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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성 충전

하얀 웨딩드레스 뒤에 숨은 계산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0. 12. 27. 07:30

[일다] 엘프리데 옐리네크 <연인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여성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 그녀의 소설은 신랄하고 냉혹하기로 유명하다. 그녀는 실험실 속의 쥐를 보듯 사회를 관찰하는데, 어디엔가 꼭 있을 법한 전형들을 설정해 그 인물들의 행동과 숨겨진 심리를 낱낱이 해부하고 비판한다.

그간 한국에 소개된 <피아노 치는 여자>의 경우 중년 여성에게 ‘작업’을 거는 젊은 남성의 정복욕이나 딸을 통제하고 싶어 안달이 난 어머니의 행태를 까발리고 있다. 그녀가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논란을 일으킨 이유도 남성, 여성을 막론하고 속물적이고 추한, 감추고 싶은 면모들을 드러내기 때문일 것이다.

신분상승과 로맨스 사이

<연인들>은 ‘남성과 여성의 결혼의 정체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제시된 소설이다. 작가의 의견에 따르면 대학을 나온 몇몇 여성들을 제외하고는, 여성들에게 결혼이란 자신의 미래 계급을 결정짓는 것으로 다가온다. 즉 최대한 ‘여성적인 여자’가 되어서 트집 잡힐 일은 숨겨야 하는 상품시장인 셈이다. 여성들에게만 그런가. 결혼은 한 집안에게 미래의 소득과 인맥 관계 등을 결정짓는 중요한 사회적 계약이다. 그래서 상대 남편뿐만 아니라 양가 부모들까지 합세해서 어떻게든 가장 좋은 결과를 얻고 싶어한다. 자연히 이해관계를 따지는 온갖 치졸하고 보수적인 계산들이 난무한다.

물론 결혼은 그 같은 물질적인 속성을 하얀 웨딩드레스 속에 숨기고 낭만적인 로맨스의 결말로 자신을 전시한다. 그래서 여성들은 신분상승과 낭만적 로맨스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다양한 행동을 취한다. 작가는 능청스럽게도 결혼을 마주한 여성들의 모습을 두 가지 사례를 통해 보여주겠다고 한다. 도시에서 브래지어를 만드는 공장에 다니는 브리기테와 시골에서 재단사 일을 배우는 파울라가 그 예다.

이들은 각각 결혼을 원하는 도시 여성과 시골 여성을 대변하며, 또한 남편의 가치를 계산하며 남편을 사랑하고 있다고 애써 믿는 속물적인 여성과, 사랑이 성공하면 자연스럽게 신분 또한 상승할 것이라고 믿는 순진한 여성을 대변하는 일종의 ‘샘플’이다. '연인들'은 결코 순수한 사랑을 나누지 않는다.

도시에 사는 브리기테는 별 매력은 없지만 전기 기술자라는 비교적 부유한 미래가 보장된 남자 하인츠와 결혼하기 위해 ‘여자로만 살기’로 결정한다. 그녀는 여성적인 외모만을 가지고 있을 뿐 어머니가 ‘미혼모’라는 약점을 지니고 있으며 돈도 별로 없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재봉틀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그녀에게 탈출구란 하인츠와의 결혼 밖에 없다. 하인츠와의 결혼은 쉽지 않다. 하인츠의 부모들은 브리기테를 반대하며, 요리를 배우는 교양 있는 여자 수지를 선호한다. 자신을 물건처럼 다루는 하인츠와의 섹스 또한 불쾌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브리기테는 온갖 모욕이나 수모를 마다한 채 임신만을 기다린다. 브리기테에게 ‘하인츠 이외의 삶은 아무것도 없다’.

한편 시골에 사는 파울라는 재단사 일을 성실하게 배울 것을 다짐하는, 순진한 소녀 견습생이다. 파울라의 집은 가난하며, 아버지는 알콜 중독으로 자주 어머니를 때린다. 그런데 어느 날 파울라에게 아버지처럼 술을 자주 마시며 자동차를 제외한 그 모든 것에 무관심하지만 잘생긴 남자 에리히에 대한 낭만적인 사랑이 싹튼다. 파울라는 자신과 사랑하게 되면 에리히가 바뀔 것이라고 믿는다. 그녀는 빨간 원피스를 입고 에리히의 집에 찾아가서 일을 거드는 등 ‘여성적’으로 보이기 위해 애쓴다. 마침내 그녀는 임신하게 되고 주변의 설득에 의해 겨우 에리히와 결혼하게 되지만 결과는 좋지 않다. 에리히는 여전히 술을 자주 마시며 파울라에게 무관심하다.

절망적인 여성들의 블랙코미디

결혼을 둘러싼 여성들의 속사정을 폭로하기 위함일까, 이 소설은 일반적인 소설과는 상당히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다. 교훈적인 이야기를 간략하고 압축적으로 전달하는, 우화에 가까운 인상이다. 즉 배경에 대한 묘사나 인물의 심리에 대한 서술, 줄거리의 반전 같은 본격소설이 갖추고 있을 법한 요소들은 거의 배제되어 있다. 대신 결혼을 계산하는 인물들의 속마음을 꿰뚫어보고, 이를 신랄하게 때로는 동정적인 선언조의 문체로 폭로하는 내용이 가득하다.

저자는 마치 변사처럼 모든 상황을 요약하고 정리한다. 수지와 브리기테가 하인츠의 부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요리접시를 서로 나르겠다고 다투는 모습이나 에리히 집안의 변기를 닦는 파울라의 상황은 그 과장된 비굴함 때문에 실소를 자아내면서도, 결혼에 집요하게 매달리는 여성들의 절망적인 상황이 느껴져서 씁쓸하다. 일종의 블랙코미디인 셈이다.

브리기테와 파울라의 모습을 통해 <연인들>은 얼핏 보기에는 결혼이 사랑과 안정적인 가정을 획득할 수 있는 가장 무난한 과정으로 보일 수 있지만, 결코 쉽지 않으며 자신의 주체성을 지우며 살아가는 고단한 여정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결혼을 벗어날 수 있는, 대안이 있을까? 하인츠와 브리기테는 결혼해서 안정적인 가정을 만들고, 교양 있는 여성 수지는 또 다른 대학생과 결혼해서 우아한 삶을 꾸리며, 시골에 사는 파울라는 불행한 결혼생활 끝에 성매매를 하다가 이혼까지 당한다.

사회적인 구조에 의한, 어쩌면 결코 바뀌지 않을 결혼의 풍경이다. 대신 작가는, “그러나 우리의 파울라는 아직도 차 열쇠를 찾고 있군요”라는 말을 통해 오히려 결혼으로 매듭지어지는 운명에서 완전히 밀려난 파울라에게 또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희미한 암시를 남긴다. (김윤은미)    *일다 즐겨찾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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