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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잘 늙는 비결을 찾아 
이경신의 도서관 나들이(39) 늙음에 대하여④ 

셔윈 B. 누랜드의 <우리는 어떻게 죽는가>(세종서적, 1997)를 읽다 보면, 우리는 노인이 죽는 까닭이 사망진단서에 써넣는 구체적인 병 때문이라기보다 “다 낡아빠진 신체조직 때문”이라는 구절을 발견하게 된다.
 
기대수명이 늘어난 오늘날, 노화는 죽음의 중요한 원인임이 분명하다. 노화가 수정과 더불어 시작되건 사춘기 때부터 시작되건, 아니면 30세나 40세 무렵부터 시작되건, 물질적으로 혜택 받은 우리 대부분은 늙고 쇠약해져서 죽는다. 또 노화를 극복할 수 있다 없다의 논쟁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질병이 노화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노화 역시 죽음으로 이끄는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
 
진화생물학자들이 주장하듯 ‘활기찬 젊음의 대가로 주어지는 병약한 노년’이라고 그냥 인정해버리기가 쉽지 않다. 소위 ‘본격적인 노화’, 즉 생식기간이 지난 후의 노년기는 갖가지 질병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두렵기만 하다.
 
오래 사는 대신 건강을 희생시켰다
 

▲ 셔윈 B. 누랜드 <우리는 어떻게 죽는가> 원서 표지이미지 

 
현대여성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난자가 거의 고갈되어 월경주기가 사라지고 생식능력을 잃게 되는 완경, 여성들은 이 완경 이후에도 인생의 3분의 1 이상을 더 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완경 후, 여성들은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과 같은 성호르몬이 줄어드는 몸의 변화를 겪게 된다.
 
어떤 이들은 여성의 신체가 생식을 위한 완경 전에 맞춰 설계되어 있어, 완경 이후는 생식체계가 쇠퇴하기 때문에 호르몬을 보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다른 이들은 생식기간이 자녀, 손자녀 양육기간까지 포함하고 있어 좋은 어머니, 할머니가 되도록 완경 후 생식이 중단된다 해도 생식체계가 잘 조절되어 있는 것이니 호르몬 보충은 필요 없다고 반박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과학자들은 성호르몬이 여성을 노화로부터 지켜주는 보호장치이기 때문에, 완경이 뒤로 미뤄질수록 죽음도 늦춰진다는 데 동의한다. 난소를 제거했을 때 심장병이 증가하는 것처럼, 완경이 되어 성호르몬이 감소하면 심장병, 골다공증과 같은 질병이 늘어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완경’은 마치 여성들이 병약한 노년에 들어서는 관문 같다.
 
누랜드에 의하면, 85%의 노인이 동맥경화증, 고혈압, 당뇨, 비만, 알츠하이머를 포함한 다양한 치매, 암, 감염과 같은 7가지 질환을 주로 앓다 죽음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이 7가지 질환들은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그는 사망한 노인들이 제각기 다른 노쇠과정을 거쳤다고 해도, “영양부족과 산소부족으로 인한 원기 상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즉, “동맥이 지나치게 좁아져 혈액 공급이 부족해지자 자연히 영양분과 산소 공급이 끊겨 결국 마지막 원기가 소진될 때까지 녹과 때가 쌓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세기 인간이 달성한 ‘수명혁명’이 자연스런 노화를 막지는 못했던 것이다. 개선된 공중위생과 영양상태, 항생제의 출현, 발전한 의술, 노련한 의료진, 최신식 의료장비, 신속하고 효과적인 응급조치 덕분에 중년과 노년의 사망률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 대신 나이든 환자는 그만큼 늘어났다.
 
결국 오래 사는 대신 건강을 희생시켰다는 해석이 결코 그릇된 것 같지 않다. 우리가 오래 살면 살수록 노화 과정이 더 연장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불로초, 청춘의 샘은 없다
 
사람들은 만성질환에 시달려야 하는 취약한 노년기를 눈 앞에 두고도 오래 사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스태드나 올샨스키와 같은 과학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언젠가 노화를 극복할 수 있는 약품이 개발되거나 의학이 발전해서 인간이 150살 이상 장수할 수 있으리라 낙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희망하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인간 수명의 한계를 부정하는 장수론자는 인간이 영생불멸 할 수 있다고 믿으며 지금보다 훨씬 더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인간의 노화를 늦추거나 중단시킬 수 있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방법이 없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마늘, 식초, 녹즙과 같은 먹을 거리가 노화를 방지한다는 증거는 없다. 떠들썩한 광고 아래 과도하게 소비되는 비타민 C, A, E이나 마그네슘, 셀레늄과 같은 미네랄도 노화방지물질은 아니란다. 오늘날 장수론자들이 노화를 중지시켜 젊음을 되찾아준다고 주장하는 불로장생약, 즉 멜라토닌, DHEA(부신피질에서 생성되는 호르몬), 디프레닐, 프레그네놀론(신경호르몬), 테스토스테론,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과 같은 호르몬도 노화방지 특효약으로 입증된 바 없다.
 
넘치는 것은 확대해석과 과대광고뿐이다. 노화방지약으로 현재 판매되고 있는 것 모두 효과는 미미한데, 오히려 부작용이 클 수 있어 위험하다고 하니, 경계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활성산소(유해산소)에 대해 무성한 이야기들도 가려 들을 줄 알아야겠다. 비록 학계가 노화의 원인으로 유해산소를 인정했다고 해도, 유해산소로 인한 유전자 손상은 무작위로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손상된 유전자는 완전복구도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귀담아 들어 둘 필요가 있다. 게다가 “활성산소는 면역반응, 세포증식, 세포 내 신호전달, 세포 죽음과 같은 중요한 생리작용에 관여하는 것”이어서 줄어들면 좋지 않다는 사실도 함께 기억해 두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또 한편에서는 난자, 정자 내 DNA조작, 즉 유전자 조작을 통해 수명을 연장하려는 시도도 있긴 하지만, 지금껏 인간의 자연개입이 그래왔듯이 충분히 재앙이 될 수도 있으니 재고되어야 할 인간의 오만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이 크다고 할지라도, 시중의 노화방지 음식, 물질, 약 중 그 어느 것도 각자가 바라는 획기적인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올바른 판단력을 갖추는 것은 중요하다. 불로초와 젊음의 샘을 찾아 방황하며 노년의 삶을 허비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오히려 우리 인간의 생존 가능한 범위가 있다는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낫다. 올샨스키에 의하면, 현대인은 대개 2만 2천일에서 3만 3천일(60년에서 90년) 사이에 사망한다. 물론 10% 정도의 사람은 그보다 일찍, 2만 2천일이 되기 전에 죽고, 극소수만이 4만일을 살아낼 수 있단다.
 
한 개인의 수명을 결정하는 생체 시계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또 어쩌면 먼 미래에 우리 인간의 기대수명이 더 늘어날지도 모르겠지만, 생명체인 한에서 인간이 생물학적 한계를 수용하는 것은 노년을 꾸리는 데 있어 든든한 기초가 될 것으로 믿는다.
 
삶의 길이보다 삶의 질
 
모든 생명체가 노화과정을 겪는다고 하지만 생명체마다 노화과정이 다르듯이, 인간 개개인의 노화과정도 유사하지만 차이가 난다. 개인의 수명이 내부 유전자와 외부 환경의 결합에 의해 결정된다고 할 때, 노화가 개개인마다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유전자와 환경의 차이만은 아니다. 각자의 노력도 늙어가는 모습에 차이를 더한다. 분명 다들 다르게 늙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가 나이 들면서 개인적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은 무엇일까?
 
노화를 막을 방법도 없고, 수명의 한계도 존재한다면, 젊음에 집착하기보다 일단 늙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삶의 길이에 집착하지 않고 생물학적 수명의 한계 내에서 건강이 나빠지는 속도를 최대한 늦춰 삶의 질을 유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대소변을 조절하지 못하는 신체적인 무능력 상태와 뒤죽박죽으로 엉겨버리는 정신적 혼돈”상태를 최대한 뒤로 미루면서 정신적 활기와 육체적 활력을 잃지 않도록 애쓰는 것이다.
 
우리가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까닭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생명체로서 자기복구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파괴되면 재생되지 않는 근육세포도 생애 후반에조차 지속적인 운동을 통해 근육을 키울 수 있다. 근육이 강화되면 근력과 지구력을 늘릴 수 있고, 심장혈관, 골격, 호흡기 계통이 좋아질 수 있다. 운동은 낮아진 골밀도를 높일 수는 없지만, 골밀도 감소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근육세포처럼 뇌와 신경세포도 손상되면 회복될 수 없다지만, 생각, 사색을 놓지 않는 한, 뇌 성장이 끝나더라도 뇌 피질의 어떤 신경세포는 더욱 원숙해진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도 지혜로울 수 있는 생리적 근거가 여기 있다.
 
그런데 신체적 상태가 심리적으로 영향을 끼치듯이 심리적 상태도 신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스트레스가 몸에 해롭고, 심각한 질병을 야기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고 산다. 장수론자들의 주장처럼, 심리적 안정과 정신적 각성이 영생의 비법이나 노화 극복의 방법인지 확인할 수도, 확인된 적도 없지만, 적어도 명상과 같은 수련이 마음을 안정시켜 스트레스를 줄이고 활기를 유지, 회복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이처럼 적절한 운동, 균형 잡힌 적당량의 식사, 지적인 사색과 마음 수련을 지속한다면, 노년에도 면역체계를 강화할 수 있다. 면역력이 강해지면 신체와 정신을 보호하고 치유하는 능력도 커져서 건강하게 늙을 수 있을 것이다. 건강하게 늙을 수 있다면, 나이가 들어서도 걷기, 씻기, 용변보기 등의 자립적인 일상생활을 가능한 한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다.
 
사실, 사람들이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이유는 오래도록 삶을 향유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어느 누구도 삶의 질이 보장되지 않는 무조건적 생명연장을 갈구하지는 않는다.
 
죽음을 준비하는 성숙한 노년
 
그런데 노년을 잘 꾸리는 데 있어 건강을 유지하고 자립적 삶을 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이가 들어 좀 더 오래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바로 죽음을 잘 준비하기 위한 성숙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공감한다.
 
비록 다양한 질병이 수반되는 노쇠가 힘든 경험이긴 하겠지만, 생명체로서 탄생, 성장, 노화, 죽음이라는 삶의 과정을 살아 있는 동안 모두 거쳐갈 수 있다는 것만 해도 행운이 아닐까? 물론 잘 늙을 수 있을 때만이 노년이 행운으로서의 가치를 지닐 것은 분명하다. 의미 없고 고통스럽게, 무조건적으로 목숨만 연장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기적인 탐욕, 부질없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수명 연장에 발버둥치는 것도 어리석긴 마찬가지다.
 
주어진 삶 속에서 활기를 유지하려 애쓰면서, 죽는 순간까지 스스로를 돌아보고 타인과 나누고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찾는 자기성장을 포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가올 죽음을 차분히 준비해 내적 성숙을 도모할 수 있다면, 최고의 노년이라 여겨진다.
 
모든 노인이 정신적인 성숙에 이르지 못한다 할지라도, 누구나 노년의 성숙을 위해 노력할 수는 있다. 여성이라면, 완경을 성숙한 노년의 출발점으로 삼으면 어떨까? (이경신) *일다 즐겨찾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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