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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사상을 공부하는 박선예 
 
선예를 처음 만났던 3년 전, 아무리 봐도 그는 대학 새내기로 보이지 않았다. 성숙한 외모뿐 아니라, 조용조용한 말투에서도 어른스러움이 묻어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선예는 좀 가벼워지라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듣는다고 했다.

 
선예를 아는 이들은 그의 어른스러움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조금은 발랄하고, 조금은 철없는 20대 여대생처럼 살아도 좋으련만…. 그러나 그의 어른스러움은 하루 이틀에 만들어진 것은 아닌 듯했다.
 
“언니 둘, 오빠 하나 있는 막내딸이에요. 아주 어렸을 때는 집안의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자랐는데…. 제가 미처 철도 들기 전에 언니와 오빠는 다들 절로 출가해버렸어요. 어렸을 때 일이라서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어린 마음에 많이 상처를 받았던 것 같아요. 언니, 오빠가 빨리 집을 떠나버려서 주변 친구들에게 많이 의지했는데, 너무 의지하다 보니 친구들에게도 상처를 받았던 기억도 나고요. 고등학교 때는 방황도 많이 해서 부모님 걱정을 끼쳐드리기도 했죠.”
 
선예는 당시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헤어짐에 대해서 너무 빨리 알아버렸던 것 같다”고 말했다.
 
“어머니도 불교 수행에 많은 시간을 보내셨어요. 그래서 저는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아침저녁 식사준비 같은 집안일을 많이 했어요. 새로 우리 집을 지어 이사 갔을 때, 아버지와 함께 집안 벽지며 장판 같은 것도 다 사러 다녔어요. 그래서인지 어렸을 때부터 어른스럽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불교, 그 진지함 속으로
 
선예는 대학에서 불교를 전공하는 4학년 학생이다. 불교적인 집안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서 불교학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선예가 처음 접한 불교학에는 어려운 용어들이 많고 사상도 복잡해서 처음엔 낯설기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길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도 많이 했지만, 한가지는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것은 바로 20대 젊은 시절에 불교공부를 시작한 것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감사한 일이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려웠던 불교가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을 한층 더 성숙시켰고, 무엇보다도 행복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1학년 때 수업을 들을 때는 멍했어요. 어려운 불교 용어들에 적응하면서 1학년을 보냈어요. 2, 3학년이 되니까 비로소 불교의 참 맛을 조금씩 음미할 수 있게 되었어요. 수박에 비유를 하자면, 1학년때 만난 불교는 수박껍질처럼 딱딱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속을 맛보니 정말 달고 맛있었어요. 2, 3학년 때는 심오한 불교사상을 곱씹으면서 정말 순간순간 행복했어요.”
 
그런데 대학원에 진학을 할 생각을 하고서 집중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4학년 1학기에 들어서서는 좀 달랐다고 한다.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인데, 그 깊이와 양은 어마어마해지는 거예요. 그러면서 아주 중요한 것을 깨달았어요. 예전에는 수업시간에 배운 공사상이나, 연기사상 같은 불교사상이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내 것이 아니더라고요. 몸으로 체득하지 못하면, 그것은 온전한 나의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머리로 안 것은 진정한 깨달음이 아니었어요.”
 
“내 모습에 스스로 많이 놀랐어요”
 
인생의 진리를 찾는 과정은 자신의 관념으로 만들어 놓은 가면들을 하나씩 내려놓는 것인지도 모른다. 불교에선 욕망으로 빚어진 가면을 벗으면 벗을수록 인간은 좀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하는데, 머리로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내려놓아야 한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 길은 결코 쉽지 않다. 깊은 고뇌와 수많은 불멸의 밤이 지나야 비로소 조금씩 알게 되는 것이 인생의 진리일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집안환경으로 인해 어른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던 선예는 이제 스물 셋의 나이로 부처가 깨달았던 그 진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답을 잘 모르겠다고 했다.
 
“3년 전에 인도로 선재 수행을 다녀왔어요. 인도로 떠나기 전만해도 저는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같은 책을 보면 눈물이 날 정도로, 스스로 봉사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환상이 깨졌죠.”
 
그는 인도 불가촉천민들이 모여 사는 둥게스와리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신을 아주 철저하게 볼 수 있는 기회였어요. 그곳에서 자기 자식이 몇 명인지도 모르고, 몇 명이 죽었는지도 모르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런데 생각만큼 슬프거나 동정심이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냥 ‘저 사람들은 저렇게 사는구나’ 하는 조금은 무미건조한 느낌이었죠. 먹을 것이 부족하다 보니, 많이 먹는 다른 봉사자들을 보면 미운 마음이 일더라고요. 그런 저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많이 놀랐어요. 봉사하는 삶은 제가 만든 환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포장하지 않고 꾸밈 없이 살아가는 사람
 
‘이것이 답이다’ 라고 하면 이미 ‘그것은 답이 아니다’라고 불가에서는 말한다. 답이라고 정의를 내리는 순간, 동시에 답이 아닌 것 역시 정의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사상에서는 진리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혹은 ‘여여하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어떻게 나를 잘 포장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공이 좌우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요즈음, 선예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들여다보면서 꾸밈 없이 살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무엇이 진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진정한 자비가 무엇이고, 행복이 무엇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선예. 그의 진지하고도 솔직한 모습 때문일까? 언젠가 머리가 아닌 온 마음으로 진리를 깨닫고, 삶 속에 녹여내는 선예의 모습이 잠시 그려졌다. 그 날이 그리 멀지 않을 듯 하다. 박정선영/ 일다 www.ildaro.com [이 시대 20대] 성장통 앓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  “정직한 행복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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