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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신의 도서관 나들이(13)  
 
“세상에는 그대 이외에 아무도 걸을 수 없는 유일한 길이 있다. 이 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지? 라고 묻지 말라. 그 길을 그냥 따라가라.” (프리드리히 니체 <반시대적 고찰(1873)> 3부 ‘교육자 쇼펜하우어’>
 
도서관의 책을 읽다 보면, 마치 중독이라도 된 듯 반납과 대출의 끝없는 순환 속에 갇힐 때가 있다. 서가 곳곳에 숨어 있던 흥미로운 책들이 꼬리를 물고 등장해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미처 읽을 짬을 찾지 못한 집안의 책은 한동안 방치된다. 그래서 가끔은 일부러 집안의 책장부터 둘러본다.
 
이번에 내 눈길을 붙잡은 책은 친구가 청소년에게 소개해주라며 건넨 것인데, 일본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학문의 즐거움>(김영사,1993)이다. 이 책은 도대체 얼마나 오래 책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던 걸까? 읽지 못한 까닭에 청소년들에게 권하지도 못했다.
 
촌스러운 책 표지에다 속지도 누렇게 변색되기 시작했다. 제법 나이든 티가 나는 책이다. 친구가 그어놓은 검은 줄이 군데군데 눈에 띤다. 이렇게 남의 손때가 타고 세월을 느끼게 하는 책은 새 책과는 또 다른, 책 읽는 즐거움을 준다. ‘왜 여기다 밑줄을 그은 걸까?’하며 먼저 읽은 이의 기분과 감정, 물음과 생각을 되짚어보는 것도 좋다.
 
일상생활 속에서 만나는 스승들
 

히로나카 헤이스케 "학문의 즐거움" 김영사

“나 역시 책을 통해 천재나 위인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많은 것을 배워왔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과거 50여 년 동안 일상생활 속에서 만난 여러 무명의 사람들에게서 살아가는 자세 같은 것을 보다 많이 배웠다고 생각한다. 가까이 지내던 많은 사람이 내 인생의 스승이었다.” (1장 배움의 길, ‘평범하고 친근한 나의 스승들’)
 
친구가 밑줄 쳐둔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나도 책에서 중요한 것을 수없이 배워왔고, 지금도 여전히 책을 통해 배우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책이 아니라 삶 속에서도,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서 적지 않은 것을 배워왔다는 데 동의한다. 저자는 부모님, 학교 선생님, 친구 등 일상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배운 것들을 우리에게 찬찬히 들려준다. 이 대목을 읽는데, ‘그동안 나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어떤 삶의 자세를 배워왔나?’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버지로부터 어린 아이와 같은 천진난만함과 가식 없는 태도를, 어머니로부터 정직과 성실, 책임감을 배울 수 있었다. 내가 일상 속에서 화초와 농작물을 가까이하고 있는 것은 순전히 텃밭과 화단 가꾸기를 즐겼던 할머니와 함께 살며 눈으로 보고 익힌 덕분이다.
 
또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타인을 배려하는 행동을 제대로 배울 수 있었을까? 지금껏 여러 선생님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아왔지만, 정직한 교사의 모범이라면 단연코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떠올리게 된다. 수학과 시를 함께 가르쳐주셨던 선생님으로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지금껏 내게 배움을 안겨준 사람들이 어디 여기 열거한 사람들뿐이랴.
 
우리 곁에는 이처럼 생생한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 이들이 있어, 멀리 배움을 구하러 가지 않더라도 지금 내 삶 속에서 얼마든지 배움을 퍼올리고 성숙해질 수 있다. 다만 우리가 마음을 열고 기꺼이 배우느냐가 문제일 따름이다. 살면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습득한 배움은, 내가 인식하건 못하건 현재의 내 속에 그대로 배어 있다.
 
우리는 왜 배워야 하는가?
 
예전이나 다름없이 나는 삶에서건, 책에서건, 배우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죽는 순간까지 부지런히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배워야 하는 걸까?
 
좋은 삶, 행복한 삶을 얻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한데, 그 지혜는 배우는 만큼 자란다. 또 지혜가 자라는 만큼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내 대답이다. 우리는 삶 속에서 예상치 못한 온갖 어려움에 봉착한다. 지혜로울수록 이런 고난에 대처할 수 있는 문제해결능력이 커진다. 우리는 인생의 장애물을 하나 둘 슬기롭게 극복해가는 중에 성장하고, 또 성숙해감에 따라 우리의 행복도 조금씩 더 자란다.
 
‘지혜를 얻기 위해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저자의 생각도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는 지식과 지혜를 구별하면서, 배운 지식과 정보는 망각하더라도 지혜는 계속 자라난다고 얘기한다. 나는 지혜가 배움에 비례한다는 저자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배움을 통하지 않는 한, 우리는 우리다운 삶을 만들어낼 수 없다. 나다운 삶은 나의 잠재되어 있는 능력들을 찾아내고 키워나갈 때 가능하고, 새로운 나를 지속적으로 발견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애써 배우는 노력이 꼭 필요하다. 물론 그냥 살아가더라도 배움이 없진 않겠지만, 배우려고, 성장하려고 애쓰면서 살아갈 때만이 나의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삶, 다른 사람의 삶과 구별되는 나만의 특별한 삶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바로 이러한 삶이야말로 <학문의 즐거움>의 저자가 말하는 최고의 인생, 즉 가장 큰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창조하는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인생을 살려면 당연히 배움의 과정이 필수이겠지만, 무엇보다도 배우는 중에 내 욕망을 제대로 읽어내야 할 뿐만 아니라, 배움의 열정이 식지 않을 정도로 배움 자체가 기쁨이어야 할 것이다.
 
나도 배우는 즐거움이 창조의 기쁨으로 이어지는 행복한 삶을 원한다. 배움을 통해 독창적인 삶, 나다운 삶에 이를 수 있다면, 당연히 인생에서 그보다 더 큰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창조하는 삶이 꼭 특별한 사람의 몫은 아니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비록 창의적으로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 쉽지는 않다 할지라도 말이다. 인생에서 무언가를 생산해내는 일, 창조하는 일이 저자처럼 수학적 업적을 달성하는 것처럼 꼭 대단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소해 보이는 것일지라도 상관없다. 엄청난 것을 창조하기 위해서라도 보잘것없는 것을 만들면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이 생각일 수도 있고, 행동일 수도 있고, 물건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시시해보이는 것이라도 일단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엉뚱한 생각일까 봐, 미미한 행동일까 봐, 별 볼일 없는 물건일까 봐 두려워할 필요 없다. 배움을 창조로 연결시키는 것, 끊임없이 배우고 계속 창조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실패하더라도 지혜로워진다. 지혜로운 삶, 창조적인 삶, 행복한 삶을 만들어가는 방법이 그렇다. 나다운 삶은 그렇게 조금씩 만들어진다.
 
결국 행복한 삶은 배움을 통해서 얻어질 수 있으며, 그 배움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가능하다. 그 관계 맺음이 풍부할수록 배움이 더 깊어지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독창적인 삶이란 것도 얼마나 풍부하게 나 밖의 관계로 열리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무수한 관계 속에서 퍼올린 배움을 품고, 자기만의 길을 의연하게 걸어나간다면, 누구나 기쁨에 넘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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