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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는 라오스의 문화, 생태, 정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여행기를 연재합니다. 필자 이영란님은 라오스를 고향처럼 생각할 정도로 특별한 인연이 있는 분으로, <싸바이디 라오스>의 저자입니다. [편집자 주]
 
늦었다. 지하철역 계단을 급히 뛰어올라왔다. 미안하다 인사를 하니 괜찮단다. 그러고는 우리도 한 명이 아직 안 왔다며 ‘몽 라오(Lao time, 코리안 타임과 같이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습성을 일러 비난하는 말)’라고 둘이 구시렁거린다. 엇, 라오스 사람들이 이런 말을 썼나? 라오스에서는 전혀 듣지 못했던 말이다. 얼핏 안도감이 들다 외려 더욱 미안해졌다.
 
한국에 와있는 라오스 사람들 
 

물은 물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라오스의 산골마을, 그렇지만 이런 두메에도 중학교가 있고, 열두 시간을 걸어 통학해야 하는 학생들이 많아 판자집 기숙사도 있다.

주한라오스학생회 회장단을 이태원에서 만났다. 훔판, 다, 웡, 이렇게 세 명은 한국에 유학생으로 와서 각자 다른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훔판과 웡은 라오스 교육부, 다는 무역부 공무원이다. 훔판과 다는 오는 9월 공부를 마치고 라오스로 돌아간다. 한국에 있는 라오스학생은 서른다섯 명 정도. 그것도 대부분 한국정부 장학금으로 온 중앙정부 공무원들이다.

라오스대사관이 있는 이태원이지만 라오스 음식점은 없어 고향음식이 그리울 이들을 위해 그나마 타이 음식점에서 만났다. 이날 만남은 한국의 한 NGO가 라오스에 대해 지원활동을 하고자 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이 활동에 이들의 참여와 협조를 요청하는 것이었다. 
 
현재 이 NGO는 기후변화와 에너지 정책관련 단체로 특히 기후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라오스, 버마(미얀마), 인도네시아 등 제 3세계와의 연대와 지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원활동의 구체적인 내용은 라오스 산골마을의 에너지자립을 돕고자 라오스 사람들에게 기술교육과 자전거발전기 등을 지원하는 것. 따라서 이 날 만남의 목적은 한국에 있는 라오스 학생들이 더불어 도와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라오스 사람들, 우리가 제안한 모든 것이 마음에 든단다. 이 활동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주한라오스학생회가 후원단체로 병기되는 것도 좋고, ‘라오스 후원의 밤’에도 참여하겠단다. 웬만해선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데, 이들은 계획서 가운데 미진한 것에 대해 질문하고 의견을 보태기까지 했다.
 
특히 다는 자전거발전기를 가져다주기만 해서는 안 된다, 유지관리를 위한 현장 책임자를 확실히 세워야 하고, 나아가 라오스에서 자전거발전기를 자체적으로 제작하기 위한 교육에 보다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오스 커피처럼 진한 타이 커피로 입가심을 했다. 훔판과 다가 라오스대사관에서 회의가 있어 가봐야겠단다. 아, 나도 대사관에 전화해야 한다. 대사 부인께서 부탁하신 화상환자 수술 건에 대해 늦은 답변을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라오스에서 돌아와 여섯 달 째 나는 백수다. 그러나 바쁘다. 남편은 “요즘 게으른 나를 움직이는 것은 오직 라오스뿐”인 것 같다고 말한다.
 
라오스 맺은 인연, 천일을 맞다
 

국제협력봉사단으로 가서 내가 한 일은 믿따팝 중학교에 부족한 공간을 만들어주고, 덤(?)으로 한국어수업을 하며 교사와 학생들과 어울리는 것이었다.

라오스. 2006년 10월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봉사단에 지원한 것으로부터 하면 나와 라오스의 인연은 곧 천일을 맞는다. 인연은, 옛날 처녀가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시집가는 것처럼 맺어졌다.

그 때 행정기획 분야로 지원한 나를 받아줄 나라는 콩고민주공화국과 라오스, 단 두 곳뿐이었다. 여전히 안타까운 뉴스를 전해 오는, 불안한 콩고 파견을 전격 취소한 코이카(KOICA)는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도 없는, 라오스로 나를 보냈다. 그렇지만 그렇게 만난 신랑은 의외로 낯설지 않았다. 다만 당황스러울 정도로 순수했을 뿐.
 
내가 라오스를 간 것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세계 최빈국에서 ‘봉사’를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나는 그 ‘불쌍한’ 나라에서 활동에 따르는 보람보다 그곳 사람들 때문에 행복을 더 많이 누렸다. 라오스는 나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었다. 나는 라오스에서 씰리펀(행운이라는 뜻, 우리식 이름으로 보자면 ‘복길이’)으로 살았다. 결국 씰리펀은 라오스를 고향이라 부르게 되었고, 라오스를 떠나서도 석 달을 울어서야 겨우 이별함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씰리펀이 한국에 돌아와 제일 처음 한 일은 라오스에서의 일기를 책으로 낸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책을 들고 주한라오스대사관으로 찾아갔다. 만일 한국 사람이 라오스에서 모국, 한국대사관을 찾아 간다면 이런 느낌이 들까? 쏨싸눅 1등 서기관, 분통 참사관 등 라오스대사관 직원 모두가 내가 알고 있는 라오스 사람들 그대로 따뜻하게 나를 맞아주었다. 유일한 한국인 직원 박정은 씨는 대사관 식구들에게 일일이 나를 소개하고 책을 소개해 주었다. 바쁜 대사님과도 잠시 인사를 나누었고 대사 부인과는 내 책에 대해서, 또 부인께서 쓰고 싶어 하는 책(한국의 찜질방 문화를 소개하는)에 대해서, 서툴지만 영어보다 훨씬 나은 라오스어로 오래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라오스와의 인연은 이렇게 서울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라오스로 가는 후배 해외봉사단원 교육, 서강대 동아연구소 강의, 제주에서 열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라오스연락관 활동 등등. 경황없이 차비나 벌어 쓰는 일들을 하는 와중에, 내가 돌아오겠노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나마 정성을 기울이고 있던 것은 12월 중순 라오스로 의료 이동진료를 가는 계획뿐이었다. 다행히 라오스 고향 사람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한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착한여행-메콩강 시리즈’, 아시안브릿지가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낯설었다. 공정여행, 책임여행, 에코투어, 어떤 이름도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달려들었다. 라오스로 갈 수 있는, 내 고향 라오스를 소개할 수 있는, 더구나 ‘착한’ 여행이라지 않는가.
 
2년을 라오스에서 살다 왔지만 여정을 짜는데 도움을 주는 것부터 루앙파방(라오스의 고도, 세계문화유산의 도시)에서 착한여행의 코디네이터가 되는 것까지 모두 쉽지 않았다. 착한여행 8일에 의료진료 답사를 겸한 나만의 고향방문 5일을 더하고 돌아와 뒤늦게 며칠을 앓아 누웠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한 여행은 무엇이었나?
 
다시 생각하는 여행의 의미
 

나의 마음의 고향, 라오스 싸이냐부리의 평야 풍경

새삼 라오스로부터 귀로여행 중에 남편이 물었던 것이 생각났다.

“너는 관광과 달리 여행이 뭐라고 생각해?”

남편은 그때 마침 여행이라는 화두를 잡고 있었다. 여행관련 철학, 역사책까지 읽으며 아주 진지했다.며칠 동안의 문답 끝에 나도 진지하게 답했던 것 같다.

“여행은 자기 주도로 하는 궁금한 것, 새로운 곳에 대한 탐색이라고 생각해. 남이 짜주고 보여주는 대로 점 찍고 가는 것이 아니라, 돈까지도 자기가 마련해서 자기가 목적(지)를 정하고 자기가 여정을 짜고 현장에서도 자기가 판단하고 결국 자기가 책임지는 것. 그래서 엄마의 처녀 때 이야기를 듣는 거나, 책 한권 읽는 것, 새삼 동네를 돌아보는 것, 르포를 쓰는 기자도 어떤 여행을 하고 있는 것 아닐까?”
 
이제 여행의 정의에 하나를 더 보탠다. 나도 2년 동안 라오스의 삶을 여행했다. 여행은 삶이다. 앞으로, 정부가 보장하는 봉사활동이 아닌 호시탐탐 노리고 만들어서야만 갈 수 있는 라오스로의 여행은 나의 일이 될 것이다. 삶이 될 것이다.
 
노량진 달동네를 오르는 길은 숨차다. 늦은 밤 달은 하늘 높이 떴을 터인데, 서울은 라오스처럼 맑고 투명해 영광스럽기까지 한 달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도 라오스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 같은 골목 야옹이들은 많다.
 
“양이야, 라오스 학생들한테 후원의 밤에서 노래를 불러 달라고 해야겠다. 나도 대사님하고 ‘끼야우싸오응음’(‘응음강 아가씨의 사랑’, 라오스의 대중가요)을 부르는 건 어떨까? 양이야, 엄마 잘 할 거야. 곧 또 갈 거야…….”
양이에게, 약속한다.  / 이영란의 라오스 여행①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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