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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날 것 그대로 아름다운 비약 <피나 바우쉬의 댄싱드림즈>
▲ 요헨 슈미트의 평전 <피나 바우쉬-두려움에 맞선 춤사위>(을유문화사, 2005)
<오슬로의 이상한 밤>이라는 노르웨이 영화에는 아름다운 비약(飛躍)의 순간이 나온다. 그때까지의 삶과 일시적으로 단절되고 오래된 소망과 재접속하는 ‘반짝이는’ 그 순간이 무심하게 슥 그려지는데 <피나 바우쉬의 댄싱드림즈>는 그러한 종류의 비약이 어떻게 가능한지 연속적인 춤사위를 통해 좀 더 찬찬히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피나 바우쉬는 발레로 시작하여 ‘탄츠테아트(Tanztheatre)’라는 새로운 무용형식을 완숙시킨 현대 무용가이자 안무가이다. 그녀에게도 스승과 동료가 있고 자양분을 제공한 구체적인 시공간이 있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돌연한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을 매혹시켜온 춤꾼이다.
전 세계로 순회공연을 다녔던 피나 바우쉬는 고향인 독일, 부퍼탈에서 흥미로운 새 프로젝트를 꾸린다. 1978년 전문 무용가들로 초연한 뒤, 2000년 65세 이상의 일반인 노인들로 재공연해 화제가 되었던 ‘콘탁트호프(Kontakthof)’를 2008년 평범한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세워 다시 무대에 올린 것. 영화 <피나 바우쉬의 댄싱드림즈>는 바로 이 2008년판 <콘탁트호프>가 탄생되는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이다.
탄츠테아트의 장점을 극대화한 콘탁트호프(Kontakthof)
‘탄츠테아트’는 육체적 형상으로서의 춤을 기본 소통수단으로 삼아, 대사를 가미하거나 일상 소도구를 활용하여 연극적 무대를 실현하는 일종의 ‘극무용’이다. 줄거리가 명확한 고전적인 발레극과 비교하면, 몽타주에 가까운 이야기 구성을 보여주지만 어느 찰나의 인간적 감정과 고뇌를 강렬하게 표현해내는 힘이 있다.
피나 바우쉬는 두려움과 사랑의 감정을 중심 두 축으로 인간의 실존을 그려왔는데 <콘탁트호프>는 ‘탄츠테아트’의 형식이 지닌 장점을 극대화하여, 남녀 간의 끌림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감정을 표현한 그녀의 대표작이다. 작품에 대한 피나 바우쉬의 말을 빌려보자.
“<콘탁트호프(Kontakthof)>는 사람들이 접촉을 위해 만나는 장소를 뜻한다. 소통의 순간이 열리고 닫히는 공간이다. 두려움, 욕망, 실망, 절박함을 품은 만남… 나의 <콘탁트호프> 무대는 첫 경험, 첫 시도, 친밀감의 표현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
춤은 시작되고, 감정은 소통된다
▲ <피나 바우쉬의 댄싱 드림즈> 중. *사진제공:영화사 진진
헌데 단순히 줄거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특정 상황으로 들어가 그것을 체현해내야 하니 <콘탁트호프>를 추고자 지원한 소년들과 소녀들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혼자서 커다란 소리로 웃으며 무대를 뛰어다녀야 하는 소녀는 몇 번 하다가 못 하겠다고 이야기한다. 대부분 아이들의 동작은 뻣뻣하고 타이밍이 늦거나 빠르다.
그러나 서툰 대로 춤은 시작되었고, 감정이 표출되기 시작한다. 해보지 않은 사랑에 대한 기대감, 친구들과 깊어지는 유대감,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등 개인적인 감정은 안무에 불과했던 춤에 얼굴과 시선과 흐름을 부여한다. 비극적인 가족사를 겪은 이주민 소녀는, 무리에게 구령을 외치는 장면을 통해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면서 통찰할 기회를 얻지 않았을까? 당연한 얘기지만, 아이들의 삶의 경험은 춤의 디테일을 결정하고, 그들의 미숙함과 순수함 또한 <콘탁트호프>의 이야기를 만든다. 날 것, 속 것-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펼쳐진다. “나는 인간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보다 무엇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가에 더 관심이 있다.”는 피나 바우쉬의 예술철학이 그대로 실현되는 과정이다.
서로를 만지거나 밀어내는 접촉은 변화를 일으킨다. 극 중 한 장면에서, 한 소녀를 위로해주려고 둥글게 모여든 여러 명의 소년들은 소녀를 부드럽게 도닥거려주다가 점차 거칠게 소녀를 흔들어댄다. 서로 경쟁하듯 아우성치던 소년들은 결국 새로 등장한 다른 소녀에게 정신이 팔려 우르르 자리를 떠난다. 연습이 끝난 후 소년들은 소녀가 괜찮은지 묻고, 안무의 일부지만 심하게 대한 데에 사과한다. 자신의 행동이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려하고 세심하게 반응한다. 한편 소녀는 방금 겪은 이 ‘기묘한 감정’을 음미하느라 정신이 없다. 아이들은 조금씩 소통에 민감해지고 적극적이 된다. 한 소년은 춤을 배우면서 자신감이 생겨 구두시험 성적이 올랐다고 이야기한다.
삶에 대한 인식과 따뜻함이 녹아 있는
▲<피나바우쉬의 댄싱드림즈> 중. *사진 제공: 영화사 진진
<콘탁트호프>는 현대인의 리듬-삶의 호흡에 관한 무대이기도 하다. 배경 음악으로 쓰인 채플린의 영화 <모던타임즈>의 주제곡은 어깨를 들썩이게 할만치 경쾌하고도 우스꽝스럽다. 여기에 맞춰 춤은 유려하고 아름답게 이어지기보다는, 경직되어 있다가 분출되고, 피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에 이끌려 어지럽게 엮이는 듯하다가 단절되곤 한다. 현대인의 만남을 절묘하게 표현했다고 할까. 동질감의 쓴웃음을 짓게 만드는 유머가 녹아있다.
하지만, 공연도 영화도 따뜻하다. 맨발로 바닥과 마찰하며 뛰어다니던 소녀의 발바닥만큼 가슴 속에 뭉클한 온기를 전해준다. 아이들이 두려움 없이 표현해낼 수 있도록 때로는 이끌고 때로는 기다려주는 무용 선생님과, 격려와 조언을 주는 안무가 선생님(피나), 그들의 무대에 기립박수를 보내주는 관객들. 그리고 먼 이국땅에서 이 무대와 영화를 함께 보는 우리들까지 모두, 자신을 내어 보인 아이들의 용기와 도전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비약에 감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물하)
[추가정보] 한국에서 DVD로 만날 수 있는 피나 바우쉬 무용 작품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와 영화 <그녀에게>가 있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는 파리 오페라 발레단을 안무한 것이고, 영화 <그녀에게>에서는 피나 바우쉬가 직접 자신의 작품 <카페 뮐러>를 춤춘다. 영화의 끝도 피나의 작품 <마주르카 포고>로 마무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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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헨 슈미트의 평전 <피나 바우쉬-두려움에 맞선 춤사위>(을유문화사, 2005)
<오슬로의 이상한 밤>이라는 노르웨이 영화에는 아름다운 비약(飛躍)의 순간이 나온다. 그때까지의 삶과 일시적으로 단절되고 오래된 소망과 재접속하는 ‘반짝이는’ 그 순간이 무심하게 슥 그려지는데 <피나 바우쉬의 댄싱드림즈>는 그러한 종류의 비약이 어떻게 가능한지 연속적인 춤사위를 통해 좀 더 찬찬히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피나 바우쉬는 발레로 시작하여 ‘탄츠테아트(Tanztheatre)’라는 새로운 무용형식을 완숙시킨 현대 무용가이자 안무가이다. 그녀에게도 스승과 동료가 있고 자양분을 제공한 구체적인 시공간이 있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돌연한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을 매혹시켜온 춤꾼이다.
전 세계로 순회공연을 다녔던 피나 바우쉬는 고향인 독일, 부퍼탈에서 흥미로운 새 프로젝트를 꾸린다. 1978년 전문 무용가들로 초연한 뒤, 2000년 65세 이상의 일반인 노인들로 재공연해 화제가 되었던 ‘콘탁트호프(Kontakthof)’를 2008년 평범한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세워 다시 무대에 올린 것. 영화 <피나 바우쉬의 댄싱드림즈>는 바로 이 2008년판 <콘탁트호프>가 탄생되는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이다.
탄츠테아트의 장점을 극대화한 콘탁트호프(Kontakthof)
‘탄츠테아트’는 육체적 형상으로서의 춤을 기본 소통수단으로 삼아, 대사를 가미하거나 일상 소도구를 활용하여 연극적 무대를 실현하는 일종의 ‘극무용’이다. 줄거리가 명확한 고전적인 발레극과 비교하면, 몽타주에 가까운 이야기 구성을 보여주지만 어느 찰나의 인간적 감정과 고뇌를 강렬하게 표현해내는 힘이 있다.
피나 바우쉬는 두려움과 사랑의 감정을 중심 두 축으로 인간의 실존을 그려왔는데 <콘탁트호프>는 ‘탄츠테아트’의 형식이 지닌 장점을 극대화하여, 남녀 간의 끌림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감정을 표현한 그녀의 대표작이다. 작품에 대한 피나 바우쉬의 말을 빌려보자.
“<콘탁트호프(Kontakthof)>는 사람들이 접촉을 위해 만나는 장소를 뜻한다. 소통의 순간이 열리고 닫히는 공간이다. 두려움, 욕망, 실망, 절박함을 품은 만남… 나의 <콘탁트호프> 무대는 첫 경험, 첫 시도, 친밀감의 표현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
춤은 시작되고, 감정은 소통된다
▲ <피나 바우쉬의 댄싱 드림즈> 중. *사진제공:영화사 진진
헌데 단순히 줄거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특정 상황으로 들어가 그것을 체현해내야 하니 <콘탁트호프>를 추고자 지원한 소년들과 소녀들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혼자서 커다란 소리로 웃으며 무대를 뛰어다녀야 하는 소녀는 몇 번 하다가 못 하겠다고 이야기한다. 대부분 아이들의 동작은 뻣뻣하고 타이밍이 늦거나 빠르다.
그러나 서툰 대로 춤은 시작되었고, 감정이 표출되기 시작한다. 해보지 않은 사랑에 대한 기대감, 친구들과 깊어지는 유대감,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등 개인적인 감정은 안무에 불과했던 춤에 얼굴과 시선과 흐름을 부여한다. 비극적인 가족사를 겪은 이주민 소녀는, 무리에게 구령을 외치는 장면을 통해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면서 통찰할 기회를 얻지 않았을까? 당연한 얘기지만, 아이들의 삶의 경험은 춤의 디테일을 결정하고, 그들의 미숙함과 순수함 또한 <콘탁트호프>의 이야기를 만든다. 날 것, 속 것-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펼쳐진다. “나는 인간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보다 무엇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가에 더 관심이 있다.”는 피나 바우쉬의 예술철학이 그대로 실현되는 과정이다.
서로를 만지거나 밀어내는 접촉은 변화를 일으킨다. 극 중 한 장면에서, 한 소녀를 위로해주려고 둥글게 모여든 여러 명의 소년들은 소녀를 부드럽게 도닥거려주다가 점차 거칠게 소녀를 흔들어댄다. 서로 경쟁하듯 아우성치던 소년들은 결국 새로 등장한 다른 소녀에게 정신이 팔려 우르르 자리를 떠난다. 연습이 끝난 후 소년들은 소녀가 괜찮은지 묻고, 안무의 일부지만 심하게 대한 데에 사과한다. 자신의 행동이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려하고 세심하게 반응한다. 한편 소녀는 방금 겪은 이 ‘기묘한 감정’을 음미하느라 정신이 없다. 아이들은 조금씩 소통에 민감해지고 적극적이 된다. 한 소년은 춤을 배우면서 자신감이 생겨 구두시험 성적이 올랐다고 이야기한다.
삶에 대한 인식과 따뜻함이 녹아 있는
▲<피나바우쉬의 댄싱드림즈> 중. *사진 제공: 영화사 진진
<콘탁트호프>는 현대인의 리듬-삶의 호흡에 관한 무대이기도 하다. 배경 음악으로 쓰인 채플린의 영화 <모던타임즈>의 주제곡은 어깨를 들썩이게 할만치 경쾌하고도 우스꽝스럽다. 여기에 맞춰 춤은 유려하고 아름답게 이어지기보다는, 경직되어 있다가 분출되고, 피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에 이끌려 어지럽게 엮이는 듯하다가 단절되곤 한다. 현대인의 만남을 절묘하게 표현했다고 할까. 동질감의 쓴웃음을 짓게 만드는 유머가 녹아있다.
하지만, 공연도 영화도 따뜻하다. 맨발로 바닥과 마찰하며 뛰어다니던 소녀의 발바닥만큼 가슴 속에 뭉클한 온기를 전해준다. 아이들이 두려움 없이 표현해낼 수 있도록 때로는 이끌고 때로는 기다려주는 무용 선생님과, 격려와 조언을 주는 안무가 선생님(피나), 그들의 무대에 기립박수를 보내주는 관객들. 그리고 먼 이국땅에서 이 무대와 영화를 함께 보는 우리들까지 모두, 자신을 내어 보인 아이들의 용기와 도전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비약에 감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물하)
[추가정보] 한국에서 DVD로 만날 수 있는 피나 바우쉬 무용 작품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와 영화 <그녀에게>가 있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는 파리 오페라 발레단을 안무한 것이고, 영화 <그녀에게>에서는 피나 바우쉬가 직접 자신의 작품 <카페 뮐러>를 춤춘다. 영화의 끝도 피나의 작품 <마주르카 포고>로 마무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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