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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박김수진의 ‘Over the rainbow’ 인터뷰칼럼(16)  ‘인터뷰칼럼’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동성애자 여성의 기록을 담은 ‘Over the rainbow’ 코너를 통해, 필자 박김수진님이 가족, 친구, 동료,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레즈비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이 칼럼은 격주로 연재됩니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 이름 들어보셨지요? 이 단체는 1994년 11월에 <한국여성동성애자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레즈비언 인권 운동 단체입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0년 5월경에 이 단체에 회원가입을 하고는 곧장 활동을 시작했었습니다. 2009년 10월까지 활동을 했으니 9년 정도 이 단체에서 활동을 했네요. 처음 활동을 결심한 이유는 이랬습니다. '내가 겪었던 10대 때의 고통을 오늘과 내일의 10대가 똑같이 겪지 않을 수 있도록 작은 기여를 하고 싶다'. 그리고 이런 마음도 가득 했었지요. '레즈비언인 나는 지난 6년 동안 <끼리끼리>를 만들고, 지켜 온 활동가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정말 그런 마음으로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러던 제가 이제는 단체 활동을 모두 정리한 것이지요. 앞으로는 현재의 활동가들과 미래의 활동가들에게 큰 빚을 진 마음으로 살아갈 것 같습니다. 항상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가득 안고 말입니다.
 
공식질문> 왜 레즈비언인가요?
 
오늘 [인터뷰 칼럼]의 열일곱 번째 주인공은 <한국레즈비언상담소>에서 활동 중인 소윤님과 려수님입니다. [인터뷰 칼럼]을 통해서 꼭 한 번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활동가들을 소개해 드리고 싶었답니다. 우리는 지난 8월 말, 서울 상수동에서 만났습니다. 이분들은 이미 제가 던질 '공식 질문'을 알고 계셨지요.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려수님이 소윤님에게 이렇게 묻더군요. "소윤님은 왜 레즈비언이에요? 이건 정말 제가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소윤 - 여자와 교제를 한 시기에도 스스로를 '레즈비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시기도 있었어요. 그런데 언젠가 어떤 여자를 굉장히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런 감정을 가지는 사람을 특별하게 '레즈비언'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그 시기에는 또 스스로 '레즈비언'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고요. 그러니까 어떤 시기에는 '레즈비언'이라는 개념 자체가 불필요했고, 또 어떤 시기에는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것이 사적인 감정 문제 이상의 문제들을 포함하고 있구나. 그 개념을 통해서 내가 내 감정을 설명해야 하는 경우도 있구나'라고 생각을 정리하기도 했던 거죠.
 
려수님의 대답도 함께 들어 보았습니다. 참고로 려수님은 오랜 시간동안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활동가들 사이에서 '팬픽이반'의 대명사로 불려왔답니다.
 
"처음에 사람들이 나를 '팬픽이반'이라고 지칭하면 듣기가 싫었어요. 그런데 자꾸 듣다보니 그도 듣기가 괜찮아지더라고요. 그래서 꽤 오랜 시간동안 누가 물어보면 장난스럽게 저도 '네. 저 팬픽이반이에요'라고 답하고는 했었지요. 하지만 제가 10대였던 그 시절에 '팬픽이반'이라는 개념은 아주 부정적인 개념이었어요."
 
려수님은 HOT 팬이었습니다. 려수님이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을 때였죠. 물론, 팬픽 소설도 읽었다고 합니다. 팬픽을 읽으면서 '동성애'에 관해 알기 시작했다고 해요. 당시에는 HOT나 잭스키스와 같은 가수들의 팬들이 팬픽을 읽으면서 서로 사귀기도 하고 했었는데, 그랬던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이성에게 관심을 가지고, 교제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 친구들을 가리켜 '쟤, 팬픽이반이다'라는 식으로 비난하듯 말하고는 했다고 합니다.
 
"'탈반'의 의미와 비슷하게 쓰면서 욕하듯 비난하는 어조의 말로 쓰였죠. 생각해보니 저도 '팬픽이반'이라는 말을 정말 싫어했더라고요. 하지만 지금은 그 용어의 정의가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저는 팬픽을 보면서 동성애자 정체성 문제를 생각할 수 있었고, 팬픽은 제가 동성애자로 정체화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어주었죠.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이 내게 '팬픽이반'이라고 말할 때, 그 안에 더 이상의 부정적인 의미는 들어있지 않아요. 그저 '팬픽을 계기로 정체화한 이들'이란 의미일 뿐이죠. 그래서 더 이상 기분 나쁠 일은 없어요. 요즈음 '탈반' 하면 사람들이 되게 싫어하잖아요? 하지만 누군가들에게 그건 그렇게 나쁜 의미가 아니죠. 어떤 의미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기분이 나쁠 수도,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려수님이 현재에도 스스로를 '팬픽이반'으로 정체화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답을 주네요.
 
"저는 현재에는 레즈비언이에요. 10년차 레즈비언이라고나 할까요"
 
상담소의 요즘은?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홈페이지 메인화면 http://lsangdam.org

최근에 저는 여러 사람들로부터 상담소가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전해 들었답니다. 지난 해 10월에 활동을 정리하고 상담소 형편이 어떠한지 관심을 가지지 못 했어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요즈음 상담소가 어렵다고 들었어요. 팀도 많이 줄었고, 일손도 많이 부족하다고 들었는데, 어떤가요?" 먼저, 려수님이 답을 주셨어요.
 
"일단은 현재 활동가들이 많이 지쳐 있어요. 활동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고요. 기존 활동가들에게 주어진 일은 과중하고, 새로운 활동가가 부족하니 아무래도 어려운 상황이에요. 저 같은 경우만 보더라도 회사에 다니고 있는 상태에서 휴일 시간을 내어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 버거운 부분이 많거든요."
 
소윤님의 생각도 궁금했습니다.
 
"저는 현재 상담소가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활동의 내용과 방식을 재정비하느라 혼란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모든 활동가들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조건 아래에서 최선을 다해서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요즈음 활동가들 사이에서 다양한 새로운 시도들을 해보자는 의견이 정말 많이 나오고 있는데요, 활동가들이 모두 지친 것이 사실이라면 이렇게 하고 싶은 일들에 관한 아이디어를 쏟아낼 수 없다고 생각해요."
 
같은 시기에 한 단체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 두 명의 진단이 달랐어요. 우리는 조금 더 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로 했습니다.
 
소윤 - 올해 간사를 시작하면서 활동 인력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약간 불안한 마음을 가지기도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외부 사업차 다른 단체 활동가들을 만날 일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어떤 분이 제게 상담소 활동가들이 몇 명이 되느냐 묻더라고요. 저는 '열다섯 명 정도 된다. 활동가가 많이 부족해서 걱정이다'라고 답했어요. 그랬더니 함께 있던 활동가 세 명이 모두 '열다섯 명이 부족한 거냐? 이미 충분한 숫자다, 자기 일이 있는 상황에서 활동하는 그 정도의 열정을 가진 활동가들이 열다섯 명이나 있는데 대체 뭐가 부족하다는 거냐?'고 반문하더라고요. 그때 생각했어요. 우리의 상황이 나쁜 것이 아닌데, 그 동안 '우리는 더 많은 활동가들이 필요해',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는데 상황이 너무 안 좋군'이라고만 생각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현재의 인력으로, 현재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려수 - 소윤님의 의견에 동의하는 부분이 있기는 해요. 하지만 우리의 경우, 상근 간사는 단 한 명뿐이고, 나머지 활동가들은 모두 자신들의 일이 있는 상태에서 여분의 시간을 가지고 활동을 해야 하는 비상근 활동가들이잖아요. 저만해도 하루에 8시간에서 10시간을 일 하고, 시간을 쪼개서 활동을 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반드시 해야 하는 일들을 두고도 온전하게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사람들이 턱없이 부족하니 이런 어려움들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려수님의 의견을 듣고 소윤님은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 상담소 활동가들의 활동이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평가했어요. 각자의 일이 있는 상황에도 자기 시간을 투자하여 활동을 하려는 사람들이 모인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구조라는 얘기였습니다. 반면에 려수님은 새로운 활동은 고사하고, 현재 진행해야 하는 일조차 활동 인력이 부족해 발을 동동 구르는 현실적인 상황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지요.
 
두 분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상담소는 현재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것이 아니라, 소윤님과 려수님처럼 다양한 의견을 가진 활동가들과 함께 '어떻게 하면 활동을 더욱 잘해낼 수 있을까?'를 열심히 고민 중에 있구나'라고 말입니다.
 
'활동의 이유'에 대해
 
소윤님은 상담소에서 유일한 상근 간사입니다. 려수님은 [문화기획팀]에서 활동 중이지요. '활동의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려수님의 이유를 먼저 들어보시지요.
 
"저는 제가 왜 활동을 안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활동을 안 해야 하는 이유 따위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이 활동은 제게 당연해요. 그저 해야 하고, 하고 싶고, 버리기 싫고, 버릴 수 없고. 활동 자체가 제게 의미이고 이유인 것 같아요. 저는 기본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들을 봤을 때 그냥 참고 넘어가는 성격이 아니에요. 그 자리에서 해결하죠. 그런데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면서 겪는 어려움들, 문제들은 그 자리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잖아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뭔가 바꾸려는 노력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뒤에서 작은 기여라도 하고 싶었고, 그래서 활동을 시작하고, 해오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소윤님의 활동의 이유는 려수님의 활동의 이유와 조금은 달랐습니다. 역시, 활동가들의 '활동의 이유들'도 다양합니다. 정체화의 이유, 과정이 모두 다른 것처럼 말입니다.
 
"상담소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돈도 들고, 시간도 들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이상의 것들을 제가 가져올 수 있다는 거예요. 저는 레즈비언으로 정체화한 이후로 따로 레즈비언 친목 모임을 찾아본 적이 없어요. 과거에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 일정 기간 동안 레즈비언 커뮤니티의 필요성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편안하게 지냈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서 내가 레즈비언으로 살면서 겪는 기쁨과 슬픔을 온전하게 나누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레즈비언 커뮤니티를 찾기 시작했어요. 그 과정에서 처음 만난 곳이 바로 상담소였고요.
 
상담소에서 회의를 할 때면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해요. '다른 얘기 하지 말고, 회의 내용에 집중하자' 고요. 하지만 저에게는 회의 시간에 나누는 모든 이야기들이 정말 소중해요. 회의가, 활동이 모두 저에게는 소중한 레즈비언 커뮤니티 활동이 되는 것 같아요. 만약, 제가 단체 활동을 그만두게 된다면, 저는 매우 외로워질 것 같아요."
 
앞으로의 활동계획은?
 
소윤님의 대답을 듣고 보니, 소윤님을 위해서라도 상담소 활동이 대대손손 이어져 내려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두 분의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물었습니다.
 
소윤 - 간사 활동을 오는 12월까지 해요. 현재 하고 있는 상담팀 활동은 계속 할 계획이고요. 상담소에서 상담 활동을 잘 해나갈 수 있도록 상담소 활동에 도움이 되는 활동가가 되고 싶어요.
 
려수 - 앞으로도 활동은 지속할 생각이에요. 진로도 결정했고, 취업 후 '내 일이 정해졌다'는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는데도, 상담소 활동을 계속 해나가고 있는 걸 보면 그렇게 될 것 같아요. 만약, 내 일 때문에 활동을 못 하게 되는 상황이 생겼을 때는 그, '내 일' 이라는 것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어요. 물론, 중간 중간 활동을 쉬는 기간은 있을 수 있지만, 활동을 아예 중단하거나 할 생각은 없어요."
 
단체 활동을 중단한 사람으로서 소윤님과 려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내내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어요. 소윤님과 려수님이 내는, 과거에 내가 내었던 그 마음들은 다 어디로 가고 없는지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묻기도 했고요. 물론 이런 좋은 활동가들이 상담소를 지키고 있고, 상담소를 위해서 열심히 생각하고, 의견들을 공유하고, 애쓰고 있으니 든든하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단체를 떠나 개인 활동가로서의 활동을 모색하고 있는 지금, 소윤님과 려수님에게 부끄럽지 않은 활동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저도 다른 장, 다른 방식을 통해 소윤님과 려수님처럼 레즈비언들이 살기 좋은 세상, '레즈비언'이라는 낱말 따위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작은 힘 보태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급하게 청한 인터뷰, 흔쾌히 허락해주시고, 도움주신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박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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