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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이주여성에겐 먼, 중개업자에겐 가까운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08.09.07 17:07


이주여성에겐 먼, 중개업자에겐 가까운
‘등록제’로 바꾼 결혼중개업관리법 시행 앞둬
 

<필자 소라미님은 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소속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일다 편집위원입니다. –편집자 주>

현재 진행하고 있는 소송 중에, 필리핀 여성을 대리해 한국인 국제결혼 중개업자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있다.
 
필리핀 여성 A씨는 보다 윤택하고 행복한 삶을 좇아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으로 결혼이주를 단행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5~6세 가량의 정신연령을 가진 지적 장애 남성이었다. 이미 혼인은 성립된 후였다.
 
중개업체의 허위정보로 인한 피해에 무방비 노출
 
▲ 이주여성들은 중개업체의 거짓정보로 인해 커다란 피해를 입게되지만, 이를 예방지하기 위한 대책은 미흡하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면한 남편의 지적 장애는 그녀를 좌절케 했다. 말도 통하지 않고 어떤 연고도 없는 한국에서 믿고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그”밖에 없다는 사실이 더욱 절망적이었다. 결국 그녀는 코리안 드림을 포기하고 협의이혼을 했다.

 
소송 내용은 필리핀 여성과 한국인 남성 사이에 결혼을 알선한 한국인 브로커가 악의적으로 남성의 지적 장애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혼인동거생활 직후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필리핀 여성은 회복할 수 없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이주여성인권단체를 만나, ‘공감’과 연계돼 필리핀 여성을 위한 소송이 제기되었지만 소송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국제결혼 중개과정에서 중개업자는 모든 자원을 전유하는 권력자인 반면, 이주여성은 자원이 전무한 자에 해당한다.

 
소송 상대방인 중소도시의 중개업자는 사업 파트너인 서울소재 본사 사장과 필리핀 쪽의 중개업자 및 통역자를 한통속으로 하고 있다. 반면 이주여성은 변변한 계약서도 작성하지 못했고, 통역조차 충분히 제공받지 못했다. 국제결혼 중개과정에서 권력은 수수료를 제공한 한국인 남성과, 성혼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중개업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몇 마디 통역으로 이루어지는 단기 속성의 국제결혼 중개과정에서 이주여성의 지위는 ‘선택을 받는 자’인 것이 현실이다.

 
국제결혼 중개업체가 한국남성의 지적 장애 사실을 이주여성에게 전달하지 않아 발생하는 피해 사례는 종종 현장에서 상담 접수되고 있다. 정신적 장애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는 특성으로 인해, 불충분한 통역 서비스와 대량속성으로 이루어지는 국제결혼 중개구조 아래에서 은폐된다.

 
국제결혼 중개업자의 허위 정보 제공 또는 정보의 은폐로 인한 피해는 부주의하게 결혼을 결심한 이주여성의 개인의 탓으로 치부될 뿐이다.

 
취약한 이주여성 현실 감안, 입증책임 전환돼야

 
얼마 전 ‘결혼중개업의 관리에 관한 법’이 국회를 통과해 6월 중순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법의 주요 내용은 ‘국내’결혼중개업은 ‘신고’제로, ‘국제’결혼중개업은 ‘등록’제로 관할 지자체가 지도·감독하겠다는 것이다.

 
또 결혼중개업자에 대하여 ①계약내용 설명의무 및 표준계약서 작성 의무 ②외국 현지법령 준수 의무 ③허위·과장된 표시·광고 및 거짓 정보제공의 금지 등을 의무로서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은 거짓정보를 제공하는 행위에 대해 사후적인 규제만 포함하고 있을 뿐이다. 이미 당사자들 가슴에 시퍼런 멍이 든 후 부가되는 ‘영업등록 취소’가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이 법의 가장 큰 맹점은 결혼중개 행위가 합법적인 상행위로 인정받기 위해 근본적으로 요구되는 “상대방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제공”을 어떻게 사전에 보장할 것인지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법적 절차에 따라 피해를 구제받기 위해서는 이주여성이 입증자료를 준비하고 제출해야 한다. 국제결혼중개라는 위계적 사슬 아래에서 가장 취약한 지위에 놓인 이주여성이 자신에게 유리한 자료를 확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결혼중개업 관리법에는 이주여성들이 처한 어려운 현실도 간과되었다.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결혼이주여성의 입증책임을 완화하거나, 결혼중개업자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였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도록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규정이 보완되지 않는다면, 결혼중개업체로부터 피해를 입은 결혼이주여성이 국내 법적 절차를 통해 피해를 구제받기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주여성들이 입는 피해를 사전에 예방하고 사후에 구제하기에는 너무나 먼 법이 ‘합법’이라는 날개를 달아 ‘문제적’ 국제결혼 중개행위를 더욱 조장한다는 오명을 쓰지 않기 위해서는 법 시행과 동시에 개정과 대안 마련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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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2 [15:39] 여성주의 저널 일다 바로가기 ⓒ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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