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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고제량의 제주 이야기(6) 오름과 오름 사잇길 걷기 
 
[관광개발로 파괴되는 제주의 환경훼손을 막고 대안적 여행문화를 제시하는 생태문화여행 기획가 고제량님이 쓰는 제주 이야기. ‘관광지’가 아닌 삶과 문화와 역사를 가진 제주의 참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제주도의 다섯 개 밭 

제주도의 ‘오름’은 촐밭과 새밭이 되었던 곳으로, 오름 사잇길에는 제주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지금도 서성인다.   © 고제량 
 
제주도는 밭이 있어야 살았다. 그 밭은 땅에도 있지만 바다에도 있다. 숙전, 촐밭, 새밭은 땅에 있는 밭이고 메역밭, 할망밭, 선생밭은 바당밭이다. 그리고 땅의 밭과 바당밭만 있다고 살아지는 건 또 아니었다. 소금밭도 있어야 했다. 그러고 보면 숙전, 촐밭, 새밭, 바당밭, 소금밭을 모두 가지고 있으면 완전 자급자족이 가능한 집이다.
 
숙전은 농사를 짓는 밭이고, 촐밭은 소나 말의 먹이가 되는 풀밭을 말한다. 그리고 새밭은 보통 2년에 한번씩 초가를 이었던 새(띠)를 키웠던 밭이고, 바당밭은 해조류와 해산물을 생산했던 밭으로 섬의 해녀들에게는 아주 큰 경제성을 가져다 준 밭이다. 제주도에서의 소금밭은 암반 위에도 있고, 해변의 모래 위에도 있었다.
 
제주도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 다섯 개 밭을 다 가지지 못한다. 서로 자기만큼씩 작은 밭을 가지고 있으면서 가진 것 나누고, 넘치는 것은 바꾸고, 그러면서 삶에 필요한 것들을 얻었다. 이 때문에 제주도 사람들은 아주 단단한 공동체를 이루었고, 그 공동체의 규율은 아주 엄격 했을는지도 모르겠다.
 
제주도의 ‘오름’은 촐밭과 새밭이 되었던 곳이다. 소나 말을 키우기 위해 오름을 낀 초원을 마을 공동목장으로 공공의 공간을 함께 가졌다. 새밭은 따로 가꾸는 밭을 가진 집도 있었지만, 오름과 오름 사이에 자라는 새(띠)는 누구의 것이랄 것도 없다. 먼저 가진 사람의 것이다. 초가를 이어야 하는 해 가을에는 밭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 오름 사이 틈틈이 자란 새를 베어 한 짐씩 지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단다.
 
바람 많고 돌만 많은 섬, 그 하루의 끝에도 섬사람들의 어깨는 쉬지 못하고 고단한 등짐이 얹혀져 있었을 것이다. 오름 사잇길, 구불구불 이어진 이 길에는 아직도 제주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그대로 서성인다.
 
10월 제주, 바람길 따라 이어진 길을 걷자 

구좌읍 송당리 마을에서 6.4km 오름 사잇길이 펼쳐진다. 
 
가을에 제주에 오면 그 길을 걸어보자. 직선으로 매끈하게 뻗은 아스팔트 보다 오름과 오름 사이 구불구불 울퉁불퉁 바람길 따라 이어진 길.
 
오름 사잇길이라고 해서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는 곳은 아니다. 구좌읍 송당리 1136번 도로에 인접해있는 다랑쉬로에서부터 구좌읍 상도리에 이르는 오름과 오름 사이 시멘트 도로 약 6.4 km 구간을 나름 오름 사잇길이라고 하겠다.
 
흔히 다랑쉬 오름이나 아끈 다랑쉬, 용눈이 오름은 잘 찾아가지만 그 사잇길을 걷는다는 건 흔하지 않은 경험이다.
 
일단 구좌읍 송당리라는 마을을 찾아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제주 동부지역 번영로를 따라 가다가 대천동 사거리에서 비자림로로 접어들면 송당리라는 마을을 만나게 된다. 송당리에서 다시 1136번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약 3km 정도 가다 보면 용눈이 오름 길을 찾을 수 있는데, 그 길에서 다시 서쪽으로 다랑쉬 오름로를 만난다. 여기서부터 오름 사잇길은 시작된다.
 
제주시에서 출발하면 약 4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오름 사이 길을 걸으며 만나는 풍경은 제주 들판의 참 모습들이다. 하늘이 낮게 내려앉은 파노라마. 이 길에서는 고개를 반쯤 숙여도 하늘이 더 많이 보인다.
 
오름 사잇길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풍경은 길 양 옆으로 올록볼록 매끈한 선을 자랑하는 오름들이다. 이 길에서는 제주 동부지역 선이 아름다운 오름을 여럿 볼 수 있다. 다랑쉬 오름과 아끈 다랑쉬, 그리고 용눈이 오름을 가장 가까이 만날 수 있다.
 
두 번째 풍경은 길을 걸으며 만나는 역사와 문화들이다. 오름 사잇길을 걷다 보면 다랑쉬 오름 못 미쳐서 잃어버린 마을 다랑쉬 마을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63년 전 4.3 사건으로 인해 사라진 마을이다. 4.3 당시 다랑쉬 마을에는 9~12가구 약 4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한다. 1948년 10월경 주민들과 유격대를 분리시켜, 유격대를 고립시키기 위해 마을 주민들에게 해안마을로 내려가라는 소개령이 내려졌다. 주민 모두는 세화리로 내려갔지만 살아갈 대책이 없는 지라 참혹한 생활을 하며 생존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후 마을사람들은 다시 마을로 되돌아오지 않았다. 지금은 마을의 흔적만 볼 수 있는데 당시 마을 어귀에 있었던 팽나무가 여전히 살아서 지난 역사와 현재를 함께 묵묵히 보고 있고 집 울타리에 심어 생활도구를 만들어 썼던 대나무들만 주인을 잃고 마을을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카메라 파인더를 가로로 놓아야 하는 이유 

오름 사잇길은 밭과 밭, 제주 사람과 사람 사잇길이기도 하다. 
 
세 번째 풍경. 오름 사잇길을 걷다 보면 들판도 보고, 밭도 볼 수 있다. 그 경계에는 구불구불 까만 돌담들이 끝간 데 없이 이어진다. 바람 맞으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이 구멍 숭숭 엉성하게 닿아져 있지만 돌담은 언뜻 보아도 시간이 깊이가 느껴지도록 세월의 이끼들이 끼어 있다. 돌담 안에는 콩이 깍지 마다 몽글몽글 여물기도 하고, 하얀 메밀꽃이 피어있다.
 
그리고 돌담 안 밭에는 또 무더기로 쌓여진 돌탑이 있는데, 이것은 ‘머들’이라 한다. 돌 많은 화산섬에서 밭을 일구기 위해 돌을 골라내어 한곳에 모아 놓다 보니 때로는 돌담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이렇게 머들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저렇게 많은 돌을 주워 냈는데도 아직 밭에는 돌 투성이다.
 
네 번째 풍경. 10월의 들판에는 이제 막 보라색의 머리를 풀기 시작하는 가을억새와 초가지붕을 이었던 새(띠) 그리고 가을 들꽃들이 지천이다. 가을 억새는 바람과 함께 누웠다 일어나기를 반복하고, 새는 어느새 초록빛 보다는 황금빛을 띤다. 아마도 여름내 받았던 태양빛을 닮았나 보다.
 
다섯 번째 풍경은 한참을 걸어서 밭과 돌담 그리고 오름들의 능선이 이어진 길이 끝날 때쯤 상도리 마을을 만난다. 옹기종기 이룬 집들도 정감 있고, 마을 길에서 집 마당으로 이어지는 예쁜 올레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올레에 피어있는 봉숭아 꽃에서 옛날 아련한 손톱 끝의 사랑도 떠올려 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가을 하늘을 빼놓을 수 없다. 어떤 여행자가 그런 말을 했던 것이 생각난다. ‘제주에서는 고개를 들지 않아도 하늘이 눈에 다 들어온다. 마치 제주의 풍경은 파노라마 같다’고. 오름 사잇길에서는 카메라 파인더를 가로로 놓아야 할 것이다. 그래도 하늘이 훨씬 아래로 내려앉은 놀라움을 보게 된다.
 
오름 사잇길에서는 눈에 들어오는 것만 풍경은 아니다. 억새들과 황금빛의 띠를 눕혀 놓는 바람도, 들판에 언뜻언뜻 날아오는 향기도 모두 풍경이겠다. 오름 사잇길은 밭과 밭 사잇길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쩌면 제주 사람과 사람 사잇길이기도 하다. (고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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