분에서 독일보다 속도를 빨리 할 수 있는 우호적 환경이다.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에너지 정책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 큰 축으로 재생에너지를 얘기하고 있다.

 
국제 정세 속에서 에너지 전환이 정당성을 확보해가고, 기술적 발전 수준도 굉장히 높아졌고, 투자 여건 부분에서도 지름길로 갈 수 있는 여건은 만들어져 있다. 그렇게 가기로 방향을 정하느냐의 문제이다. 정치적 의지를 가진 정당이라든가 정치권의 세력들만 받쳐 준다면, 충분히 독일처럼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상황들을 주목할 필요도 있을 것 같다. 이번 여름을 지나면서 사실상 원자력발전소가 거의 50% 밖에 가동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별 문제 없이 지나갔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들로 봐서 일본 사회도 원전 반대 여론도 높아졌고, 이전으로 돌아가진 않을 것 같다. 그 부분들이 우리 정치권에 인식 전환을 가져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후쿠시마 사태는 원자력이 ‘핵’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가 변화할 수 있는 지점이 생긴 것 같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과연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탈핵’으로 에너지 정책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을지 정치적 진단을 해본다면? 
 
“한나라당의 정책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정부는 2014년까지 원전 14기를 더 짓는다는 계획이다. 신고리 발전소가 올해 첫 가동되며, 이미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번 차에 일본이라는 도전자도 없어졌는데, 원자력 업계를 장악하고 수출국으로서 위상도 높이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는 것 같다.
 
민주당은 원전과 관련해 몇 가지 새로운 정책들을 끌어안기는 하겠지만, 본래 정책의 근간은 한나라당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개발론’이다. 확고하게 탈원전이라는 것을 정당 안에서 정책적으로 개발하며 어떤 로드맵을 제시할 거라는 기대를 하긴 어렵다.
 
지금 상황을 보면 원전과 관련한 이야기는 신문에서 사라진 지 오래이고, 시민사회에서 후쿠시마 사태를 적극적으로 이슈화하는 데 실패한 것 같다. 탈원전을 정치권 안에서 이슈화하는 게 현재로서는 큰 관건이 될 거라고 본다. 일단 내년 총선에서 중요한 이슈로 부각시키는 게 과제인 것 같다. 그 시점을 놓쳐버리면 안 된다. 정책적 방향을 견지해줄 우리 세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운 에너지 정책, 생태 중심의 정치를 이슈화할 수 있는 정당에서 일차적으로 탈핵을 이슈화하고, 한국이 에너지 전환점을 만들어가려면 원전 14기 추가 계획에 대한 ‘완전 철회’는 정책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 다음 현재 있는 20기를 언제까지 운영할 건지에 대해서,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할 거라고 본다. 거기에 대한 대안이 나와주어야 할 것이다.”
 
-에너지 정책을 전환할 때, 정책에 개입된 집단 간에 충돌이 있을 수 있다. 우리사회는 유독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견이 있으면, 어느 한 쪽을 밀어버리는 식이다. 독일도 다양한 갈등 해결 과정을 거쳤을 텐데, ‘사회적 합의’라는 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한국 정치는 급하니까, 빨리 해결해야 하니까. 임기 중에 다 끝내야 하고. 4년 안에 첫 삽을 떠서 완공까지 가야 하니 언제 합의를 할 수 있겠는가. 독일 사례를 보면, 원자력 합의가 이루어지기까지 그 안의 이해 당사자들 간 무수한 합의 과정이 진행되었다. 10여 년 걸렸다고 봐야 한다.
 
탈원전을 사회적으로 합의해보겠다고 한다면, 우리가 계획을 짜는 것도 중요하고 시점을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시점을 만들어내는 데에서 어떤 내용을 합의할 건지, 참여민주주의를 통해 합의를 이루는 ‘정치적 과정’ 역시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합의된 내용에 대해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먼저 이해당사자들이 지난하게 대화할 수 있는 틀을 만들고, 그를 위한 예산을 편성하고, 시나리오를 같이 짜나가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
 
무슨 문제가 생겨서 합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계획을 해나가는 과정부터 합의를 하는 절차가 미리 제도화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탈원전 시나리오뿐 아니라, 참여민주주의를 어떻게 실행해갈 건가 하는 고민도 같이 이뤄져야 한다.” 

(인터뷰 - 조이여울 기자) 
* 다음 기사에서 박진희 소장 인터뷰 하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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