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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김수진의 ‘Over the rainbow’ 인터뷰칼럼(19) 무뚝뚝하지만 따뜻한 오랜 친구 
 
<‘인터뷰칼럼’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동성애자 여성의 기록을 담은 ‘Over the rainbow’ 코너를 통해, 필자 박김수진님이 가족, 친구, 동료,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레즈비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이 칼럼은 격주로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선선했던 9월 마지막 주에 서울 망원동의 한 카페에서 저의 오랜 지인 정현님을 만났습니다. '이성애자이거나 이성애자일지도 모를' 정현님이 <인터뷰 칼럼>의 열아홉 번째 주인공입니다.
 
정현님과 저는 13년 지기입니다. 학교에서 선후배로 만남을 시작했지만, 졸업 후 오랜 시간동안 둘 다 여성단체 활동가로 만나왔습니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 얼굴을 마주하고 앉았는데,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연초에 이미 인터뷰를 부탁해 둔 상황이었음에도 단 한 번도 <일다>에 올리고 있는 저의 칼럼을 읽어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인터뷰 약속을 하고도 한 번 들어와 읽어보지도 않았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정현님은 제게 무심하고, 무뚝뚝한 사람이고 동시에 무엇을 인터뷰하는지도 모른 채 제가 하는 일이라는 이유만으로 무턱대고 '해주겠다' 답하는 의리 가득한 친구이기도 합니다.
 
“나에게 애초에 선택권이 없었던 것 같아.”
 
저는 정현님이 '이성애자일 것'이라는 수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알 수 없는 일이니 질문 방식을 달리해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너는 이성애자야? 레즈비언이야?". 정현님의 답변을 함께 들어보시지요.
 
"난 나야"
 
정말 정현님다운 답변이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답이 간결하면 칼럼 글을 쓸 수가 없지요. 그래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누군가 물어보면 이성애자라고 대답해. 내가 지금까지 호감을 가지거나 만나본 사람들이 다 남자였거든."
 
정현님은 여자를 좋아해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레즈비언 자긍심이 하늘을 찌르는 저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심리입니다만.
 
"여자를 좋아해도 되는지 모르고 자랐어. 중고등 학교 다닐 때 나를 좋아해주던 여자 친구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게 애정관계일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해봤어. 그저 굉장히 친한, 여자 친구들 간의 우정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대학에 와서 언니를 만나고, 동성애자 정체성에 관해 이런 저런 공부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하면서 그 때, 그 친구들의 마음이 단순하게 '우정'으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알았지. 대학에 와서, 언니를 만나면서 '아, 여자가 여자를 좋아해도 되는 구나'라는 걸 알았어."
 
지금까지 레즈비언 지인들에게 '당신은 왜 레즈비언이에요?'라고 물어 왔으니, 이성애자인 정현님께도 같은 질문을 안 할 수 없지요. 정현님께 물었습니다. "너는 왜 이성애자니?"
 
"대학 입학 이전까지는 '동성애자', '이성애자'라는 개념 자체가 내 머릿속에 없었으니, 나에게 애초에 선택권이 없었던 것 같아. 처음부터 내가 동성애자로 살 수도 있다는 가능성, 내가 누구를 만나 어떻게 살든 그것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살아온 거지. 지금 내가 배우고 알게 된 것들을 중고등 학교 때에 이미 알고 있었더라면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
 
“동성애자 문제에 쿨해야 진보라는 생각은 오만”
 
저는 평상시에도 정현님을 보면서 이런 말을 자주 하고는 했어요. "연애 안 한 지 오래되었잖아? 앞으로는 여자를 만나보는 게 어때?". 다음은 이에 관한, 정현님의 한결같은 대답입니다.
 
"자신 없어. 나는 내 안에도 분명히 '호모포비아'가 있을 거라 생각해. 나 역시 이성애를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 왔으니까.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상상해보면 약간 두렵기도 해. 이렇게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실천의 문제는 다르기도 하지. 진보 진영 사람들이 쉽게 '동성애자? 괜찮아"라고 쉽게 말하는 것 문제 있다고 생각해. 동성애자로 사는 것,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것 아니잖아. 동성애자 문제에 쿨한 척을 하는 게 곧 진보라는 식의 생각, 오만이야. 이성애자로 살아 온 내 입장에서 단순 명쾌하게 배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도 레즈비언으로 살 수 있어'라고 확답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생각의 문제와 감정의 문제가 언제나 일치하는 건 아니니까. 나는 모르는 건 모른다고, 자신 없는 건 자신 없다고 말할래."
 
예전에도 그랬지만, 정현님은 경험하지 않은 것들에 관해 신중하게 생각하고 답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왠지 더욱 신중하게 답하는 모습을 보이더군요. 그와 같은 신중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냐 물었더니 정현님은 '최근에 겪은 일련의 경험들 때문'이라는 답변을 주었습니다.
 
"여성단체 활동을 10년 동안 해왔잖아. 그 과정에서 동성애자 정체성, 장애인 등 많은 문제들에 관해 공부할 수 있는 기회도 자주 가졌어. 소수자 문제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면서, '차별감수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업무를 진행하면서도 소수자의 입장을 염두 하면서 일해 왔어. '장애인 이동권' 문제로 얘기를 해볼게. 평소 활동하면서 장애인 이동권 문제에 있어서 이렇게 생각했어. '당연한 얘기지. 필요한 일이지'.
 
그런데 내가 다리를 다쳐서 반년이 넘도록 고생을 하고 있잖아. 불편하게 걸어야 하는 상황에서 외출을 생각하면 내가 어떤 크기의 턱을 몇 개나 넘어야 하는지, 계단은 어느 쪽에 있고 몇 개의 계단을 오르고 내려야 하는지 등 오고가는 모든 길을 미리 시뮬레이션하고 나가야 하더라고. 나가서 하는 고생은 말도 못 하고 말이지. 이 역시도 정말 작은 경험이지만, 요즈음 내가 하고 있는 이 경험들을 통해서 내가 그 동안 머리로만 알고 있던 것들이 얼마나 미천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어. 머리로 아는 것과 경험적으로 아는 것은 달라. 그래서 더욱 신중하게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
 
커밍아웃을 둘러싼 너와 나의 다른 기억
 
2000년 3월에 한 카페에서 저는 정현님에게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저는 시기며, 장소며, 분위기며 제가 커밍아웃하던 그 순간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답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정현님과 저의 커밍아웃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당시 저의 커밍아웃에 관해 정현님이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묻고,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네게 커밍아웃한 최초의 동성애자였어? 내가 동성애자라는 소리를 듣고는 마음이 어땠니?". 
 
"응. 언니가 처음이었어. 이건 정말 중요한 얘기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여성주의를 동성애자인 언니를 통해서 알았잖아. 노동운동이나 여성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동성애자 인권 문제를 알게 된 케이스와는 그 출발선이 달랐다고 생각해. 어쨌든 언니로부터 이미 익숙하게 듣고 있던 상황이라 그랬는지 언니가 커밍아웃 했을 때, 솔직히 별로 안 놀랐어. 내가 원래 남이 하는 얘기 듣고 놀라고 하는 스타일은 아니잖아."
 
제가 커밍아웃을 했을 때, 정현님이 놀라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당시에 저는 정현님이 저의 커밍아웃을 너무나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탓에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있지요. 다음은 이에 관한 정현님과 저의 대화 내용입니다.
 
박김 : 별로 안 놀랐다고?
정현 : 정확하게는 잘 기억나지 않아.
박김 : 언제 어디에서 했는지는 기억 나?
정현 : 안 나. 
박김 : 내가 동성애자인 게 너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정보가 아니었던 모양이지?
정현 : 그랬나봐. 내 입장에서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야.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네.
박김 : 나는 다 기억하고 있는데.
정현 : 내가 뭐라고 그랬어? 얘기해줘.
박김 : 네가 이렇게 말했어. "언니가 레즈비언이라는 얘기를 왜 나한테 하냐"고. "내가 물어봤냐고".
 
정현님께 커밍아웃을 했더니 정현님이 제게 그렇게 말했었어요. "내가 물어봤냐? 언니가 동성애자인 것을 왜 내게 말하냐? 언니가 동성애자인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너무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반응하는 것을 보면서 저는 오늘 날까지 그 역시 일종의 '호모포비아'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죠.
 
제가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정현님이 매우 당황해 했습니다. 지난 번 칼럼에서 소개해 드린 바와 같이 저의 친 동생이 기억하고 있는 상황과 제 기억은 아주 달랐지요. 정현님과 저의 기억도 그렇게 다르더라고요. 정현님께 물었어요. "내 동생도 나한테 내가 커밍아웃 했을 때 '더러워'라고 말하고는 나가버렸는데, 그걸 기억 못 하더라고. 왜들 그렇게 기억하지 못 하는 걸까? 기억하기 싫은 걸까?"
 
"우리는 이미 동성애자 인권에 관해 많이 공부하고, 얘기하고 했던 상황이었을 텐데, 내가 왜 그렇게 반응을 했을까? 잘 모르겠네. 다른 애들 반응은 어땠어?"
 
당시에 친구들 대여섯 명에게 커밍아웃을 했었는데, 별의 별 반응이 다 있었죠. 아주 친했던 동생이 있었는데, 제가 커밍아웃을 했더니 한 2주 동안 저를 피하더라고요. 2주 시간 지나니 저에게 '언니, 나는 어때?'라고 묻기도 했고요. 정현님께 이런저런 친구들의 반응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정현님이 갑자기 반성모드로 돌입하였어요.
 
"언니, 내가 왜 그랬을까? 내 성격이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커밍아웃을 한 사람이 내 반응에 섭섭함을 느꼈다면 그 자체로 문제라고 생각해."
 
이미 다 지난 일이기도 하고, 정현님의 반응에 섭섭한 마음을 아주 조금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정도로만 해준 것도 제 입장에서는 매우 다행인 일이었습니다. 성경 책 꺼내 들고는 '변할 수 있다'며 함께 기도하자고 했던 친구도 있었는데요, 뭘. 커밍아웃 이후 연락이 끊긴 친구도 한 둘이 아니고 말입니다.
 
호모포비아 때문이든, 무엇 때문이든 정현님의 반응은 당연한 반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낯선 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죠.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낯선 '사건'이니까요. 문제는 커밍아웃 이후의 관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현님과 저는 오랜 시간동안 나름대로 좋은 관계를 맺어왔죠. 이 점,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조건 없는 신뢰, 고마워
 
정현님은 10년여의 시간 동안 여성단체에서 활동을 하고는 현재 쉬고 있습니다. 그간 여성단체 활동을 하면서 이런저런 어려움들이 많았던 모양이더라고요. 활동가들이 수년을 노력 해 이루어 놓은 것을 정치인들이 단번에 원점으로 돌려놓고, 돌려놓고 하는 상황들을 겪으면서 좌절을 경험한 듯 했습니다. 당장은 활동과 일정 거리를 두고 지난 10년 동안의 활동 내용을 스스로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현님의 여성 단체 활동 이야기도 듣고 싶었는데, "왜 레즈비언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고 만나자고 했으면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물어보느냐?"며 구박을 하는 바람에 자세히 묻지도, 듣지도 못 했네요.
 
왠지 정현님과 저는 늙어 죽는 그 날까지 그냥 저냥 이렇게 관계 맺으며 잘 살아갈 것 같습니다. 때로는 무뚝뚝하고, 쌀쌀맞은 기운을 풍기는 친구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또 따뜻한 구석이 많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많은 좋은 사람이거든요. 물론, 저 역시도 정현님에게 그런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을 해야 가능한 얘기이겠지만요. 정현님께 짧은 메시지를 남기면서 글을 마쳐야겠습니다.
 
정현님,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지금 일본에 가 있다고 들었는데, 일본에 있는 동안 목표한 바 잘 이루고, 활동 정리도 잘해내기를 바랍니다. 노동의 중요성을 알지만, 노동을 왜 신성한 것이라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이 사회에서 규정하는 노동을 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는 정현님의 생각을 잘 반영한 좋은 일, 좋은 활동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 인터뷰인지도 모른 채 '하겠다' 응해준, 조건 없는 무한신뢰 보내주어 고맙습니다. 내년, 귀국 후에 얼굴 봅시다. (박김수진)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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