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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사회의 전폭적 우크라이나 난민 구호…인종주의 넘어야

▶ 데이트폭력, 가스라이팅의 전모를 밝힌 책! 

 

당신의 연애는 안전한가요

데이트 초기부터 헤어짐, 이별 후 과정까지 피해자의 눈으로 낱낱이 재해석하며, 데이트폭력이 일어나는 과정을 속 시원하게 보여주며 데이트폭력의 전모를 밝힌 책이다. 책의 전체 구성은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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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정치인이자 인디 뮤지션인 친구 마쿠스의 인스타그램에 차 안에서 찍은 동영상 클립 하나가 올라왔다. 영상 속의 그는 흥분한 목소리로 “지금 밴을 빌려 우크라이나 서부 국경으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직접 전쟁 피란민들을 태워 돌아온다는 것이다. 비영리 활동가들을 위한 공유 공간 매니저인 라리사의 소셜 계정에는 회사 마당을 채운 박스더미 사진이 올라왔다. 구호품을 기증받아 정리하는 중이라고 했다. 텔레그램 퀴어 그룹방에서는 트랜스 난민 구호에 집중하자며 모금 링크가 연일 올라온다. ‘엄마와 아이 4명까지 8주 숙박 가능’같은 손글씨 피켓을 들고 직접 기차역으로 피란민 마중 나가는 이웃들도 있다.

 

평소 지역 풀뿌리 활동에 참여하는 일부 시민들만의 행동이 아니다. 동네 구제샵을 비롯한 작은 가게들은 앞다투어 구호품 기증이나 후원금 모금 행사를 하고 있다. 평소 정치색을 띠지 않는 음악대학교도 우크라이나 대학 한 곳과 특별 결연을 맺어 피란 온 학생들 19명에게 기숙사와 연습실을 제공하는 등 수많은 지역사회의 조직과 단체들이 움직이고 있다.

 

인구 22만 명이 사는 남부 소도시인 이곳 프라이부르크 뿐만 아니라 독일 전역에서, 사회 각계각층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반전’ 목소리를 내고 난민을 환대하고 있다. 아무리 인도주의가 보편 가치라고 해도, 다원화된 사회에서 단일 이슈에 이렇게 이견 없이 많은 관심과 자원이 결집되는 것은 드문 일이라 놀랍다. 하지만 독일 입장에서 우크라이나는 지리적으로 멀지 많은데 그곳이 전쟁터가 되었고, 이대로 두면 ‘신 냉전체제’로 더 번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지배적이다. 거기에 전범국으로서 교과서에서부터 반전 의식을 크게 강조한다는 점도 상기하면 지금의 상황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 프라이부르크 시립 극장은 몇 주째 우크라이나 깃발 색으로 외벽 조명을 켜고, 예정에 없던 베르디 레퀴엠 연주회를 편성해서 관람료 수익을 기부한다. (출처: theater.freiburg.de)

 

그런데 석연치 않은 점도 있다. 나 역시 근래 반전, 인도주의 행동에 고무되고 약소하게나마 참여도 하고 있지만, 2015년 시리아 내전 때와는 확연히 다른 환대 분위기에 이질감을 느낀다. 시리아 내전을 피해 중동에서 지중해 발칸 루트로 오랫동안 긴 피란 행렬이 이어졌을 때도 독일 사회에서는 난민을 돕는 시민 활동과 제도적 조치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큰 규모로 빠르게 성장하지 않았고,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여론도 팽팽하게 맞섰다.

 

당시엔 개인, 지역공동체, 국가, 유럽연합 차원에서 모두 뜨거운 논란이 있었는데, 주된 난민 수용 반대 이유는 문화, 종교, 인종적으로 이질적인 ‘아랍계 무슬림’들이 갑자기 대거 들어오면 사회 혼란이 야기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닌 ‘그들’, 낯선 대상에 대한 경계와 불안 심리가 크게 작용한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뿌리 깊은 ‘무슬림 포비아’가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인종적으로 백인이 다수이고, 기독교 문화권에 속한 ‘동유럽 국가’ 우크라이나의 피란민들은 ‘우리’에 가깝게 인식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질감과 의문을 갖는 것은 나뿐 아니다. 이주 분야의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이 비슷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종교와 인종주의에 관해 강의하는 연합복음전도회(der Vereinten Evangelischen Mission) 독일지부 사라 베체라(Sarah Vecera) 차장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도 “왜 이번에만?”이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말한다. 그는 ‘공감의 차이’(empathy gap)가 작동하는 기제를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계몽주의 시대로 거슬러 가면, 백인 유럽인들은 당시에 이미 계몽, 자유, 평등, 박애와 같은 가치를 내세웠지만 그와 동시에 식민지 확장에 힘쓰면서 수많은 사람과 자원을 착취했다. 이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백인이 아닌 사람들을 열등한 존재로 치부하거나 심지어 비인간화(dehumanize)하는 전략을 취했다는 것이다. 당시 철학, 과학, 종교 등 모든 부문에서 이러한 인종주의 이데올로기가 적용됐고 오늘날에도 그 토대는 건재하다는 것이 베체라의 지적이다. (하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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