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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고윤정의 멘토 찾기(1) 주민운동가 김혜정 
 
<우리 인생에는 멘토가 필요하다! “고윤정의 멘토 찾기” 연재가 시작되었습니다. 필자 고윤정님은 부산에서 9년간 교육복지사로 일해 오고 있는 30대 여성입니다. 대학시절 여성주의에 눈 뜨며 멋진 페미니스트 친구들과 만나게 되었고, 졸업 후 지역공동체운동을 하며 ‘나의 삶과 세상이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모색 중입니다. 그녀의 멘토 이야기를 통해,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여성들의 다양한 모습과 끈끈한 연대가 우리 삶에 귀감이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나의 멘토 이야기
 
이런 날이 있다. 인생이라고 내가 산 서른 즈음까지 한 시 쉼도 없이 내달려왔지만 어느 목적지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도 희미해져 버린 날. 뒤돌아보면 제대로 만들어 놓은 길 하나 없고, 남들 다 가는 지름길 나만 미련 곰탱이 같이 못 찾고 눈앞에 돌덩이들만 치워대고 있다 싶은 날.
 
누구는 생애주기 큰 분기별로 사춘기 오춘기가 온다고 하던데, 내 타로 카드라는 7번(전차) 속성 때문인지 사주 할배 말마따나 밥숟가락 놓는 순간까지 일할 팔자라서 그런지, 좀 됐다 싶으면 또 해결해야 할 거리들이 튀어나와 나는 곧잘 에너지 방전 위기를 맞곤 한다.
 
‘누가 나 좀 끌고 가주면 안되나’ 기원하며 눈물 흘려보지만, 언제나 나를 지켜줄 것 같던 부모는 이제 내가 지켜드려야 할 형편이고, 같이 있으면 좋아 죽겠다는 그는 날 떼쟁이 취급한다. 그럴 때 말 귀, 마음 귀 통하고 궁둥이 툭툭 밀어주며 눈앞의 돌덩이 잘 걷어차는 방법을 가르쳐 줄 그녀들에게 연락을 한다.
 
“언니야, 이 씨! 나 이럴 때 어떻게 하면 돼?”
 
그렇다. 서점에 널린 수두룩한 서른 살 처세술 서적들이 잠깐의 위로는 될지언정 짠한 감동이 되진 못한 대신, 그녀들은 내 영감을 자극시켜 자체 광합성을 유도해 에너지를 만들게 도와주는 사람들이다. 이전 시대를 살았고 저 멀리 살고 있는 위인들이 아닌, 함께 산을 오르고 있는 그녀들, 나 고윤정을 춤추게 하는 ‘멘토’들을 소개한다.
 
‘여럿이 한 걸음씩’ 반송마을의 변화 속에 그녀가 있다
  

▲ 내 영감을 자극하는 멘토 김혜정, 그녀는 부산 주민자치 모범마을 반송동 희망세상 사무국장이다. 

대학 시절 춤 동아리에 가입했던 나는, 신입생환영회 때 여학생 몸에 테이프를 붙이고 남학생에게 떼게 하는 기겁할 게임문화를 고발하고자 후기 학보사 수습기자에 지원했다. 이를 계기로 노동, 문화, 정치현장에 취재를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임기 후엔 학생운동 집행부로 계속 남기를 권유하는 선배들의 제안을 뒤로 하고 졸업을 했다.
 
이유는, 시대는 변했는데 선배들은 칙칙해 보였고 정치 이슈 중심의 활동들이 당장 먹고 살 고민을 하고 있는 나에게 별다른 해답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대신 내 전공 분야인 ‘사회복지’를 통해 대중운동을 해보겠다는 맹랑한 포부를 안고 ‘학교 사회복지’라는 생소한 분야를 선택했다. 그리고 첫 근무지 부산 반송동에서 바로 ‘김혜정’ 그녀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당시 그녀는 반송 지역 ‘교육복지 우선지원사업’ 코디네이터로, 교육청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후일담인 즉, 학교 사회복지사 채용 이력서에 “방북 취재”, “총여학생회 활동”이라고 당당히 기록해 교육청에 제출한 내가 너무 웃겨서,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나?
 
그녀와의 인연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그녀를 보면서 항상 배우는 건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걸음이 더 중요한 거구나’라는 것이다. 운동이라고 하는 것,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는 게 한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고, 여럿이 함께 힘을 합치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운동의 본래 힘은 ‘전파력’이라는 거다. 동심원을 그리며 파도처럼 퍼져나가는 힘은 물길을 서서히 바꾸어 낸다는 것을 그녀를 통해 직접 확인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반항기 다분했던 그녀는 공부보다 세상살이에 관심을 두었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지역운동을 해보자는 선배들 권유로 부산 반송동에 들어왔다. 당시 반송은 부산의 대표적인 ‘저소득 밀집지역’이라는 사회적 낙인에 큰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공동체문화가 강한 반면, 외부인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도 상당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주민들과 함께 공부방을 열었다. 어린이날 행사도 함께 준비하고, 지역신문을 만들어 배포했다. 반송 지역에서 교육복지사업을 하게 된 이유도, 주민들이 반송을 떠나고 싶어하는 주요한 이유가 ‘교육’이었고, 방황하는 아이들을 지역에서 함께 키워내야 한다며 적극적인 활동을 한 끝에 얻어낸 결과물이었다.
 
어린이도서관이 있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2007년 첫 삽을 뜬지 6개월 만에 지역주민들과 벽돌기금을 모으며 반송의 명물 ‘느티나무 도서관’을 만들었다.
 
나를 바꾼 한 마디 “진심은 통하게 되어 있어”

▲  반송의 명물 <느티나무 도서관>은 지역주민들이 벽돌기금을 마련하는 등 뜻을 모아 일군 소중한 결정체이다.

그 때가 2004년 여름이었나. 내가 ‘사회복지’의 가치를 고아원 차려내는 돈줄로만 여기는 교장선생님 밑에서 한참 고생할 때였다. 아이들 복지를 위해 시설물을 개선할 테니 돈을 더 따오거나 감사에 지적되지 않도록 편법을 고민해보라는 지시를 받고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신출내기 학교 사회복지사로서 교사집단과 이질감도 커서, 아이들 문제에 냉랭한 교사들을 보면 화가 나곤 했다. “언니, 학교라는데 더러워서 미치겠다. 사람들이 다 이상하고 대화도 안 통하고 나 진짜 그만 둘까 보다”라며 펑펑 울었다.
 
그때 나에게 해주었던 귀한 한마디. “진심은 다 통하게 되어 있다”라는 것이다. 아이들 싫어하는 사람은 선생질 못한다며, 교사들의 진심을 찾아내고 나의 진심을 통하게 해보라는 것. 그녀의 조언이었다.
 
반대 쪽에서 상황을 바라봤다. 예산을 따내라는 교장선생님은 나와 교육철학이 다른 것이었고, 냉랭한 교사들도 아이들이 나빠지는 걸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내 진심 역시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가정방문을 다녀온 이야기며, 아이들이 긍정적으로 변화되는 이야기 등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기 시작했다. 서로 각자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들을 같이 해보자고 독려하며, 학교 내 사회복지사로서 자리를 잡아 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녀의 활동하는 모습이 바로 그랬다. 어린이도서관이 있으면 술 마시고 싸움 많은 동네 골목이 책 읽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바뀌지 않겠냐고, 그녀의 진심을 곳곳에 전달했다. 그리고 그 꿈을 함께 꾸게 했다.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소소한 역할까지 만들어내며 자치단체나 일부 독지가의 도움이 아닌, 꿈을 함께 꾸는 사람들의 온전한 힘으로 지역을 바꾸어내고 있다.
 
2000년 쓰레기매립장 반대운동을 할 때도, 2005년 부산 APEC 때 일본총리 방한반대 현수막을 걸 때도, 2010년 유명 대형마트 동네 입점반대 활동을 할 때도 그랬다. “함께 꿈꾸고 절실하게 바라면, 돈은 아무것도 아니더라”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그녀.
 
반송은 여러 번 주민자치 모범상을 수상했다. 또, 부산 지역에서 대표적인 마을공동체로 꼽히며 한나라당 소속이 아닌 구의원을 당선시키기도 했다. 보수적인 지역에서 주민들과 정치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진심은 통한다’는 신념으로 만들어 내는 그녀의 삶은 내 오감과 영감을 매번 크게 자극시켰다.
 
문을 열어두는 사람, 그녀에게 ‘관계’를 배우다

2011년 4월 30일 해운대 바닷가 고층 리조트 반대 주민운동  

“언니는 날 때부터 운동가이가? 안 힘드나?” 물으면, “힘들다. 맨날 왜 이렇게 고생하며 사는지 나도 잘 모르겠는데 그냥 팔자인가 싶다” 답한다. 하루는 자기 별명 짓기를 했는데 스스로를 ‘역마살 낀 마을일꾼’이라고 했다. 종종 그녀가 내게 전화할 때 “놀러 갈 궁리 중”이라고 응대하면, “나는 니가 너무 부럽다. 자유롭게 여기 저기 다니면서 살고 싶다”고 했다. 나에게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닉네임을 붙이고는 내 자유로움이 자신에게 비타민이 된다며 내 궁둥이 툭툭 쳐준다.
 
그렇게 여행을 원하더니, 작년엔 ‘공정여행 동아리’까지 만들어서 타 지역의 좋은 자원을 소통시키고 이웃 간 정과 자치문화가 번성할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을 짜고 있다. 제주 4.3 기념관에 가서 올바른 역사교육을 할 수 있다고 하고, 진주 민들레공동체를 다녀와서 농산물을 도시와 직거래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높은 곳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지 않고, 같은 눈높이에서 ‘생활인 듯 놀이인 듯 일인 듯’ 살아가는 그녀는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다.
 
하루는 술 취한 목소리로 밤늦게 전화를 해서 무조건 나오라는 거였다. 호프집에서 만난 그녀는 벌써 몇 잔 한 것 같은데, 뒤져보니 돈도 없었다. 그러면 그녀의 연락을 받고 지갑 열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날도 새벽 4시까지 여러 사람들이 그녀에게 술값, 노래방 값을 대어주는 것이 아닌가. 두 아이 엄마이고 한 남자의 아내인 여성들은 밥 때 되면 애 보러 남편 보러 사라지기 마련인데, 그녀는 그런 적이 없어 ‘싱글’로 오해를 받곤 한다. 이런 진정한 워너비란! 남편과의 공평한 가사 분담과, 아이들을 지역에서 함께 키워내는 것이 비결이란다.
 
스스로 사람에 대해 ‘호불호’가 분명하다고 말하지만, 옆에서 지켜 봐온 바로는 그녀가 사람을 싫어하는 경우는 부도덕하거나 심히 게으르지 않고서는 없는 것 같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다한다. 통일운동가인 장기수 어르신을 친부모처럼 대할 때, 마을 아주머니들과 아이들 문제를 제 아이 대하듯 고민할 때도 그렇다. 나에게도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왜 니가 무슨 짓을 해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되고 좋아 보이는지 모르겠다.”
 
사실 그녀는 대단히 사람 좋아 보이는 푸근한 인상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가끔 버럭버럭 소리도 질러댄다. 하지만 이유 불문하고 사람을 믿어 주고, 설령 실수했더라도 다시 돌아 올 수 있도록 열린 문을 터주는 태도에서, 사람을 대하는 법과 사람을 얻는 법을 배운다.
 
올 초에는 3주간 휴가를 가지겠다고 공헌하고는, 지인들에게 자신의 휴가 계획을 메일로 보내면서 투자 비용을 모금하기도 했다. 며칠 상간에 어떤 이는 5만원을, 어떤 이들은 20만원 넘게 보내오면서 그녀의 삶을 후원했다.
 
“언니야. 10년 후에는 뭐하고 있을 것 같노?”
“모르겠다. 이제 마흔인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말하며 한숨 쉬다가도, 몇 달 후엔 마을에 공방과 탈학교 아이들이 올 수 있는 문화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며, 여전히 꿈꾸고 있는 천성 운동가 김혜정. 이러니 내가 그녀를 ‘내 삶의 멘토’로 당당히 꼽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고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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