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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배경 청년의 목소리] 멘티가 자라서 멘토가 되기까지

 

나는 외국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한국이지만, 유아 시절 어머니의 나라에 가서 지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한국어도 전혀 몰랐고, 당연히 내가 한국인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아버지의 무능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빠는 가정에 무책임했고, 때문에 동생의 출산을 앞둔 엄마는 나를 고향에 있는 큰이모(엄마의 언니) 집으로 맡긴 것이었다.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긴 했지만, 큰 이모집에서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생활했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거나 특별한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사촌 언니는 나보다 약 20살이나 나이가 많아서 가끔은 사촌언니가 엄마 같았고, 이모와 이모부는 할머니, 할아버지 같이 느껴졌다. 어린이집에도 가고, 연말에 학예회 같은 발표회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마다 나를 응원해주러 온 가족들이 다른 친구들 못지 않게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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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나이가 되자 갑자기 한국에 오게 되었다. 한국어를 한 마디도 모른 채 어린이집에 다녔다. 고맙게도 그 시기에, 엄마 나라의 언어를 전공한 대학생 멘토가 우리 집까지 방문해서 한국어를 가르쳐 주었다. 멘토들의 도움을 받아서 조금씩 한국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나는 두 번이나 국경을 넘은 경험에 비해 무난히 성장했다. 그러나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초등학교 시절을 돌아보면 혼자 있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누군가 먼저 다가오지 않으면 온종일 혼자 지내는 자존감이 낮은 아이.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학생들을 향해 질문을 던졌을 때, 손을 들어 발표하는 일 같은 건 없었다. 당시에 돌봄교실 선생님이 내가 숙제하는 걸 도와주셨지만, 학년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수업을 따라가기가 힘들어졌다. 학원 수업도 마찬가지였다.

 

초등 3학년 때까지는 매년 담임선생님이 ‘부모님 중에 외국에서 온 분이 있는 학생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교사 입장에서는 당연한 학생 조사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손을 들어 반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다 나를 향하게 되는 것이 정말 싫었다. 또 학교에서는 다문화가정 자녀라는 이유로 영화도 보고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특혜(?)를 받았다. 그러나 나는 우리 반에서 나 혼자만 따로 봉투(알림장) 하나를 더 받고, 따로 선생님을 만나고, 따로 다른 아이들을 만나야 하는 것이 혜택이 아니라 차별처럼 느껴졌다.

 

나중에서야 안 일이지만, 엄마는 내가 학교에서 무시를 당하거나 동정을 받지 않을지 노심초사하셨다고 한다. 부모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반 아이들에게 ‘학교에 오지 말라’는 얘길 들은 아이도 있다고 했다. 다행히 나는 그런 괴롭힘을 겪지는 않았다. 한 번은 선생님이 반 아이들 앞에서 나를 칭찬했다. 엄마가 외국에서 왔는데도 받아쓰기를 100점 받았다는 것이 기특하다는 거였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아이들도 내게 다가와서 2개국어를 할 수 있어서 좋겠다며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 집에 와서 그 얘기를 했더니 엄마는 “다행이다”라고 하셨다.

 

다양한 색깔의 색종이

 

중학생이 되면서 나와 같은 다문화가정 아이들과 이주여성들을 위한 단체 행사나 프로젝트 등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거기서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주여성들을 만났고, 그 자녀들과 어울렸다. 부모가 어떤 나라에서 왔든 상관 없이 우리의 생활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쌀밥을 먹는 것이나, 핸드폰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나,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싶어하는 거나,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하는 것 등 관심사나 욕구, 고민 등이 비슷했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한국의 언어와 문화뿐 아니라 또 다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처음 생각해보게 되었다.

 

▲ 세상에 어떤 색깔이 맞고, 틀릴 수 있는가. ‘다름’에 대한 이질감과 경계의 시선을 받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원한다. (출처: pixabay)

 

그 시기에 멘토링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했던 친구들 중에서 한 명이 피부색의 차이로 인해 학교에서 반 아이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받았던 경험을 토대로, 멘토와 함께 동영상을 제작한 것이 생각난다. 영상은 다양한 색깔의 색종이를 들고서 ‘이 중 틀린 것이 무엇인가’ 묻는 말에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일 뿐이야’라고 대답하는 내용이었다.

 

사실 나에게도 그런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학교와 학원에 다니는 동안 아이들이나 선생님으로부터 노골적인 차별을 겪지는 않았지만,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 적은 있다. 그것은 ‘다름’에 대한 이질감과 경계의 표현이며, 그런 시선을 받는 당사자로서는 기분이 나쁜 건 물론이고 말과 행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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