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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33명 미화원, 간접고용노동자의 자화상

“딴 데 알아봐주겠다고요? 다른 일자리를 찾을 거면, 저희가 직접 찾아 나서죠. 우리가 왜 쫓겨나야 하는데요? 정말 여기(한양대)를 사랑하면서 일했어요. 한 식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버림을 받은 거예요. 우리를 하찮은 일하는 사람이라고 우습게 본 거죠. 배신감과 억울함 때문에 그냥 있을 수 없어요. 우린 명예회복을 원하는 거예요.” (백금희, 51세)

2009년 마지막 날, 폭설이 내리고 한파가 몰려온 그 날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안산 소재)에서는 환경미화원 33명이 직장을 잃었다.

상상도 못했던 계약해지 소식을 접한 미화원들은 본관에 모여들었고, 현재 12명이 건물 안에서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농성 중이다.

한양대는 청소용역 64명을 두 곳의 용역업체에서 위탁해오다가, 위탁이 종료돼 2010년에 세 곳의 용역업체로 바꾸었다. 그 과정에서 절반이 넘는 미화원들을 계약 해지한 것이다. 이전에는 용역업체가 변경되어도 미화원들의 고용은 승계됐다.

노조 활동하면 ‘계약해지’…부당노동행위 호소할 곳 없어

대학에서 용역회사 교체를 이유로, 환경미화원들을 대량 계약해지 한 사건은 이번만이 아니다.

2006년 12월 인하대에서도 미화원들을 계약해지 했다가, 당사자와 학생들, 시민단체들의 항의집회가 계속되자 결국 복귀시켰다. 2008년 9월에는 성신여대에서 미화원 60명 여 명을 전원 계약해지 하려다가, 학생들과 노동조합의 큰 반발에 부딪혀 고용승계하기로 결정했다.

길게는 10년 간이나 대학 곳곳을 쓸고 닦으며, 내 집처럼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숙련된 미화원들을 왜 굳이 계약해지하고 새로운 사람을 고용할까.

간접고용노동자인 청소용역 대량 계약해지 사건에는 늘 ‘노동조합 탄압’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박성옥 전국여성노조 경기지부 조직국장은 “용역업체는 (계약해지 이유가) 인상이 나빠서라는 둥, 이력서를 짧게 썼다는 둥 납득할 수 없는 기준을 대고 있지만, 사실은 노조활동 열심히 한 분들이 주요 타깃”이라고 말한다.

고용불안과 저임금 문제로 시달리는 간접고용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상황을 개선해보고자 했을 때, 사측이 이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용역회사를 바꾸는 시기마다 노동자들을 고용 승계하지 않고 ‘계약 해지’한다는 설명이다.

늘어나는 간접고용, 최소한의 권리보장장치 마련해야

문제는 현행 법이 간접고용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 한양대 측도, 용역회사 측도 서로의 탓을 하며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다’는 입장이다.

박남희 전국여성노조 위원장은 “이번 사건은 외주화, 간접고용의 문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라며, “어떤 법도 이들의 권리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법이 아닌 상식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다”라고 지적했다.

박남희 위원장은 “이번 일이 계기가 되어, 간접고용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최소한의 제도적인 보완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정치권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활동했다는 이유로 계약만료 시 고용승계를 하지 않는 경우, 원청 사용자(한양대)도 ‘부당노동행위’로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3일에는, 한양대 측에 ‘고용승계’를 요구하던 미화원 최모씨(61)가 청소용 세정제를 마시고 음독자살을 기도했다.

“2001년부터 10여 년간 항상 웃으며 일했다”는 전추자씨(61세), “체대 근무할 때 빙판에서 넘어져 무릎이 나갔지만, 산재 처리하면 불이익 당할까 봐 수술도 제 돈으로” 했다는 이귀남씨(56세), “한 식구라 생각하고 일했는데, 근거도 없이 해고를 당하다니 배신감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는 백금희씨(51세).

오늘도 미화원들은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간접고용노동자의 낮은 지위와 위태로운 노동현실을 온몸으로 증언하며, 우리 사회에 귀 기울여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일다/ 조이여울 기자)    일다는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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