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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환경미화 노동자들의 자긍심 찾기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0. 4. 22. 09:40
[르포] 이화여대 환경미화 노동조합을 만나다③ 
 
올해 1월 27일, 이화여대 환경미화 노동조합이 출범했다. 노동조합은 용역업체와의 단체협상에 앞서 대학 측에 면담을 요청했다. 환경미화 노동자들이 고용된 ‘인광’과 ‘동서기연’은 이화여대에서 계약한 용역업체다. 때문에 노동조건을 개선하거나 임금을 인상하는 것은 용역업체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미화노동자들의 요구 중 하나인 ‘휴게실 개선’ 문제만 하더라도, 학교의 허가 없이 해결될 수 없었다. 미화노동자들의 일터인 이화여대에서 노동조합의 존재를 인정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학교 측은 노동조합의 면담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환경미화 노동자들은 이화여대에 소속된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협조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우리도 이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에요”
 

이화여대 환경미화 노동조합 조합원 총회

요청한 면담 날, 노동조합은 항의의 뜻을 전하기 위해 총무처로 향한다. 미화노동자와 학생들이 들어가자 회의 중인 교직원들이 놀라 일어선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우리가 오죽하면 찾아 왔겠어요.”
 
교직원들과 학생들 간에 실랑이가 벌어진다. 이런 일을 처음 겪는 미화노동자들 몇몇은 뒤에 서서 숨을 고르며 마음을 진정시킨다. 교직원이 말한다.
“이건 동서와 인광 문제예요. 그 회사 가서 해결하지, 여기 와서 뭣들 하는 겁니까. 우리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교직원들의 반응에 미화노동자들이 하나 둘 입을 연다.
“이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에요. 상관이 없다니요.”
“우리가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는 알고나 있으세요? 우리가 어떤 곳에서 지내는지, 휴게실이 어떤지 알고는 있으시냐 말이에요.”
 
처장이 말을 막는다.
“아줌마들 사정이 딱한 건 압니다. 아주머니들이 개별적으로 찾아와 이야기를 하시면 들을 수는 있어요.”
“우리는 노동조합으로 온 거예요. 우리가 혼자였다면, 어떻게 이 높은 곳에 찾아와 이야기나 할 수 있었겠어요.”
 
이번에는 학생들이 항의한다.
“아주머니라뇨. 여기 계신 분들은 조합원 자격으로 온 거에요.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으시는 건가요?”
노동조합의 인정 여부를 묻는 말에 교직원들은 대답을 하지 않는다.
 
“조합원이라는 직책이 있고, 분회장이라는 직책이 있는데 왜 자꾸 아주머니라고 하세요? 일 부리는 사람처럼 대하면 무슨 대화를 할 수 있겠어요?”
항의가 이어지자, 교직원이 정색을 한다.
“아주머니란 말이 뭐 어때서요? 저도 어디 나가면 아줌마 소리 들어요.”
학생 하나가 맞받아친다.
“총무처 아주머니, 이렇게 불리면 좋으세요?”
순간 교직원의 얼굴이 굳어 딱딱해진다.
“아니잖아요. 기분 나쁘시잖아요. 본인도 듣기 싫은 호칭으로 부르는 건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무시하는 것밖에 더 되나요?”
교직원이 아직 풀리지 않는 얼굴로 한마디를 내뱉는다.
“괜찮아요. 기분 안 나빠요.”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면서 찾아온 변화
 
“우린 안 괜찮아요.”
총무처에서 나오며 학생 하나가 말한다.
“아줌마라고 했을 때 딸려오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사회생활을 하고 자기 일을 하는 노동자인데도 아줌마라 굳이 부르는 거 문제라고 봐요.”
 
아줌마는 생계 부양을 책임지는 남편을 두고 가사를 주업으로 삼는 여성을 지칭하는 의미로 흔히 쓰인다. 일하는 여성에게 ‘아줌마’라는 이미지를 부여하는 것은, 그녀가 하고 있는 일이 가사일의 연속일 뿐이라는 생각을 심어준다.
 
실제 여성들 중 많은 수가 청소, 식당일 같은 돌봄노동이나 감정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생계부양자인 남성의 일을 돕는 정도로 치부되는 그녀들의 노동에는 자연스럽게 ‘저임금’ 조건이 따라온다.
 
그러나 막상 학생들조차 미화노동자들을 부르는 호칭에 있어 막막함을 느낀다. 노동조합 설립 전부터 연대를 해온 이혜정 학생은 ‘말’ 자체가 없다는 걸 지적한다.
 
“부를 말이 없어요. 50~60대의 여성을 지칭하는 단어 자체가 없는 거예요. 다른 학교나 노동조합에서는 ‘어머니’라 부르기도 하지만, 그 말에도 문제를 느껴요. 돌봐주는 여성이라는 의미가 들어가니까요. 그런데 이것저것 빼고 나면 부를 말이 없긴 해요. 노동조합 가입하신 분들은 ‘조합원’이라 부르면 되지만, 아닌 분들은 딱히 (호칭이) 없어요.”
 
어르신, 선생님 등 다양한 호칭이 오간다. 오히려 ‘아주머니’라 부르는 것은 미화노동자들 자신이다. 그녀들은 총무처 면담에 가거나 학생들을 만날 때 자신들이 어떤 고생을 하는지,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알아달라며 ‘우리 아줌마들’이라는 표현을 쓴다. 상대에게 자신을 낮추기 위해 쓰는 말이다. 이것은 역으로 그녀들이 ‘아줌마’라는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신복기 분회장에게 물었다.
“아줌마, 아주머니라는 불리는 거 어떠세요?”
“뭐 다들 그렇게 부르는데. 아주머니라고만 불러도 괜찮아. 아줌마는 좀 그래. 아줌마, 이거 해줘요. 이러면 그건 무시 같지.”
 
학생들이 슬쩍 노동조합을 함께 만들어오면서 섭섭했던 일을 하나 꺼내 놓는다.
“여대니까 여학생들 밖에 없잖아요. 여자들이라 힘도 없다고 못믿겠다 하시는 분들도 노동조합 만들 때 있었어요.”
 
나 또한 본 일이다. 노동조합이 창립되기 이전이었다. 학생들이 휴게실을 방문해 옆 학교 노동조합에 대해 이야기하자, 미화노동자 한 분이 말했다.
“거긴 남학생들이 있잖어.”
 
순간 휴게실에 있던 학생들의 표정이 씁쓸해졌다.
“남학생이 발언하거나 앞에 서면 조합원분들 호응이 더 좋아져요. 든든하다고 말씀하시고 그래요. 저희는 농담으로, 그걸 ‘남학생 이데올로기’라고 불러요.”
 
신복기 분회장이 웃으며 농으로 무마한다.
“그건 다 옛날이야기지. 우리 학생들 분발하라고 그런 거야.”
학생들은 반은 믿고 반은 속아주는 얼굴로 같이 웃는다.
 
“사실 노동조합 만들어지고, 경비분들이 미화노동자분들 지나가면 ‘아주머니, 대단하십니다’, ‘여사님, 굉장해요’라고 하신데요. 조합원분들 스스로가 무언가를 해낸 거잖아요. 그런 경험들이 여자라서 안 된다, 여자라서 못 미덥다는 생각들을 조금씩 사라지게 할 거 같아요.”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후의 변화를 홍보람 학생은 이렇게 말한다.
 
“처음에는 학생들만 믿는다던 분들이 이제는 직접 선전전도 하시고 앞장서세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감동이에요. 사회적 지위가 낮기에 부당하게 대우 당하는 게 당연했던 분들이 자신감을 얻어가는 모습을 보면요. 노동조합 활동을 해서 임금이 오르고 이런 것만이 아니라 노동자로서, 한 명의 개인으로서 자존감을 높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가정에 치이고, 돈 버느라 자신을 돌볼 시간이 부족했던 분들이 노동조합을 통해서 ‘나’를 바라보고, 아끼고 행복해지셨으면 좋겠어요.”
 
아줌마, 할머니가 아닌 ‘나’로서 산다는 것
 
이런 바람들 속에서 3월 17일 작은 강좌가 열렸다. <아줌마가 아닌 할머니가 아닌 나로서 산다는 것>이라고 이름 붙였다. 학생들이 그동안 고민해온 주제였지만, 당장 시급한 노동조합의 일들을 처리하느라 시도하지 못하다가 우연한 기회를 얻었다.

 
미화노동자들 앞으로 ‘레드다이어리’가 온 게다. 레드다이어리는 ‘50대 여성의 자서전 쓰기’를 고민하는 창작집단 ‘자기’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자기 삶을 기록한다는 의미의 다이어리였다. 다이어리를 어떤 방식으로 조합원들에게 나누어 드릴까 하는 고민 끝에 강좌를 겸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급히 다이어리를 제작한 ‘자기’에 연락을 했다. 강좌를 준비하며 걱정이 많았다. ‘자기’의 묘운씨는 어떻게 시작할지를 제일 고민했다고 한다.
 
“어떻게 접근할 건가.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프로그램을 접해보신 적이 없고, 당장의 필요성도 느끼지 않을지 모르는데, 어떻게 하면 지루하지 않게 다가갈까. 그 고민을 많이 했죠.”
 
이혜정 학생이 덧붙인다.
“홍보를 하긴 했어도, 강좌 당일 날 퇴근하는 오전반 분들을 거의 끌고 오다시피 했어요. 다이어리라는 말도 낯설어하실 것 같아서 수첩 드린다고 하고서요.”
 
당일, ‘수첩 준다고 왔는데’ 하며 미화노동자 서른 명이 강의실에 들어온다. 얼굴을 볼 기회가 전혀 없던 동서기연과 인광 노동자들이 섞여 앉는다.
 
사회를 맡은 이혜정 학생이 강좌를 소개한다.
“할머니 아줌마 약간 비하되는 느낌이 있잖아요. 누군가에게 불리는 할머니나 아줌마가 아니라, 나에 대해서 바라보는 시간이에요.”
 
더불어 학생들은 노동조합 일로만 만나오던 미화 노동자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떤 자기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지를 함께 나누고 싶다고 말한다.
 
조를 나누고 학생과 미화 노동자들이 함께 둘러앉는다. 이야기를 꺼낼 매개체로 자신의 ‘애장품’과 ‘장점’을 말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러나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조도 있고, 어느 건물이 일이 많고 적은지 청소에 관한 이야기만 하는 조도 있다.
“장점이 없어.”
“뭐 얘기할 만한 게 있나.”
 
다들 이야기를 피할 때, 한 미화 노동자가 입을 연다.
“우리 집에 열대어를 키우는데, 이게 장난이 아니야. 온도도 잘 맞춰야 하고, 밥도 딱 정해진 만큼만 줘야 하는데, 가끔 내가 자리 비우고 그러면 애들이 잘 못 돌봐서 죽일 때도 있어. 그럴 땐 얼마나 속상한데.”
 
같은 조에 있던 학생이 장점을 쓰는 종이에 ‘열대어를 잘 돌본다’라고 쓴다.
“그게 장점이네요.”
“그래? 그야, 열대어 키우는 게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데. 쉬운 일이 아니야.”
 
슬슬 자랑거리들이 나온다. 법학관에서 일하는 강순덕씨는 자신의 장점을 이렇게 소개한다.
 
“저희 동네에 독거노인들이 많이 계셔요. 그분들 찾아가서 이야기를 들어줘요. 그럼 그분들이 너무 좋아하세요. 나도 나중에 늙으면 다른 사람이 나를 찾아와서 이렇게 이야기를 들어주겠구나, 그 생각을 하면 행복을 느껴요. 그분들 이야기는 다음에 뭐가 나올지 다 알아요. 왜냐면 갈 때마다 똑같은 이야기를 하시니까. 그래도 제가 들어드리면 그분들이 용기가 생겨서 막 이야기를 해요. 그분들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마음에 여유가 있어서 내가 내 스스로에게 감사해요.”
 
그동안 노동조합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지 않았던 어떤 조합원은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이야기해 다른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자신의 애장품을 ‘바이올린’이라고 소개한 그녀는 어릴 적 바이올린을 켰지만 막내딸이라는 이유로 더는 배우지 못했다고 한다. 그게 억울해서 지금도 문화센터를 찾아다니며 탱고, 왈츠 등을 꾸준히 배운다. 장점을 쓰는 종이에 ‘탱고’, ‘왈츠’가 써진다.
 
이날 나온 그녀들의 장점 중 몇 가지를 옮겨 본다.
 
혼자서 밥 잘 먹는다 / 잘 웃는다 / 침실에서 혼자만의 여유를 즐길 줄 안다 / 누우면 바로 잠든다 / 하루에 꼭 한 시간씩 운동한다 / 양보 잘한다 / 수 잘 놓는다 / 청소 잘한다 / 노래 잘한다 / 춤도 잘 춘다 / 옳은 말만 한다 / **씨는 엉덩이가 예쁘다 / 편지 쓰기를 좋아한다 / 무한도전을 꼭 시간 맞춰 본다 / 발이 예쁘다 / 머리 스타일이 예쁘다/ 왈츠 /  탱고 / 오지랖이 넓다 ……
 
어색했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어느새 강의실이 왁자지껄하다. 그러나 강좌는 예상치 못한 방해로 중단된다. 인광 관리반장이 미화노동자들을 부른 것이다. 계약상 지정된 쉬는 시간이었지만, 이 시간에 일을 지시하거나 조장 모임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미화노동자들이 하나둘 강의실을 나선다. 처음에는 안 가겠다고 버티던 조합원들도 결국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허탈하지만, 남은 것이 있다. 창작집단 ‘자기’의 여름씨는 강좌를 진행했지만 오히려 배운 것들이 있다고 한다.
 
“애장품을 말하는 시간이었는데, 어떤 분이 이 나이가 되면 보물이 없어. 손에 꼭 쥐고 못 놓겠다 하는 게 없어진다고, 가벼워진다고 하셨어요. 아, 그렇구나. 나이가 들면 그렇구나. 그런 사고와 감정이 드는구나. 이런 걸 저도 알게 됐죠.”
 
양진선 학생은 미화노동자, 그녀들의 역사에 대해 생각한다.
“중년여성들이고 하니까 다 비슷한 과거와 시간, 기억을 가지고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사실 생각도 안 하고 막연히 그럴 거라고 여겼는데. 막상 강좌에서 그분들의 다양한 과거사를 들으니까, 다 자기 역사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 같겠지 하고 생각해 왔던 게 부끄럽기도 했고요.”
 
학생들만 미화노동자들을 다른 시각으로 본 것은 아니었다. 인문대에서 일을 하는 이진선씨는 이런 자리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재밌었어. 1년에 한번 일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야유회를 가긴 하는데, 내 돈 내고 가야하고 그러니 쉬는 게 낫다면 안 가는 사람도 많아. 가서도 먹기만 하지 이야기하고 이런 거는 없어. 이렇게 얘기하고 듣고 그런 건 처음이지. 누가 뭐하는지 뭔 생각을 하는지를 들은 건.”
 
 ‘자기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말에 그녀들을 떠올린다. 취재하면서 만난 미화 노동자들은 ‘아줌마’로 묶이기엔 너무 다양한 모습들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自己 역사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기 전, 한 노동자는 수차례나 담당 건물이 바뀌었다고 한다.
“적응될만하면 이리로 가라하고, 적응될만하면 저리로 가라하고. 내가 하도 옮겨 다녀서 사교성? 그게 좋아졌어. 이제는 사람들하고 조금만 지내도 금방 친해져.”
 
몇 달 주기로 일하는 장소를 전환시키는 것을 일명 ‘뺑뺑이’라고 했다. 왜 이렇게 여러 차례 뺑뺑이를 당했냐고 묻자 ‘반장에게 할 말을 다해’ 미운털이 박혀서란다. 지금은 그만둔 동서 기연 반장이 있을 때였다.
 
“원래 바른 말을 다 하시는 성격인가 봐요.”
그러자 그녀가 손사래를 친다.
“아냐. 내가 남한테 못 나서고 옛날엔 안 그랬는데 시어머니랑 같이 살다보니 밖에서는 안 참게 됐어. 집에서 시어머니한테 많이 참으니까.”
 
예상치 못한 대답에 내 쪽에서 웃기만 하는데, 그녀가 덧붙인다.
“그래도 요즘은 시어머니한테 다섯 번까진 참고 한번은 대들어.”
 
다른 휴게실을 방문한다. 점심시간에 보통은 잠깐 눈을 붙이고 허리도 펼 겸 누워 있는데, 한 조합원이 깨알 같은 글씨가 가득한 서류를 보고 있다.
“뭐 보세요?”
“우리 동네 재개발된데. 공부해야지.”
옆에서 같이 훑어보니 어려운 한자 용어가 가득하다. 그녀가 말한다.
“두 번은 더 봐야 해.”
 
신복기 분회장을 찾아가 가족들 반대는 없냐고 물으니 고개를 젓는다. 오히려 며느리에게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아들이 집에 오면 ‘아이고, 분회장님 오셨습니까’ 해. 며느리는 나보고 ‘어머니, 여대에서 노조 하니까 이제 여성 해방 운동 하세요’ 라고 하고. 원래 며느리랑 나는 잘 맞아.”
학생들이 그 말을 맞받아 “분회장님을 국회로” 라며 장난을 친다.
 
물론 그녀들은 퇴근을 하자마자 밥한다고, 애 본다고 뛰어간다. 또 다른 벌이를 하러 가는 이도 있다. 부분회장, 대의원이라는 직책을 맡았음에도, 남편이나 가족에게 말 못하고 몰래 노동조합 활동을 하기도 한다. 아예 남편의 반대 때문에 가입도 못하는 이도 있다.
 
남편이나 자식이 버는 것만으로는 생활이 빠듯해 일을 하기도 한다. 몸이 말짱한데 놀면 뭐하냐며 가사 노동을 집에서 노는 것으로 생각해 일을 나오기도 한다. 이 나이에 써주는 데 없다면서 해고될까 봐 벌벌 떨기도 한다. 그녀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공통분모 속에서도 그녀들은 각기 다양한 ‘자기自己’이다. 학생들은 미화노동자들과 함께 이날 강좌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노동조합은 임금인상, 고용안정, 외곽청소 업무분리, 인원확충, 식대지급 등의 요구를 걸고 용역업체와 8차례의 교섭을 했다. 업체는 월 3만원 식대와 인력 보충 3명, 명절 상여금 10만 지급 안을 내놓았다. 교섭은 결렬됐다. 4월 16일, 이화여자대학 환경미화 노동조합은 쟁의 행위에 대한 찬반 투표를 진행했다. 98.5%로 가결되어 현재 파업을 앞두고 있다. (희정) 일다 [관련 기사 보기] 노조를 만든 날 “오늘이 제일 좋아, 제일 재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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