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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이소진의 세상을 보는 만화방 (1) 용산개 방실이 
 
[편집자 주-'만화를 통한 세상읽기 그리고 세상을 통한 만화읽기'를 주제로 한 새로운 만화 칼럼이 격주로 연재됩니다.]
 
어떤 사건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맨 먼저 우리는 주어진 사실들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실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한 가지 사실을 놓고도 관점에 따라 다른 말들이 오고 간다. 오해와 오판도 따른다. 때로는 진실을 가리기 위해 적극적인 거짓말을 유포하는 이들도 있다.
 
크건 작건 ‘노력’을 요하는 일이니, 바삐 사는 사람들은 누가 ‘큰 목소리’로 떠들면 그게 진실인가보다, 자동적으로 믿어 버리고 만다. 편하지 않은가. 남의 일이니. 그 ‘큰 목소리’가 정부와 거대언론 같이 권력과 권위를 가진 집단이라면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다.
 

▲ 최동인씨가 글을 쓰고, 정혜진씨가 그림을 그린 만화책 <용산개 방실이>(책공장더불어, 2011.1)
 
그렇게 쉽게, 어떤 사람들은 ‘테러리스트’라는 이름을 달게 되었다.
 
2009년 1월 20일, 살기 위해 용산 남일당 건물 망루에 올랐다 죽어서 돌아온 사람들. 故이성수, 故윤용헌, 故이상림, 故양회성, 故한대성.
 
국가 권력과 거대 언론들은 사건의 진실인양 규정된 몇 글자의 말들을 진실을 가리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삼았다. 테러리스트, 과격, 보상비, 화염병, 불법시위……. 이들은 기호화되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쉽게 특정한 이미지로 치환되었다. 용산 참사의 희생자들은 순식간에 ‘더 많은 보상금을 요구하며 불법적인 시위를 벌여 참사를 일으킨 도심 테러리스트’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희생자가 테러리스트가 된 순간, 용산 참사와 자신들이 ‘관련이 없다’고 여길 이들은 참사의 희생자가 나와 같은 ‘울고 웃는 사람’라는 사실을 망각해 버렸다.
 
용산 참사의 진실을 기억하고 알리려는 사람들은 사건의 진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만화로 그려낸 용산 참사 이야기 <내가 살던 용산>, 용산 참사 헌정문집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 철거민 구술집 <여기 사람이 있다> 등 참사이후 예술가와 작가들은 각자의 언어로 용산 참사 희생자들의 삶을 구체화 해 전달하려는 시도들을 이어왔다. 희생자들의 ‘평범한 삶’ 속에 용산 참사의 입체적 진실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개발이익을 노린 국가권력과 개발업자들의 탐욕과 공모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합법적으로’ 짓밟는 상황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구체적이고 다층적으로 확인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용산 참사 2주기를 맞아 또 다른 기록물 한편이 나왔다. 바로 최동인씨가 글을 쓰고, 정혜진씨가 그림을 그린 만화책 <용산개 방실이>(책공장더불어, 2011.1)다.
 
<용산개 방실이>는 용산참사에 대한 이야기 이전에, 방실이라는 반려견과 한 가족의 이야기다. 방실이는 용산에서 삼호복집을 운영하던 故양회성씨가 '딸처럼' 아끼던 요크셔테리어 종 반려견이다. 방실이는 양회성씨의 죽음이후 식음을 전폐하고 24일 만에 숨을 거두었다. 의학적으로 특별한 이상이 없던, 건강한 개였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방실이는 ‘아빠’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못 견디고 죽은 것이다.

▲ 방실이는 故양회성씨의 사망 후 식음을 전폐하다 24일 후 숨을 거두었다.   사진출처: 책공장 블로그

 
<용산개 방실이>는 ‘아빠’와 방실이의 만남에서 헤어짐까지, 일상의 결을 담담히 따라 간다. 방실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섣불리 의인화하거나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편에 걸쳐 감정이 차오르는 부분을 의도적으로 절제한다. 알 듯 말 듯, 닿을 듯 말 듯 한 기분 속에 우리는 인내심 있는 관찰자가 되어 방실이와 ‘엄마’, ‘아빠’의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그 속에서 우리가 만나는 삶은 그저 ‘평범하다’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을 찾을 수 없다. 담백한 그림체와 낮은 읊조림이 파도와 같은 슬픔으로 밀려오는 건, 그 눈이 시릴 만큼의 ‘평범함’ 때문이다.
 
<용산개 방실이>는 서로 다른 종(種)으로 만난 두 존재가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의를 지킬 때, 같은 종으로 만난 어떤 이들의 탐욕이 상대를 짓밟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용산 참사를 둘러싼 진실은 어려운 말들이 아니다.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할 ‘인간성’을 묻는 것이다.
 
단순한 진리다. 타인의 것을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빼앗을 권리는 이 세상 누구에게도 없다. 더구나 소박한 행복, 너무도 사랑하는 사람. 그건 절대 뺏겨서도, 빼앗아서도 안 되는 것이다.
 
용산에는 사람이 있었다. 방실이가 있었다. 그리고 삶이 있었다.
 
그립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했던 일상의 삶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2009년 1월 20일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몰고 갔는지. 용산 참사의 진실은 여전히 규명되지 않았고, 농성에 참여했던 철거민들에게는 중형이 선고되었다. 한국 사회는 지금도 개발이익의 탐욕에 굶주려 수많은 ‘용산’을 만들어 내고 있다. 
 
기억은 구체화될 때 수명이 길다. <용산개 방실이>를 통해 저자들이 섬세하게 펼쳐놓고 있는 故양회성씨의 일상은 우리의 마음과 머리 속에 이 가족들의 입체적 인상을 풍성하게 재현한다. 쉽지 않았을 작업을 첫 책으로 선택한 정혜진, 최동인 작가의 용기에 격려를 보낸다.  (이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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