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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남녀상열지사② 일다는 라오스의 문화, 생태, 정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여행기를 연재합니다. 필자 이영란님은 라오스를 고향처럼 생각할 정도로 특별한 인연이 있는 분으로, <싸바이디 라오스>의 저자입니다.  –편집자 주

보철한 치아를 자랑하는 광고모델
  

라오스 고유 숫자로 1000이 쓰인 천낍짜리 지폐 앞면. 인물은 라오스 여러 민족을 크게 셋으로 구분한 것을 나타낸다.

라오스에는 간판이 별로 없다. 건물을 뒤덮다시피 하는 간판, 현란한 광고의 홍수에 익숙했던 처음엔, 라오스는 수도라도 정말 광고 간판이 하나 없구나 했다. 역시 사회주의여서 인가 하고 생각했다.
 
조금 지나 이런 심심한 라오스 수도 풍경이 익숙해지고 나니, 그제야 하나 둘 눈에 띄는 광고물이 생겼다. 그것도 처음엔 상품광고가 아닌, 수적으로 다소 우위인 정책홍보용 입간판.
 
1천 낍짜리와 거의 똑같은 도안으로 라오스 내 40개가 넘는 다양한 ‘소수민족들의 화합’을 강조하는 홍보간판과, 역시 5만 낍짜리 새로 발행한 지폐를 그려놓고는 달러나 받(타이 화폐), 동(베트남 화폐)을 쓰지 말고 ‘우리 돈(라오스 낍) 쓰기’를 권장하는 것 등이었다.
 
보통 그런 선전물들이 주는 강압적인 느낌도 거의 없었다. 그림이 참 소박하고, 그나마도 한 도시에 몇 개 서있지도 않아 그랬던 것 같다. 또, 선전의 허위성 면에서도 덜했다. 라오스는 다른 다민족국가에서 심각하게 드러나는 민족분쟁이나 종교갈등도 없고, 대부분 외국여행자들도 환전해서 낍을 쓰고 있었으니까. 대표적으로 우리들(한국해외봉사단원)이 그랬고, 그게 더 편했으니 말이다.
 
아무튼 시각적인 흥미든, 라오스사회를 생각해보게 하는 열쇠말로든, 몇 개 없는 대형입간판들을 발견하고 읽어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다 정말 읽기도 전에 ‘푸홧!’ 터져버리게 하는 광고를 발견했다.
 
이삼 년 전부터 유선전화를 대신해 전국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이동통신 광고다. 그림은 그냥 그랬다. 세 명의 예쁘장한 젊은이들이 전화기를 들고 나란히 서있는 것. 그래서 그냥 지나칠 뻔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여자가, 그 여자의 미소가 나의 눈길을 잡아챘다. 저건, 보철?
 
라오스 미인의 조건
 

바나나 잎으로 만든 결혼장식 아치에서 어머니와 함께 선 신부

라오스에서 살면서 체감한 요즘 라오스 ‘미인’의 조건은 세 가지다. 라오스 평균, 흰 피부, 그리고 ‘보철’이다. 굳이 ‘미녀’라고 하지 않은 것은, 이런 조건은 남자에게나 여자에게 거의 공통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라오스 평균’이라 나름 정의한 것은 이런 거다. 도시젊은이들의 ‘그리 크지 않은 키’(라오스는 우리처럼 젊은 세대라고 해서 키가 크지만은 않다), ‘날씬함’(이것도 우리 기준으로 날씬한 것이지, 라오스에선 대부분이 저체중이다), ‘긴 다리’(우리와 비교하면 상당히 다리가 긴 편이다), 남방 특유의 ‘귀여운 얼굴선’, 인형같이 길고 진한 속눈썹(정말 연필을 올려놓아도 된다)과 쌍꺼풀 등.
 
우리학교 체육선생님, 아짠 씨파이가 사귀던 쌩드안(달빛이라는 뜻)은 라오스 사람으로서는 드물게 쌍꺼풀이 없었다. 우리와 많이 친해지고 난 다음, 애인이라고 소개를 해주며 ‘쌩드안은 한국사람(우리들)처럼 쌍꺼풀이 없어요’ 했다. 그건 못생겼다는 뜻이었다.
 
교사부부, 아짠 쏨씨와 결혼한 아짠 팓따니도 쌍꺼풀이 없다. 그래서 애칭이 아예 ‘따띱’(부은 눈, 작은 눈)이다. 내가 보기엔 스모키 화장을 한 김연아 눈보다도 더 시원스런 봉황의 눈이었음에도. 싸이냐부리 연애사에 정통한 처자, 아짠 너이(애기, 작다는 뜻)는 쏨씨가 남자들한테 인기가 없는 팓따니와 결혼한 건, 아기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결국, 보통의 라오스 사람들에겐 그들과 비슷한 보통의 라오스 사람이 익숙하고, 그래서 예쁜 건가 보다.
 
미의 기준, 부유함에 대한 욕망
 

아짠 쏨씨와 아기. 라오스 아기들은 쌍꺼풀이 뚜렷하고 눈썹이 길어 인형같이 예쁘다.

나는 라오스에서 ‘예쁘다’는 소리를 처음 들었다. 물론 ‘작은 것이 동양미인’이라는 선입견을 가진 서양여행자들에게서 가끔 들을 적 있긴 하다. 이런 건 독특한 자기 취향을 이야기하는 것뿐이고, 라오스에선 진짜 부러움이 담긴 말을 들었다. 이유는 내 피부가 하얗다는 것. 한국에서 겨울을 보내고 라오스에 파견된 것이니 그들보다 하얄 수밖에. 그래서 생애 처음 들어보는 예쁘다는 말은 채 두 달을 넘지 못했다. 쩝.

 
아짠 미노의 애인도 피부가 정말 하얬다. 그는 피부가 하얗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정말 예뻤다. 미노는 경쟁자 많은 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였으나, 사귄 지 몇 주도 지나지 않아 성격이 안 맞는다면서 헤어졌다. 그렇지만 더 오랜 시간 공을 들여 결혼한 지금 미노 부인의 살결도 백옥 같다.
 
아짠 씨파이와 티격태격한 적이 있다. 처음 만나서 수줍고, 말이 통하지 않아도 사려 깊어 무엇이든 척척 도와주던 고마운 씨파이였다. 사소한 일이었다. 어느 날 왼쪽 새끼손가락에 길게 기르고 있는 손톱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우리가 서로 장난칠 만큼 친해졌다고 생각해, ‘그렇게 길러서 뭐에 쓰냐, 예쁘지도 않은데 잘라’ 했다. 씨파이는 내 말을 듣고, 처음엔 곱게 잘랐다. 그러다 다시 길렀다. 그래서 또 자르라고 했더니, 이제는 씨파이가 나와 대거리 할만큼 친해졌다고 생각했는지 이렇게 말했다. ‘(손톱으로) 귀도 파고, 코도 파고, 전화카드도 긁어. 기른 게 예뻐.’
 
그 말을 듣고서 보니, 대부분 처녀총각들이 손톱을 기르고 있다는 게 눈에 들어왔다. 왼손 새끼손톱은 최소한의 ‘멋 내기’에 해당했다. 대부분 오른손 새끼손톱까지, 아예 왼손은 전체를 기르기도 했다.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빼고 모두를 기른 게 내가 본 최고였다. 라오스, 타이 등 동남아시아 전통공연에 등장하는 기다란(이십 센티미터는 되어 보이는) 장식손톱이 괜한 게 아니구나 싶었다.
  
아짠 미노는 손톱이 늘 짧았다. 왜냐고 물었다. 자기는 기타를 쳐야 하고, 또 지금은 컴퓨터를 배우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래, 그런 긴 손톱으론 자판을 절대 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기타를 치지 않는다면 자기도 손톱을 길렀을 거란다.
 

태양이 작열하는 뙤약볕에 농사를 짓는 대부분의 라오스 사람들

그때 뭔가가 떠올랐다. 아줌마들은 손톱을 기른 사람이 없었다. 농번기 때는 아짠 씨파이도 손톱을 기르지 않았다. 아, 이건 일을 안 해도 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구나! ‘하얀 피부’도 그런 거였다. 일년 내내 작열하는 태양아래, 라오스에서 하얀 피부를 유지할 수 있는 삶의 조건을 갖춘 사람이 얼마나 될까.

 
‘보철’이 최고인 이유도 마찬가지다. 재산이 많다고 그걸 다 금붙이로 몸에 주렁주렁 달고 다니자니 촌스럽고, 외제차는 타고는 다녀도 항시 소지할 수는 없으니. 뜨거운 낮에는 밖에 나갈 일 없었던 ‘하얀 피부’에 손가락 까딱하지 않아도 되는 나의 여유로움을 가장 확실하게 과시할 수 있는 것!
 
라오스에서 우리가 보통 ‘보철’이라고 부르는 치과시술은 할 수 없다. 그러면 최소 타이나 베트남에서 시술을 받고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돈으로도 몇 백, 몇 천인데 라오스사람들에겐 억대의 체감일 것이다.
 
연애, 그 가볍고 즐거운
 
광고모델의 보철을 보고 욕망을 읽다? 나는 너무 무겁다. 그에 비해 라오스 젊은이들, 처녀총각의 연애는 가볍고 욕망에 솔직하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거다. (물론 연애의 기술, 적당한 숨기기와 드러내기, 밀고 당기기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멋있어 보이는 사람, 예뻐 보이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가진 사람이면 된다.
 
젊은이들의 연애사전에는 ‘첫사랑’, ‘지고지순’, ‘이별’, ‘죄의식’ 이런 단어는 없는 것 같아 보인다. 결혼한 상대도 괘념치 않는다. 몸과 마음을 나눌 필요도 없다. 외국인여행자가 없는 싸이냐부리에 블록마다 여관이 있다. 여관 앞엔 가게가 있고, 거기엔 에이즈예방단체에서 배포한 콘돔이 상자 째 쌓여있다.
 
또, 관대함이 있다. 내 형제의 애인이었거나, 친구의 애인이었어도 괜찮다. 유부남의 애인이었어도 괜찮다. 같은 여관에서 다른 애인과 함께 있었던 걸 알고 있어도 괜찮다. 지금 내가 상대를 사랑하고, 그가 다른 사람과 결혼한 상태만 아니라면.
 
라오스 남녀상열지사는 평등하다. 그래서 너무나 즐거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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