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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Over the rainbow’ 인터뷰칼럼(16)
오늘 소개할 [인터뷰 칼럼]의 열여섯 번째 주인공은 부산의 레즈비언 인권운동가 가루님과 랑랑님입니다. 지난 7월, 우리는 부산에서 만났습니다. 인터뷰 자리에는 인터뷰이들 외에도 가루님의 파트너인 타지오님과 저의 친구이자 동료인 쏘머즈님도 함께 하셨답니다. 공식 질문으로 시작했습니다. "랑랑님, 가루님은 왜 레즈비언이에요?"
레즈비언 정체화에 대한 생각들
랑랑 : 레즈비언으로 사는 것, 이제는 내게 '상식'이에요. 예전에는 내가 왜 레즈비언인지 생각도 해봤고, 활동하면서 그런 질문들도 많이 받고는 했는데, 이제는 내가 왜 레즈비언인지 생각할 필요 없이 나는 잘 살고 있어요.
가루 : 나는 이런 질문 받아본 것, 처음이에요. 그래도 답을 하자면, 나는 레즈비언이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 순간부터 레즈비언으로 살고 싶었고, 살다보니 정말 좋아서 그리 살고 있을 뿐이에요.
저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인데요, 가루님은 대학에서 여성운동을 하면서 레즈비언이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공부를 하면서 레즈비언 정체성에 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죠. 동석하고 있던 가루님의 파트너, 타지오님이 깜짝 놀라며 가루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대학 다닐 때, 레즈비언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안 순간에 정체화를 했어요?" 다음은 이에 관한 가루님의 답변과 우리들의 대화 내용입니다.
가루 : 네. 그 전에도 여성을 좋아한 적은 있지만, 깊이 생각을 안 해봤어요.
타지오 : 많이 안 좋아했나보네요.
랑랑 :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안 좋아했다고 보는 건 좀 이상하지 않아요?
타지오 : 좋아하면 깊이 생각해보게 되지 않나요?
가루 : 바쁘게 살기도 했고, 깊이 생각할 만큼 좋아했던 건 아닌 것도 같고 그래요.
타지오 : 충격적이네요. 레즈비언이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그 순간에 그럴 수 있었다는 게.
랑랑 : 그게 왜 그렇게 충격적이에요? 정체화 과정은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는 건데요.
박김 : 저도 처음에는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어요. 레즈비언이라는 사람들을 보자마자 긍정의, 기쁨의 에너지로 정체화를 할 수 있다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랑랑 :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재미있게 사는 레즈비언도 많아요. 나는 드라마에서 레즈비언이나 게이들 너무 우울하게 사는 사람들로 묘사하는 것에 정말 불만 많아요. 레즈비언으로 사는 걸 너무 무겁고 우울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묘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나는 그런 우울한 부류에 속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나는 정말이지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드라마 자체에 정말 화가 나요.
<인생은 아름다워>를 둘러싼 이야기들
레즈비언 정체화 과정에 관해 대화를 나누던 우리의 화제는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로 옮겨갔습니다. 랑랑님은 지나다 우연히 몇 번 보기는 했지만, '인생은 아름다워'와 같은 드라마는 절대로 보고 싶지 않다고 하셨어요. 왜 그렇게까지 '절대로' 보고 싶지 않은지 그 이유가 궁금했어요.
"나는 애초에 동성애자들이 타인들로부터 인정받아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왜들 그렇게 항상 어려운 처지로만 등장하는 것인지, 그것도 마음에 안 들고요. 드라마고 영화고 온통 게이들만 주인공이 되어서 부상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어요."
가루님 생각도 궁금했습니다.
"내가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한 지 2년이 채 안 되었어요. 우리 엄마도 아직은 많은 위로가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하는데, '인생은 아름다워'가 우리 엄마를 위로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면서 느꼈던 고통과 기쁨이 있었는데, 그 드라마 안에도 내가 경험한 것들이 잘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타지오, 나 그리고 엄마가 함께 그 드라마를 본 적이 있었어요. 드라마를 보고 있던 중에 엄마가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김수현씨가 쓴 칼럼을 하나 읽었는데, 동성애는 병이 아니라고 하더라'. 그런 말을 자연스럽게 우리가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를 그 드라마가 준 것이기도 하고요."
가루님의 답을 듣고 있던 랑랑님이 한 말씀 하셨습니다.
"부정적인 정보도 많아요. 왜 그렇게 우리는 늘 어딘가 '끼어 있는 사람들' 취급을 받아야 해요? 우리는 절대로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건가요? 왜 레즈비언 가정에 헤테로(이성애자)들을 곁다리로 넣어 둔 영화나 드라마는 없느냐고요."
저도 잠시 끼어들어 한 마디 했습니다.
박김 : 랑랑님은 '점진적인 진보' 따위를 원하지 않나 봐요.
랑랑 : (강한 어조로) 진보에 '점진적인 것' 따위가 왜 필요해요?
박김 : (다소곳하게) 네.
가루님은 얼마 전에 한 대학에서 동성애자 인권에 관한 강의를 했다고 합니다. 그 강의에서 학생들이 강의를 다 듣고는 이런 질문들을 던졌다고 해요. "연애 하세요?", "데이트도 하시는 건가요?". 가루님은 동성애자에 관한 인식 수준이 아직은 매우 낮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그래서 '인생은 아름다워'와 같은 '계몽적인 드라마'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하네요.
랑랑님도 동성애자의 인권 등에 관한 강의를 하시는데요, 강의 전반을 통해 동성애나 동성애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이라고 강조하기 때문인지 "데이트도 하시는 건가요?" 따위의 질문은 아예 받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강의'에 관한 우리들의 짧은 대화가 이어졌어요.
박김 : 랑랑님은 강의를 편견과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들의 질문을 아예 봉쇄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시는 것 같아요. 접근 방식이 아주 색다른데요.
랑랑 : 아예 '이상한 생각' 자체를 하지 말라는 거죠.
가루 : 그래도 속으로는 다 궁금해 할 걸요.
박김 : 내가 강의를 하면, 내 외모가 벌써 편견을 조장하잖아요. "내 외모가 소위 '남자 같은' 이유는 내가 남자가 되고 싶어서 그러한 것이 아니고, 나를 '남자 같다'라고 여러분들이 보는 이유는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다니는 것을 남자들이 독점하고 있어 그렇게 보일 뿐"이라는 둥 아주 긴 설명을 해야 하죠. 어떤 외모의 사람이 강의를 하느냐에 따라서도 편견을 깨버리기도 하고, 강화시키기도 하는 것 같아요. 참 재미있죠. 왠지 우리 세 명 모두 강의 스타일이 모두 다를 것 같아요. 다른 분들 어떻게 강의하시는지 궁금하네요.
단체 활동을 시작하고 그만두기까지
가루님도, 랑랑님도, 저도 '동성애 바로알기'와 같은 강의를 하고 다녔네요. 이미 눈치 채셨겠지만, 우리는 인권단체 활동을 하면서 그와 같은 강의를 하고 다니기도 했고, 활동을 모두 그만 둔 현재에도 그렇게 종종 강의 할 기회를 가지고는 한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과거 단체 활동가였고, 현재 단체 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활동가들인 셈입니다. 드디어 오늘의 주제, '단체 활동'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두 분께 물었어요. "우리는 단체 활동을 했었어요. 그런데 우리는 이제 단체 활동을 하지 않고 있군요. 모두들 어떤 마음으로 단체 활동을 시작하셨고, 왜 그만두었나요?"
가루 : 학교에서 여성운동을 하던 중에 레즈비언으로 정체화를 했어요. 하지만 학교 안에서는 레즈비언을 만날 수 없었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부산에 레즈비언 단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부산경남여성이반인권모임 안전지대'였죠. 첫 모임에 나갔는데, 그 자리에서 부회장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했죠. 당시에 '안전지대' 안에서 이런 논의가 있었어요. 조직을 친목모임으로 가지고 나갈 것인가, 인권운동단체로 나아갈 것인가.
랑랑 : 90년대 중반에 신문기사를 보고 서울에 '끼리끼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기사를 보고 바로 찾아 갔죠. 회원가입을 했는데, 단체가 존폐위기에 서 있더라고요. 그래서 활동하기 시작했어요. 중간에 잠시 외국에 살다가 돌아 와서 부산에 정착했어요. 부산에서 '안전지대'를 찾아 가입했는데, 거기도 '존폐위기'라며 논쟁이 한창이더군요. 또 가입하자마자 활동 시작했죠.
활동의 이유들,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요. 가루님과 랑랑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가입하니 단체 활동에 어려움이 있어 활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가 하나의 이유가 될 수는 있을 테지만, 이유의 전부는 될 수 없죠.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들이 많고, 변화를 위한 시도들에 작은 기여라도 하고 싶은 마음들을 내었던 것이겠지요. 저 역시도 그랬고요. 그런데, 왜들 단체 활동을 그만두게 된 것일까요? 가루님이 먼저 답변해 주셨습니다.
"힘들었어요. 제가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에서 상근을 하면서 활동을 병행해야 했었거든요. 퇴근 후인 저녁 시간이나 주말을 이용해서 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활동에 한계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여성단체 상근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제가 제 자신을 과신했는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힘들더라고요. 전업 활동가가 한 명만이라도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같이 고민을 하고, 일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찾지 못 했던 거죠. 그러다보니 우울증이 생기고, '부산에서 내가 이 활동을 해나가는 것은 무리다'라고 생각하고 정리했어요."
잠시 가루님과 랑랑님이 활동하셨던 단체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1997년 5월, 부산에 <부산경남여성이반인권모임 안전지대>가 창립되었어요. '안전지대'는 오랜 논쟁 끝에 2003년 2월에 <부산여성성적소수자인권센터>로 개명해 활동해 오다가 지난 2006년 1월에 해소되었답니다.
'부산센터'는 언제나 재정과 인력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물론, 좋은 행사들을 많은 이들과 준비하고, 진행한 시기도 있었고요. 하지만, 형편은 점점 어려워졌고, 그 짐을 대부분 가루님이 떠안고 가야하는 상황이 도래했는데, 그 과정에서 단체 해소 결정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부산 유일의 여성이반 인권단체였는데요, 해소 소식을 듣고 저도 굉장히 마음이 아팠었답니다. 이제. 랑랑님이 단체 활동을 그만 둔 이야기를 들어봐야지요.
"센터 해소 직전에 바 운영하느라 가루님을 많이 돕지 못 해 안타깝고 많이 미안했지만, 타지오님을 내가 소개시켜 준 거니까 빚은 갚았다고 생각해요. 하하. 그런데 저는 활동을 그만 두었다기보다는 레즈비언 바(Bar) 운영으로 넘어간 케이스라고 봐야할 것 같아요. 이반 바를 운영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고, 그 안에서 새로운 부산 지역 활동가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요.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더 이상 바를 운영하고 있지는 않지만, 타로 카드를 통해서 레즈비언들을 만나고, 소통하고 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상담도 하고, 강의도 하고 있고요. 나는 레즈비언들이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모두 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나 역시 죽을 때까지 운동을 하겠죠. 형식은 달라질 수 있지만요."
‘운동인 것’과 ‘운동이 아닌 것’의 경계를 허물 때
랑랑님은 1990년 후반에 '한국여성동성애자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현 한국레즈비언상담소)'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잠시 외국에 거주하시다 부산으로 귀국, 2002년에 '안전지대'에 회원 가입을 하고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05년-2006년에는 부산 서면에 <레인보우>라고 하는 레즈비언 바(Bar)를 운영했고요. 현재는 재무 설계도 하시고, 타로 강의도 하시면서 많은 레즈비언들을 만나고 있답니다.
"레즈비언들이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모두 운동을 하고 있다"는 랑랑님의 생각을 저도 항상 하고 있습니다. 가끔 단체 활동가들 중에 '운동인 것과 운동이 아닌 것'의 경계를 둔 듯한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던데요, 저는 '운동인 것과 운동이 아닌 것'의 경계를 허물 수 있을 때, 진짜 운동이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일상의 민주주의를 이룰 수 없는 사람들이 만든 민주주의가 모래성일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나 할까요. 우리는 활동에 관해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박김 : 저는 가끔 '레즈비언 인권 운동 단체 일을 하지 않고, 다른 일을 시작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해요.
랑랑 : 저는 오히려 내가 레즈비언 인권 운동 단체 일을 하지 않았다면, 더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가루 : 레즈비언 단체 활동을 접었어도 나는 갈 곳이 있었어요. '살림'에서 활동할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레즈비언 운동 쪽에도 전업 활동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내가 못 해내서 안타까워요.
랑랑 : 이제는 세대교체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봐요. 새로운 운동 세대들이 등장을 해야 하죠.
가루 : 저는 오히려 윗세대가 조금 더 나와서 함께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박김 : 부산 상황에서 그리들 보고 계신다는 거죠?
가루, 랑랑 : 네.
박김 : 부산과 서울, 운동 환경에서도 차이가 난다고 생각하세요?
랑랑 : 5년 정도의 시간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가루 : 저는 최소한 10년 정도의 차이가 난다고 보는데요.
랑랑 : 5년 전 서울의 모습을 오늘 부산에서 보는 일이 종종 있어요.
가루 : 차이가 아주 커요. 여성운동부터도 그렇고, 대학 내 여성주의자들 중의 레즈비언 비율에 있어서도 그렇고.
박김 : 5년, 10년의 차가 난다고 칩시다. 그런데 부산에는 여성이반단체가 사라졌어요. 그럼, 이제 부산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가루 : 그것 봐요. 10년 차 나는 것 맞잖아요. 자원이 너무 없고, 그러니 미래가 안 보여요.
박김 : 두 분, 여전히 부산을 걱정하세요?
가루 : 별로 생각을 안 하고 살아요. 생각하면 머리 아파요.
랑랑 : 그래도 많이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조금 더 길게 여유롭게 보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요.
레즈비언 인권운동의 미래는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마지막 질문을 했습니다.
박김 : 다소 추상적인 질문인데요, 부산도 서울도 다른 지역들에서도, 레즈비언 인권 운동이 어떻게 진행되었으면 좋겠어요?
랑랑 : '한국레즈비언상담소'에서 부산 지부를 내주셨으면 좋겠어요. 하하. 그런 식으로 지역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퀴어문화축제' 같은 행사도 부산에서 한 번 하고, 광주에서 한 번 하고, 그런 식으로 지역을 돌면서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들어요.
가루 : 예전에 '한국레즈비언권리운동연대'에서 시도했던 '지금 만나러갑니다' 사업, 참 좋았어요. 서울, 광주, 대전, 부산 등에서 열었던 그 행사 말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지는 않더라도, 관심을 가지는 소수의 사람들이라도 참여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번 [인터뷰 칼럼]의 제목을 '3인 3색 토크'라고 붙여 보았는데요, 가루님과 랑랑님의 의견이 비슷한 듯 다른 부분이 많아서 인터뷰 하는 동안에도, 글을 작성하는 동안에도 많이 즐거웠습니다. 과거에도 그리들 각자의 개성을 담아 단체 활동을 해왔겠지요. 지금도 앞으로도 그리 할 테고요.
가루님, 랑랑님 바쁜 와중에 시간 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누구보다도 레즈비언 인권 운동에 열의를 가지고 계신 두 분, 앞으로도 어떤 방식으로든 활동의 끈 놓지 마시고, 힘써 주세요. 아참, 제가 언젠가 좋은 '활동 방안' 하나 제안할 계획이 있는데요, 긍정적으로 검토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 자리에 동석해주신 타지오님과 한 말씀도 없이 제가 인터뷰를 마칠 때까지 묵묵하게 기다려주신 쏘머즈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작성 : 박김수진 *일다는 광고 없이 운영됩니다. "일다의 친구를 찾습니다!"
오늘 소개할 [인터뷰 칼럼]의 열여섯 번째 주인공은 부산의 레즈비언 인권운동가 가루님과 랑랑님입니다. 지난 7월, 우리는 부산에서 만났습니다. 인터뷰 자리에는 인터뷰이들 외에도 가루님의 파트너인 타지오님과 저의 친구이자 동료인 쏘머즈님도 함께 하셨답니다. 공식 질문으로 시작했습니다. "랑랑님, 가루님은 왜 레즈비언이에요?"
레즈비언 정체화에 대한 생각들
랑랑 : 레즈비언으로 사는 것, 이제는 내게 '상식'이에요. 예전에는 내가 왜 레즈비언인지 생각도 해봤고, 활동하면서 그런 질문들도 많이 받고는 했는데, 이제는 내가 왜 레즈비언인지 생각할 필요 없이 나는 잘 살고 있어요.
가루 : 나는 이런 질문 받아본 것, 처음이에요. 그래도 답을 하자면, 나는 레즈비언이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 순간부터 레즈비언으로 살고 싶었고, 살다보니 정말 좋아서 그리 살고 있을 뿐이에요.
저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인데요, 가루님은 대학에서 여성운동을 하면서 레즈비언이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공부를 하면서 레즈비언 정체성에 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죠. 동석하고 있던 가루님의 파트너, 타지오님이 깜짝 놀라며 가루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대학 다닐 때, 레즈비언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안 순간에 정체화를 했어요?" 다음은 이에 관한 가루님의 답변과 우리들의 대화 내용입니다.
가루 : 네. 그 전에도 여성을 좋아한 적은 있지만, 깊이 생각을 안 해봤어요.
타지오 : 많이 안 좋아했나보네요.
랑랑 :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안 좋아했다고 보는 건 좀 이상하지 않아요?
타지오 : 좋아하면 깊이 생각해보게 되지 않나요?
가루 : 바쁘게 살기도 했고, 깊이 생각할 만큼 좋아했던 건 아닌 것도 같고 그래요.
타지오 : 충격적이네요. 레즈비언이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그 순간에 그럴 수 있었다는 게.
랑랑 : 그게 왜 그렇게 충격적이에요? 정체화 과정은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는 건데요.
박김 : 저도 처음에는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어요. 레즈비언이라는 사람들을 보자마자 긍정의, 기쁨의 에너지로 정체화를 할 수 있다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랑랑 :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재미있게 사는 레즈비언도 많아요. 나는 드라마에서 레즈비언이나 게이들 너무 우울하게 사는 사람들로 묘사하는 것에 정말 불만 많아요. 레즈비언으로 사는 걸 너무 무겁고 우울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묘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나는 그런 우울한 부류에 속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나는 정말이지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드라마 자체에 정말 화가 나요.
<인생은 아름다워>를 둘러싼 이야기들
레즈비언 정체화 과정에 관해 대화를 나누던 우리의 화제는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로 옮겨갔습니다. 랑랑님은 지나다 우연히 몇 번 보기는 했지만, '인생은 아름다워'와 같은 드라마는 절대로 보고 싶지 않다고 하셨어요. 왜 그렇게까지 '절대로' 보고 싶지 않은지 그 이유가 궁금했어요.
"나는 애초에 동성애자들이 타인들로부터 인정받아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왜들 그렇게 항상 어려운 처지로만 등장하는 것인지, 그것도 마음에 안 들고요. 드라마고 영화고 온통 게이들만 주인공이 되어서 부상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어요."
가루님 생각도 궁금했습니다.
"내가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한 지 2년이 채 안 되었어요. 우리 엄마도 아직은 많은 위로가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하는데, '인생은 아름다워'가 우리 엄마를 위로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면서 느꼈던 고통과 기쁨이 있었는데, 그 드라마 안에도 내가 경험한 것들이 잘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타지오, 나 그리고 엄마가 함께 그 드라마를 본 적이 있었어요. 드라마를 보고 있던 중에 엄마가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김수현씨가 쓴 칼럼을 하나 읽었는데, 동성애는 병이 아니라고 하더라'. 그런 말을 자연스럽게 우리가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를 그 드라마가 준 것이기도 하고요."
가루님의 답을 듣고 있던 랑랑님이 한 말씀 하셨습니다.
"부정적인 정보도 많아요. 왜 그렇게 우리는 늘 어딘가 '끼어 있는 사람들' 취급을 받아야 해요? 우리는 절대로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건가요? 왜 레즈비언 가정에 헤테로(이성애자)들을 곁다리로 넣어 둔 영화나 드라마는 없느냐고요."
저도 잠시 끼어들어 한 마디 했습니다.
박김 : 랑랑님은 '점진적인 진보' 따위를 원하지 않나 봐요.
랑랑 : (강한 어조로) 진보에 '점진적인 것' 따위가 왜 필요해요?
박김 : (다소곳하게) 네.
가루님은 얼마 전에 한 대학에서 동성애자 인권에 관한 강의를 했다고 합니다. 그 강의에서 학생들이 강의를 다 듣고는 이런 질문들을 던졌다고 해요. "연애 하세요?", "데이트도 하시는 건가요?". 가루님은 동성애자에 관한 인식 수준이 아직은 매우 낮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그래서 '인생은 아름다워'와 같은 '계몽적인 드라마'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하네요.
랑랑님도 동성애자의 인권 등에 관한 강의를 하시는데요, 강의 전반을 통해 동성애나 동성애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이라고 강조하기 때문인지 "데이트도 하시는 건가요?" 따위의 질문은 아예 받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강의'에 관한 우리들의 짧은 대화가 이어졌어요.
박김 : 랑랑님은 강의를 편견과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들의 질문을 아예 봉쇄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시는 것 같아요. 접근 방식이 아주 색다른데요.
랑랑 : 아예 '이상한 생각' 자체를 하지 말라는 거죠.
가루 : 그래도 속으로는 다 궁금해 할 걸요.
박김 : 내가 강의를 하면, 내 외모가 벌써 편견을 조장하잖아요. "내 외모가 소위 '남자 같은' 이유는 내가 남자가 되고 싶어서 그러한 것이 아니고, 나를 '남자 같다'라고 여러분들이 보는 이유는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다니는 것을 남자들이 독점하고 있어 그렇게 보일 뿐"이라는 둥 아주 긴 설명을 해야 하죠. 어떤 외모의 사람이 강의를 하느냐에 따라서도 편견을 깨버리기도 하고, 강화시키기도 하는 것 같아요. 참 재미있죠. 왠지 우리 세 명 모두 강의 스타일이 모두 다를 것 같아요. 다른 분들 어떻게 강의하시는지 궁금하네요.
단체 활동을 시작하고 그만두기까지
가루님도, 랑랑님도, 저도 '동성애 바로알기'와 같은 강의를 하고 다녔네요. 이미 눈치 채셨겠지만, 우리는 인권단체 활동을 하면서 그와 같은 강의를 하고 다니기도 했고, 활동을 모두 그만 둔 현재에도 그렇게 종종 강의 할 기회를 가지고는 한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과거 단체 활동가였고, 현재 단체 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활동가들인 셈입니다. 드디어 오늘의 주제, '단체 활동'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두 분께 물었어요. "우리는 단체 활동을 했었어요. 그런데 우리는 이제 단체 활동을 하지 않고 있군요. 모두들 어떤 마음으로 단체 활동을 시작하셨고, 왜 그만두었나요?"
가루 : 학교에서 여성운동을 하던 중에 레즈비언으로 정체화를 했어요. 하지만 학교 안에서는 레즈비언을 만날 수 없었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부산에 레즈비언 단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부산경남여성이반인권모임 안전지대'였죠. 첫 모임에 나갔는데, 그 자리에서 부회장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했죠. 당시에 '안전지대' 안에서 이런 논의가 있었어요. 조직을 친목모임으로 가지고 나갈 것인가, 인권운동단체로 나아갈 것인가.
랑랑 : 90년대 중반에 신문기사를 보고 서울에 '끼리끼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기사를 보고 바로 찾아 갔죠. 회원가입을 했는데, 단체가 존폐위기에 서 있더라고요. 그래서 활동하기 시작했어요. 중간에 잠시 외국에 살다가 돌아 와서 부산에 정착했어요. 부산에서 '안전지대'를 찾아 가입했는데, 거기도 '존폐위기'라며 논쟁이 한창이더군요. 또 가입하자마자 활동 시작했죠.
활동의 이유들,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요. 가루님과 랑랑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가입하니 단체 활동에 어려움이 있어 활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가 하나의 이유가 될 수는 있을 테지만, 이유의 전부는 될 수 없죠.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들이 많고, 변화를 위한 시도들에 작은 기여라도 하고 싶은 마음들을 내었던 것이겠지요. 저 역시도 그랬고요. 그런데, 왜들 단체 활동을 그만두게 된 것일까요? 가루님이 먼저 답변해 주셨습니다.
"힘들었어요. 제가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에서 상근을 하면서 활동을 병행해야 했었거든요. 퇴근 후인 저녁 시간이나 주말을 이용해서 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활동에 한계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여성단체 상근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제가 제 자신을 과신했는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힘들더라고요. 전업 활동가가 한 명만이라도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같이 고민을 하고, 일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찾지 못 했던 거죠. 그러다보니 우울증이 생기고, '부산에서 내가 이 활동을 해나가는 것은 무리다'라고 생각하고 정리했어요."
잠시 가루님과 랑랑님이 활동하셨던 단체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1997년 5월, 부산에 <부산경남여성이반인권모임 안전지대>가 창립되었어요. '안전지대'는 오랜 논쟁 끝에 2003년 2월에 <부산여성성적소수자인권센터>로 개명해 활동해 오다가 지난 2006년 1월에 해소되었답니다.
'부산센터'는 언제나 재정과 인력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물론, 좋은 행사들을 많은 이들과 준비하고, 진행한 시기도 있었고요. 하지만, 형편은 점점 어려워졌고, 그 짐을 대부분 가루님이 떠안고 가야하는 상황이 도래했는데, 그 과정에서 단체 해소 결정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부산 유일의 여성이반 인권단체였는데요, 해소 소식을 듣고 저도 굉장히 마음이 아팠었답니다. 이제. 랑랑님이 단체 활동을 그만 둔 이야기를 들어봐야지요.
"센터 해소 직전에 바 운영하느라 가루님을 많이 돕지 못 해 안타깝고 많이 미안했지만, 타지오님을 내가 소개시켜 준 거니까 빚은 갚았다고 생각해요. 하하. 그런데 저는 활동을 그만 두었다기보다는 레즈비언 바(Bar) 운영으로 넘어간 케이스라고 봐야할 것 같아요. 이반 바를 운영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고, 그 안에서 새로운 부산 지역 활동가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요.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더 이상 바를 운영하고 있지는 않지만, 타로 카드를 통해서 레즈비언들을 만나고, 소통하고 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상담도 하고, 강의도 하고 있고요. 나는 레즈비언들이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모두 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나 역시 죽을 때까지 운동을 하겠죠. 형식은 달라질 수 있지만요."
‘운동인 것’과 ‘운동이 아닌 것’의 경계를 허물 때
랑랑님은 1990년 후반에 '한국여성동성애자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현 한국레즈비언상담소)'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잠시 외국에 거주하시다 부산으로 귀국, 2002년에 '안전지대'에 회원 가입을 하고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05년-2006년에는 부산 서면에 <레인보우>라고 하는 레즈비언 바(Bar)를 운영했고요. 현재는 재무 설계도 하시고, 타로 강의도 하시면서 많은 레즈비언들을 만나고 있답니다.
"레즈비언들이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모두 운동을 하고 있다"는 랑랑님의 생각을 저도 항상 하고 있습니다. 가끔 단체 활동가들 중에 '운동인 것과 운동이 아닌 것'의 경계를 둔 듯한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던데요, 저는 '운동인 것과 운동이 아닌 것'의 경계를 허물 수 있을 때, 진짜 운동이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일상의 민주주의를 이룰 수 없는 사람들이 만든 민주주의가 모래성일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나 할까요. 우리는 활동에 관해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박김 : 저는 가끔 '레즈비언 인권 운동 단체 일을 하지 않고, 다른 일을 시작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해요.
랑랑 : 저는 오히려 내가 레즈비언 인권 운동 단체 일을 하지 않았다면, 더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가루 : 레즈비언 단체 활동을 접었어도 나는 갈 곳이 있었어요. '살림'에서 활동할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레즈비언 운동 쪽에도 전업 활동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내가 못 해내서 안타까워요.
랑랑 : 이제는 세대교체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봐요. 새로운 운동 세대들이 등장을 해야 하죠.
가루 : 저는 오히려 윗세대가 조금 더 나와서 함께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박김 : 부산 상황에서 그리들 보고 계신다는 거죠?
가루, 랑랑 : 네.
박김 : 부산과 서울, 운동 환경에서도 차이가 난다고 생각하세요?
랑랑 : 5년 정도의 시간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가루 : 저는 최소한 10년 정도의 차이가 난다고 보는데요.
랑랑 : 5년 전 서울의 모습을 오늘 부산에서 보는 일이 종종 있어요.
가루 : 차이가 아주 커요. 여성운동부터도 그렇고, 대학 내 여성주의자들 중의 레즈비언 비율에 있어서도 그렇고.
박김 : 5년, 10년의 차가 난다고 칩시다. 그런데 부산에는 여성이반단체가 사라졌어요. 그럼, 이제 부산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가루 : 그것 봐요. 10년 차 나는 것 맞잖아요. 자원이 너무 없고, 그러니 미래가 안 보여요.
박김 : 두 분, 여전히 부산을 걱정하세요?
가루 : 별로 생각을 안 하고 살아요. 생각하면 머리 아파요.
랑랑 : 그래도 많이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조금 더 길게 여유롭게 보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요.
레즈비언 인권운동의 미래는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마지막 질문을 했습니다.
박김 : 다소 추상적인 질문인데요, 부산도 서울도 다른 지역들에서도, 레즈비언 인권 운동이 어떻게 진행되었으면 좋겠어요?
랑랑 : '한국레즈비언상담소'에서 부산 지부를 내주셨으면 좋겠어요. 하하. 그런 식으로 지역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퀴어문화축제' 같은 행사도 부산에서 한 번 하고, 광주에서 한 번 하고, 그런 식으로 지역을 돌면서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들어요.
가루 : 예전에 '한국레즈비언권리운동연대'에서 시도했던 '지금 만나러갑니다' 사업, 참 좋았어요. 서울, 광주, 대전, 부산 등에서 열었던 그 행사 말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지는 않더라도, 관심을 가지는 소수의 사람들이라도 참여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번 [인터뷰 칼럼]의 제목을 '3인 3색 토크'라고 붙여 보았는데요, 가루님과 랑랑님의 의견이 비슷한 듯 다른 부분이 많아서 인터뷰 하는 동안에도, 글을 작성하는 동안에도 많이 즐거웠습니다. 과거에도 그리들 각자의 개성을 담아 단체 활동을 해왔겠지요. 지금도 앞으로도 그리 할 테고요.
가루님, 랑랑님 바쁜 와중에 시간 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누구보다도 레즈비언 인권 운동에 열의를 가지고 계신 두 분, 앞으로도 어떤 방식으로든 활동의 끈 놓지 마시고, 힘써 주세요. 아참, 제가 언젠가 좋은 '활동 방안' 하나 제안할 계획이 있는데요, 긍정적으로 검토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 자리에 동석해주신 타지오님과 한 말씀도 없이 제가 인터뷰를 마칠 때까지 묵묵하게 기다려주신 쏘머즈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작성 : 박김수진 *일다는 광고 없이 운영됩니다. "일다의 친구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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