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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탈핵을 향한 독일의 에너지전환 실험, 그 현장을 가다(하) 
 
[녹색연합-일다 공동기획]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을 자연에너지재단으로”(11)

일다는 녹색연합과 동일본지진피해여성지원네트워크와 함께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을 자연에너지재단으로!” 캠페인을 진행중입니다. ‘청정에너지’, ‘필요악’이라는 거짓 원자력신화에서 벗어나, 재생가능한 자연에너지로 시스템을 전환하도록 촉구합니다. 필자 김제남씨는 녹색연합 녹색에너지디자인 운영위원장입니다.

독일 보봉 생태주거단지 내 도로는 어린이의 놀이터이다.

지난 3월 27일 독일 시민은 원자력과 석유중독에서 벗어나는 길을 선택했다. 메르켈총리의 기민당 텃밭이던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총선에서 녹색당 주지사가 탄생한 것이다.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전국에서 끓어 오른 원전폐쇄 민심 그리고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을 신축하는 ‘슈투트가르트21’ 프로젝트 반대여론이 지역에서 녹색당을 수권정당으로 만들었다.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지사는 자동차규제 공약을 내걸었다. ‘자동차 덜 타기’, ‘작은 차 타기’, ‘자전거 등 대중교통 활성화’이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는 다임러, 포르쉐 등 대규모 자동차 회사를 둔 자동차산업 도시이다. 자동차 산업도시에서 자동차를 규제하는 정책은 언뜻 보면 경제활동을 위축시킬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현지에서는, 연료가 적게 드는 에너지효율 좋은 자동차 생산으로 오히려 미래경쟁력을 높여나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만하임시 기후보호청에서 만난 데이비드 린즈 국제부장은 “녹색당 출신 주지사가 자동차는 덜 타고, 자전거는 더 타는 자동차 규제 정책을 내걸면서 자동차를 파는 사람이 늘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늘어 자전거 수송분담율이 올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가 불편한 시대 
 
석유문명과 인간의 물질욕망을 가장 대표하는 자동차. 탈핵 에너지전환을 실험하고 있는 독일은 어떻게 자동차 의존으로부터 벗어나고 있을까?
 
독일은 일찌감치 자전거를 대중교통수단으로 활성화하였다. 에너지문제, 환경오염문제, 교통문제 해결의 대안으로 자전거친화형 도시를 만들어 왔다. 독일 어느 도시를 가든 안전한 자전거 전용도로와 신호체계가 자동차 도로와 공존하고 있다.
 
독일 방문길에 안내를 맡아 준 베를린 자유대학 박사과정에 있는 염광희씨는 독일에서 성인 수영을 가르치는 곳이 없어 수영을 배울 수 없었던 자신의 경험을 말했다. “독일의 어린이는 초등학생이 되면 경찰서 도움을 받아 보호헬멧을 쓰고 자전거 교육을 받는다. 어릴 때부터 자전거타기와 수영은 필수로 배워 몸에 익히고 있다.”
 
배출기준치를 넘는 자동차에 대한 규제도 엄격하다. 자동차가 배출하는 오염도에 따라 초록색, 노란색, 빨간색으로 분류하고 있다. 베를린 도심의 ‘환경존’으로 차량이 진입하려면 출입증인 ‘초록색 스티커’를 달아야 한다. 배출기준을 초과하는 차량은 아예 환경존 진입을 막아 맑은 공기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도심 진입 자동차 속도를 30km로 준수하는 것도 상식이다.
 
안전한 자전거 전용도로와 신호체계가 잘 되어 있어 자전거이용자가 늘고 있다. 자전거 수송분담율이 27%에 이를 만큼 통근, 통학, 쇼핑을 위해 자전거를 타는 것이 생활이자 시민의 문화가 되었다. 비싼 주차요금 등으로 자동차 주차는 어려워지고 자전거 주차장은 늘어나고 있다. 독일에서 환경과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 자동차는 이제 달릴 곳도 설 곳도 없다. 자동차가 편리하던 시대가 바뀌고 있다.

독일의 환경수도 프라이부르크
 

▲보봉 생태주거단지안. 시민들이 반핵 깃발을 내걸었다.
 
독일의 환경수도로 불리는 프라이부르크 역시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속해 있다. 프라이부르크시는 지난해부터 아예 배출오염이 높은 빨간색 스티커 차량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할 만큼 환경수도의 품격과 내공을 가지고 있다.
 
프라이부르크시가 환경수도로 변화할 수 있었던 것은 1970년대 초 핵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는 반핵운동에서 시작되었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이후 엄청난 방사능공포와 피해를 겪으면서 프라이부르크 시의회는 원자력 의존으로부터 벗어나는 에너지자립도시를 선언했다.
 
반핵운동에 참여한 시민들과 시당국, 시의회가 협력하여 프라이부르크를 사람과 자연을 위한 도시로 창조하면서 오늘날 환경수도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프라이부르크시는 가장 긴급하고, 중요한 대책인 에너지절약을 위해 고효율조명기기를 보급하고, ‘저에너지주택 건축조례’를 제정해서 저에너지 주택을 보급하였다. 그리고 화석연료, 핵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원인 태양광을 생산, 태양의 도시를 만들었다.
 
생태마을로 유명한 보봉단지는 시민이 만든 프라이부르크시의 저에너지주택단지, 태양에너지 도시의 좋은 모델이다. 보봉 생태주거단지에서 12년째 살고 있다는 보봉시민자치조합 이사 알뮤트 슈스터씨가 우리 일행을 안내해 주었다. 그녀의 직업은 가수라고 했다. 보봉마을에 살면서 자치회에서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컸다. 보봉시민자치조합은 보봉생태마을을 만든 보봉포럼을 해체하고 새롭게 만든 시민자치조합이다.
 
알뮤트 슈스터씨는 “보봉마을의 정신은 한마디로 녹색과 주민참여”라고 요약했다. 보봉마을이 생태마을로 거듭나게 된 것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녹색’을 창조하는 새로운 생태마을을 만들자는 시민의 주창과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슈스터씨는 “주민참여로 만드는 차 없는 마을, 자원순환 마을, 태양에너지 주택과 에너지 효율 주거단지로 에너지자립을 실현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보봉마을을 소개했다.
 
에너지 생산하는 보봉 생태주거단지

▲에너지자립 개념으로 설계된 보봉 상업건물 ‘솔라 십(solar ship)'  ©김제남
 
보봉은 2천여채의 주택에 5천여 명이 거주하는 생태마을로 설계, 창조되었다.
 
난방비가 많이 드는 독일의 기후조건을 고려하여 보봉포럼이 가장 끈질지게 요구한 것이 에너지제로하우스를 설계하는 것이었다. 현재 대부분의 주택은 저에너지하우스 또는 패시브하우스, 에너지플러스 하우스로 건설되었다.
 
4명이 사는 일반주택의 경우 연간 ㎡당 석유환산 에너지소비량이 14리터에 달한다. 그러나 저에너지주택은 7리터에 불과하고, 패시브하우스는 1.5리터로 에너지소비가 제로에 가깝다. 에너지플러스하우스는 패시브하우스로 지은 주택에 일반 지붕 대신 태양광지붕을 설치하여 태양에너지를 생산한다.
 
보봉마을에 들어서면 도로변에 놓인 기다란 배 모양의 알록달록한 색채의 ‘솔라 십(solar ship)’이라는 상업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솔라 십은 패시브하우스로 건축되었고, 옥상건물에 에너지플러스하우스가 있다. 유기농슈퍼, 재생에너지에만 투자하는 GLS은행, 환경연구소 등 환경친화기업이 이 건물에 입주해 주민에게 서비스와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상업건물을 방음벽 삼아 안쪽으로 에너지플러스하우스 주택단지가 참으로 소박하고 예쁘게 가꾸어져 있다.
 
에너지플러스하우스가 얼마만큼의 태양에너지를 생산하는지 궁금해 물었다. 알뮤트 슈스터씨는 “한 가구에 설치된 7.5kwh의 태양전지로부터 년 간 약 7,000kwh가 발전이 된다”고 답했다. 슈스터씨의 설명을 들어보자.
 
“이 곳에 사는 가구는 연면적 140㎡인 주택에서 살면서 1년간 가전기기에 1,500kwh, 조리용 가스에 500kwh, 지역난방으로부터 오는 온수에 3,500kwh를 쓰고 있어요. 패시스하우스로 건축되어 난방비는 거의 들지 않죠. 결국 에너지플러스하우스는 소비되는 에너지양보다 더 많은 양의 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는 거죠. 그리고 생산한 전력은 모두 판매할 수 있으니 집이 에너지생산자가 되는 겁니다.”
 
차 없는 주택가 도로는 어린이의 놀이터

▲ 베를린 시내의 자전거 전용도로

보봉마을에는 개인주차장이 없다. 정원과 공원, 어린이 놀이터, 자전거주차장이 개인 주차장 자리를 대신한다. 마을에 들어와 살려면 개인 소유의 주차장을 짓지 않는다는 약속이 있어야 한다. 보봉주택단지로 들어오는 입구와 단지 외곽에 유료로 사용하는 공동주차장을 만들었다. 자동차를 주택단지 안으로 들여놓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보봉로를 따라 주택가 안쪽으로 다니다 보면 도로에 공놀이하는 아이모습이 그려진 파란색 표지판을 자주 볼 수 있다. ‘이곳은 주차공간이 없고 아이들의 놀이터’라는 표식이다. 골목에 나와 도로를 스케치북 삼아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이들을 만나니 ‘도로는 어린이 놀이터’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알뮤트 슈스터씨도 12살 된 아들을 이곳에서 낳고 길렀다. 이곳에 입주한 이유가 ‘아이들이 살기 좋은 천국’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주민들은 이곳에 녹색을 심고, 미래세대의 꿈과 희망을 심고 길러 왔다.
 
보봉마을 주민들의 자동차 보유대수는 10명당 2.5대꼴로 아주 낮다. 반면 자전거 보유대수는 한 명당 1대꼴로 높다. 이들은 자동차와의 불편한 동거 대신에 노면전차, 자전거, 버스, 카세어링이 등 행복한 이동수단을 선택하고 있다.
 
마침 우리가 방문한 날이 일요일이라 보봉포럼이 주민의 커뮤니티 공간과 광장으로 접수하고 기금을 모아 개조했다는 마을회관은 곱게 차려입은 주민모임과 파티로 즐거웠다. 주민이 주창하여 만들어 가고 있는 차 없는 마을, 에너지자립마을. 아직 그 꿈은 진행형이다.
 
공동주차장 수요도 늘어나고, 외부자본의 개발압력 등 도전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석유와 원자력을 넘어선 진정한 ‘녹색’을 선택한 프라이부르크 시민, 보봉생태마을 주민이 있기에 그들의 경험과 지혜는 석유와 원자력 중독에 빠진 이들에게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보봉 생태마을을 다녀오는 길에 들른 프라이부르크 대성당 주변 돌길은 자연스럽게 낸 오래된 수로 ‘베히레’가 많다. 상류에서 흐르는 물길 그대로 흐르도록 살린 수로로서 바람길 역할도 하며 자연과 순환하는 도시 매력을 만들고 있었다.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소박하게 난 수로를 따라 프라이부르크 대성당 주변을 걸으니 태양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던 도시도 석양빛에 뉘어 쉬어가는 것이 한없이 평화롭다. (김제남 / 녹색연합 녹색에너지디자인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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