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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사전시관 2010 소장유물전 '서울로 간 순이'展 
 

회색 빛 하늘 아래 서울 대방동에 말끔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서울여성플라자 건물이다. 따뜻한 공기 속에 락스 냄새가 나는 1층을 지나 2층으로 올라 전시장 입구를 찾았다. 왠지 착한 느낌의 그림과 함께 “서울로 간 순이”展이라는 기획전의 제목 역시 착하게 보인다.

그렇게 첫인상 착한 순이를 만나러 가기 위해 좁은 통로를 지나면, 순이의 그림일기를 공유한 것처럼 순이에 대한 각별한 감정이 생긴다. 순이가 고향에 두고 온 동생에게 쓴 편지까지 읽고 나면, 다이어리든 수첩이든 무엇이든지 꺼내 순이의 어린 시절과 조우한 기념으로 도장을 쾅 쾅 찍고 싶어진다.

 
1960년대에 사회에 진출한 순이의 사연은 내 또래 친구들에게는 할머니 세대의 먼 이야기이지만, 늦둥이인 나에겐 바로 엄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순이가 상경해야 했던 환경과 그 후의 생활을 통해 할머니 혹은 엄마의 그 당시 삶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순이의 상경 과정과 그 후의 삶을 보여주는 글과 그림이 있는 통로 모퉁이를 돌아서면, 당시의 신문기사를 통해 발언하는 순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1960년대 사회와 국가가 여성들에게 허용 혹은 장려했던 직업들을 알 수 있는 자료와 유물 등도 볼 수 있다. 자료들이 전시된 통로의 끝부분에는 ‘식모’, ‘버스 차장’, ‘화장품 방문판매원’, ‘여성농민’이었던 순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영상이 마련되어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할머니들이 ‘직접 말한다’는 점이다. 할머니들이 선택한 어휘와 표정, 손짓 등이 배제되고 축소되어 정리된 후 남은 것을 ‘문자로 규정’하는 것은, 그분들의 삶과 언어를 이해하려는 태도가 아니다. 역사가에 의해 번역되고 해석된 글이 아니라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든 것은, 고정된 문자 체계로는 전할 수 없는 살아있는 진실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기획전에서도 “여성의 기억은 대체로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경험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역사적 가치로 존중 받지 못했고, 기록되지 않은 여성의 이야기는 역사 서술에서도 무시되어 왔다”, “구술사는 여성의 증언을 중요한 역사적 사료로 인정하는 역사 서술의 방법론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그 의의를 밝히고 있다.
 

1960년대 버스안내양 손가방

또, 전시장에 설치된 컴퓨터를 통해 50여명 여성들의 구술사가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정보를 공유하고 경험을 나누는 것. 이것이야말로 여성주의적인 역사 연구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전시장에는 1960년대 대중문화에서 순이들이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공간과 여성사전시관의 상설전시 공간이 겹쳐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기획전시인 “서울로 간 순이”展을 상설전시인 “위대한 유산: 할머니, 우리의 딸들을 깨우다”와 혼동하기도 했다.
 
전시장을 다시 찾아 꼼꼼히 살펴보면서, 단지 물리적으로 공간이 분명히 나누어져 있지 않아서 혼란을 겪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획전 “서울로 간 순이”에 포함되어있는 1960년대 ‘순정만화’를 보면서도 신기함과 함께 미심쩍은 느낌이 들었는데, 그 정체가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서울로 온 순이들의 가난과 고된 노동의 현실보다는, 1960년대 여성들의 ‘패션’이나 순이가 팔아야 했을 화장품 등의 유품, 또는 대중가요 속 혹은 대중영화 속에서 남성의 시선으로 묘사된 순이의 모습이 더 많이 전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로 간 순이’보다 ‘서울로 온 순이’를 보는 관점이 더 많이 느껴진 것이다.
 
사실, 이 정도로 여성사를 다각도로 충실하게 보여주는 전시(여성사전시관의 상설전, 기획전 모두)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다음 기획되는 여성사 전시에서는 그 시대의 여성들 다수가 처한 현실적인 문제들과, 순이의 목소리를 좀더 비중 있게 들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이제 남성에 의해 배제된 ‘여성의 역사’를 찾아내는 것을 넘어서, 여성이 주체가 된 ‘여성주의적인 여성사’를 추구할 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충열) 일다 핫 이슈-> 만화 보는 4대강 사업의 진실 "강은 살아 있다"
 
'서울로 간 순이'展-1960년대 여성의 삶과 문화
2010년 4월 16일~5월 15일까지 여성사전시관 02-824-3085 http://eherstory.mogef.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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