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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가 주는 이국의 정취 일다는 라오스의 문화, 생태, 정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여행기를 연재합니다. 필자 이영란님은 라오스를 고향처럼 생각할 정도로 특별한 인연이 있는 분으로, <싸바이디 라오스>의 저자입니다.
‘개미국’으로 시작한 싸이냐부리와의 첫날밤 알, 애벌레, 번데기까지 들어 간 개미야채볶음과 수중곤충을 으깨서 만든 양념반찬 우리 집 울타리 안 야자나무에 붙어 있던 독특한 모양의 매미 각종 도마뱀 종류들을 집안에서도 일상적으로 볼 수 있다 라오스 시장에 나온 큰 도마뱀 맹캥(노린재) 구이
2007년 3월 초, 싸이냐부리에 파견되어 열흘 동안 아짠 너이(‘작다’는 뜻, 영어선생님) 집에서 묵었다. 싸이냐부리에서 첫날, 라오스에 간지는 두 달이 되었지만 진짜 평범한 라오스 가정에서 밥을 먹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손님이라고, 외국인이라고, 멥쌀밥도 따로 담아 주고(보통은 찹쌀밥을 대나무로 짠 그릇에 담아 함께 먹는다) 고기튀김도 넉넉하게 차려놓았다.
침침한 불빛에 아래서도 어린 풀(?)이 신선해 보이는 담백한 야채국에 손이 많이 갔다. 가족들은 공식처럼 어떠냐고 묻고 나는 당연히 맛있다고 했다. 그러니 아짠 너이의 어머니가 국을 따로 담아 내게 주시고. 편히 코앞에 국을 두고 떠먹는데, 마늘 알갱이거나 하얀 꽃송이(라오스 사람들은 야채에 딸린 꽃도 잘 먹는다)라고 생각했던 것이 다르게 보였다.
숟가락을 눈으로 가져가 자세히 보았다. 개미? 맘을 가다듬고 자세히 국을 들여다보았다. 하얗게 보이는(원래 붉은 개미인데 가열하면 하얗게 된다) 것들은 모두 개미였다. 알, 애벌레, 번데기, 성충까지 개미집을 통째로 털어온 것 같았다. 어흑! 이미 맛있다고 먹은 것을 토할 수도, 반은 먹은 것에 더는 숟가락을 안 담글 수도 없고. 하얀 것은 피해 파란 풀만 께지럭거렸다. 그래도 입으로 들어오는 한두 개. 모르고 먹을 때와 이렇게 다를 수가! 갑자기 원효대사님이 떠올랐다.
자명종이 필요 없는 ‘고요한’ 아침
착한 사람들, 우리의 서툰 라오스 말하기를 오히려 재밌게 봐주는 가족들 속에서 살았지만, 우리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우리들만의 공간에 들어오자 모두 대자로 뻗었다. 그리고 그대로 잠들었다.
배가 고파 누군가 먼저 일어났고, 우선 서로 가지고 있는 이런 저런 먹을 거리를 모아 시장기를 때우려고 모여 앉았는데.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어디지? 소리가 나는 방향을 가늠해 보았지만 내 방도 같고 저 방도 같고 바로 여기 거실인 것도 같았다. 귀를 닫고 눈을 찡그리며 일단 각자 자명종을, 심지어 휴대전화기를 점검했다. 아니다. 어디 짐 속에 깊이 넣어 놓은 게 있었나? 찾고 찾았다. 그러나 누군가 그랬다. 이거 매미 소리 아냐?
내가 얻은 집은 북쪽과 동쪽이 빽빽한 숲으로, 길에 접한 남쪽엔 주인집이 서쪽은 너른 논으로 둘러 싸여있었다. 매미 소리의 진원은 굳이 북동쪽 숲이 아니어도 울타리 안에 사방에 서 있는 수십 그루의 나무 모두였다.
해가 뜨는 것과 동시에 시작되는 매미의 경보는 일분일초도 쉬지 않았다. 닭은 꽹과리 같았다. 해가 지면 논에서 개구리 맹꽁이가 울고 사시사철 귀뚜라미가 개가 늑대처럼 울어댔다. 누가 시골이 자연이 평화롭고 고요하다고 한 거야? 이 한가로운 거짓말쟁이들! 누군가를 향한 타박은 두어 달이 지나 시나브로 없어졌다. 자명종이 필요 없는 새벽 닭들의 소란스러움이, 환청 같은 매미 소리가 일상이 되면서 시끄러운 소리가 멈추었다. 안 들리게 되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으나 내가 달라진 것이다. 나는 싸이냐부리가 너무나 평화롭고 고요하다고, 아주 멀쩡하게 이야기를 한다. 흐음, 역시 원효대사다.
도마뱀 고기와 매미 튀김
나는 코워커(co-worker) 아짠 미노와 라오스어를 공부하는 것, 틈틈이 싸이냐부리 지역조사와 주요 기관을 방문하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어 외려 괴로울 때였다.
이때다, 제대로 놀아보자 하고 아짠 미노, 아짠 씨파이, 동료 한 명을 꾀어서 싸이냐부리 저수지로 소풍을 갔다. 투명한 햇빛, 반짝이는 풍경에 온 맘이 팔려, 모자로 가릴 수도 없이 목덜미가 타는 줄도 모르고 놀다 모여 앉았다. 각자 준비해온 음식을 꺼냈다.
물, 바나나, 김(라오스 사람들은 김을 아주 좋아한다), 찹쌀밥, 땀막훙(풋 파파야 매운 생채), 바나나 잎에 싼 카오놈(라오스 떡), 또 바나나 잎에 싼 씬쏨(‘씬’은 고기, ‘쏨’은 시다는 뜻이다. 그러니 씬쏨은 신맛이 나는 돼지고기 햄), 그리고 또 바나나 잎에 싼 무슨 고기? 아짠 씨파이가 마지막으로 바나나 잎에 싼 음식을 꺼내놓으며 뭐라고 했다. 씬랜? ‘랜’은 여기서 커다란 도마뱀을 가리키는 것인데, 그럼 큰 도마뱀 고기!
그림도 잘 그리고 우리학교 꼴찌 반 멋진 대장 쏨분(‘완전하다’, ‘가득 차다’는 뜻)네 집에 놀러 갔을 때였다. 귀한 손님이라고 부모님이 많은 것을 차려내셨다. 그리고 쏨분이 별미라고 하나 더 가지고 나왔다. 매미 튀김! 다른 것을 섞고 양념으로 가릴 것도 없이 통 매미튀김이었다. 쏨분이 일부러 정성 들여 준비한 듯 먹어보라고 바투 권한다. 내가 웃고는 있었지만 웃는 게 아니었다.
쏨분의 뿌듯한 표정에 밀려 젓가락(쏨분은 소수민족 중 하나인 몽족으로, 라오스의 지배적인 민족 라오룸과 달리 젓가락을 쓴다)으로 매미 한 마리를 집긴 집었다. 차마 입에 넣지 못하고 있는데, 이젠 가족들 모두가 기대하는 표정이다. 내가 그걸 먹고 어서 맛있다고 말하기를. 그래 입에 넣었다. 씹었다. 파삭한 느낌 외에 아무 맛이 없었다. 다행이었다. 으으. 꿀떡 삼켰다. 맛있다고 말했다.
노린재를 함께 털던 시절
우리들 사무실이 있는 작은 교무실 건물 앞에 잎이 무성해 그늘이 좋은 나무 한 그루가 있다. 다른 과일 나무들이 지천인데 왜 열매도 작고 보잘 것 없는 람냐이 나무가 여기 목 좋은 곳에 있을까 했다. 람냐이 열매는 가을에 열었다. 그런데 아짠들은 4월 봄부터 나무를 털기 시작했다. 두어 번 그런 모습을 보고 나서 이젠 물어보고 궁금증을 풀어야 할 때, 아짠 미노가 나타났다.
“뭐예요?”
“맹캥이에요.”
맹캥? 노린재였다. 한국서 본 것보다 훨씬 크고 색깔도 빨갛게 예뻤다.
“이걸 왜 잡아요?”
“먹으려고요. 맛있어요.”
노린재를 라오카오(찹쌀로 빗은 라오스 독주)에 담가 불을 붙여서 기름에 튀기는 것처럼 굽는다. 그리고 먹는다. 여자들은 통째로는 잘 못 먹고 빻아서 가루를 내 먹는단다. 그러면 일본 양념, ‘와사비’(고추냉이)처럼 코까지 매운 기운이 올라오는 톡 쏘는 맛이 좋단다.
아짠 미노가 어린 사람답지 않게 ‘남자들한테 특히 좋다’고 덧붙이며 웃었다. 벌써 몇 번을 털렸을 텐데 나무는 장대질 할 때마다 어김없이 맹캥을 떨어뜨리고, 나는 아짠을 도와 풀밭에 떨어져 숨은 맹캥을 부지런히 찾아주었다. 떨어졌던 놈이 어쩌다 포르르 날아오르면, 아짠은 장대를 나는 비닐봉지를 잠자리채마냥 휘저으며 까르르 뛰어다녔다.
그때 그 더운 공기 속에 퍼졌던 람냐이 꽃 냄새를 기억한다. 신기하고 행복했던 서른다섯 살 아이 시절이, 맹캥처럼 코끝이 맵게 그립다. (이영란)
[이영란의 라오스 여행->] 라오스의 보석 ‘루앙파방’ 온전히 누리기 | 요즘 라오스 미인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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