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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이경신의 도서관 나들이(42) 약에 얽힌 진실② 
 
우연의 일치일까? 며칠 전, 거대제약회사는 앞으로 브랜드 일반의약품으로 신흥시장을 공략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기사를 읽었다. 곧이어, 우리나라 보건복지부는 일반의약품을 슈퍼나 편의점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일부에서는 국민 대다수가 법 개정을 환영한다는 여론조사까지 내세우며, 미국이나 일본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일반 대중의 약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가 심야나 주말에도 일반 의약품을 살 수 있다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이것이 거대제약회사의 공격적 마케팅과 관련은 없을까? 우리 정부와 이 거대기업과의 유착을 의심하면 지나칠까? 우리는 이 질문들에 대한 충분한 대답을 찾아야만 한다. 사실 평범한 대중들은 거대제약회사의 마케팅이 얼마나 공격적인지 모른 채, 그 놀음에 놀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이 약은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미국인 의사 마르시아 안젤의 <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청년의사, 2007)와 영국의 언론인 재키 로의 <제약회사는 어떻게 거대한 공룡이 되었나>(궁리, 2008)를 펼쳐서 신약 마케팅의 진실을 제대로 들여다 볼 때다. 이들이 우리에게 폭로하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더러운 돈벌이는 우리의 상상을 능가한다.
 
돈벌이에 혈안이 된 거대제약회사
 

지난 1880년대 이후 거대 제약회사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약의 품질을 향상시켜서가 아니라, 사람을 치료하는 약을 돈벌이 도구로 탈바꿈시킨 덕분이다. 수익을 늘리기 위해 약값을 올리고, 비싼 약을 팔기 위해 마케팅에 총력을 기울였다. 기밀에 부쳐져 있어 상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광고, 판촉, 법적 비용, 경영진의 보수 등을 포함하는 마케팅, 관리비용은 어마어마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약업계는 약값이 날로 비싸지는 까닭을 연구개발비 탓으로 핑계를 대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시판되는 신약 대부분이 연구개발비가 많이 들지 않는 유사약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 유사약은 새로운 특허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만 기존 약과 다를 뿐이니, 마케팅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판매조차 힘들다는 것이다.
 
제약회사의 연구개발비라는 것도 사실 마케팅비용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기업이익에 맞게 연구자들을 동원하기 위한 것이니 말이다. 연구의 세세한 부분, 학술대회, 학술지 논문발표에도 제약업계는 관여한다. 전문 연구자가 돈에 열광하면 할수록, 연구자와 제약회사의 협착은 깊어지고 연구자는 타락한다.
 
거대기업과 연계된 연구자는 기업 이익을 위한 편향적 연구결과나 심지어 허위 연구결과를 발표한다. 노년층 약임에도 불구하고 부작용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젊은이를 피험자로 삼는다든가, 장기복용할 약을 단기간 시험해 필요한 결과를 얻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게다가 부정적 연구결과는 없애고 유리한 연구결과는 대대적으로 발표한다.
 
약의 효능을 부풀리는 일도 예사다. 마르시아 안젤은 여성의 완경증후군을 조절해서 심장병을 예방해준다는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호르몬 보충요법만 해도 제약회사의 자금이 만든 거짓이라고 고발한다. 이 호르몬 처방은 오히려 심장병을 증가시켰다는 것이다.
 
“제약회사는 의사의 나쁜 친구”
 

의사도 마케팅을 비껴나지 못한다. 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인 마케팅이 이루어지는 미국의 경우를 보자.
 
거대 제약회사는 의사에게 공짜 샘플약뿐만 아니라, 유명 휴양지의 사치 여행과 같은 고가의 선물도 의사에게 안겨준다. 약의 장기적인 효과를 알아보기 위한 ‘시판후 연구(4상 연구)’조차 판촉기회로 이용해, 의사가 이 연구에 환자를 동원할 때마다 사례금을 지급한다. 의사를 포섭하기 위해서라면 채무도 변제해 주고, 뇌물까지 건넨다.
 
제약회사의 영업직원은 젊은 의사에게 식사를 사주고 선물공세를 퍼붓고 아첨하면서, 장래를 위해 친분을 쌓아두고, 약 처방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전문의에게는 자문을 요구하는 척하면서 돈과 선물을 바치고 함께 손을 잡는다.
 
문제는 의사가 제약회사 마케팅에 의존하지 않고 나름대로 성실하게 약을 처방할 때조차 마케팅의 그물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바로 교육으로 위장된 마케팅 때문이다.
 
약을 잘 알지 못하는 의사가 참고하는 의사처방 참고문헌도 제약회사의 재정적 지원 아래 만들어지고, 지속적인 교육을 위해 의사가 참여하는 연수와 학술대회도 제약회사의 시장일 뿐이다. 개최비용을 절반 이상 떠맡는 제약회사 측에서 강연 주제나 연사를 정하고, 교육자료도 제공한다. 이런 교육을 받은 의사가 어찌 후원 제약회사의 약을 처방하지 않겠는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제약회사는 법망을 교묘히 피해 불법행위도 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과감히 행한다. 약의 잠재적 용도를 의사에게 알린다면서 승인받지 않은 증상에 대해서도 약을 처방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이때 교육은 기준에 못 미치는 연구, 유명 연구자의 이름만 빌린 허위 연구에 근거한다. 만약 의사가 처방에 동참하면 역시나 돈으로 사례한다. 이 같은 불법적 약 판매 사실이 밝혀져 소송에 지더라도 수익에 비해 벌금이 얼마 되지 않아, 제약회사로서는 충분히 이득이 된다.
 
재키 로는 제약회사 때문에 의사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없어 의사와 환자의 신뢰가 깨어졌다면서 통탄한다. 그동안 의사는 약으로부터 환자를 지켜주는 방패막이 역할을 해 왔지만, 환자가 의사를 불신하게 되면서, 환자는 의사처방을 따르지 않거나 자가 처방으로 약을 오남용하기도 한다. 소비자는 제약회사 마케팅의 희생양이 되기 훨씬 쉬워진 셈이다.
 
무조건 독점판매권 늘리기
 

그동안 거대 제약회사가 수익을 올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린 것이 있는데, 바로 독점판매권 연장이다.
 
다국적 제약회사는 미국 특허청으로부터 20년이 보장되는 특허권을, 미국식약청 FDA로부터 독점판매권을 승인받아, 다른 회사가 제너릭(복사약)을 생산, 판매할 수 없도록 일정기간 막아낼 수 있다. 그러나 독점판매권이 만료되면 제너릭을 다른 회사도 만들 수 있어서 약값이 오리지널의 최대 20%까지 떨어진다. 독점권 만료가 제약회사에게 재앙으로 간주되는 까닭이 여기 있다.
 
따라서 제약업계는 독점권을 최대한 연장하기 위해 잔재주, 사기, 공모, 소송 등과 같은 부정적 방법까지 총동원해 왔다. 
 
일단 오리지널 회사는 제너릭 회사를 특허권 침해로 소송하면 무조건 FDA 승인기간이 30개월 연장된다. 소송이 타당하건 부당하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약의 모든 특성에 대해 특허를 내놓고는 계속해서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또 어린이 임상시험이 필요 없는 데도 어린이 임상시험을 해서 6개월을 더 연장하기도 하고, 첫 번째 제너릭 회사와 공모해서 제너릭이 시장에 진출하는 시기를 늦추기도 한다.
 
아니면, 브랜드 제너릭을 생산한다. 브랜드 제너릭은 “유효성분이 오리지널과 비슷하지만 똑같지는 않기 때문에 특허를 침해하지는 않는 것으로 간주되지만, 그와 동시에 오리지널과 충분히 비슷하기 때문에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약들”이다. 약을 조금 변형해서 승인받는 것이다. 이처럼 제약회사가 독점권을 연장하기 위한 고안해낸 기발한 방법들은 수두룩하다. 
 
게다가 거대제약회사들의 국제특허권을 강화시키기 위한 노력도 눈물겹다. 혹시나 가난한 나라에서 값싼 제너릭을 만들어 수익이 줄어들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위기에 직면한 제약회사의 새로운 출로
 
독점권 연장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익성 좋은 약의 특허가 2001년에 무더기로 만료됨에 따라, 대체 약 개발을 등한시 했던 제약업계는 위기에 봉착했다.
 
그동안 거대 제약회사는 세계 제약 소비액의 절반 이상을 거둬들였던 미국에서 연구자와 의사만이 아니라, 정부와 국회, 언론과 사법까지 마케팅의 표적으로 삼아 돈을 뿌리면서 다각도의 마케팅을 시도해왔다. 세제혜택과 더불어, 기업규제뿐만 아니라 약광고규제도 완화시킬 수 있었다.
 
심지어 제약기업의 감시기구인 미국 식약청 FDA까지도 돈벌이에 동원했다. 신약의 안정성검사, 불법판촉 규제라는 본래적 기능은 약화시키고, 신약의 승인은 신속하게, 유해한 약의 퇴출은 느리게 만들었다. 미국과 달리 저가보건의료를 고집하는 유럽에도 환자조직 연합체에 돈을 대는 등 공공보건의료 장벽을 무너뜨리는 노력을 계속해 왔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신약의 수도 줄고 질도 저하되어 온 만큼, 제약업계에게 새로운 출로는 절실했다. 거기다 2000년대 초반부터 제약회사들은 자신들의 천국이었던 미국 땅에서 민형사 소송에 휘말리게 되었고, 비싼 신약으로 고통받아 온 미국인들이 제약회사의 더러운 돈벌이에 눈을 뜨면서 약 소비율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런 마당에도 이 거대기업들은 진정으로 질병치료에 도움이 되는 혁신적인 약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지 않았다. 일단, ‘무제한 독점권’을 보장받고 있는 생명공학회사에 손을 뻗쳐보았지만, 당장 위기를 헤쳐 나가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이 눈을 돌린 것이 바로 브라질이나 인도, 우리나라와 같은 신흥시장이 아닐까? 우리 정부는 미국 정부의 강요에 못 이겨 2003년에 백혈병치료제인 글리벡을 미국인들보다 더 비싼 값에 사겠다고 합의했다고 한다. 우리는 이처럼 벌써부터 비싼 신약을 사주어 공룡들 몸집불리기에 기여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대중들이 쉽게 약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대 기업의 주장을 우리 정부가 똑같이 되풀이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약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것이 정녕 혜택일까? 제약회사의 마케팅으로 인해 미국인들이 불필요하고, 때로는 부작용이 심각한 약을 얼마나 남용해 왔는지 똑똑히 직시해야 한다. 한켠에서는, 해열,진통제와 같은 일반의약품이 처방약처럼 관리가 제대로 될 수 없기 때문에, 약 남용으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한다.
 
수지가 맞지 않으면 의학적으로 꼭 필요한 약도 중단할 정도로 영리만 추구하는, 사회적 책임의식이라고는 없는 기업이 바로 거대제약회사라는 지적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이경신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일다> 즐겨찾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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