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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사진전 <라 광야>(Ra-Wilderness)展
전시장에 들어서면 따뜻한 샤이(아랍식 홍차)를 권하는 ‘나눔문화’ 연구원들을 만나게 된다.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듣기 원하면 언제든 설명을 해주는, 오후 3시부터는 카메라를 잡았던 시인이 매일 출근하는, 직장인관람객을 위해 휴관 일도 없이 매일 저녁 9시까지 열려있는 이 전시는 정말 친절하다.
박노해 시인(‘나눔문화’ 이사)이 1999년부터 10년 동안 분쟁지역을 다니며 기록한 사진들을 처음으로 나누는 <라 광야>(Ra-Wilderness)展은, 사진 하나하나마다 시인의 글이 함께한다.
[지상에서 가장 슬픈 비밀공연 Al Qamishli, Kurdistan, Syria, 2008] 한밤 중, 번득이는 비밀경찰의 눈을 피해 흐린 불빛 속에 벌어진 쿠르드 아이들의 전통공연. 단 한명의 관객인 나를 앞에 두고 감춰둔 전통 복장을 꺼내 입고 금지된 모국어로 노래하고 춤추는 시리아 사막의 무릎꺾인 어린 낙타들. ©박노해
터키, 알자지라, 시리아, 쿠르디스탄, 요르단, 이라크, 레바논, 팔레스타인 등. 우리에게는 ‘중동’으로 뭉뚱그려진 무섭고 위험한 국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기록을 보며, 서구 입장의 뉴스만을 접하고 있는 우리의 시각이 얼마나 불균형한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이 전시의 의의는 충분하다.
하지만 내 관심은 ‘중동’이라는 소재에 있지 않았다.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해 이해가 적은 나는 ‘시인이 왜 카메라를 잡게 되었을까’ 궁금증을 가지고 전시장을 찾았던 것이다. 21세기의 사진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왜 시인이 사진전까지 할까? 시인이 찍는 사진은 프로작가의 그것과 무엇이 다를까? 이런 질문을 가지고 사진들을 보았다.
입구의 컬러사진 세 장을 빼놓고는 모두 흑백사진이다. 흑백사진은 대상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기보다 전체의 톤과 분위기부터 보게 만든다. 구체적 정보전달보다 시간적, 물리적 거리를 만들어냄으로써 대상을 미화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때문에, 분쟁지역 현장을 모두 흑백사진으로 보여주는 방식에 대해 의심을 거두지 않고 전시를 관람했다.
하지만 사진 안의 사람들을 만날수록, 10년 동안 맞닥뜨렸을 수많은 위험과 셀 수 없는 죽음, 그리고 분노와 무력함을 어떻게 개인이 삼키고 참아냈을까 놀라웠다. 그러고 보니 이 전시의 유별난 친절함이 이해되었다.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었던 시인의 마음도 이해되었다.
나밖에 읽어줄 사람 없는 작은 수첩에
감추어진 그들의 진실을 수없이 기록했지만
국경을 넘는 순간 언어의 국경을 넘지 못하는 나의 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래된 만년필을 쥐고 있던 내 손에
낡은 흑백 필름 카메라가 함께 들려졌다.
절실한 필요는 창조를 낳는 걸까.
죽어가는 아이를 안고 20리 밤길을 단숨에 달려가는 어머니처럼
나는 현장의 진실을 카메라에 담아가고 있었다.
-작가의 글 중에서 (<라 광야>展 도록)
[유프라테스 강가의 농부 Al Jazeera, Syria, 2008]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낳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 ‘알 자지라’(섬) 대평원. 여명이 밝아올 때 유프라테스 강물을 받아 씨앗을 뿌린다. 수렵채집 생활에서 인류 최초의 농경시대를 열었던 5천년 전 관개농법이 기적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박노해
“유프라테스 강가의 농부”에 등장하는 농부는 시인이 자신을 열심히 사진 찍어주는 것에 대해 감사인사를 하면서 두 손을 잡고 집에 데려가 식사대접을 했다. 관광이 발달한 나라에서는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을 찍어도 따라와 돈을 요구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연이은 전쟁과 미국의 경제봉쇄로 인한 빈곤 속에서도, 손님을 ‘환대’하는 문화가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일제 식민치하와 같이 쿠르드도 자신들의 말과 글이 금지되고 ‘쿠르드족’의 존재조차 부정당한 채 핍박 받고 있지만, 전통문화를 잊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시인이 만났던 쿠르드 게릴라 소녀의 고백-“저에게 아름다운 삶이란, 총구 앞에서 자신의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함께 어울려 사는 삶이에요.”-은 총구가 아니라 돈 앞에서도 인간성을 앞다투어 포기하는 우리 현실을 돌이켜보게 했다.
4만여 컷의 사진 중 엄선한 37점의 사진에 대해 일일이 문자로 표현할 수는 없다. 다만, 현장을 담은 절박한 친절함을 직접 경험하기를 권할 뿐이다.
*전시기간- 2010년 1월 28일까지
*전시장소- 갤러리 M (충무로 서울중부 경찰서 맞은 편)
*관람시간-오전 11시~오후 9시 (휴관일 없음)
*작가와의 대화- 1월 15일(금) 오후8시/ 17일(일) 오후3시/ 27일(수) 오후8시
덧붙여- 왜 그 곳을 ‘중동’이라고 부를까. 한 번의 의문도 가져보지 않은 나에게, 그 이름의 출처와 운명을 알려준 “살람 야 중동”은 <라 광야> 도록을 구입하면 받을 수 있는 부록이다. 이 책자는 서양사를 세계사로 오해하게 만든 대한민국의 교육현실을 또다시 확인하게 해주었다. 여기서 만날 수 있는 것은 ‘중동’의 현실뿐 아니라 ‘중동’인들의 긍정적인 사고, 자본과 무력에 무릎 꿇지 않는 자존심, 그리고 어려운 경제상황에서도 여유와 기품을 잃지 않는 모습들이다. (이충열) ▣ 일다는 어떤 곳?
전시장에 들어서면 따뜻한 샤이(아랍식 홍차)를 권하는 ‘나눔문화’ 연구원들을 만나게 된다.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듣기 원하면 언제든 설명을 해주는, 오후 3시부터는 카메라를 잡았던 시인이 매일 출근하는, 직장인관람객을 위해 휴관 일도 없이 매일 저녁 9시까지 열려있는 이 전시는 정말 친절하다.
박노해 시인(‘나눔문화’ 이사)이 1999년부터 10년 동안 분쟁지역을 다니며 기록한 사진들을 처음으로 나누는 <라 광야>(Ra-Wilderness)展은, 사진 하나하나마다 시인의 글이 함께한다.
[지상에서 가장 슬픈 비밀공연 Al Qamishli, Kurdistan, Syria, 2008] 한밤 중, 번득이는 비밀경찰의 눈을 피해 흐린 불빛 속에 벌어진 쿠르드 아이들의 전통공연. 단 한명의 관객인 나를 앞에 두고 감춰둔 전통 복장을 꺼내 입고 금지된 모국어로 노래하고 춤추는 시리아 사막의 무릎꺾인 어린 낙타들. ©박노해
터키, 알자지라, 시리아, 쿠르디스탄, 요르단, 이라크, 레바논, 팔레스타인 등. 우리에게는 ‘중동’으로 뭉뚱그려진 무섭고 위험한 국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기록을 보며, 서구 입장의 뉴스만을 접하고 있는 우리의 시각이 얼마나 불균형한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이 전시의 의의는 충분하다.
하지만 내 관심은 ‘중동’이라는 소재에 있지 않았다.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해 이해가 적은 나는 ‘시인이 왜 카메라를 잡게 되었을까’ 궁금증을 가지고 전시장을 찾았던 것이다. 21세기의 사진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왜 시인이 사진전까지 할까? 시인이 찍는 사진은 프로작가의 그것과 무엇이 다를까? 이런 질문을 가지고 사진들을 보았다.
입구의 컬러사진 세 장을 빼놓고는 모두 흑백사진이다. 흑백사진은 대상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기보다 전체의 톤과 분위기부터 보게 만든다. 구체적 정보전달보다 시간적, 물리적 거리를 만들어냄으로써 대상을 미화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때문에, 분쟁지역 현장을 모두 흑백사진으로 보여주는 방식에 대해 의심을 거두지 않고 전시를 관람했다.
하지만 사진 안의 사람들을 만날수록, 10년 동안 맞닥뜨렸을 수많은 위험과 셀 수 없는 죽음, 그리고 분노와 무력함을 어떻게 개인이 삼키고 참아냈을까 놀라웠다. 그러고 보니 이 전시의 유별난 친절함이 이해되었다.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었던 시인의 마음도 이해되었다.
나밖에 읽어줄 사람 없는 작은 수첩에
감추어진 그들의 진실을 수없이 기록했지만
국경을 넘는 순간 언어의 국경을 넘지 못하는 나의 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래된 만년필을 쥐고 있던 내 손에
낡은 흑백 필름 카메라가 함께 들려졌다.
절실한 필요는 창조를 낳는 걸까.
죽어가는 아이를 안고 20리 밤길을 단숨에 달려가는 어머니처럼
나는 현장의 진실을 카메라에 담아가고 있었다.
-작가의 글 중에서 (<라 광야>展 도록)
[유프라테스 강가의 농부 Al Jazeera, Syria, 2008]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낳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 ‘알 자지라’(섬) 대평원. 여명이 밝아올 때 유프라테스 강물을 받아 씨앗을 뿌린다. 수렵채집 생활에서 인류 최초의 농경시대를 열었던 5천년 전 관개농법이 기적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박노해
“유프라테스 강가의 농부”에 등장하는 농부는 시인이 자신을 열심히 사진 찍어주는 것에 대해 감사인사를 하면서 두 손을 잡고 집에 데려가 식사대접을 했다. 관광이 발달한 나라에서는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을 찍어도 따라와 돈을 요구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연이은 전쟁과 미국의 경제봉쇄로 인한 빈곤 속에서도, 손님을 ‘환대’하는 문화가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일제 식민치하와 같이 쿠르드도 자신들의 말과 글이 금지되고 ‘쿠르드족’의 존재조차 부정당한 채 핍박 받고 있지만, 전통문화를 잊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시인이 만났던 쿠르드 게릴라 소녀의 고백-“저에게 아름다운 삶이란, 총구 앞에서 자신의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함께 어울려 사는 삶이에요.”-은 총구가 아니라 돈 앞에서도 인간성을 앞다투어 포기하는 우리 현실을 돌이켜보게 했다.
4만여 컷의 사진 중 엄선한 37점의 사진에 대해 일일이 문자로 표현할 수는 없다. 다만, 현장을 담은 절박한 친절함을 직접 경험하기를 권할 뿐이다.
*전시기간- 2010년 1월 28일까지
*전시장소- 갤러리 M (충무로 서울중부 경찰서 맞은 편)
*관람시간-오전 11시~오후 9시 (휴관일 없음)
*작가와의 대화- 1월 15일(금) 오후8시/ 17일(일) 오후3시/ 27일(수) 오후8시
덧붙여- 왜 그 곳을 ‘중동’이라고 부를까. 한 번의 의문도 가져보지 않은 나에게, 그 이름의 출처와 운명을 알려준 “살람 야 중동”은 <라 광야> 도록을 구입하면 받을 수 있는 부록이다. 이 책자는 서양사를 세계사로 오해하게 만든 대한민국의 교육현실을 또다시 확인하게 해주었다. 여기서 만날 수 있는 것은 ‘중동’의 현실뿐 아니라 ‘중동’인들의 긍정적인 사고, 자본과 무력에 무릎 꿇지 않는 자존심, 그리고 어려운 경제상황에서도 여유와 기품을 잃지 않는 모습들이다. (이충열) ▣ 일다는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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