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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감옥으로부터의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
                                                                                                  <여성주의 저널 일다> 강물하  
  
지난 18일 목요일 대안적 예술영화사 백두대간이 운영하는 극장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주최로 이채로운 영화 한 편이 상영되었다. 북아일랜드에서 최고로 경계가 삼엄한 맥하베리 수용소에서 1급 강력범들이 직접 출연하고 제작에 참여한 영화, <미키 비(Mickey B, 2007)>. 재소자가 ‘맥베스’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시나리오는 1시간 남짓한 상영시간동안 감옥을 배경으로 배신과 살인, 그리고 파멸의 드라마를 생생하게 펼쳐 보여주었다.
 
영화제에 초청된 관객은 ‘한국문화예술교육위원회’에 소속되어 학교나 사회복지시설 및 교정시설로 파견되는 문화예술 강사들로서, 영화 상영 후 감독 ‘톰 맥길’과 철학아카데미 대표 ‘조광제’ 교수의 강연과 관객토론이 이어졌다.
 
영화를 찍으면서 변화한 '1급 강력범'들
 
“영화 제작 경험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도 평생 살인을 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 북아일랜드 재소자들이 만든 영화 <미키 비(Mickey B)> 중에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사진출처: 아르떼진
 
폭력 전과자 ‘톰 킹’의 말은 영화 <미키 비>를 주목해야 할 이유를 대변해준다. 실제로 이 영화제작에 참여한 이들은 출소 후 영화제작사 ESC에서 일을 하며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감독 ‘톰 맥길’ 자신도 전과자였다. 그는 단지 아일랜드 인이라는 이유로 잉글랜드의 학교에서 교사에게 신체적 괴롭힘과 집단 따돌림을 당하게 되자 15세에 자퇴하고 갱단에 들어갔다. 그는 폭력행위로 19세 때 3년형을 선고받았다.
 
톰의 교도소 옆방에서는  아일랜드 공화국군(IRA) 단식투쟁자가 수감되어 있었고, 그는 죽어가는 와중에도 이 젊은 전과자에게 간절히 충고를 한다. ‘교육을 받아라, 자긍심을 가지라’고. 그의 충고에 ‘뼛속까지 흔들린’ 톰은 교도소 도서관에서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를 읽는다. 그리고 그 책에 묘사된 인간애에 흐느껴 울며, 자신 안에 있는 인간애를 긍정하게 된다. 출소 후 톰은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연극’을 이끄는 ‘아우구스토 보알’을 만나 소외계층에게 예술교육을 제공하는 회사 ESC를 공동 창립한다.
 
톰은 ‘그의 삶’에서 얻은 배움대로 재소자들을 대했고 그렇기에 영화 제작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는 ‘존경과 신뢰’로써 재소자들을 존중했으며, ‘소크라테스 대화법’으로 재소자들이 자신들의 선택과 판단에 따라 영화를 만들도록 격려했다. 처음에 톰을 불신하며 시간 때우기로 참여하던 재소자들은 서서히 톰을 신뢰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격다짐의 싸움 대신 건설적인 논쟁을 하며, 스스로를 신뢰하면서 책임감을 갖고 프로젝트를 완성해나갔다. ‘맥베스’라는 특별한 텍스트는 톰의 바람대로, 재소자들이 억압해둔 죄책감을 표출하고 범죄의 충동과 동기를 ‘직면’하게 도왔으며, 피해자에 대한 공감을 낳았다. 

처벌과 교정 사이에서
  

▲ 영화 <미키비> 촬영 장면. 오른쪽은 감독 톰 맥길.   사진출처: 아르떼진 
 
물론 쉽지 않고 지난한 과정이었다. 모든 재소자들이 ‘소년성가대원’처럼 돌변한 것도 아니다. 재소자들은 약물에 취해 촬영장에 오기도 하고, 대사를 항상 외우고 있지도 않았으며, 음식과 보수에 대해 끊임없이 불평하거나 도중하차하는 사람도 있었다. 영화 촬영을 마친 한 달 뒤, 중요한 배역을 맡았던 멤버가 특별휴가로 귀가한 후 감옥으로 복귀하지 않은 사건도 있었다.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9천만 원가량의 제작비가 들었으나 톰은 이 돈이 재소자 1명을 평생 수감하는 돈보다 적음을 강조한다. 잠재적 가해자, 혹은 피해자를 단 한 명이라도 줄인다는 생각으로 나아갔다는 톰 맥길. 그는 ‘ 왜 범죄자들에게 영화를 찍는 특혜를 주는가? 피해자들이 얻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수차례 받았고 이번 관객토론에도 비슷한 질문이 던져졌다. 그는 <동전의 양면>이라는 다큐멘터리로 피해자가 가해자의 환영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작업을 한 적이 있다고 밝히며, 관객에게 다시 질문을 되돌렸다.
 
“재소자에 대한 우리의 선택은 무엇인가?”
 
처벌인가, 교정인가. 처벌이 과연 실제적인 재범 방지에 효과적인가. 감독은 기존의 교도소 시스템에서 수감자들에게 지속적으로 강요되는 것은 ‘두려움과 불신’이며 이는 저항과 공격 등 인간의 부정적인 성향과 결합함을 지적했다.
 
톰은 범죄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충동이라는 점에서 외견상 창의력과 비슷해 보이지만, 범죄는 빼앗을 뿐이며, 창의력은 빼앗는 자에서 주는 자로 변화하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하였다. Mickey B라는 허구를 통해 재소자들이 스스로를 재창조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 이것이 톰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영화에서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 없다’는 대사가 되풀이 되는데 영화 속에서는 ‘죄를 지울 수 없다’는 뜻으로 쓰였지만, 영화 밖에서는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톰은 서로 대극에 서있지만, 가해자든 피해자든 어둡고 깊은 ‘사건’으로부터 앞으로 나아가고자하는 강인한 ‘영혼’을 지니고 있음을 역설했다. 그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꼭 거쳐야할 길, 다시 한 번 사건을 우회적으로 통과하는 길을 열어 보여준 게 아닐까. 이 영화와 그 제작과정은 ‘되돌리고 보상하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 ‘변화하는’ 가능한 일을 위해 존재할 뿐.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詩)’가 그랬듯이.(강물하)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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