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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진의 노래이야기(3) 10cm의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 
 
<필자 차우진님은 대중음악비평웹진 '[weiv]'(웨이브)의 편집인이며, 음악평론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차우진의 노래이야기’는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중심으로 한 칼럼으로, 격주로 연재됩니다.>

▲ 10cm의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가 수록된 컴필레이션 음반 [민트페이퍼 프로젝트 vol.3 LIFE] 
 
최근 몇 개월 동안 인디 씬에서 뜬 밴드 중에 ‘10cm’라는 팀이 있다. 이들은 남자 두 명으로 구성된 어쿠스틱 포크 듀오로 아직 데뷔앨범도 발표하지 않았다. 해피로봇 레이블의 컴필레이션 [민트페이퍼 프로젝트 vol.3 LIFE]에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를 실었고 자기들이 직접 제작한 EP 한 장을 발표했을 뿐이다.
 
레이블도, 배급사도 없기 때문에 이 EP는 한국 인디앨범들을 주로 취급하는 신촌의 레코드(향음악사)점에서만 판매한다. 그런데도 10cm는 높은 인기를 얻었다. 지난 6월, 우연히 강남의 노래방에서 f(x)의 “Nu ABO”와 10cm의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가 최신곡 리스트에 나란히 나오는 걸 봤을 정도다. 그 만큼 이들의 인기가 가시적이라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이 노래가 흥미로운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이 노래와 10cm의 히트가 ‘인디’에 대한 광범위한 재인식을 요구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노래의 내용 때문인데, 여기서 이 곡을 소개하는 이유는 명백히 후자다.
 
‘사랑’이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는 ‘특별한’ 작업송
 
간단히 말해, 이 노래는 ‘작업’용 노래다. 작업송은 러브송과 다르다. 러브송이 좋아하는 여자에게 바치는 연가라면, 작업송은 노골적으로 오늘 밤을 너와 보내고 싶다고 노래한다. 러브송이 이성애적 1:1 관계의 로맨스에 기반하고 있다면, 작업송은 은근한 성적 욕망의 발현이다. 이런 구분은 전통적인 예술론에서 ‘승화’와 ‘외설’로 구분되곤 했다.
 
특히 음악에서 이런 주제는 주요한 장르적 특징이기도 한데, 러브송은 발라드(팝)와 포크 등에서, 작업송은 디스코와 펑크 등에서 주로 드러나곤 한다. 간략히 정리하자면, 여성과 남성이 개인적으로 춤을 추며 신체적 접촉을 하게 만드는 리듬의 노래가 주로 작업송인 셈이다. 둘 다 내용에 있어서는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설명하는데 주력한다. ‘원 나잇 스탠드도 사랑’이라는 말로 여성을 설득하고 꼬드긴다.
 
그런데 잔잔한 어쿠스틱 포크곡이면서도 작업송인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에는 ‘사랑’이라는 말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게 이 노래를 특별하게 만든다. 가사를 보자.
 
오늘밤은 혼자 있기가 무서워요 / 창문을 여니 바람소리가 드세요
사람들은 나를 보살펴주지 않아 / 잠들 때까지 날 떠나지 말아줘요
 
꾸물거리는 저기 벌레를 잡아줘요 / 잡은 휴지는 꼭꼭 구겨 창문밖에 던져 버려줘
오늘의 나는 절대 결코 강하지 않아 / 그냥 오늘밤만 네게 안겨서 불러주는 자장노래 들을래
 
오늘밤은 혼자 잠들기 무서워요 / 저기 작은 방에 무언가 있는 것 같죠
잠깐만요 나 원래 이런 사람 아냐 / 잠들 때까지 집에 가지 말아줘요
 
혹시 모르니 저기 대문을 잠가줘요 / 들어 올 때는 불을 끄고 방문을 반쯤 열어줘
오늘의 나는 절대 결코 강하지 않아 / 그냥 오늘밤만 네게 안길래
 
혹시나 내가 못된 생각 널 갖기 위해 시꺼먼 마음 / 의심이 된다면 저 의자에 나를 묶어도 좋아
창밖을 봐요 비가 와요 지금 집에 가긴 틀렸어요 / 버스도 끊기고 여기까진 택시도 안와요
 
오늘밤은 혼자 있기가 무서워요 / 잠들 때까지 머릿결을 만져줘요
믿어줘요 나 원래 이런 사람 아냐 / 그냥 오늘밤만 네게 안겨서
불러주는 자장노래 들을래 / 제발 오늘밤만 가지 말아요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 뮤직비디오 보기]

노래는 시종일관 적당한 빠르기의 3박자로 경쾌하면서도 가볍다. 어쿠스틱 기타가 주도하는 가운데 남성 보컬은 감미롭게 흐른다. 전형적인 포크-팝인데 보다시피 이 노래의 화자는 성인 남자로, 벌레 잡는 것도 무서워하고 저기 어두운 빈방엔 뭐가 있는 것 같다고도 말한다. “버스도 끊기고 여기까지 택시도 안와요”라는 부분에선 피식 웃음이 나고 “날 못 믿겠으면 저 의자에 날 묶어도 좋아”란 대목에선 귀엽게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건 ‘오늘 밤’만이다. “오늘의 나는 결코 강하지 않아, 나 원래 이런 사람 아냐”란 대목이야말로 이 노래의 핵심이다. ‘너 때문에’란 말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귀여워지는 것'을 선택한 남자들
 
이전까지 권력의 문제는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에서 억압과 폭력이 주요한 기제로 여겨졌다. 계급과 성별 문제 역시 권력의 문제로 이해되었는데 푸코 이후, 생명정치(Biopolitics)-살아있게 하는/케어하는 권력-란 개념이 일반화되면서 이런 관점은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이룬다.
 
이런 맥락을 1990년 이후 한국 사회에 대입해 설명하는 게 김홍중 교수의 책 [마음의 사회학]이다. 여기에는 80년대의 진정성이 어떤 과정으로 폐기되었으며, 21세기에 들어서 엔터테인먼트가 어떻게 한국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또한 그 속에서 인간다움의 근거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면밀하게 살핀다.
 
그 중에 ‘귀여움’에 대한 대목이 있다. 스스로 귀여워지는 것이야말로 ‘포스트-히스토리’의 인간들이 선택한 수단이라는 얘기다. 나는 이 대목을 21세기 이후의 한국 남자들에 대입해보고 싶다.
 
이 노래와 10cm에 대한 여성 수용자들은 대부분 ‘귀엽다’라고 평가한다. 그런데 이 ‘귀여움’은 2PM 같은 남자 아이돌(짐승돌)에 대한 반응과 대동소이하다. 적어도 대중문화 영역에서 90년대 중반 이후의 남자 캐릭터들은 귀엽게 변했다. ‘한국 드라마의 마지막 마초’라고 할 수 있는 대발이도 귀여웠고 준혁 학생도 귀여웠다. 박진영도 나름 귀여웠고 <풀 하우스>의 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모두 남성화된 질서에 편입되기엔 애매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 균열은 새로운 남성성의 등장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들은 모두 남성화된 육체에 비(非)-남성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캐릭터들인데, 이건 여성적 감수성과 구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요컨대 그것은 ‘엄정화의 섹슈얼리티’를 견디는 것과 즐기는 것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남성화된 육체, 비(非)남성적 감수성 가진 캐릭터 등장

 
게다가 이건 캐릭터의 문제기도 하다. 90년대 중반 이후, 아니 최근 몇 년만 보더라도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은 남자 캐릭터들은 모두 마초 같지 않은 남자들이었고, 그건 남성의 육체가 아니라 ‘감수성’의 영역에 국한된 것이었다. 오히려 가장 인기 있는 남자들은 남성적 매력과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남자들이다. 허세(자기과시)를 떨지 않는 것도, 위트가 있는 것도, 배려를 하는 것도, 취향에 대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이런 캐릭터의 남자들이 대중적으로, 또한 사회적으로 인기를 얻는 건 사실이다.
 
이 인기는 다시 생존과도 직결된다. 이성애 구조에서 연애와 결혼이라는 맥락은 특히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이슈로 작동한다. 그런데 인터넷 댓글 등에서 남자들이 흔히 드러내듯 연애와 결혼이 오로지 경제적 문제로만 치환되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여자들은 ‘성격’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그게 곧 앞서 언급한 캐릭터와 상통한다는 점에서 이 노래의 맥락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노래의 주인공은 귀여운 남자다. 오늘 밤 당신과 어떻게 해보고 싶은데 그걸 드러내놓고 유혹하지 않는다. 대신 ‘나는 너보다 약하니 날 좀 보살펴 달라’고 애원한다. 동정심을 유발하는 것이기도 하고, 너스레를 떠는 것이기도 하다. 어쨌든 강압적이지도 않고 비굴하지도 않다.
 
이런 내용이 10cm의 캐릭터로 치환된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21세기는 음악(뿐 아니라 거의 모든 것)을 캐릭터로 이해하는 시대기 때문이다. 그걸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그런 맥락이 실제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0cm는 지금 한국에서 가장 핫한 인디 음악가 중 하나고, 이 노래는 아무래도 오랫동안 인기를 끌 것이다. 나로서는 그걸 계속 지켜볼 수밖에 없다. (차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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