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시대 한국 여성의 이주 이야기 연재를 시작하며 나의 독일 이주는 ‘헬조선’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페미니즘 매체 기자와 전문직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젠더 영역에 대한 전문성을 더 키우고 싶었고, 몇 차례의 국외 출장을 통해 외국에서 도전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었다. 이후 여러 자료 조사 끝에 프리랜서로 비자를 취득할 수 있는 길이 다른 나라에 비해 열려 있는 독일로 오게 되었다. 독일에 온 후, 그동안 내가 입고 있던 학력이나 직업 이력 등의 옷이 모두 벗겨지고 철저하게 다시 알몸이 되어 삶을 일궈나가야 했을 때 고통스러웠다. 어딘지 잘 모르는 작은 나라에서 온 ‘아시아 여자애’가 되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고, 일상에서는 지하철에 앉아있는 나를 긴 시간 훑어보는 옐로 피버(Yello..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남을 ‘여공’들의 빛나는 투쟁전태일은 알지만 김경숙은 모르는 당신에게③ (나랑 기록) 페미니스트 저널 바로가기 “비상! 비상!” 1979년 8월 9일 새벽 4시, 사측의 위장 폐업에 맞서 ‘회사 정상화’를 요구하며 기숙사에서 농성을 벌이다 잠든 YH 조합원들의 귀에 불침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5~6명의 남자들이 기숙사 문을 부수려 한 것. 그들은 조합원들이 머리띠를 두르고 고함을 지르며 몰려나오자 도망쳐 버렸다. 노조 집행부는 즉시 임시 대의원대회를 열었고, 제2의 농성 장소를 제1야당인 신민당사로 확정했다.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당시 노조 측과 친분이 있던 남성 지식인 몇 명이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자택으로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기숙사 농성 3일째인 8월 9일 아침 5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