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이맘 때였던 것 같다. 긴 소매 옷으로 갈아입은 한참 뒤인데도, 그 날만은 반소매에 반바지를 입고 학교에 가야 했다. 넓은 길 대신, 늘 하던 대로 지름길인 좁은 논둑을 따라 걸을 때마다 풀섶 가장자리에 맺힌 이슬이 한없이 맨 발목을 쓸며 떨어져 내렸다. 그래서 더 으스스 추웠던 것 같다. 그날 아침은 이렇게 추웠고, 무엇보다도 슬펐다. ‘운동회 날’인 것이다. 소풍 때면 그렇게 잘 오던 비가 왜 운동회 때는 절대로 오지 않는지…. 초등학교 다니는 내내 운동회는 예방주사 맞는 것만큼 괴로웠던 행사였다. 달리기를 특별히 못하던 나는 출발을 알리는 화약 딱총소리도 무서웠지만, 사람들 시선으로 가득 찬 운동장에서 꼴찌, 아니면 그 다음으로 달리는 게 정말 싫었다. 도착점은 쉽게 나타나 주질 않았고, 아무리..
[이경신의 철학하는 일상] 지구상의 온 인류가 최근 손을 깨끗이 하기 위해 사용한 물은 얼마나 될까? 경쟁하듯 넘쳐 나는 신종플루에 대한 기사를 대할 때마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가 커져만 가는데, 그 두려움을 맞설 유일한 방도가 틈만 나면 손을 씻는 것이라니…. 내게 손 씻는 강박적 습관을 안겨 준 그 존재가 어느날 문득 궁금해지기 시작했다면, 놀라운 일일까?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인 바이러스 가을을 맞는 요즘, 설상가상으로 신종플루에 계절독감과 감기까지 유행한다 하니, 바이러스에 대한 불편함과 두려움이 날로 더하다. 도대체 바이러스는 무엇일까? 식물, 동물, 그리고 곰팡이는 눈에 보이는 존재들이라 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그에 반해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 않아, 공포스러운 전염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