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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교육일기] 현준이는 몇 달 전부터 함께 공부하고 있는 2학년 학생이다. 그러나 원래 그는 3학년이 되었어야 할 나이다. 몇 년 간 필리핀에서 살다 와 한국어가 너무 서툰 점을 감안해 부모님은 그를 2학년에 입학시키기로 결정하셨단다. 또 특별 선생님까지 붙여가며, 현준이의 한국어 실력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계시다.
나도 돕고 싶은 마음에 현준이만 괜찮다면 수업료를 더 받지 않을 테니, 1학년 아이들 수업에도 나와 보충을 받으라고 했다. 마침 구성원도 여유가 있어 권할 수 있었던 건데, 현준이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보충과 자기 수업을 모두 열심히 나오고 있다.
그런 현준이의 노력 덕분에 1학년생보다도 부족했던 실력이 빠르게 극복되어가고 있다. 물론, 아직도 2학년 중간에 채 못 미치는 수준이고 3학년과 비교하면 더 차이는 많지만, 기대한 것 이상으로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처음에 눈치를 보며 자기 의견을 쓰는 데 주저하던 현준이가 자신감을 가져나가는 것이 가장 만족스럽다.
조기유학 후유증 겪는 아이들의 고통
외국에서 살다가 귀국해, 한국어 때문에 고통을 겪는 아이를 본 것이 현준이가 처음은 아니다. 곧 고등학생이 되는 민하도 꼭 같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님은 민하의 한국어 실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현준이 부모님만큼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우선, 민하를 자기 나이에 맞는 학년에 입학시키고 주변의 친구들과 그룹을 짜서 여러 가지 학과 공부를 과외로 시켰다. 그 중 하나가 내 수업이었다.
민하가 그것들을 따라갈 리 없었다. 내 수업에서 그녀는 이해가 잘 안 가는 난처한 상황을 맞으면, 큰 소리로 웃거나 바보스러운 표정으로 마구 떠들며 과잉행동을 보였다. 민하 실력이 느는 것은 고사하고, 다른 아이들에게까지 심각한 피해가 되어갔다. 다른 공부들 역시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냥 둘 수는 없겠다 싶어서 어머니를 찾아 뵈었다.
당시 그들은 출장 지도를 받고 있었다. 당연히 민하는 우리 집에서는 상당히 떨어져 있는 동네에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나와 공부를 계속하길 원한다면, 우리 집에 와서 혼자 공부하는 방법뿐이라고 어머니께 말씀 드렸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건, 이런 제안에 어머니는 어떤 원망도 없이, 1년이 넘게 한결같이 아이를 데리고 다녔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민하의 실력은 많이 향상되었고 난처한 상황에서 보였던 과잉행동도 고쳐, 기존 팀에 다시 합류해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게 되었다.
민하가 외국생활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는 꼬박 4년이 걸렸다. 그래서 6학년이 될 즈음에는 여느 아이와 비슷한 수준이 되었지만, 우수한 아이들과의 간극은 중학생이 된 뒤에도 극복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우리나라에서 평범하게 교육을 받았다면, 충분히 똑똑한 아이가 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드는 민하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정말 안타까웠다. 그래서 현준이 어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가 다른 아이들과의 실력차이를 좁힐 수야 있겠지만, 완전히 극복하기는 힘들 거라고 얘기했다.
그것이 현실이다. 현준이 어머니는 그것을 수긍하는 표정이셨지만, 빠른 속도로 영어를 잊어버리는 것도 말할 수 없이 안타깝다는 표정이셨다. 민하도 5학년 때, 영어 전문학원에서 레벨테스트를 받고 나서 “외국에서 살다 온 애가 맞나요?”라는 질문을 받아, 정말 창피했다는 말을 어머니로부터 들은 바 있다.
영어를 잊어버리는 것이나 우수한 아이들과의 간격을 좁힐 수 없는 것이, 그들이 똑똑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니다. 외국어는 사용하지 않으면 잊게 마련이고 그들이 노력하는 동안 다른 아이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으니, 처음 뒤쳐진 간격을 줄일 수는 있어도 따라잡기는 정말 힘든 노릇이다. 안타깝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외국어는 도구일 뿐, 중요한 건 '생각의 그릇'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서 가장 고통 받는 사람은 바로 그 아이들이다.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이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는지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초등학생 때 외국에 나가서 몇 년 공부시켜보고 싶다는 생각은 신중하게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도구일 뿐인 외국어에, 영어로 몇 마디 할 줄 아는 것에, 왜 그렇게 매달리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아무리 영어를 잘 해도 쓰레기 같은 생각을 말한다면, 사람들은 그에게 감동할 수 있을까?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떤 생각을 말하느냐’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는 그가 담을 수 있는 생각의 그릇을 크게 디자인해주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이 뭔지는 좀더 고민해봐야 하겠지만, 외국어교육에만 열중하는 것은 길을 잘못 들어선 것만은 확실하다. (※ 교육일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일다의 관련 기사보기] 영어 제국주의, 언어 다양성의 위기 | 정부정책 용어에 영어 범람
나도 돕고 싶은 마음에 현준이만 괜찮다면 수업료를 더 받지 않을 테니, 1학년 아이들 수업에도 나와 보충을 받으라고 했다. 마침 구성원도 여유가 있어 권할 수 있었던 건데, 현준이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보충과 자기 수업을 모두 열심히 나오고 있다.
그런 현준이의 노력 덕분에 1학년생보다도 부족했던 실력이 빠르게 극복되어가고 있다. 물론, 아직도 2학년 중간에 채 못 미치는 수준이고 3학년과 비교하면 더 차이는 많지만, 기대한 것 이상으로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처음에 눈치를 보며 자기 의견을 쓰는 데 주저하던 현준이가 자신감을 가져나가는 것이 가장 만족스럽다.
조기유학 후유증 겪는 아이들의 고통
외국에서 살다가 귀국해, 한국어 때문에 고통을 겪는 아이를 본 것이 현준이가 처음은 아니다. 곧 고등학생이 되는 민하도 꼭 같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님은 민하의 한국어 실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현준이 부모님만큼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우선, 민하를 자기 나이에 맞는 학년에 입학시키고 주변의 친구들과 그룹을 짜서 여러 가지 학과 공부를 과외로 시켰다. 그 중 하나가 내 수업이었다.
민하가 그것들을 따라갈 리 없었다. 내 수업에서 그녀는 이해가 잘 안 가는 난처한 상황을 맞으면, 큰 소리로 웃거나 바보스러운 표정으로 마구 떠들며 과잉행동을 보였다. 민하 실력이 느는 것은 고사하고, 다른 아이들에게까지 심각한 피해가 되어갔다. 다른 공부들 역시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냥 둘 수는 없겠다 싶어서 어머니를 찾아 뵈었다.
당시 그들은 출장 지도를 받고 있었다. 당연히 민하는 우리 집에서는 상당히 떨어져 있는 동네에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나와 공부를 계속하길 원한다면, 우리 집에 와서 혼자 공부하는 방법뿐이라고 어머니께 말씀 드렸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건, 이런 제안에 어머니는 어떤 원망도 없이, 1년이 넘게 한결같이 아이를 데리고 다녔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민하의 실력은 많이 향상되었고 난처한 상황에서 보였던 과잉행동도 고쳐, 기존 팀에 다시 합류해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게 되었다.
민하가 외국생활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는 꼬박 4년이 걸렸다. 그래서 6학년이 될 즈음에는 여느 아이와 비슷한 수준이 되었지만, 우수한 아이들과의 간극은 중학생이 된 뒤에도 극복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우리나라에서 평범하게 교육을 받았다면, 충분히 똑똑한 아이가 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드는 민하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정말 안타까웠다. 그래서 현준이 어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가 다른 아이들과의 실력차이를 좁힐 수야 있겠지만, 완전히 극복하기는 힘들 거라고 얘기했다.
그것이 현실이다. 현준이 어머니는 그것을 수긍하는 표정이셨지만, 빠른 속도로 영어를 잊어버리는 것도 말할 수 없이 안타깝다는 표정이셨다. 민하도 5학년 때, 영어 전문학원에서 레벨테스트를 받고 나서 “외국에서 살다 온 애가 맞나요?”라는 질문을 받아, 정말 창피했다는 말을 어머니로부터 들은 바 있다.
영어를 잊어버리는 것이나 우수한 아이들과의 간격을 좁힐 수 없는 것이, 그들이 똑똑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니다. 외국어는 사용하지 않으면 잊게 마련이고 그들이 노력하는 동안 다른 아이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으니, 처음 뒤쳐진 간격을 줄일 수는 있어도 따라잡기는 정말 힘든 노릇이다. 안타깝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외국어는 도구일 뿐, 중요한 건 '생각의 그릇'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서 가장 고통 받는 사람은 바로 그 아이들이다.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이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는지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초등학생 때 외국에 나가서 몇 년 공부시켜보고 싶다는 생각은 신중하게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도구일 뿐인 외국어에, 영어로 몇 마디 할 줄 아는 것에, 왜 그렇게 매달리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아무리 영어를 잘 해도 쓰레기 같은 생각을 말한다면, 사람들은 그에게 감동할 수 있을까?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떤 생각을 말하느냐’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는 그가 담을 수 있는 생각의 그릇을 크게 디자인해주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이 뭔지는 좀더 고민해봐야 하겠지만, 외국어교육에만 열중하는 것은 길을 잘못 들어선 것만은 확실하다. (※ 교육일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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