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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숙영의 Out of Costa Rica (15) * 코스타리카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필자 공숙영은 현지에서 마주친 다양한 인상과 풍경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코스타리카의 식사 ©www.costaricaphotos.com

이번 봄철에 딸기를 참 열심히 먹었습니다. 끈질기게 딸기를 사서 그냥 먹고 갈아 먹고 조려 먹고, 심지어 실패했지만 소주를 사다가 설탕에 재워 술도 담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딸기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가장 마지막까지 딸기를 팔던 가게에서도 더위 때문에 금방 딸기가 물러져서 곤란하다면서 더 이상 딸기를 갖다 놓지 않습니다. 6월이 되자 여름이라는 듯 거짓말처럼 날씨가 더워진 것입니다.
 
딸기가 사라지고 나니 무척 서운하지만 별 수 없이 다른 것을 찾아야 합니다. 요즈음 주로 눈길과 손길이 닿는 것은 토마토입니다.
 
토마토는 날 것으로 먹는 것보다 익혀 먹는 게 영양학적으로 더 낫다고 합니다. 그냥 살짝 익힌 다음 갈아서 주스를 만들거나 뭉근하게 해서 수프로 만들어 먹는 게 간편해서 좋긴 해도, 가끔은 색다른 토마토 요리법을 찾게 됩니다.
 
토마토 냉국, 가즈파초
 
마침 이 토마토 요리는 더운 날씨에 어울리니 해봄직합니다. 토마토를 익혀먹고 싶다면 익힌 토마토로 만든 다음 차게 해서 먹으면 되겠습니다. 이 요리는 코스타리카에서 배웠습니다. 아니 배웠다기보다는 어깨 너머로 넌지시 지켜보았다고 하는 게 정확합니다.
 

가즈파초 © 출처: 위키피디아

그 날은 물이 안 나오는 날이었습니다. 유럽에서 온 학생들이 그 다음 날에 학교에서 큰 파티를 열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건기라서 물이 잘 안 나왔지만 그게 파티를 열지 못할 이유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필요하면 하고 또 하고 싶으면 하는 것입니다.

 
제가 살던 집에는 프랑스와 스페인으로부터 온 친구들이 있어서, 학교 수업을 마치자마자 집에서 학교로 가져갈 파티음식을 만드느라 집 전체가 북새통이 되었습니다. 물이 안 나와도 모아둔 물로 용케 음식을 만드는 중이었습니다.
 
고소한 음식 냄새가 풍겨오고 시끌벅적한 가운데 옆방의 프랑스 인 친구가 제 방을 노크했습니다. “혹시 물 좀 줄 수 있니? 물을 거의 다 써 버렸지 뭐야.” 이 친구는 빵과 케이크를 척척 굽고 늘 도시락을 싸다니는 솜씨 좋고 알뜰한 살림꾼입니다.
 
물이 든 병을 들고 옆방으로 가자, 모여 있던 친구들이 물이 왔다며 환호했습니다. “좀 도와줄까?”식탁 위에는 토마토가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스페인 친구가 반색하며 내미는 과도를 받아 시키는 대로 토마토를 썰면서 도대체 이 많은 토마토로 무슨 요리를 하려는 건지 좀 궁금해졌습니다.
 
자기 할 일이 다 끝났는지 프랑스 친구도 제 옆에 앉아 토마토를 같이 썰기 시작했습니다. 부엌 한 구석엔 방금 부친 크레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마치 요리강습을 하는 것처럼 스페인 친구는 우리가 다 썰어놓은 토마토를 믹서기에 절도 있게 넣고 차근차근 갈았습니다. 그 광경을 뚫어져라 지켜보며 프랑스 친구는 눈을 반짝였습니다. “있잖아, 난 이거 만드는 법 늘 배우고 싶었거든.”
 
마늘과 레몬즙도 들어간 것 같았는데, 완성된 그것은 토마토 냉국이라고 부르면 딱 걸맞게 생겼고 실제 맛도 그랬습니다. 그 토마토 냉국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나중에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스페인 영화를 보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내가 만드는 가즈파초를 좋아하지.” 결국 사랑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되는 영화 속 주인공은 연인을 위해 이 토마토 냉국을 만듭니다.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에 기원을 두고 있는 가즈파초(Gazpacho)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중남미 지역에서 더울 때 주로 먹는 차가운 토마토수프입니다. 올리브기름, 소금, 식초 등의 조미료를 넣고 기호에 따라 갖가지 야채와 해물, 고기 등을 넣어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고 합니다.
 
“이게 한국식이야?”

스페인 영화 "브로큰 임브레이스" ©출처: 씨네21

코스타리카 생활 초기에는 시간을 아끼려고, 또 사실 솔직히 귀찮아서 요리를 거의 하지 않고 학교 식당이나 빵과 인스턴트 음식에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차차 조금씩 요리를 하게 되었는데, 학교 식사와 인스턴트 음식에 질린 탓도 컸지만 결정적 계기는 학교 친구들이나 동네 이웃들로부터 참석자들이 각자 음식을 준비해가는 포틀럭 파티(potluck party) 형식의 모임에 종종 초대받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초대받고 나서 딱히 별다른 게 떠오르지 않아 야채와 해물을 넣어 부침개를 해갔습니다. 다행히 사람들이 먹어보고 좋아해서 그 뒤부터 모임이 있을 때면 자주 만들었습니다.
 
어느 날엔 엄마가 싸 주신 미숫가루를 반죽에 넣어 부쳐 보기도 했습니다. 잼을 발라 먹으니 그럴 듯해서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국식 팬케이크라며 먹였습니다. 이 많은 미숫가루를 언제 다 먹나 했는데 잘 됐다 싶었습니다.
 
친구들이 제 방으로 놀러 올 때면 주로 국수를 만들었습니다. 제 방의 부엌에는 아주 속이 깊은 큼지막한 낡은 양은냄비가 있었는데, 방에서 그것을 처음 볼 땐 한 번도 꺼내 쓸 것 같지 않았지만 손님들을 위해 국을 끓이거나 국수를 삶을 때 매우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가게에서 파는 다양한 종류의 파스타에 그때그때 있는 재료를 뭐든지 이용하여 국물을 내거나 볶아서 뚝딱뚝딱 마음대로 국수를 만들었습니다. 외국인 친구들이 이게 한국식이냐고 묻기에 짤막하게 답했습니다. “그냥 내 식이야.”
 
세 가지 우유의 맛, 트레스 레체스 케이크
 

트레스 레체스 케이크 ©costaricatourismtransportation.com

가스파초처럼 더운 계절에 제격인, 디저트로 좋은 이것을 먹어본 곳은 동네 빵집이었습니다.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집에서 빵과 케이크를 만들어 팔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우리 이웃들만 그 빵 맛을 알았지만 나중에는 점점 소문이 나서 옆동네 윗동네에서도 사러 왔습니다. 옆집 친구의 생일에 우리를 환호하게 했던 환상적인 맛의 딸기 초콜릿 케이크도 이 집에서 만들었습니다.
 
그 집은 마당에 간이진열대를 두고 어두워지기 전까지 빵을 팔았습니다. 소박한 나무벤치에 작은 탁자도 놓인 아늑한 곳이어서, 시내까지 나가지 않는 다음에야 학교와 숙소 말고는 딱히 갈 곳이 없었던 우리 학생들은 거기에서 커피도 팔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습니다.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빵도 먹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그곳은 우리들의 카페로 최고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주인아주머니는 과묵하니 입을 굳게 다물고 가끔 눈인사만 보내면서 본인이 팔고 싶은 빵만 팔았기에, 카페는 끝끝내 생기지 않았습니다.
 
주말에는 냉장고를 마당에 내다 놓고 차게 보관해야 하는 생크림 케이크 같은 것도 팔았는데, 그것도 바로 그 중의 하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던 조각케이크를 하나 고르려다가 우유가 담긴 유리그릇에 잠겨 있는 처음 보는 모습의 케이크를 발견한 것입니다.
 
이것의 이름은 트레스 레체스 케이크(Tres Leches Cake)입니다. 스페인어로 세 가지 우유의 케이크라는 뜻으로 일반 우유와 농축 연유와 거품 크림, 이 세 가지 방식의 우유에 한꺼번에 적셔서 달콤하고 시원하게 먹습니다.
 
중앙 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에서 즐겨 먹는다는 트레스 레체스 케이크는 우유 대신 럼주나 브랜디 같은 술에 적셔 먹기도 하는 등 다양한 응용법이 있다고 합니다.
 
가끔 여기서도 그 색다른 케이크가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직접 만들어보는 것도 괜찮겠지만 요즈음은 우유 대신 두유를 마시고 있어서, 세 가지 우유 대신 두유나 술에 적셔 먹는 법을 고려해 봐야겠습니다.
 
콩밥과 두부

 

▲ 두부 © 출처: 도깨비뉴스

밖에서 종소리가 들려옵니다. 우리 동네 두부 아저씨의 신호입니다. 매일 직접 만들어 오시는 따끈따끈한 두부는 굳이 요리하지 않아도 사자마자 저절로 야금야금 뜯어먹게 됩니다.

 
코스타리카에는 이런 맛있는 두부가 없었습니다. 물론 코스타리카에서도 대형 슈퍼마켓에서 훈제두부나 튀김두부는 팔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사는 동네에서는 아무런 두부도 구할 수 없었고 더욱이 갓 만든 두부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비록 두부다운 두부는 안 보였지만 코스타리카에서도 콩을 많이 먹습니다. 쌀밥 위에 검은 콩 소스를 듬뿍 끼얹어 콩밥을 자주 해 먹습니다. 학교 식당에서도 점심 때 주로 콩밥이 나와서 콩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은 질겁하곤 했습니다.
 
"징역살이를 속된 말로 '콩밥 먹는다'고 하는 것을 생각하면 출옥한 이에게 두부를 먹이는 까닭을 알 것도 같다. 두부는 콩으로부터 풀려난 상태이나 다시는 콩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두부는 옥살이하지 말란 당부나 염원쯤 되지 않을까." -박완서, <두부>

 
콩밥과 두부의 관계에 대한 이 문장들은 우리나라의 한 여성 작가가 쓴 ‘두부’라는 제목의 산문에 나옵니다.
 
이어서 작가는 학살의 주범으로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전직 대통령이 겸허하게 반성하며 두부를 먹는 모습을 보지 못해 유감이었다는 내용을 써 놓았습니다. 현재까지 건강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 전직 대통령은 본인의 사저 앞에서 자신에 대한 검찰수사는 부당하다는 이른바 ‘골목길 성명’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한편 두부가 일단 잘리고 으깨지면 절대 원래대로 회복될 수 없다는 점 또한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빵집 옆 두부공장 
 
최근 텔레비전으로 두부를 먹는 나라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내용의 방송을 보았습니다. 유럽의 채식주의자들이 동물성 단백질 대신 두부를 다양하게 요리해 먹는 장면이 기억납니다.
 
코스타리카를 포함하여 중남미 사람들도 콩을 즐겨 먹는 만큼 두부도 차차 더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예견해봅니다.
 
그곳에서도 언젠가 누군가가 매일 종을 치며 동네 어귀에 나타나 갓 만든 따끈따끈한 두부를 사람들에게 갖다 주면 좋겠습니다.
 
아, 소박하고 깨끗한 빵집 옆에 소박하고 깨끗한 두부공장이 생겨 동네 사람들이 맛있는 빵과 두부를 즐겁게 먹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꼭. 
 

[코스타리카] 코스타리카에서 먹은 딸기의 맛  커피냐 차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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