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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로 내려간 둘란 언니 이야기
“내가 이런 곳에 살았던 적이 있었나… 싶네.”
오랜만에 일이 있어 서울에 올라온 둘란 언니와 홍대 앞을 걷고 있었다. 밀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이리저리 느린 걸음으로 피한다고 피하면서 둘란 언니가 흐흐 웃는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서 대학 다니고 잡지사 기자로, 홍보회사 카피라이터로 뾰족구두 또각또각 소리 내며 걸었던 생활이 10년이 넘었으니, 지금 생활은 그로부터 너무도 까마득해 웃음이 날 정도긴 하다.
10년 전과 지금, 바뀐 삶터와 세계관
둘란 언니는 충남 홍성에 산다. 남편이랑 아들 둘이랑 같이. 그런데 이 남편 만난 사연이 각별하다. 서울깍쟁이 다 된 둘란 언니가 잡지사 기자로 있을 때, 서산에 어떤 화가부부를 취재하러 갔더란다. 달려 들어가고 싶을 만치 멋진 보리밭을 그린 화가의 작품도 작품이지만, 이 은은한 부부의 향기에 취해 그 집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그런데 서울서 처녀가 내려왔다는 낭보를 들은 화가의 친구들이 야심차게 총각 하나를 앞장세워 나타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 무리들은 갯벌에서 밤을 새워 술을 마신 모양인데, 응당 노래가 흘렀고 그 총각이 장구장단을 넣어주고 했단다. 그런데 그 소리가 보통이 아니었다. 둘란 언니는 서울로 돌아왔으나, 그 밤이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었다. 발을 씻다 발톱에 끼인 갯벌모래알을 보고서야 그 밤을 실감하고, 그 사내를 실감했다 한다. 그리고서 나는 둘란 언니가 작은 가방 하나만 꾸려 서산에 내려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용하고 잔잔한 사람인 줄만 알았던 둘란 언니 어디에 그런 강단이 있었는지! 그녀를 알던 이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그리고 곧 아기를 가지게 되어, 이제 놀람은 축하가 되어 쏟아졌다. 남편은 성실하고 활달한 사람이었다. 서산 청년회 풍물패의 상쇄이기도 하니 짐작이 되지 않겠는가.
산달이 다 됐을 텐데, 됐을 텐데 하면서도 이래저래 바쁜 핑계로 연락을 못하는 사이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러다 둘란 언니의 전화를 받았다.
“언니, 축하해요! 아기 잘 낳았는지 전화도 못했어요. 미안. 아기랑 언니랑 모두 건강한 거죠? 이름 뭐라고 지었어요?”
“민서예요. 민서. 근데 우리 민서가 다른 아이들이랑 좀 달라요.”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 되묻지도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이, 언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민서가 다운증후군이이에요.” 아…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말이 되어 나오지가 않았다. 그냥 “언니…” 하고 겨우 목소리를 내 불러볼 뿐이었다.
부모님께 차마 말하지 못해 민서의 장애 사실을 숨기고, ‘다운증후군’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하던 시간을 지나온 둘란 언니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리고 민서를 통해 두 사람은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시골학교 선생님을 꿈꾸며 교원임용고시를 준비하던 남편 성희씨의 꿈을 접고, 두 사람은 민서를 안고 홍성으로 삶터를 옮긴 것이다. 마침 환경농업교육관에서 사람을 찾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부부는 도시의 큰 병원에서 더 좋은 치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더 깨끗한 먹거리, 더 맑은 공기, 더 따뜻한 삶을 민서에게 주고 싶어 오히려 시골로 들어갔다.
느리고 더딘 작은 마을의 시간을 따라
시골생활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하루에 네 번 버스가 들어오는 작은 마을의 시간은 느리고 더뎠다. 이웃들은 아침이고 저녁이고 가리지 않고 불쑥불쑥 찾아왔다.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즉시 해결할 수 있는, 현관문 잠그면 세상과 분리되는 도시의 삶에서 시골의 삶으로 조율해가는 과정은 어려웠다.
하지만 곧 둘란 언니는 깨닫게 되었다. 시골의 속도는 천천히 자라는 아이, 민서의 시간과 나란히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특히 민서를 향한 동네할머니들의 사랑이 각별해, 민서를 앞다퉈 돌봐주시기도 하고 툇마루에 먹을 것을 밀어놓고 가기도 했다.
“민서는 다운증후군으로 인한 정신지체아인데, 남편과 저도 처음엔 굉장히 놀랐고 괴로웠고 두려웠습니다. 남은 인생에는 슬픔과 불행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잘못을 깨우쳐 준 사람은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민서였습니다. 절망을 안고 우리에게 온 줄 알았던 민서가 사실은 희망과 축복을 안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민서와 함께 자라난 둘란 언니는 어느덧 이런 마음을 품게 되었다.
민서는 벌써 10살. 초등학교 1학년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듯 사람을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춤추기를 좋아하며 방긋방긋 잘 웃는 민서는, 동생 민해의 의젓한 형이기도 하다.
민서의 오래된 취미는 삽질. 언젠가 아빠가 일하는 걸 보고 필이 꽂혔는지 틈만 나면 주체도 힘들법한 큰 삽을 들고 열심히 땅을 판다. 그리고 민서는 학교의 도움반(흔히 말하는 특수반. 도움반이 바른 표현이다) 6학년 전체를 통틀어 풍물실력이 최고라, 학교잔치 때 상쇄를 맡기도 했다. 역시 피는 못 속이겠다.
“더 넓게 보는 마음이 생긴 것 같아요”
둘란 언니는 특수교육 보조원으로 3년째 홍성 풀무학교에 다니는 다운증후군 여학생의 학교생활과 숙제를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다. 소풍도 따라가고 현장학습도 따라가고 수학여행으로 중국까지 함께 하며 아이를 돌보는 마음이 각별하다.
“내 자식은 집에서만 보잖아요. 바깥에서 내 아이 모습을 모르는데, 그 모습을 미리 본다고 생각하면 여러 마음이 들지요. 이 아이한테는 이런 점이 어렵구나, 우리 민서도 이렇게 자라겠구나 하구요. 그리고 지역의 초중고 연합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원예수업에도 함께 가는데요. 텃밭도 가꾸고 꽃도 가꾸는 원예수업은 여러 유형의 장애아들이 함께 하지요. 그동안은 내 자식만 생각하느라 다른 아이들이 눈에 안 보였는데, 이제 더 넓게 보는 마음이 생긴 것 같아요. 저조차도 장애인에 대한 여러 편견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둘란 언니는 민서가 조금 더 크면 장애아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을 배우고 더 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다. 그 아이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남은 생을 더 풍성하게 해줄 것 같고, 그렇게 하라고 민서를 우리 가족에 보내준 것 같다고 한다. 민서가 아니었다면 이런 아이들이, 이런 일이 있는지도 몰랐을 거라고….
장애아의 엄마가 된다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되겠지만, 어떤 이들은 분노와 슬픔에서 깊게 아프게 버려져 더 큰 세상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이혜영/일다 www.ildaro.com
[장애아의 엄마로 살기] 불행은 다 지나갔으니까 | 잘사는 법을 배운 27년 세월
“내가 이런 곳에 살았던 적이 있었나… 싶네.”
오랜만에 일이 있어 서울에 올라온 둘란 언니와 홍대 앞을 걷고 있었다. 밀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이리저리 느린 걸음으로 피한다고 피하면서 둘란 언니가 흐흐 웃는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서 대학 다니고 잡지사 기자로, 홍보회사 카피라이터로 뾰족구두 또각또각 소리 내며 걸었던 생활이 10년이 넘었으니, 지금 생활은 그로부터 너무도 까마득해 웃음이 날 정도긴 하다.
10년 전과 지금, 바뀐 삶터와 세계관
10년 전, 잡지사 기자였던 둘란 언니에게 새로운 시간의 문이 열렸다.
그렇게 해서 이 무리들은 갯벌에서 밤을 새워 술을 마신 모양인데, 응당 노래가 흘렀고 그 총각이 장구장단을 넣어주고 했단다. 그런데 그 소리가 보통이 아니었다. 둘란 언니는 서울로 돌아왔으나, 그 밤이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었다. 발을 씻다 발톱에 끼인 갯벌모래알을 보고서야 그 밤을 실감하고, 그 사내를 실감했다 한다. 그리고서 나는 둘란 언니가 작은 가방 하나만 꾸려 서산에 내려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용하고 잔잔한 사람인 줄만 알았던 둘란 언니 어디에 그런 강단이 있었는지! 그녀를 알던 이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그리고 곧 아기를 가지게 되어, 이제 놀람은 축하가 되어 쏟아졌다. 남편은 성실하고 활달한 사람이었다. 서산 청년회 풍물패의 상쇄이기도 하니 짐작이 되지 않겠는가.
산달이 다 됐을 텐데, 됐을 텐데 하면서도 이래저래 바쁜 핑계로 연락을 못하는 사이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러다 둘란 언니의 전화를 받았다.
“언니, 축하해요! 아기 잘 낳았는지 전화도 못했어요. 미안. 아기랑 언니랑 모두 건강한 거죠? 이름 뭐라고 지었어요?”
“민서예요. 민서. 근데 우리 민서가 다른 아이들이랑 좀 달라요.”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 되묻지도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이, 언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민서가 다운증후군이이에요.” 아…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말이 되어 나오지가 않았다. 그냥 “언니…” 하고 겨우 목소리를 내 불러볼 뿐이었다.
부모님께 차마 말하지 못해 민서의 장애 사실을 숨기고, ‘다운증후군’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하던 시간을 지나온 둘란 언니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리고 민서를 통해 두 사람은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시골학교 선생님을 꿈꾸며 교원임용고시를 준비하던 남편 성희씨의 꿈을 접고, 두 사람은 민서를 안고 홍성으로 삶터를 옮긴 것이다. 마침 환경농업교육관에서 사람을 찾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부부는 도시의 큰 병원에서 더 좋은 치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더 깨끗한 먹거리, 더 맑은 공기, 더 따뜻한 삶을 민서에게 주고 싶어 오히려 시골로 들어갔다.
느리고 더딘 작은 마을의 시간을 따라
시골생활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곧 둘란 언니는 깨닫게 되었다. 시골의 속도는 천천히 자라는 아이, 민서의 시간과 나란히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특히 민서를 향한 동네할머니들의 사랑이 각별해, 민서를 앞다퉈 돌봐주시기도 하고 툇마루에 먹을 것을 밀어놓고 가기도 했다.
“민서는 다운증후군으로 인한 정신지체아인데, 남편과 저도 처음엔 굉장히 놀랐고 괴로웠고 두려웠습니다. 남은 인생에는 슬픔과 불행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잘못을 깨우쳐 준 사람은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민서였습니다. 절망을 안고 우리에게 온 줄 알았던 민서가 사실은 희망과 축복을 안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민서와 함께 자라난 둘란 언니는 어느덧 이런 마음을 품게 되었다.
민서는 벌써 10살. 초등학교 1학년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듯 사람을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춤추기를 좋아하며 방긋방긋 잘 웃는 민서는, 동생 민해의 의젓한 형이기도 하다.
민서의 오래된 취미는 삽질. 언젠가 아빠가 일하는 걸 보고 필이 꽂혔는지 틈만 나면 주체도 힘들법한 큰 삽을 들고 열심히 땅을 판다. 그리고 민서는 학교의 도움반(흔히 말하는 특수반. 도움반이 바른 표현이다) 6학년 전체를 통틀어 풍물실력이 최고라, 학교잔치 때 상쇄를 맡기도 했다. 역시 피는 못 속이겠다.
“더 넓게 보는 마음이 생긴 것 같아요”
내 자식만 생각하느라 보지 못했던 아이들과 만나게되면서, 더 큰 세상을 배우게 되었다고 둘란 언니는 말한다
“내 자식은 집에서만 보잖아요. 바깥에서 내 아이 모습을 모르는데, 그 모습을 미리 본다고 생각하면 여러 마음이 들지요. 이 아이한테는 이런 점이 어렵구나, 우리 민서도 이렇게 자라겠구나 하구요. 그리고 지역의 초중고 연합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원예수업에도 함께 가는데요. 텃밭도 가꾸고 꽃도 가꾸는 원예수업은 여러 유형의 장애아들이 함께 하지요. 그동안은 내 자식만 생각하느라 다른 아이들이 눈에 안 보였는데, 이제 더 넓게 보는 마음이 생긴 것 같아요. 저조차도 장애인에 대한 여러 편견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둘란 언니는 민서가 조금 더 크면 장애아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을 배우고 더 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다. 그 아이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남은 생을 더 풍성하게 해줄 것 같고, 그렇게 하라고 민서를 우리 가족에 보내준 것 같다고 한다. 민서가 아니었다면 이런 아이들이, 이런 일이 있는지도 몰랐을 거라고….
장애아의 엄마가 된다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되겠지만, 어떤 이들은 분노와 슬픔에서 깊게 아프게 버려져 더 큰 세상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이혜영/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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