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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인생은 아름다워>보고 게이 된다고?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0. 10. 6. 19:00

동성애혐오 조장, 에이즈 편견 유포하는 광고를 보고
 
‘<인생은 아름다워>보고 ’게이‘ 된 내 아들, AIDS로 죽으면 SBS 책임져라!’
 
신문 한 면에 난 광고를 보고,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른 성문화를 위한 전국연합(이하 바성연)’과 ‘참교육 어머니 전국모임’이라는 생소한 단체 명의로 나온 광고다. 바성연 참여단체를 보니 기독, 바른, 자유, 나라사랑 같은 단어가 눈에 띈다. 기독교 단체들과 이른바 ‘보수·우익 단체’로 명명될 수 있는 곳들이 주로 사용하는 이름들이다.
 
이번 광고를 보며 기독교계 대학을 다닐 때 접한 동성애혐오자들이 생각났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레즈비언 문화제 자료집을 훔치고, 무지개 걸개를 찢던 그들 말이다. 광고의 논리는  대학 때 동성애자들을 공격하던 기독교인들이 펼쳤던 논리와 너무 똑같았다.
 
잠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독교 사람들이 보는 성경에는 이런 내용들이 나와 있나. ‘동성애자는 에이즈에 걸린 더러운 존재들이므로 절대 가까이하지도 말고, 그들을 보면 최선을 다해 욕하고 때려주어라’ 라고. 이상한 일이다. 난 아무리 열심히 성경을 뒤져봐도 그런 비슷한 말도 못 찾았는데 말이다.
 
동성애자와 에이즈에 관한 편견과 허위사실 유포하고 있어
  

▲ 게이 커플이 등장한 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 SBS TV
 
어쨌든 다시 광고 내용으로 돌아가 보자. 대체 이 광고의 제목은 단어사이의 연결고리가 하나도 없다. 첫째,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고 게이가 된 내 아들’이 그렇다.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고 아들이 게이가 되었다고? 이게 사실이라면 대한민국의 동성애자들은 모두 일어나 경축할 일이다. 이제 우리의 고생은 끝났으니 말이다. 우리의 억압은 끝났다. 바야흐로 동성애자가 다수가 되는 세상을 꿈꿀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동성애자인권단체들은 무슨 수를 동원해서라도 김수현 작가를 포섭하고 방송권을 확보해야 한다.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고 모두 ‘게이’로 돌변한다는데 이정도 못해서야 말이 되겠는가.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그럼 지금까지 김수현 작가의 작품을 포함해 우리나라에서 방영되는 드라마 대부분에는 이성애자들투성이인데, 왜 그녀의 아들은 ‘이성애자’가 되지 않았나? 이상한 일이다. 그렇다면, 그 문제의 아들은 지금까지 드라마를 한 편도 안보다가 ‘인생은 아름다워’만 봤다는 얘긴가? 그럼 간단하다. 게이 아들이 못마땅한 엄마라면, 엄마가 아들에게 다른 드라마를 보여 주면 될 것 아닌가? 그들의 논리대로 드라마 한 편이 아들의 정체성에 끼치는 영향이 그리 절대적이라면, ‘완전 이성애자’들만 출연하는 다른 드라마로 문제를 해결하면 될 일이다. 사실 대부분 99.9%의 드라마에는 이성애자만 등장하는데, 왜 고작 그 드라마 한 편 가지고 이 난리들이냔 말이다.
 
위에서 말했듯, 상식적으로 드라마 한 편 본다고 게이가 되었다가 이성애자가 되었다가 하진 않는다. 정체성 문제가 그렇게 무 자르듯 간단한 일이었다면, 수많은 성소수자들이 그토록 힘들어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이런 주장은 자신의 성정체성의 문제로 고민하고, 자살을 결심할 정도로 고통을 받는 성소수자들을 모욕하고 심리적으로 폭행하는 행위이다.
 
둘째, ‘게이가 된 내 아들이 AIDS로 죽으면’도 논리적으로 인과관계가 설명되지 않는다. 게이는 모두 에이즈 환자가 아니다. 그리고 에이즈에 걸렸다고 모두 죽지도 않는다.
 
광고는 유엔(UN)의 이름을 들먹이며, 근거도 없는 수치를 제시해 동성애와 에이즈에 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동성애자인권연대(동인련)는 성명서를 통해 “UN에이즈계획의 2008년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HIV감염인/환자의 약 70%가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지역에 거주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바성연의 논리대로라면, 아프리카에 동성애자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살고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허무맹랑한 얘기다. 아프리카에 에이즈 발생이 집중된 이유는 동인련이 지적한 대로, “문제의 본질이 ‘빈곤’에 있기 때문이다.”
 
에이즈는 당뇨나 고혈압 같은 다른 만성질환과 마찬가지로, 적절한 치료제를 쓰면서 관리해 주면 충분히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질병일 뿐이다. 광고를 게재한 이들은 그저 질병에 불과한 것을 마치 크나큰 윤리적 형벌인양 몰아간다. 치사하고 비겁하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질병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덧입혀서 동성애자들을 혐오하라고 협박하고 있는 셈이 아닌가. 주님께서도 ‘거짓말은 죄’라고 하셨다.
 
대중선전으로 확대되는 ‘동성애 때리기’
 
▲ '바른 성문화를 위한 전국연합’과 ‘참교육 어머니 전국모임’이라는 단체가 한 신문에 게재한 동성애혐오 조장 광고. 
    

 
제목만 봐도 이 광고가 허위사실과 편견에 근거한 내용임이 명명백백하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수많은 돈을 쏟아 신문에 광고를 게재하는 수고를 하는 것일까. 지난 5월에도 동성애혐오를 조장하는 광고가, 역시 이번 광고가 실린 같은 신문에 여러 차례 게재된 바 있다. 그냥 미워서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수고로운 일이 왜 갑자기 올해 들어 이렇게 줄 잇고 있는 것일까?
 
물론 이 같은 ‘동성애자 죽이기 프로젝트’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그간에는 레즈비언 문화제나 차별금지법 같은 목표물에 대한 집중 공격과 물밑작업, 로비 등의 방식이었다면 최근에는 대중을 향한 선전으로 공격방식이 확대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까지 동성애자는 눈에 잘 안 띄었기 때문에, 굳이 그들이 가진 미움과 혐오를 대중들에게 유포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싹만 골라 잘 밟아주면, 대중들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잘 몰랐으니까. 그런데 이젠 아닌 듯싶었을 것이다. 그간 동성애자는 드라마에서도 가뭄에 콩 나듯 단편극에서 다루거나, 시사프로그램 같은 데서만 등장했었다. 그런데, 주말드라마 그것도 흥행보증수표라는 유명작가의 작품에서 떡하니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그냥 밟고 지나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이들의 활동이 단지 드라마 한편으로 촉발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간 한국의 동성애자 인권단체들과 동성애자 개개인의 노력으로 일궈온 변화들, 그것들이 가져온 긍정적 효과들을 이들도 감지했기 때문이리라. 역설적이게도 이들과 같은 동성애혐오자들의 극단적 반대행동은, 사회구성원으로서 동성애자들의 가시화 정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또한 동성애자를 둘러싼 사회의 긍정적 변화들이 더 많이 일어나고 눈에 띌수록 위와 같은 동성애혐오자들의 반대 또한 더욱 심해질 것이다.
 
광고 말미에서도 “11월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안’의 형태로 동성애를 부추기는 법안이 입법되는 것”을 반대한다고 적고 있다. 동성애자 혐오를 조장하는 세력들은 2007년 차별금지법 제정을 논의하던 당시 차별사유 중 '성적지향'을 삭제하도록 요구했다. 결국 차별금지법은 ‘성적 지향’과 관련된 사유가 삭제된 채 상정되었다가 입법에 좌절된 바 있다. 이들이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처럼, 몰상식한 광고 게재 움직임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둘러싼 전면전을 예고하는 것으로 보인다.
 
종교를 빙자한 동성애혐오와 폭력, 구경만 할 것인가?
 
또 한 가지 짚어야 할 것이 있다. 2007년 차별금지법 제정을 무산시킨 ‘동성애반대국민연합’을 비롯하여, 이번 광고를 게재한 단체들이 내세우는 이름 중 상당수가 ‘기독교’라는 정체성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모든 기독교 신자들이 동성애자를 혐오하지 않는다. 레즈비언권리연구소에서 레즈비언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는 매해 종교를 묻는 문항의 1위를 기독교가 차지하곤 했다. 기독교인 중 많은 수가 동성애자라는 말이다.
 
또 동성애자가 아니더라도 다양성을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올바른’ 기독교 정신을 실천하는 기독교도들도 무수히 많다. 어떤 목사님은 동성애자 단체에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고, 어떤 기독교 모임은 동성애자 행사를 지지하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나 또한 신앙인으로서 내가 가진 동성애자 정체성이 신앙에 위배된다거나 하는 생각은 결코 해 본적이 없다.
 
그러나 모든 기독교도들이 동성애자를 혐오하진 않지만, 많은 기독교도들이 ‘종교적 믿음’을 근거로 동성애자들을 혐오하고 실질적인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몇몇 기독교 그룹은 ‘우린 아닌데 왜 싸잡아 기독교라고 말하는 거야’라고 투덜댄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싸잡히는 것을 투덜대기만 할 뿐, 싸움의 핵심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투덜대기만 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신이 어떤 그룹의 일원이고, 그 그룹의 신념을 더럽히는 사람들이 내부에 있어 문제를 일삼는다면, 응당 뒤따라야 하는 조치는 무엇인가. 당연히 외부에서 그룹전체에 책임을 묻기 이전에, 내부에서 문제를 일으킨 구성원을 설득하거나 추방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문제가 커져 외부와의 다툼으로 이어진다면, 그룹에 속한 다른 구성원이 문제를 인정하고 사과해야 마땅한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 집단에서는 아직 그러한 움직임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동성애자를 지지하거나, 보수 기독교 단체들의 폭력적 행태를 규탄하는 이들은 진보적인 기독교인들 중 아주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앞으로도 이런 폭력, 어쩌면 더한 폭력이 행사될 텐데 동성애자들만 이 싸움에 참여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기독교를 종교로 삼고 있는 당신! ‘난 동성애자 안 싫어하니까 괜찮아’라고 위안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얻어터지는 동성애자들을 구경만 할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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