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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키우는, 희망의 공간 
 
아이들과 공부하는 방 한 켠에는 작은 베란다가 있다. ‘꿰맨 창’도 바로 그 베란다의 창문이다. 이사를 올 때부터 그곳 바닥에는 마루가 깔려 있었다. 처음 베란다 문을 열었을 때, 환하고 하얀 쪽방이 마음에 쏙 들어 이 방은 내가 쓰겠노라고 선뜻 나섰다. 그저 마루가 깔려 있는 베란다일 뿐인 이 공간이 마음에 든 것은, 옛날 자주 들어가 놀았던 아버지 책상 밑이나 다락방 같은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아이들 몸집에 비해 참으로 컸던, 그래서 집안에 하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책상을 우리 남매들은 ‘큰 책상’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 밑에 들어가 노는 걸 누구보다 좋아했다. 그때, 휑하니 뚫린 책상 다리들 사이에는 꼭 보자기를 쳤다. 빨강, 보라 같은 나일론 보자기에 햇살이 투과되어, 책상 밑은 온통 마알간 붉은 빛으로 가득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외서 표지 이미지 (Penguin Books)

그러나 책상 밑에서 놀았던 시절은 잠시였던 것 같다. 곧 책상 밑에 몸이 꽉 끼어, 그 안에 더 이상 앉을 수도 없을 만큼 자란 뒤에는 다락에 올라가 놀았다. 낮에도 불을 켜야만 했던, 창문 하나 없던 그 다락방에서 야트막하게 솟아 있는 작은 나무 턱을 책상 삼아 숙제를 하기도 하고 일기를 쓰기도 했다. 그러다 싫증이 나면, 구석구석 처박혀 있는 물건을 뒤져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통 정리 안된 채, 깡통 같은 데에 아무렇게나 담겨 있던 어머니 물건들 속에는 온갖 신기한 것들이 많아 좋았다. 그 중 특히 내가 좋아했던 것은 색색의 재봉실들이었는데, 항상 새 실이어서 ‘저걸 언제 쓰려나?’ 늘 생각했었다. 물론, 어머니는 끝내 그것을 한번도 사용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세상 속에서 사라진 것들.
 
아버지의 묵은 수첩들을 뒤적이는 것도 좋아했다. 그 수첩에 쓰인 글들은 읽어보지도 않았지만, 후루루 펼치면 종종 하나도 쓰지 않은 흰 면들이 펼쳐지고, 나는 그것들을 겁 없이 쭉쭉 찢어 거기에 인형을 그리곤 했다. 하얗고 맨들맨들한 그 종이는 당시 내가 접할 수 있는 것들 중 최고였다.
 
그렇게 남아 있던 흰 종이를 거의 다 찢어 쓴 어느 날, 아버지의 불호령을 끝으로 나는 더 이상 그 수첩들은 손대지 않았다. 하지만 ‘묵은 수첩을 가지고 왜 저렇게 화를 내시는 걸까?’ 생각하면서, 역정을 내시는 아버지를 멀뚱거리며 바라보았던 기억이 있다. 거기에 쓰여 있던 것들이 다 무엇이었을까? 아무튼, 이렇게 다락방에 대한 기억도 유년시절과 함께 끝이 났다. 이후에는 더 이상 그런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쪽방을 얻었다. 난 그곳을 ‘공부방’으로 쓴 적도 있고, 재봉틀을 들여놓고 ‘바느질방’으로 쓰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쪽방도, 예전의 다락도, 더 전의 책상 밑도, 모두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는 <자기만의 방> 역할을 해주었던 것 같다. 씨앗보다도 작은,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꿈들에 물을 주고 싹을 틔울 수 있는 희망의 공간. 그래서 자기만의 방은 크거나 화려하지 않아도, 구석진 작은 공간 어디에도 만들 수 있겠다 싶다.
 
쪽방에서 꼼지락거리며 뭔가를 할 때면, 꼭 어린 시절 책상 밑이나 다락방에 있는 것 같다. 며칠 전, 그곳에 재봉틀을 앞으로 썩 밀쳐놓고 한 켠에 이젤을 펼쳐 놓았다. 이젠 쪽방을 ‘그림방’으로 쓸 것이다. 요즘은 수채화 그리는 일이 즐겁다. 그림을 잘 그리게 되면, 내가 쓴 글에 직접 그림도 그려 동화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야무진 꿈을 꾼다.

[정인진 칼럼] 우리 고유의 언어가 있다는 것 | ‘미래의 집’에 사는 아이들 | 반딧불이를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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