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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 개발로 사라져간 우리동네
샘말 그리고 나의 추억 이야기  

[일다] 천정연 

우리동네 한가운데에는
아주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옥주상회는 군침도는 과자와 아이스크림으로
하교길 꼬맹이들을 유혹하였다.



느티나무에서 좁은 논길을 따라 걸어오면
간판하나 없는 학복이네 가게가 나온다.


절름발이 주인아저씨는 동네아저씨들과 늘 화투를 쳤고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는 과자도 수두룩했다.
하지만 '한봉지 더' 스티커가 들어있는 과자가 많아서
틈만 나면 나는 삼백원을 들고 달려가곤 했다.


학복이네 앞 공터에는
욕쟁이 할아버지의 연탄가게가 있었다.


새까맣고 고운 흙으로 덮인 공터는
동네 개구쟁이들에게 최고의 놀이터였다.
망까기 삼팔선 오징어 개뼉다구 한발뛰기
특히 다방구를 할 때면 새끼손가락을 걸고 길게 늘어서서
우리를 구해줄 영웅을 기다리곤 했다.


전봇대 너머로 우리들의 숨바꼭질 놀이터
마을회관이 자리잡고 있었다.


명절이면 윷놀이가 푸짐하게 열리고
한여름 복날엔 노인정 할아버지들이 개를 잡기도 했다.
어느 날은 마을회관에 수백권의 책이 들어왔는데
호기심 많은 동네 꼬맹이들이 자주 기웃거렸다.
하지만 열쇠 담당 왕씨아저씨는 좀처럼 문을 열어두지 않았다.


마을회관을 앞으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면
함씨네 앞 너른 터가 나온다.


풀먹인 천을 바람에 말리기 위해 줄지어 서 있던 네모난 잼틀
그 사이사이로 뛰어다니며 우리는 숨기장난을 하였다.


고래등 같은 함씨네 옆에는
아담한 행옥이네 집이 있었다. 

대문 앞 야트막한 돌마루에 앉아
도란도란 소꿉장난을 하였다.


행옥이네를 끼고 골목을 따라 올라오면
초록색 대문의 우리집이 나온다.

꽃밭의 장미꽃이 탐스럽게 붉어지는 6월에는
연례행사처럼 사진기를 들고 나와 사진을 찍곤 했다.
사진 속에서만큼은 소박한 꽃밭도
어느 부잣집 정원 부럽지 않았다.


우리집 공장 끝에는 쪽문이 하나 있었다.

엄마는 그저 장독대를 묻어 놓은 곳이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또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비밀의 문이었다.


우리집 뒤로 나 있는 사잇길로 쪼로록 올라가면
과수원을 하는 구석밭집이 나온다.


해마다 봄이면 향긋하고 연한 쑥이며 냉이가
배나무 아래 소복하게 피어난다.
호미를 든 언니가 능숙한 솜씨로 캐내면
조수인 나는 봉지에 냉큼 받아낸다.
그날 메뉴는 어김없이 구수한 냉잇국과 쑥버무리.


나는 오줌을 잘 못 참아서
급할 때마다 몸을 비비꼬며 화장실을 찾았다.


문이 열려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야박하게 문을 잠궈 놓는 곳에는
바닥에 그냥 오줌을 누었다.
우리동네 화장실에선 지린내가 끊이지 않았던 건
혹시 나 때문이었나.


찌는 듯한 여름이면
엄마랑 언니랑 돗자리를 들고 앞산에 올라갔다.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드리워 논 그늘 아래서
엄마와 언니는 한 잠을 자고
나는 신나게 그네를 뛰곤 했다.

 

어느 집이든 담벼락에는 낙서가 있었다.

내용이 항상
누구 ♡ 누구
누구 누구는 바보 멍청이 였던 걸 보면
우리는 참 상상력이 부족했나보다.




자기보다 큰 책가방을 매고
땅에 끌리는 신발주머니를 든
조그만 꼬맹이에게는
너무나 멀고 멀었던
학교 가는 길 

▲ 신도시 개발로 사라져간 우리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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