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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남한강에 가다 
 
4월 10일 아침, 버스는 남한강을 향하고 있다. 낯선 얼굴들이 자기소개를 마치자 ‘남한강 기행’에 스텝으로 참가한 환경운동연합 한숙영 간사가 울음을 터트린다.
 

4대강 공사 현장을 직접 눈으로 점검하기 위해, 4월 10일 남한강 기행에 나섰다.

“경부 운하 때부터 4대강 사업까지 지켜보며, 어떻게 해도 안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절망하고 주저하는 날들이 많았다. 그런데 오늘 오신 분들을 보니, 많은 분들이 각자가 할 수 있는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고 계시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그녀의 울음이 당혹스러웠던 것도 잠시, 4대강 사업이라는 현실이 서서히 다가온다. 600킬로미터가 훨씬 넘는 4대강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조사가 4개월도 되지 않아 완료됐다. 4대강 공사의 문제점에 대한 보도는 제도권 언론에서 자취를 감췄다.
 
환경운동가 최병성 목사와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이 준비한 이번 남한강 기행에는 블로그, 트위터 이용자 등 20여명이 함께했다. 제도권 언론이 보도하지 않은 4대강 공사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진실을 알려내기 위해서다.
 
4대강 공사 국민의 허락을 받은 겁니까?
 
2시간 남짓 갔을까, 버스에 탄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사람들을 시선을 좇아 창밖을 본다. 눈에 들어오는 건 대규모 공사 현장이다. 포클레인이 분주히 오가는 길목으로 진흙탕 물이 흐르고, 육중한 크레인이 솟아 있다. 서울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공사 현장인지라 무심히 보다가, 이곳이 원래 강이었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는다.
 
“강천보 공사 현장입니다. 강 가운데를 나눠 한쪽 강물을 다 빼낸 자리입니다. 강물을 빼내고 수심 3미터로 강바닥을 파내고 있습니다.”
 
공사 현장 옆으로 흐르는 나머지 반쪽의 강만 아니었다면 포클레인이 지나다니는 저곳도 불과 한 달 전에는 강이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공사 현장과 맞닿은 강물이 뿌옇다.
 

강 가운데를 나눠 한쪽 강물을 빼내고, 수심 3m로 강 바닥을 파내고 있는 강천보 공사 현장

“밑에 흙탕물 보시죠. 오탁방지막이라고 해놨지만 흙탕물이 그대로 흘러들어가고 있습니다.”

 
정부는 흡입식 오탁방지막을 설치하여 4대강이 공사 현장에서 나온 흙탕물로 오염이 되지 않게 관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오탁방지막의 효율을 75%라 발표했다. 그러나 이 수치는 평균 유속이 20cm/sec일 때의 경우이다. 남한강 공사구간의 평균 유속은 80cm/sec를 넘는다. 탁수를 거르는 하얀 천들이 물살에 쓸려 수면에 그대로 떠 있는 게 눈으로도 확연히 보인다. 공사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강에서는 수면 위로 들려진 오탁방지막 천에 물새가 앉아 쉬고 있다.
 
유원일 의원의 설명에 따르면 폭이 40미터가 넘는 보 수문을 건설하는 공사가 남한강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파나마 운하의 폭도 35미터에 불과하다. 파나마 운하보다 큰 수문을 만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유원일 의원은 “운하”라고 말한다. 국민들의 반대로 저지된 대운하 사업이 4대강 정비 사업이라 이름을 바꾸어 진행되고 있다.
 
강 저편으로 현대건설, 대림건설 등 건설사 푯말이 보인다. 건설사 중장비가 강바닥을 부지런히 오간다. 현대 건설 직원들이 공사 현장에 더 가까이 가려는 참가자들을 막아선다. 순식간에 실랑이가 벌어진다. 안전장비를 갖추지 않아서 공사 현장에 갈 수 없다는 현대건설 직원들은 안전모를 준비해달라는 참가자들의 요구를 무시한다.
 
“이 공사 국민들 허락 받은 겁니까?”
 
참가자들의 항의에 현장 소장이 맞받아친다.
“우리가 국민한테 왜 허락을 받아!”
 
국민들의 허락이 아니라면, 누구의 허가를 받은 걸까. 참가자들을 밀치는 현대건설 직원들을 향해 누군가가 말한다.
“국회의원이랑 와도 이 정돈데, 그냥 일반 시민들이 오면 어떻게 대할지 뻔히 보인다, 보여.”
 
유원일 의원은 이들을 향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표현한다. 환경단체들을 비롯한 사회단체들이 4대강 공사 현장에서 자행되는 불법과 탈법을 아무리 고소, 고발하여도 제대로 된 현장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이다.
 
“지금 보는 이 여울도 사라질 겁니다”

 
아직 공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은 바위늪구비 일대를 걷기로 한다. 5킬로미터 정도 걸어야 한다는 말에 긴장을 하는데, 최병성 목사가 말한다.

 
“이 길도 이제 한 달만 지나면 볼 수 없을 겁니다. 남한강의 마지막인 모래땅과 자갈밭이라는 걸 생각하시면서 조금 힘들어도 걷도록 하겠습니다.”
 
폭 200미터, 깊이 6미터로 강을 넓히고, 11미터 높이의 보 20여개를 건설하는 대규모의 공사가 이리도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오히려 현실감이 사라진다. 현실을 깨우쳐 주는 건 포클레인에 뿌리가 파헤쳐진 갈대더미들이다.
 
“여기가 습지였습니다. 버드나무, 갈대 군락이 여기서부터 죽 이어졌는데, 지금 나무가 보이시나요? 전혀 없죠? 습지가 다 파괴됐습니다. 철새들의 보금자리이자, 홍수를 방지해주는 습지를 없애고 있어요.”
 
최병성 목사의 설명을 들으며 길을 걷는다. 오른편에 흐르는 강은 육안으로 보기에는 아직 맑다. 한참을 걸었다. 내 옆으로 갈대가 쓰려져 있다는 충격도 점점 사라진다. 그러나 이번 기행에 참가한 여성운동가 오한숙희씨는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그녀가 13년을 살아온 마을이 4대강과 같은 상황을 겪었다.
 
“집 근처가 1급 절대농지였어요. 김포시가 시 재정을 충당한다는 이유로 택지 개발을 한지 몇 해만에 농지에 아파트가 들어섰어요. 마을 뒷산이 있는 자리에는 제방 도로와 김포대교를 연결하는 도로가 났고요. 도로를 낸다고 했을 때 주민들이 반대하지 않았어요. 상권이 형성돼서 집값이 상승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던 거죠. 그 결과, 산 두 개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실제로 만들어진 건 고가도로예요. 집 뒤로 고가도로가 났는데 그 소음은 어찌하며, 누가 그 집에 살러 오겠어요? 무슨 상권이 생기고요.”
 

폭 200미터, 깊이 6미터로 강을 넓히고, 11미터 높이의 보 20여개를 건설하는 대규모 공사가 신속하게 진행중이다.

오히려 십여 년 동안 살면서 한 번도 겪지 않은 황사를 산이 없어진 이후로 겪고 있다고 한다. 공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제 와서 후회한다 해도 되돌릴 수 없어요. 요즘은 그 옆으로 경인 운하가 만들어지고 있어요. 우리 집 앞에 농업용수로가 있었어요. 백로하고 두루미가 그곳에 서식을 했어요. 그 길을 막아서 도로를 만들어 놓으니까 새들이 안 날라 와요. 물이 흐르는 것 같지만, 생명체들이 날아오지 않아요. 죽은 물이기 때문에 오지 않는 거예요. 그럼 걔네들은 어딜 갔을까요? 서식지에서 쫓겨나, 갈 곳 없어 죽는 거예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산 두 개가 초토화 돼서 평지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그 산에 의지하고 10여년을 살았던 사람으로서는 끔찍한 일이에요. 자기 신체 부위가 다 해부되는 그런 느낌이에요. 나무뿌리들이 파헤쳐지는 거를 보고 있자면 내 내장이 드러나는 통증을 그대로 느껴요. 그건 이 자연과 산의 풍경에 의지해 살아본 사람이 아니라면 모를 거예요. 여기도 마찬가지예요. 여기 사는 사람들이 이 강과 자연을 보고  의지해서 살았을 거 아니에요. 이게 황폐해지는 걸 본다는 건 고통이자 고문이에요. 이걸 보기 싫으면 떠나야 해요. 저는 이걸 신개념의 이재민이라고 해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신개념의 이재민이 생겨나고 있어요.”
 
도시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자연과 동일한 고통을 느낀다는 말을 올곧이 이해할 수 없다. 사실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강주변의 풍경이 낯설지도 않다. 다른 일행에게 이런 감정을 전했더니, 그가 되묻는다.
 
“한강에 익숙해져서 그런 게 아닐까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했다. 나는 한 번도 서울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다. 나에겐 원시적인 강의 풍경보다는 중장비가 지나간 인공 상태의 강이 더 익숙하다. 본래 의미의 ‘자연’이라 불리만한 것이 없는 도시에 대해 오한숙희씨가 말을 덧붙인다. 
  
“그나마 자연이 백그라운드로 있기 때문에 도시가 정화되고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건데, 눈에 안 보이니까 사람들은 그걸 몰라요. 자신이 그곳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4대강을 강 너머 불구경하듯 보지만 언젠가는 이 공사의 피해가 우리 모두에게 올 거예요.”
 

여울과 소와 모래톱이 있는 것이 '강'이다. 4대강 공사는 이 세 가지를 모두 없애버리고 '수로'를 만드는 것이다.

저 멀리 푸른빛이 어스름하다. 도리섬이다. 그 풍경을 감상하는데, 이미 저 곳에도 공사가 진행 중이라 한다. 모래밭이 펼쳐지자, 사람들이 하나둘 신발을 벗는다. 맨발로 모래길을 걸어가다 보니 강 여울에 다다른다. 최병성 목사가 앞장 서 강에 들어간다. 봄이라고 하지만 날이 풀리지 않아 강물이 얼음장 같다.

 
“한 달도 되지 않아 이 여울도 사라질 겁니다. 앞으로는 보지 못할 여울에 발을 담그고, 여러분의 추억을 남겨보길 바랍니다.”
 
최병성 목사의 말에 따르면 강은 물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물만 있는 것은 수로일 뿐이다. 여울과 소와 모래톱이 있는 것이 강이다. 산소를 공급하여 물을 정화시키는 여울은 사람의 폐에 해당하는 기능을 한다. 또한 여울은 수심이 얕기 때문에 어류들이 알을 낳는 산란장의 역할도 한다.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에만 있는 희귀어류인 돌상어, 배가사리 등이 남한강 여울에서 알을 낳고 살아간다. 최병성 목사는 강의 원시적인 모습을 없애고 수심과 폭을 인위적으로 동일하게 만들려는 4대강의 미래를 서울 한강에서 찾는다.
 
“한강에는 물고기 인공 산란장이 있습니다. 한강은 물고기가 인공적으로 산란할 수밖에 없는 강이라는 거죠. 여울과 모래밭을 없애고, 콘크리트로 강 주변을 바른 한강이 바로 4대강의 미래입니다. 생명이 살 수 없는 강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4대강 사업이 이명박 대통령만의 문제라고는 안 봐요”

 
우리 일행은 수경 스님이 계신 신륵사로 향했다. 가건물에 ‘여강선원’이라는 이름을 붙인 암자가 보인다. 이곳은 수경 스님이 4대강 사업으로 인해 고통 받는 생명을 위로하고, 참회의 기도를 하는 곳이다. 그 기도가 무색하게도 신륵사 뒤편으로 남한강 공사 현장이 굽어보인다.
 
“저는 4대강 사업이 이명박 대통령만의 문제라고는 안 봐요. 드러나고 있는 이 현상은 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우리의 삶의 내용이 4대강 공사로 표출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삶을 내밀하게 진단하고 성찰하지 않는 한, 이 문제를 해결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것은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님의 말을 들으며 한순간도 쉬지 않고 건물을 세우고 땅을 넓히고 길을 내는, 공사 먼지가 가득한 서울을 떠올린다. 자연에서 나는 것을 얻고, 제 손으로 먹을 것을 얻는 공간이 아니라, 누군가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생명을 상품으로 만드는 방식에 익숙한 도시의 삶을 생각한다. 그 삶을 부정하지 않는 우리가 4대강 사업을 인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신륵사를 지나가던 방문객들이 기행 참가자들 사이에 서서 수경 스님의 말씀을 경청한다.
 
모든 생물이 잘 사는 땅은 사람도 살기 좋다
 

살아 있는 강을 죽이면서 "한강 살리기"라고 홍보하는 4대강 사업, 우리 사회와 삶의 내용을 반성해야 할 때다.

마지막 목적지는 여의도 한강이다. 길이 막힌다. 누군가 여의도에 한창일 벚꽃 축제 때문에 길이 막히는 거라고 한다. 경제를 위해서 한편에서는 나무를 베고, 한편에서는 인위적으로 벚꽃 나무를 심어놓고 행사를 벌인다. 그러나 그런 모습조차 사람은 자연을 곁에 두고 살 수밖에 없다는 걸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게 아닐까. 이기적일지라도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위안을 얻고 싶어 한다. 사람들이 청계천과 르네상스 한강을 찾는 이유는 그곳에 화려한 조명과 인공 분수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곳에 흐르는 물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책에서 본 구절이 떠오른다.
“모든 생물이 잘 사는 땅은 사람도 살기 좋고, 모든 생물이 잘 살지 못하는 땅은 사람도 살기 나쁘다.”
 
모두가 잘 사는 땅과 물이 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어리석음을 지우고, 우리를 다잡아야 하는 것일까? (윤희정)   [일다 캠페인] “4대강 사업 막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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