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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 이후의 연극 <여자 이야기>
연극 <여자 이야기>에는 여섯 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그녀들은 직장여성, 주부, 연극배우, 청년백수, 백화점 점원, 인턴사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결혼을 한 여자도 있고, 아닌 여자도 있고, 직업을 가진 여자도 있고, 아닌 여자도 있다. 서로 각자의 무게만큼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그녀들의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된다.
중요한 회의를 앞두고 있지만 아이가 문 밖으로 나오지 않아서 애를 먹는 일하는 엄마, 88만원 세대로 대표되는 인턴, 카드 대금에 쩔쩔매는 화점의 판매직,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유명한 성형외과 의사 부인’이라는 것 외에는 없는 주부, 젊고 예쁜 후배들과 경쟁해야 하는 나이 든 여배우까지. 이들의 꿈은 무엇이었고, 어쩌다 그녀들은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일까.
연극은 해답을 제시하진 않는다. 다만, 그녀들의 하루를 보여주면서 여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조곤조곤 말하고 있을 뿐이다.
조각보 하나씩 덧대듯 꿰매어진 여자들의 삶
한 장의 스냅 사진처럼 동작과 표정이 멈추어져 있는 등장인물들이 무대 위에 나란히 앉아있다. 그들은 슬퍼 보이기도 하고, 고단해 보이기도 한다. 그들의 내면을 반영하는 목소리가 나레이션으로 흘러나온다. 체홉의 『바냐 아저씨』에 나오는 아스트로프의 대사이다. 고단한 노동과 함께 흘러가는 시간들, 그 와중에 무디고 퇴색해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난 아주 딴 사람이 되어버렸어. 너무 많은 일만 했으니까. 아침부터 밤까지 내내 서 있기만 하고 쉴 틈도 없었어. 밤에는 밤대로 또 담요 위에 쪼그리고 누워 긴장한 채 잠이 들지. …… 이런 세상에, 수염도 지독하게 많이 자랐군. 쓸모 없는 수염. 다행히도 정신만은 아주 또렷하지. 인간다운 감정은 둔해졌지만. 아무 것도 갖고 싶지 않아. 아무 것도 필요 없어. …… 난 눈을 감고 이런 생각을 했지. 백년 이백 년 이후 이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들은 지금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우리에 대해 고맙게 여겨줄까.”
남성과는 달리 여성은 ‘자아를 실현하고,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 사회 시스템과 갈등을 빚어야만 한다. 결혼 후에도 직장을 그만 두지 않기 위해 바둥거려야 하고, 오롯이 여성에게 전담되는 육아와 가사 노동에 질식하지 않기 위해 애써야만 한다. 여성을 여성이게 만드는 모든 것들에 대해 저항할 때 그 틈새 사이로 ‘나 자신’이 겨우 찾아진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로만 불리기 십상이다.
끊임없이 사회와 불화하며 바둥거리며 살다가 어느 순간, 회의에 젖기도 한다. 나는 무엇을 꿈꾸었던가. 내가 원하던 그 아름다운 허상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매 순간 악착같이 살았지만 자랑할 만큼 무언가를 이룬 것도 아니고, 손 안에 쥐어져 있는 것은 모두 허무할 뿐이다. 허무를 살아내고, 견뎌내기. 어쩌면 이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여자들의 마지막 과제인지도 모른다.
작품을 지배하는 이미지인 ‘황금 양털’도 그런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이아손과 메디아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자. 영웅 이아손은 ‘황금 양털’을 얻기 위해 메디아를 유혹하고, 메디아는 아버지와 형제를 배반하고 황금양털을 이아손에게 바친다. 사랑을 얻기 위해 조국과 부모를 배신한 것이다. 이아손과 결혼하여 자식도 낳았지만, 그는 이제 더 이상 메디아를 사랑하지 않는다. 다른 여인과 결혼하기 위해 떠나는 이아손을 저주하며 메디아는 자식을 제 손으로 죽인다.
남편이 떠나자 그의 아이들을 죽인 비정한 모정의 화신, 메디아. 이 여자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받아들이면 어떻게 될까. 사랑하는 남자가 떠나 버리자 뱃속의 아기를 낙태하는 미혼모라면 어떠한가. 신화 속의 인물인 메디아가 어느덧 우리 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엽고 안타까운 여성으로 바뀐다. 소중히 간직하던 황금 양털은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될 수도 있다. 혹은 남편과의 행복을 위해 저버린 젊은 시절의 꿈일 수도 있다.
황금 양털을 가져간 남자는 더 이상 메디아를 찾지 않는다. 황금 양털을 꼭 끌어안고 아무에게도 내어주지 않는다면 어떠할까. 그렇다면 과연 메디아는 행복할 것인가. 버림받지 않지만 사랑할 사람도 없는 그녀의 삶은 버림받아 아이들마저 죽인 여성보다 더 나은 것인가. 연극 <여자 이야기>는 저마다 소중히 간직했던 ‘황금양털’을 잃어버린 여자들의 이야기다.
그녀들은 되묻는다. 나는 그 소중한 황금양털을 빼앗긴 것일까, 내버린 것일까, 아니면 간직하고 있지만 이미 빛이 바랜 것일까.
이 질문은 연극을 보는 관객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던진다. 요즘 대학로에 등장하는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사랑을 성취하는 과정’에 집중한 로맨틱 코메디라면 이 연극은 성취 이후 혹은 성취하지 않는 방향을 선택한 여성들의 이야기다. 황금 양털을 이아손에게 바치려고 하는 메디아가 아니라, 이후 자신의 황금 양털이 버려졌음을 쓰디쓰게 깨달은 메디아의 이야기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성숙한 여성의 이야기이며, 상처와 좌절 이후의 서사이다.
그렇다고 섣부른 패배주의나 회의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은 결론을 내리기 보다는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결말을 열어두고 있다. 거친 야만의 세계에서 상처투성이인 자아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해답의 실마리는 등장인물들의 찰나의 스침에서 나타나는 연민과 공감, 이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서로 다른 체험과 감정이 모여 하나의 그림이 되다
‘여자 이야기’라는 거대한 제목 아래에 묶여있는 다양한 여자들의 에피소드는 서로 다른 색깔의 천들로 엮은 조각보 같다. 연극을 만드는 과정도 꼭 그러했던 모양이다. 대학 시절에 연극 반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10여 년이 넘는 세월 이후에 다시 뭉쳤다. 몇몇은 연극 판에 남아있었지만 대부분 연극을 떠나 평범한 주부와 직장인으로 살았다고 한다.
현실의 여건 때문에 비록 잿더미에 숨겨둘 수 밖에 없었던 연극에 대한 꿈이지만 불씨마저 사그라진 것은 아니었다. 불씨와 불씨가 만나게 되는 순간, 놀랄 만큼 타올랐다. 젊은 날의 열정으로 치부하고 간직했던 기억이 오랜 시간 후에 다시 현재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이 연극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스스로의 욕망을 발견하고 그것을 있는 힘껏 긍정하게 된 치유의 맥락과도 닮아있다.
뼈대를 이루는 에피소드들 역시 배우와 스텝들이 모여서 각자 자신의 속내를 토해내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각기 다른 경험과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모인 것만큼 에피소드의 생김새도 다양하다. 또한, 여러 다른 작가의 작품들이 인용되어 있다. 체홉, 마야 안젤로, 유리피데스, 하이너 뮐러, 토마스 머튼까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텍스트의 교차가 이루어진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빛깔처럼 보이는 조각보가 조심스레 다가가 들여다보니 현란한 무늬로 이루어져 있는 셈이다.
<여자 이야기>는 제1회 차범석 희곡상을 수상한 극작가이자 저명한 평론가인 김명화의 연출작이기도 하다. 여성들이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모아 가지런히 정리한 문필의 힘으로 결이 다른 배우들을 다독여 무대에 올렸다. 프로 배우인 서영화, 황정라가 연극을 떠났다 다시 돌아온 아마추어 연극인들과 호흡을 맞춘다.
*공연 안내
작/연출 | 김명화
출연 | 서영화, 황정라, 강한민, 강란규, 조선영, 윤영수
일시 | 2010년 3월 8일(월)~14일(일) 평일 8시, 토요일 3시 ․ 7시, 일요일 3시
장소 | 대학로 정보 소극장
제작 | 극단 이후
후원 | 서울문화재단, SK텔레콤, (주)와인나라
문의 | 기획팀 권진영 011-268-6615 kwon6615@paran.com
예매 | 인터파크
티켓 | 일반: 20,000원 단체/학생: 15,000원
할인 | 3월 8일 세계여성의날 여성관객 50% 할인, 전 공연 여성단체회원 50% 할인
[다른 공연평보기] ‘엄마는 나를 망치지 않았어’ | “나 자살할거야, 엄마” ⓒwww.ildaro.com
연극 <여자 이야기>에는 여섯 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그녀들은 직장여성, 주부, 연극배우, 청년백수, 백화점 점원, 인턴사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결혼을 한 여자도 있고, 아닌 여자도 있고, 직업을 가진 여자도 있고, 아닌 여자도 있다. 서로 각자의 무게만큼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그녀들의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된다.
중요한 회의를 앞두고 있지만 아이가 문 밖으로 나오지 않아서 애를 먹는 일하는 엄마, 88만원 세대로 대표되는 인턴, 카드 대금에 쩔쩔매는 화점의 판매직,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유명한 성형외과 의사 부인’이라는 것 외에는 없는 주부, 젊고 예쁜 후배들과 경쟁해야 하는 나이 든 여배우까지. 이들의 꿈은 무엇이었고, 어쩌다 그녀들은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일까.
연극은 해답을 제시하진 않는다. 다만, 그녀들의 하루를 보여주면서 여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조곤조곤 말하고 있을 뿐이다.
조각보 하나씩 덧대듯 꿰매어진 여자들의 삶
한 장의 스냅 사진처럼 동작과 표정이 멈추어져 있는 등장인물들이 무대 위에 나란히 앉아있다. 그들은 슬퍼 보이기도 하고, 고단해 보이기도 한다. 그들의 내면을 반영하는 목소리가 나레이션으로 흘러나온다. 체홉의 『바냐 아저씨』에 나오는 아스트로프의 대사이다. 고단한 노동과 함께 흘러가는 시간들, 그 와중에 무디고 퇴색해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난 아주 딴 사람이 되어버렸어. 너무 많은 일만 했으니까. 아침부터 밤까지 내내 서 있기만 하고 쉴 틈도 없었어. 밤에는 밤대로 또 담요 위에 쪼그리고 누워 긴장한 채 잠이 들지. …… 이런 세상에, 수염도 지독하게 많이 자랐군. 쓸모 없는 수염. 다행히도 정신만은 아주 또렷하지. 인간다운 감정은 둔해졌지만. 아무 것도 갖고 싶지 않아. 아무 것도 필요 없어. …… 난 눈을 감고 이런 생각을 했지. 백년 이백 년 이후 이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들은 지금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우리에 대해 고맙게 여겨줄까.”
남성과는 달리 여성은 ‘자아를 실현하고,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 사회 시스템과 갈등을 빚어야만 한다. 결혼 후에도 직장을 그만 두지 않기 위해 바둥거려야 하고, 오롯이 여성에게 전담되는 육아와 가사 노동에 질식하지 않기 위해 애써야만 한다. 여성을 여성이게 만드는 모든 것들에 대해 저항할 때 그 틈새 사이로 ‘나 자신’이 겨우 찾아진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로만 불리기 십상이다.
끊임없이 사회와 불화하며 바둥거리며 살다가 어느 순간, 회의에 젖기도 한다. 나는 무엇을 꿈꾸었던가. 내가 원하던 그 아름다운 허상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매 순간 악착같이 살았지만 자랑할 만큼 무언가를 이룬 것도 아니고, 손 안에 쥐어져 있는 것은 모두 허무할 뿐이다. 허무를 살아내고, 견뎌내기. 어쩌면 이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여자들의 마지막 과제인지도 모른다.
작품을 지배하는 이미지인 ‘황금 양털’도 그런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이아손과 메디아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자. 영웅 이아손은 ‘황금 양털’을 얻기 위해 메디아를 유혹하고, 메디아는 아버지와 형제를 배반하고 황금양털을 이아손에게 바친다. 사랑을 얻기 위해 조국과 부모를 배신한 것이다. 이아손과 결혼하여 자식도 낳았지만, 그는 이제 더 이상 메디아를 사랑하지 않는다. 다른 여인과 결혼하기 위해 떠나는 이아손을 저주하며 메디아는 자식을 제 손으로 죽인다.
남편이 떠나자 그의 아이들을 죽인 비정한 모정의 화신, 메디아. 이 여자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받아들이면 어떻게 될까. 사랑하는 남자가 떠나 버리자 뱃속의 아기를 낙태하는 미혼모라면 어떠한가. 신화 속의 인물인 메디아가 어느덧 우리 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엽고 안타까운 여성으로 바뀐다. 소중히 간직하던 황금 양털은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될 수도 있다. 혹은 남편과의 행복을 위해 저버린 젊은 시절의 꿈일 수도 있다.
황금 양털을 가져간 남자는 더 이상 메디아를 찾지 않는다. 황금 양털을 꼭 끌어안고 아무에게도 내어주지 않는다면 어떠할까. 그렇다면 과연 메디아는 행복할 것인가. 버림받지 않지만 사랑할 사람도 없는 그녀의 삶은 버림받아 아이들마저 죽인 여성보다 더 나은 것인가. 연극 <여자 이야기>는 저마다 소중히 간직했던 ‘황금양털’을 잃어버린 여자들의 이야기다.
그녀들은 되묻는다. 나는 그 소중한 황금양털을 빼앗긴 것일까, 내버린 것일까, 아니면 간직하고 있지만 이미 빛이 바랜 것일까.
이 질문은 연극을 보는 관객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던진다. 요즘 대학로에 등장하는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사랑을 성취하는 과정’에 집중한 로맨틱 코메디라면 이 연극은 성취 이후 혹은 성취하지 않는 방향을 선택한 여성들의 이야기다. 황금 양털을 이아손에게 바치려고 하는 메디아가 아니라, 이후 자신의 황금 양털이 버려졌음을 쓰디쓰게 깨달은 메디아의 이야기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성숙한 여성의 이야기이며, 상처와 좌절 이후의 서사이다.
그렇다고 섣부른 패배주의나 회의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은 결론을 내리기 보다는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결말을 열어두고 있다. 거친 야만의 세계에서 상처투성이인 자아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해답의 실마리는 등장인물들의 찰나의 스침에서 나타나는 연민과 공감, 이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서로 다른 체험과 감정이 모여 하나의 그림이 되다
‘여자 이야기’라는 거대한 제목 아래에 묶여있는 다양한 여자들의 에피소드는 서로 다른 색깔의 천들로 엮은 조각보 같다. 연극을 만드는 과정도 꼭 그러했던 모양이다. 대학 시절에 연극 반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10여 년이 넘는 세월 이후에 다시 뭉쳤다. 몇몇은 연극 판에 남아있었지만 대부분 연극을 떠나 평범한 주부와 직장인으로 살았다고 한다.
현실의 여건 때문에 비록 잿더미에 숨겨둘 수 밖에 없었던 연극에 대한 꿈이지만 불씨마저 사그라진 것은 아니었다. 불씨와 불씨가 만나게 되는 순간, 놀랄 만큼 타올랐다. 젊은 날의 열정으로 치부하고 간직했던 기억이 오랜 시간 후에 다시 현재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이 연극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스스로의 욕망을 발견하고 그것을 있는 힘껏 긍정하게 된 치유의 맥락과도 닮아있다.
뼈대를 이루는 에피소드들 역시 배우와 스텝들이 모여서 각자 자신의 속내를 토해내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각기 다른 경험과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모인 것만큼 에피소드의 생김새도 다양하다. 또한, 여러 다른 작가의 작품들이 인용되어 있다. 체홉, 마야 안젤로, 유리피데스, 하이너 뮐러, 토마스 머튼까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텍스트의 교차가 이루어진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빛깔처럼 보이는 조각보가 조심스레 다가가 들여다보니 현란한 무늬로 이루어져 있는 셈이다.
<여자 이야기>는 제1회 차범석 희곡상을 수상한 극작가이자 저명한 평론가인 김명화의 연출작이기도 하다. 여성들이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모아 가지런히 정리한 문필의 힘으로 결이 다른 배우들을 다독여 무대에 올렸다. 프로 배우인 서영화, 황정라가 연극을 떠났다 다시 돌아온 아마추어 연극인들과 호흡을 맞춘다.
*공연 안내
작/연출 | 김명화
출연 | 서영화, 황정라, 강한민, 강란규, 조선영, 윤영수
일시 | 2010년 3월 8일(월)~14일(일) 평일 8시, 토요일 3시 ․ 7시, 일요일 3시
장소 | 대학로 정보 소극장
제작 | 극단 이후
후원 | 서울문화재단, SK텔레콤, (주)와인나라
문의 | 기획팀 권진영 011-268-6615 kwon6615@paran.com
예매 | 인터파크
티켓 | 일반: 20,000원 단체/학생: 15,000원
할인 | 3월 8일 세계여성의날 여성관객 50% 할인, 전 공연 여성단체회원 50% 할인
[다른 공연평보기] ‘엄마는 나를 망치지 않았어’ | “나 자살할거야, 엄마”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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