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 ‘여중생’들의 서사구체적인 시간의 애정어린 재현 (허5파6 글 그림, 비아북, 2017)에 대해 글을 쓰겠다는 결심은 금방 섰지만, 막상 어떻게 써야 좋을지 생각하면서는 한참을 머뭇거렸다. 사랑하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싫어하는 것을 욕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읽는 내내 목구멍을 지나쳐 혀끝에 맴돌았던 사적 소회를 감추어야 할지 내보여도 될지가 고민스러웠기 때문이다. 의 주인공 장미래는 중3 여학생으로 교실에서는 좀처럼 반 아이들과 말을 섞지 않고, 집에서는 밤낮없이 일로 바쁜 엄마와 술을 좋아하고 폭력적인 아빠를 데면데면 스친다. 미래의 세상에서 색채가 깃든 곳은 교실이나 집이 아니라 게임 ‘원더링 랜드’ 속이고, 미래는 그곳에서 게임 세계 친구들을 사귄다. 도서부 활..
사랑과 미움, 죄책감이 교차하다[머리 짧은 여자 조재]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 강아지 짖는 소리에 자주 잠에서 깼다. 깨서 시계를 보면 새벽 세 시나 네 시 즈음이었다. 가뜩이나 잠이 부족한 상황인데 매일 새벽에 두세 번씩 잠에서 깨니 강아지 입을 틀어막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래도 내게 몸을 꼭 맞대고 있는 녀석을 보고 ‘그래, 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니’ 하며 다시 잠을 청했다. A의 집에 신세지게 된지 딱 한 달이 되었다. A의 반려견 겨울이는 그새 나와 많이 친해졌다. 퇴근하고 현관문을 열면 겨울이는 왜 이제 왔냐는 듯 앓는 소리를 내며 겅중거렸다. 온몸으로 환대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쩐지 든든했다. 퇴근 후엔 장난감 던져주는 기계로 빙의해서 겨울이와 놀곤 했다. 겨울이는 여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