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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고제량의 제주 이야기(2) 다랑쉬 오름과 다랑쉬 마을
[관광개발로 파괴되는 제주의 환경훼손을 막고 대안적 여행문화를 제시하는 생태문화여행 기획가 고제량님이 쓰는 제주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관광지’가 아닌 삶과 문화와 역사를 가진 제주의 참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편집자 주]
▲ 제주 섬사람들은 오름을 의지 삼아 마을을 이루고 살아간다. © 고제량
오름을 의지 삼아 마을을 이루고, 오름에 오르고 내리며 삶을 영위해 간다. 생이 다하면 섬사람들은 오름 위에 한 평 차지하고 누워 오붓한 산 담을 쌓아 죽은 자의 영역을 만들었다. 제주도 섬 안에 사는 사람들은 그렇다. 그렇게 섬사람들은 오름이 있어 비빌 언덕이 있고, 오름은 품어 안는 생명들이 있어 그 의미가 값지다.
제주도 동쪽 송당리 마을에 있는 다랑쉬 오름. 굼부리(화산 화구)가 꼭 달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여러 사람들이 말한다. 언어학자들은 이 해석이 맞는지는 알 수 없고 여러 추정을 해낸다. 다랑쉬에서 ‘달, 다’의 의미는 높다, 또는 산의 의미를 가졌다고도 한다. ‘쉬’는 봉의 뜻을 가진 ‘수리’가 변형된 것이라고 해석한다.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달과 연관되어 달의 의미가 깊이 배어 있는 것에 마음이 간다. 그래서 다랑쉬 오름은 달밤에 오르는 오름으로서도 그 매력이 남다르다. 나는 오름을 알기 시작하면서 추석 다음날 오후면 다랑쉬 오름을 오르곤 했다. 그리고 오름 위에서 해넘이를 보고 어둠을 맞이할 때쯤 둥실 떠오르는 둥그런 보름달을 보았다.
아~ 달밤의 오름이라니....
마치 여신의 방에 조용히 초대받은 느낌이랄까? 묘한 기운이 흐르고 있음에 전율 했다.
제주4.3 잃어버린 마을, 다랑쉬 마을
다랑쉬 오름 자락에 다랑쉬 마을이 있었다.
1948년 제주 4.3(광복 후 미군정에 의해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하는 것에 반대하여 일어난 민중항쟁. 군경의 무력 진압에 의해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내었다.) 당시 다랑쉬 마을에는 9~12가구 약 4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그 해 10월경 주민들과 유격대를 분리시켜, 유격대를 고립시키기 위해 마을 주민들은 해안마을로 내려가라는 소개령을 받는다. 주민 모두는 세화리로 내려갔지만 살아갈 대책이 없는 지라 참혹한 생활을 하며 생존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다시 마을로 되돌아오지 않았다.
지금은 4.3 당시 폐허가 된 마을이라는 잃어버린 마을 표석과 대나무, 마을 어귀에 쉼터였던 팽나무(폭낭)와 사람들이 살았던 여러 흔적만 울럿이(우두커니) 서 있다. 당시 7살 된 아이가 있었다면 지금 70살이 다 되었을 텐데, 오름과 팽나무와 마을사람들이 흩어지고 그 아이는 누가 키웠고 어떻게 살았을까?
마을이라는 것은 공동체의 끈끈함으로 사람과 자연이 연결되어 구성원들이 성장한다. 아마도 다랑쉬 오름과 팽나무 그리고 다랑쉬 마을 사람들도 서로의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며 함께 아이들을 키웠을 터인데, 당시에 바람은 야멸차게도 모로만 불어 다랑쉬 마을 사람들은 그 끈끈한 정을 빼앗겼다.
다랑쉬 오름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무엇이 마을을 사라지게 했는지, 그리고 평화를 빼앗긴 마을 사람들의 당시 삶이 어떠했을지.
여행자의 마음을 끄는 다랑쉬 오름의 이모저모
▲ 다랑쉬 오름은 볼거리들이 많아 여행자의 마음을 잡아끈다 © 고제량
다랑쉬 오름은 ‘다랑쉬 오롬’, ‘월랑봉’이라고도 했다. 동쪽의 오름으로서는 ‘높은 오름’을 빼고는 가장 높은 오름으로 해발 382m가 넘고, 둘레가 3천391m가 넘는 커다란 원추형 오름이다. 정상의 굼부리 깊이 또한 110m 넘게 웅장하다.
다랑쉬 오름에 오를 때 볼거리들이 많다. 일단, 오름을 오르기 전에 오름의 전체 모양을 눈여겨보는 것도 재미있다. 다랑쉬 오름은 주변 용눈이 오름, 아끈 다랑쉬 오름, 동거문 오름, 좌보미 오름 등과 잘 어울리는 모양을 하고 있어서, 전체 모습 또한 여행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오르면서 시야가 넓어지며 주변 밭과 목장들 그리고 마을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주변 오름들의 부드러우면서 섬세한 선에 매혹된다. 제주도의 매력은 크고 거대한 것들이 아니라, 어쩌면 이렇게 작고 섬세한 것들인 듯하다.
멀리 성산과 우도가 물위에 둥둥 떠 있는 모습도 좋다. 성산을 바라보며 해 뜨는 아침과 빛을 상상해보고, 우도를 바라보며 성산과 우도를 넘나들던 제주의 여신 설문대 할망을 기억해도 좋겠다.
한라산은 제주도 사방을 가면서 모습을 달리 한다. 남쪽에서 보면 부드럽게 여인이 누워있는 것 같고, 북쪽에서 보면 깊은 계곡과 부악이 웅장하고 날카로운 반면, 동쪽에서 보면 선은 완만해 졌는데 무언가의 뒷모습 같기도 하고, 또한 신비한 모습이다. 다랑쉬 오름에 올라 한라산을 바라보며 산이 주는 메시지를 받아 보시라. 수십만 년 이어져 오는 생명의 메시지를.
다랑쉬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다랑쉬굴이 있었다. 1992년 굴속에서 참혹하게 가스로 학살당한 유골이 발견되면서, 다랑쉬 오름과 다랑쉬 마을이 갖는 4.3의 상징성이 커지게 된 듯하다. 그러나 다랑쉬 굴속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주변 마을 사람들이고, 다랑쉬 마을 주민들과는 무관하다고 한다.
작고 자세하게, 넓고 크게 보기
▲ 자연을 본다는 것, 지역을 본다는 것은 때론 넓고 크게, 때론 작고 야무지게 보는 것이 필요하다. © 고제량
자연을 본다는 것은 작고 야무진 것들을 자세히 깊게 보는 것도 중요하고, 때로는 시야를 높여서 넓고 크게 보는 것도 필요하다.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다랑쉬 오름은 제주 중산간의 오름 군락들의 특징을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좋은 사람들과 다랑쉬 오름에 올라 제주의 너른 대지를 보면서, 섬 속의 깊은 대륙을 볼 수 있는 곳이 다랑쉬 오름이다.
그렇게 때로는 넓고 큰 것들과, 때로는 작고 야무진 것들과 더불어, 나무는 크고 우리 아이들은 자라고 있다. (고제량) *일다 즐겨찾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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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개발로 파괴되는 제주의 환경훼손을 막고 대안적 여행문화를 제시하는 생태문화여행 기획가 고제량님이 쓰는 제주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관광지’가 아닌 삶과 문화와 역사를 가진 제주의 참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편집자 주]
▲ 제주 섬사람들은 오름을 의지 삼아 마을을 이루고 살아간다. © 고제량
오름이 있고 마을이 있다.
오름을 의지 삼아 마을을 이루고, 오름에 오르고 내리며 삶을 영위해 간다. 생이 다하면 섬사람들은 오름 위에 한 평 차지하고 누워 오붓한 산 담을 쌓아 죽은 자의 영역을 만들었다. 제주도 섬 안에 사는 사람들은 그렇다. 그렇게 섬사람들은 오름이 있어 비빌 언덕이 있고, 오름은 품어 안는 생명들이 있어 그 의미가 값지다.
제주도 동쪽 송당리 마을에 있는 다랑쉬 오름. 굼부리(화산 화구)가 꼭 달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여러 사람들이 말한다. 언어학자들은 이 해석이 맞는지는 알 수 없고 여러 추정을 해낸다. 다랑쉬에서 ‘달, 다’의 의미는 높다, 또는 산의 의미를 가졌다고도 한다. ‘쉬’는 봉의 뜻을 가진 ‘수리’가 변형된 것이라고 해석한다.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달과 연관되어 달의 의미가 깊이 배어 있는 것에 마음이 간다. 그래서 다랑쉬 오름은 달밤에 오르는 오름으로서도 그 매력이 남다르다. 나는 오름을 알기 시작하면서 추석 다음날 오후면 다랑쉬 오름을 오르곤 했다. 그리고 오름 위에서 해넘이를 보고 어둠을 맞이할 때쯤 둥실 떠오르는 둥그런 보름달을 보았다.
아~ 달밤의 오름이라니....
마치 여신의 방에 조용히 초대받은 느낌이랄까? 묘한 기운이 흐르고 있음에 전율 했다.
제주4.3 잃어버린 마을, 다랑쉬 마을
다랑쉬 오름 자락에 다랑쉬 마을이 있었다.
1948년 제주 4.3(광복 후 미군정에 의해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하는 것에 반대하여 일어난 민중항쟁. 군경의 무력 진압에 의해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내었다.) 당시 다랑쉬 마을에는 9~12가구 약 4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그 해 10월경 주민들과 유격대를 분리시켜, 유격대를 고립시키기 위해 마을 주민들은 해안마을로 내려가라는 소개령을 받는다. 주민 모두는 세화리로 내려갔지만 살아갈 대책이 없는 지라 참혹한 생활을 하며 생존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다시 마을로 되돌아오지 않았다.
지금은 4.3 당시 폐허가 된 마을이라는 잃어버린 마을 표석과 대나무, 마을 어귀에 쉼터였던 팽나무(폭낭)와 사람들이 살았던 여러 흔적만 울럿이(우두커니) 서 있다. 당시 7살 된 아이가 있었다면 지금 70살이 다 되었을 텐데, 오름과 팽나무와 마을사람들이 흩어지고 그 아이는 누가 키웠고 어떻게 살았을까?
마을이라는 것은 공동체의 끈끈함으로 사람과 자연이 연결되어 구성원들이 성장한다. 아마도 다랑쉬 오름과 팽나무 그리고 다랑쉬 마을 사람들도 서로의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며 함께 아이들을 키웠을 터인데, 당시에 바람은 야멸차게도 모로만 불어 다랑쉬 마을 사람들은 그 끈끈한 정을 빼앗겼다.
다랑쉬 오름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무엇이 마을을 사라지게 했는지, 그리고 평화를 빼앗긴 마을 사람들의 당시 삶이 어떠했을지.
여행자의 마음을 끄는 다랑쉬 오름의 이모저모
▲ 다랑쉬 오름은 볼거리들이 많아 여행자의 마음을 잡아끈다 © 고제량
다랑쉬 오름은 ‘다랑쉬 오롬’, ‘월랑봉’이라고도 했다. 동쪽의 오름으로서는 ‘높은 오름’을 빼고는 가장 높은 오름으로 해발 382m가 넘고, 둘레가 3천391m가 넘는 커다란 원추형 오름이다. 정상의 굼부리 깊이 또한 110m 넘게 웅장하다.
다랑쉬 오름에 오를 때 볼거리들이 많다. 일단, 오름을 오르기 전에 오름의 전체 모양을 눈여겨보는 것도 재미있다. 다랑쉬 오름은 주변 용눈이 오름, 아끈 다랑쉬 오름, 동거문 오름, 좌보미 오름 등과 잘 어울리는 모양을 하고 있어서, 전체 모습 또한 여행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오르면서 시야가 넓어지며 주변 밭과 목장들 그리고 마을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주변 오름들의 부드러우면서 섬세한 선에 매혹된다. 제주도의 매력은 크고 거대한 것들이 아니라, 어쩌면 이렇게 작고 섬세한 것들인 듯하다.
멀리 성산과 우도가 물위에 둥둥 떠 있는 모습도 좋다. 성산을 바라보며 해 뜨는 아침과 빛을 상상해보고, 우도를 바라보며 성산과 우도를 넘나들던 제주의 여신 설문대 할망을 기억해도 좋겠다.
한라산은 제주도 사방을 가면서 모습을 달리 한다. 남쪽에서 보면 부드럽게 여인이 누워있는 것 같고, 북쪽에서 보면 깊은 계곡과 부악이 웅장하고 날카로운 반면, 동쪽에서 보면 선은 완만해 졌는데 무언가의 뒷모습 같기도 하고, 또한 신비한 모습이다. 다랑쉬 오름에 올라 한라산을 바라보며 산이 주는 메시지를 받아 보시라. 수십만 년 이어져 오는 생명의 메시지를.
다랑쉬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다랑쉬굴이 있었다. 1992년 굴속에서 참혹하게 가스로 학살당한 유골이 발견되면서, 다랑쉬 오름과 다랑쉬 마을이 갖는 4.3의 상징성이 커지게 된 듯하다. 그러나 다랑쉬 굴속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주변 마을 사람들이고, 다랑쉬 마을 주민들과는 무관하다고 한다.
작고 자세하게, 넓고 크게 보기
▲ 자연을 본다는 것, 지역을 본다는 것은 때론 넓고 크게, 때론 작고 야무지게 보는 것이 필요하다. © 고제량
자연을 본다는 것은 작고 야무진 것들을 자세히 깊게 보는 것도 중요하고, 때로는 시야를 높여서 넓고 크게 보는 것도 필요하다.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다랑쉬 오름은 제주 중산간의 오름 군락들의 특징을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좋은 사람들과 다랑쉬 오름에 올라 제주의 너른 대지를 보면서, 섬 속의 깊은 대륙을 볼 수 있는 곳이 다랑쉬 오름이다.
그렇게 때로는 넓고 큰 것들과, 때로는 작고 야무진 것들과 더불어, 나무는 크고 우리 아이들은 자라고 있다. (고제량) *일다 즐겨찾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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